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찾아보니 그녀의 작품이 꾸준하게 번역되어져 출판되고 있었는데 리안 모리아티라는 작가의 이름이 낯설었다. <허즈번드 시크릿>,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아홉명의 완벽한 타인들>, <정말 지독한 오후>, <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 이 책을 읽고 그녀가 썼다는 작품들의 제목을 바라보니 알 수 없는 끌림이 느껴진다. 그만큼 지독한 책이었다는 말이다. 글의 구성도 그렇고 짜임새의 밀도가 대단하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듯 하면서도 평행선을 달려가듯이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는 듯한 씨줄과 날줄의 조화가 정말 멋있었다. '가족'이라는 주제는 이미 많은 작품으로 다루어져 있지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이채로웠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엄마에 대한 추론이 마치 이 세상에 떠도는 가상정보처럼 한 가족을 혼란속으로 밀어넣는다. 엄마는 죽었다, 라는 문장이 단 한 줄도 없었음에도 이미 엄마는 죽었을테니 누가 범인인가를 찾아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실소했다. 작가의 수에 말려들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는 거다. 이야기는 진지했으나 진부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었고, 아이 넷을 낳았다. 그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여 저희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평범했었던 그 가족의 일상이 어느날 '잠적'하겠다는 짦은 문자만을 남긴 채 엄마가 사라져버린 그날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연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또다시 가족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항상 곁에 머물러주는 사람인 까닭에 우리가 너무 소홀하게 생각한다는 가족, 너무 가까운 존재이기에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되어진다는 그 가족에 대해. 사전적인 말로만 들여다보지 말고 하나 하나의 개인적인 의미로 들여다봐야 그 깊이를 알 수 있는 게 가족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보다도 '가족'이라는 틀 안에 갇힌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상처를 받는 까닭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착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오류였음이 밝혀진 까닭이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리고는 그 결정이 '옳았다'고 믿어버린다.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네 탓'일 뿐이다. 이 책은 그토록 진부한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굵직한 한방을 날린다. 아직 자라지 못한 내 안의 어린아이와 화해를 해야 한다는 말은 심리학적인 말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등장하는 두 가족의 모델만 보더라도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이다. 작가에게 고마운 것은 해체되고 부서지는 이 가혹한 현실처럼 불행하지 않고 모두를 행복하게 마무리 해주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불러온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라고 지긋하게 질문을 남겨주고 있다. 엄마의 실종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마라, 아무것도 믿지 마라, 모든 것을 점검하라."...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그 형사가 결혼을 바로 앞에 둔 사람이었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코로나와 싸우면서 읽은 책이라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경전쟁 -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새로운 지정학 전투,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클라우스 도즈 지음, 함규진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경문제는 네가지 추진력에 따라 움직인다. 제한하기, 확장하기, 따돌리기, 내쫓기이다.(-16쪽)

국경을 이야기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아프리카 내전이다. 서구 열강들이 지도를 놓고 자를 대어 선을 긋는 식으로 서로 땅을 나눠 가졌다는 말때문이다.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는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했던 열강들로 인해 그들은 하루 아침에 적이 되어버렸다. 1900년 초반까지 있었던 식민지 붐으로 인한 일이었지만 그 후 1세기가 한참 지난 2020년 6월이 되어서야 벨기에의 국왕은 식민통치를 당했던 콩고민주공화국의 피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도 진행중인 아프리카 내전의 아픔은 많다. 르완다, 우간다, 소말리아등 표면적으로 보면 인종이나 종교전쟁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들이 예전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리아내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의 분쟁,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 러시아와 체첸의 분쟁도 그렇고 지금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어찌되었든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를 힌두교와 이슬람교도라는 두 체계로 갈라지게 만들었다. 가까이는 일본과 얽힌 중국과 러시아의 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전쟁은 '땅따먹기'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깊이 살펴보면 이들의 분쟁은 단순한 땅따먹기가 아닌 듯 하다. 속내를 살펴보면 그 중심에는 자원이 있다. 국경이라는 선을 그어 영토를 확장하게 되면 거기에 속한 자원도 그들의 것이 되는 까닭이다. 국경은 자연배치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인간의 말이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은 경계선들도 존재한다. 특히나 기후변화로 인해 분쟁이 야기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2050년이면 세계는 물로 인한 전쟁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보인다. 오래전 'water war'라는 영화가 있었다. 물은 즉, 하천은 국경선이 되기도 한다. 경계로써의 의미도 있지만 그 하천이 상류인가 하류인가에 따라 분쟁의 크기도 달라질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경제발전만을 외치는 세상이 지속된다면 물전쟁은 실제적인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의 녹아내림도 거기에 단단히 한 몫을 한다. 물줄기를 바꾼다거나 댐을 만드는 것도 다 그때문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하다못해 세계적인 공유자산인 남극이나 심해, 세계적인 산맥조차도 서로의 땅으로 귀속시키고자 하는 야욕들을 품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의 세계적 공유자산은 위태롭다. 그리고 언젠가는 집집마다 인터넷이 끊길지도 모른다. 해저에서의 분란때문에 말이다. (-163쪽)

