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요일
마렉 플라스코 지음, 박지영 옮김 / 세시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비요일, 우요일,13월,32일, 그리고 제8요일...
우리의 생각속에만 존재하는 날들.
그리고 우리에게 야릇한 의미로 다가오는 날들.
그런 날들속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비요일과 우요일의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13월과 32일의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그러다 다시돌아와보면 그자리.

작가 박범신이 작품속에서 최고의 순수성으로 추천해주었던 아그네시카를 만났다.
아그네시카가 머무는 곳에는 폐허와 술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희망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를 순수하다고 봐줬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꾸미지 않는 그녀의 내면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욕망과 처해진 상황을 하나의 꾸밈도 없이 그대로 보여주며
또한 그대로 느끼며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우울한 감정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왜 이러는거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지은이 마렉 플라스코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출생하여
스물여섯 살에 작가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조국을 잃고 망명길을 떠나야 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말에,
모순투성이인 폴란드의 암울한 현실을 폭로하고 인간 본질의 문제를 심도있게 파헤친,
이라는 말에 그렇구나,하면서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인간이 이토록까지 처절한 우울감속에 빠질수도 있는것인가를 되묻고 있었다.
시대적 배경이 아무래도 가슴에 와닿지가 않았다.
이념과 사상의 기로에 서있으면서 자신에 대한 분노를 어쩌지 못하는  오빠를 바라보던
아그네시카의 시선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져 있었을까?

아주 평범한, 지독히도 평범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들.
그들에게 찾아갈 희망은 아직도 흙탕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과 멈출것 같지 않은 비를 바라보며 절규하는 아버지.
어디고 꺼져버리든지,뒈져버리든지 하라니까!
이대로 가다간 내가 미쳐버리겠어! 어떤 결판을 내든지 해야지.
병이 들어 죽음을 바라보는 아내,  사랑과 이념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해 술로 사는 아들,
그리고 딸이 얽켜있는 비좁은 일상속에서 잠시만이라도 탈출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일요일은 빗줄기에 가려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고독을 외쳐대는가?
가슴속에는 그토록 많은 사랑과 열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전해줄 수 없는 공허함만을 한가득 품고 살아가는 까닭에
우리는 모두 외로운 것일까?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전쟁같다. 때로는 처참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제8요일을 그린다.
하지만 우리는 설령 오지 못한다해도 희망을 기다린다.
내일은 괜찮아질거라고 주문을 외고, 오늘까지만이야 하면서 최면을 건다.
그렇게 털어내고 털어내고 또 털어내면서 산다.
아마도 그렇게 믿고 싶은게 들키고 싶지 않은 속내일것이다.
그래서 기다리고 갈망하고 꿈을 꾸는 것일게다.
좀 더 나은 내일을.
어쩌면 이미 지나쳐갔을 제8요일을.
어쩌면 저 앞에서 나를 기다려줄 희망의 제 8요일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기 위한 벽이 있는 그 작은 방을 아그네시카는 찾지 못했다.
사방이 벽으로 가린 방을, 아니면삼면만이라도 괜찮다고 말하던 아그네시카는
결국 그 방에서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었다.
자유롭게 사랑을 나눌 그 작은 방, 제8요일이 머금은 희망이란 존재가 그녀를 찾아와 주었을까?  
/아이비생각

아침이었지만 여전히 하늘은 흐려 있었고, 어제 하루 종일 쏟아부었던 비는이제 멎어 있었다.
"하늘은 뭐가 불만인지 그토록 쏟아부은 비만으로는 부족해서 아침부터 또 저렇게잔뜩 구름에 가려 있구나.
 이러다간 이번 주 한 주일 내내 온통 장마로 잡쳐버리는 게 아니냐?"
하늘을 잔뜩 노려보면서 아버지가 불만스럽게 옆에 서 있는 아그네시카를 보고 말했다.
"아아,오늘이 어제의 일요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의 긴 한탄이었다. <208쪽 마지막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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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 선택하면 반드시 후회하는 이들의 심리탐구
배리 슈워츠 지음, 형선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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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신발을 고르고, 문을 나선다.
그리고는 또 선택이다. 버스를 탈 것인가, 지하철을 탈 것인가, 택시를 탈 것인가....
수많은 선택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게 현대인의 필수사항이 아닐까 싶다.
그 어느것 하나라도 누가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는 나만의 선택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듯 보여지는 것들로 인해 우리는 머리를 싸매고 힘겨워한다.
뭐든지 다 그렇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저 간단할 뿐인데 그게 잘 안되는 거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속이 엉킨 실타래 같았다.
도대체가 정리되어지지 않는 어수선함때문에 참으로 오랜시간을 끌었다.
주변에서 혹은 나 자신으로부터 발견되어질 수 있는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이지 책읽기가 너무 힘겨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 책을 끝까지 봐야하나? 그만 봐야하나?