기후변화의 속도, 규모, 심각성은 해수면 높이가 중대한 문제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이 바닷물에 잠겨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안긴다. 해수면 상승은 균일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2030년이면 세계 각지에서 약 40퍼센트의 도시 지역이 주기적으로 홍수를 겪게 될 것이다. (-169, 170쪽)

이런데도 국경선이 필요할까? 땅이든 바다든 저마다의 경계선이 필요할까? 기후변화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는 오직 그나라만 겪게 되지 않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의 조각들은 지금 누군가의 기념품이 되어 존재한다. 자연의 파괴와 동식물의 멸종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이 지구가 인류만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주인행세를 하고 있지만 이미 자연은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는 걸 외치기 시작했다. 사라져가는 땅 위에 살던 사람들은 기후난민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갈 곳이 없다. 파도에 떠밀려온 작은 아이의 주검처럼. 스마트국경, 수중국경, 우주국경, 바이러스국경등 목차에 보이는 국경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계화로 인해 국경장벽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국경이라는 의미가 줄어든 것은 아니고 오히려 국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더 늘어났다고 한다. 무인지대나 승인되지 않은 국경을 어떻게든 자국의 영토로 만들어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것도 미래의 지구를 생각한다면 부질없는 짓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 지구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든 문제점은 인류의 잘못된 이기심이 불러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것들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게 한다고 하여 지정학적 국경이든 수중국경이든 스마트국경이든 제아무리 선을 그어봐야 바이러스는 국경을 알지 못한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기로운 좌파생활 - 우리, 좌파 합시다!
우석훈 지음 / 오픈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 그래서 어쩌라고? 책을 읽고 바로 묻게 된다. 하지만 답은 이미 책표지에 나와 있다. 그러니까 우리, 좌파합시다! 라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좌파라는 게 참 별거 아니다. 그렇다면 나도 좌파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베이비부머세대의 막차를 탄 사람으로써 하는 말이다. 어쩌면 툭하면 나오는 이념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들이 지긋지긋해서일 수도 있다. 책을 통해 진보라는 개념에 대해 어느정도는 틀을 잡게 되었다. 진보가 좌파는 아니다. 늘 궁금했었다. 약국에서 파는 약과 의사가 처방하는 약의 차이가 무엇일까? 확실한 건 약국에서 파는 약의 효능이 덜하다는 거였다. 일단 약국에서 파는 약보다 처방전으로 사는 약의 효과가 훨씬 세기는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결론적으로 말하면 처방전으로 사는 약이 약국에서 그냥 사먹는 약보다 약성분이 조금 더 많다는 것인데 그것을 빗대어 진보의 성향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지 않은가 말이다. 한국에서 좌파들이 사라지면 은밀한 토건과 음습한 거래에서 진보와 보수가 대동단결하는 지점이 너무 짧아진다.(-40쪽) 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보수니 진보니, 좌파니 우파니, 내 편이니 남의 편이니 하는 말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그냥 찌그러져 살고 있다. 이놈의 세상은 어찌된 일인지 각자의 생각을 존중해주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아들녀석이 살아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저는 좌파인데요, 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을 빌려보자면 좌파는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중요하며, 삶에 있어서 같은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남녀평등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평등... 3포세대, 이삼십대가 포기한 채 살아야 한다는 세가지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1세기, 아직도 한국의 진보는 너무 비분강개형이다.(-65쪽) 비분강개란 의롭지 못한 일이나 잘못되어가는 세태가 슬프고 분하여 마음이 북받친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진보는 앞으로도 쭈~욱 비분강개형일 듯 하다. 한국의 진보는 정책적으로, 미학적으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완전 실패,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학벌없고, 선후배없고, 나이 상관없는 만남이 가능해질까? 유교적 엄숙주의에 일본식 선후배문화가 찌들어서 엄청 엄숙한, 족보없는 엄숙함이 한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말에 실소했다. 과연! 잘은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서. 지나치게 엄숙한 건, 더구나 집단적으로 엄숙한 건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성이 매우 약한 상태라는 증거(-84쪽) 라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지금과 같이 피곤한 시대에 엄숙함이라는 건 아마도 사람들을 지쳐 쓰러지게 만들 것이다. 그런 세상일수록 웃음이 필요하고 그런 세상일수록 너그러움이 필요할 것이다. 웃음을 잃고 너그러움이 사라지다보니 뉴스에서는 연신 험악한 사건들만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뉴스에서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걸러내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참 딱하다. 모두가 근원적인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외면하는 까닭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일이 너무 슬프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의 말이 숙연하다.힘을 가진 패거리를 사람들이 피하는 것은 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에 공감한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속담도 있다.


이갈리테리언, 21세기 좌파의 본질은 평등주의자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게 좌파다.(-109쪽) 책을 보면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모든 인간이 프로그램에 의해 정해진대로 태어나고, 정해진대로의 일만 하다가, 정해진 순간이 되면 사라지는 세계가 멋진 세계라고 믿는다면 그건 정말 불행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세계를 거부하며 아나로그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들은 결코 낙후된 존재가 아니다. 교육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라는 말이 10대인 중학생의 입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북한이 중2 때문에 넘어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무슨 말이야? 했었는데 이 책에서 우리의 청소년 문제에 대해 하는 말들은 예사롭지가 않다. 잘못된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사교육 문제는 정말이지 백퍼센트 공감하게 된다. 늘 하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은 정말 심각하다. 철저히 이론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유럽 여러나라의 좋다는 제도는 다 가져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만 오면 본질을 잃고 이상하게 변질되어 버린 채 그 형식만 열심히 떠들어댄다. 그러니 우리의 청소년들은 마음 둘 곳을 잃은 채 방황하게 되고 뭐든 1등만 원하는 상태에서 자살률까지 세계1위를 달리고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서글프고 안스럽다. 놀라운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정도에 커피중독이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애들이 무슨 죄라고 그 나이때부터 인생을 고민하고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한국 교육의 목표와 목적은 딱 하나뿐이다. 대학입시를 위하여,라는. 좁고 짧은 생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교육이 바뀌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단언컨대 청년들이 포기했던 그 세가지의 문제도 점차 해결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를 얘기할 수가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를 그 똑똑한 사람들이 몰라서 안하고 있을까? 그게 아니라서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알면서도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빨리 없어져야 한다. 월수입이 600만원임에도 자신을 가난하다고 생각한다는 현실은 그야말로 비극이면서 또한 희극이 아닐 수가 없다.


좌파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저자의 말을 다시 빌려보자면 이렇다. 근로기준법을 외치고 떠난 전태일이 진보냐, 좌파냐? 당연히 좌파다. 전태일이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싸웠지 진보의 집권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싸우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진보와 좌파는 이렇게 다르다. 좌파에게 남녀평등은 기본이다. 좌파라는 말에 말도 안되는 색을 입히지 말자. 한국 자본주의의 약점은 너무 단기적 이익에만 몰두하다보니 시스템의 재생산은 물론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경제주체의 재생산에 실패했다. 이런 경제 시스템에서는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195쪽) 공유하고 협력하기, 이것은 자본주의 모순앞에서 좌파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209쪽) 우파들은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남아도는데도 '배가 불러서' 힘든 일자리는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일자리란 중소기업 일자리를 가리킨다.(-238쪽)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자식에게 왜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가? 대한민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현장직을 무시하고 있다. 기술을 천대했던 옛날과 지금이 얼만큼이나 달라졌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오래된 영화 <친구>의 대사가 생각난다. 그렇게 좋다면 니가 가라! 쓰다보니 열받는다. 이제 결론을 말해보자. 말만 번지르르하고 형식만 그럴듯한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적 이념은 이제 바뀔 때도 되었다. 21세기에 개인의 행복을 넘어서는 이념이나 종교는 없다. 만약 있다면 과도한 이념 현상일 뿐이다. 적당히 가벼워지고, 적당히 취향에 관한 문제로 생각하고 넘어가도 된다. 이념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생활하기 힘들어진다.(-338쪽) 한마디로 좌파는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문제가 생기면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는 게 맞다. 이 책을 읽는데 꽤나 시간을 소비했다. 한 줄, 한 줄을 아껴가며 읽었다는 말이다. 때로는 실실 웃으면서, 때로는 어이없어 하면서, 때로는 분노하면서 그렇게 읽었다.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시간이었다. 뜻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참 좋았다. 왠지 서정적인 문장들이 예쁘게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 같았다. 작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은 무엇일까? 며칠을 마음의 상처로 인해 아파했다. 그 상처가 빨리 아물어 흉터가 되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詩의 힘에 기대고 문장이 전하는 위로에 감사했다. 때마침 눈에 뜨인 책제목이어서 위안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글자만으로 모든 것을 전할 수 있다면 경이롭지 않겠는가! 풀, 꽃, 흙, 봄, 둘, 숨같은 말은 듣기만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툭, 쫌, 쉿같은 말을 들으면 왠지 긴장하게 된다. 한글자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기로 치자면 '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고향갑이라는 저자의 이름이 낯설었는데 책을 펼치자마자 소개글이 보였다. 글을 쓰며 노동현장을 전전했다고. 노동자로 일했으며 노동야학에 참여하며 습작했다고. 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그 후, 오래도록 '글노동자'로 살고 있다고... '글노동자'라는 말이 시선을 붙잡는다. 그렇지... 글을 쓰는 것 또한 노동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으로 쓴 글에는 그의 삶과 철학이 담길 수 밖에 없다. 저자의 말처럼 밥을 먹어야했기에 세상과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어쩌면 저자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글을 쓰고자 했던 건 아닌 듯 하다. 삶의 형태가 사람을 만드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 까닭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저자의 산문집이다. 그러니 저자의 삶이 녹아들 수 밖에 없다. 저수지가 웁니다. 물에 가려진 것들이 따라서 웁니다. 울음은 얼어붙은 저수지 안에 가득합니다. 설움 때문이겠지요. 울음을 따라 균열이 얼음을 가릅니다. 갈라진 얼음 위로 지는 해가 피를 토합니다. 얼음 위로 뿌려진 노을은 갈라진 얼음만큼이나 서럽습니다. 노을이 서러워, 갈라짐이 서러워, 또 그렇게 저수지는 웁니다. - 「곡哭」 중에서 처음에는 아름다운 문장의 나열이 읽기에 좋았다. 문장이 그려내는 그림이 슬프게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어쩐 일인지 자꾸만 현실을 뒤돌아보게 한다. 혹독한 채찍질처럼. 자신을 다그치는 듯한 문장들이 못처럼 박혀있다. 그런 까닭인지 읽는 이에겐 껄끄러움이 느껴진다. 껄끄러워도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먹어봐야 맛을 알듯이 책도 이렇게 읽고나서야 이런 책이었어? 싶을 때가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글이 때로는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때로는 따가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외면하자는 건 아니다. 당연한 진리를 또하나 새긴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야 흉터로 변한다는 것을. 그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덕후를 위한 교양 수업 - 365일 1일 1지식
라이브 지음, 김희성 옮김 / 성안당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덕후'라는 말은 일본어 御宅おたく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다지 좋은 의미로 쓰여지진 않았으나 지금은 뭔가 한가지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보이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다. 하다못해 뭔가 하나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에게까지 덕후라는 말이 쓰여지는 듯 하다. 어쩌다가 일본말이 한국에서 쓰여지게 된 것일까? 우리집에도 있다. 라이트노벨에 빠져 방을 도서관처럼 꾸민 녀석이. 그런데 그 현상에 대해 굳이 덕후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저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음직한 작은 취미가 아닐까 싶어서. 열정과 흥미를 보이는 것은 좋으나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현실적인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덕후'라는 말이 품은 다양함을 알고 싶었다. 책의 소개글에서 덕후들이 좋아할 만한 장르와 전문 용어를 다뤘다는 말을 보았으면서 왜 그렇게까지 생각했는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반적인 관심을 통해 이 책을 바라본다면 조금은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일본색이 너무 짙다. 역사와 신화, 전설이나 문학, 철학이나 심리등을 나누어 구성했다고는 하지만 마치 일본의 신화를 공부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떠다니는 정보들을 한데 모아 요점정리를 해 둔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게임을 좋아하거나 전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나름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을 듯 하다. 적어도 게임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신화나 전설의 유래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을까 싶어서.


오래전 신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때가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화라면 '그리스로마 신화', '북유럽신화', '켈트 신화', '이집트 신화'쯤일까? 남의 나라 신화를 열심히 읽다보니 우리나라에는 어떤 신화나 설화가 있을까 싶어 찾아 헤맨적도 있었다. 신화는 대체적으로 비슷한 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모든 학문의 근원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신화의 파급력은 대단하다. 신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각 나라 또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문화, 역사등에서 볼 수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 또한 다른 나라의 신화를 번역하는 과정이나 해석하는 과정에서 잘못 전해진 것들도 꽤나 많이 볼 수 있다. 신화가 환타지나 SF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중 철학과 심리를 공부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귀에 익었던 말들의 정확한 의미나 배경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예를 들면 '헴펠의 까마귀', '슈레딩거의 고양이', '라플라스의 악마', '메리의 방' 등이다. 일본의 괴담이나 요괴들이 중국의 '산해경'에서 차용된 것들이라는 점이나, '프리메이슨'처럼 잘못된 지식을 제대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으면 재미있을 듯한 이야기거리였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