신발장이나 옷장에 사용하지 않는,그리고 결코 사용하지 않을 옷이나 구두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77쪽>

이렇게 묻고는 있지만 이미 작자도 그 대답은 알고 있다.
그럼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리라.
그 선택을 함에 있어서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중간 중간마다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제시해놓고는 또한 거기에 따른 답을 보여주고 있다.
아주 복잡미묘하게 꼬인 꽈베기같은 말로.
 
궁극적으로는 시간이 가장 희소한 자원이며,
현대의 수많은 '시간 절약' 기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수많은 선택을 하는 데 시간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114쪽>

그래서 어쩌라고? 그 시간을 많이 줄여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건가?
그러면서도 작자는 그럴 수 없을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지니 그것또한 아이러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카피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는 말도 될 것이고
그러니까 우리가 내미는 것을 얼른 받아먹으라는 말도 될 것이다.
잘 생각해보든 내미는 것을 낼름 받아먹든 그 선택의 결과는 내 몫이다.
문제는 그 선택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보다는 알게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까닭에
그 선택이 더 힘겹고 어려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나 하나만 생각한다면 뭐 그리 어려울 건 없다.
그것을 선택했을 때 타인들의 시선앞에 던져질 선택의 결과를  더 의식하기 때문에 힘겹다.

현대의 '성공'은 달콤 씁쓸한 것이며, 그와 같은 씁쓸함의 주요 요인은
선택의 과부하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도 많은 선택은 심리적인 고통을 야기하고,
특히 후회, 지위에 대한 관심, 적응, 사회적 비교,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극대화와 결합할 때 더욱 그러하다.<226쪽>

1. 정말로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이 늘 사는 것을 고수하라.
2. '새롭고 개선된 것'에 유혹당하지 마라.
3. '가렵지' 않으면 '긁지' 마라.
4. 그렇게 할 때,
    세상이 제공하는 그 모든 새로운 것을 놓치게 된다고 걱정하지 마라.
<232쪽>

선택에 의한 우리의 힘겨운 문제와 그에 따른 해답이 아닐까 싶은 구절이다.
최고의 만족보다는 적당하게, 늘 새로운 것보다는 적정선에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마음을 다스리면 된다는 말같다.
너무 큰 욕심을 부리다보면 마음에 힘겨움이 온다는 말같다.
사람이 외로운 것은 누군가 곁에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과의 친밀도가 적기 때문이라는 말.
그 말을 보면서 나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나에게 맞는 생활을 한다면 선택에 의한 커다란 힘겨움은 느끼지 않을거라고.
황새를 따라 걷다가 사고를 당하는 미련함은 갖지 말라고./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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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살해사건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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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보아온 조선사이야기의 아류쯤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받아들고 한번 훓어보고 난 뒤에 나는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그리 쉬운 책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정말이지 참 대단하다.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좀 과하고 그렇다고 역사서라고 보기에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추리소설도 아니다. 왜냐하면 책 속에 부록처럼 엉켜져 있는 수많은 사료들때문이다.
작자가 사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은 그야말로 멋진 책이다.
여기, 라고 딱히 지적해주지 않은 채 서서히 훓어내려가는 조선이라는 시대적인 배경이
방대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세세하게 집어주는 맛 또한 일품이다.
문어체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어체의 맛을 내니 읽기가 참으로 수월하다.

너무 좋은 것만 그러나 너무 추한것만 가려내는 것도 아닌 옛일들이
하나하나씩 드러날때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곤 했다.
조선사에 빠져 그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나에게 또한 놀라움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길 옆에 집을 지으려면 참견하는 사람이 많아 3년이 되어도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큰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계유정난을 일으키기 전 명분이 없다하여 주변사람들이 하나둘 수양대군에게 등을 돌릴 때
그의 책사 한명회가 한 말이다.
한 시대를 마감하고 한 시대를 다시 여는 것이 평화로웠던 적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여준 대목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연산군대에 이르러 생겨났다는 흥청망청의 유래를 읽으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었던 야사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과
후대에 성군이라 일컬어지던 왕들이 귀족과 양반들에게는 좋은 왕이었지만 오히려 백성에게는
좋은 왕이 되지 못했다는 것과 그 반대로 성군이라 일컬음을 받지는 못했으나 오히려 백성에게는
좋은 왕의 모습으로 보여진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색다른 느낌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 책은 어찌보면 꽤나 딱딱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주 천천히 읽어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묘미가 숨어 있다.
자연스럽게 시대를 풍미하던 선비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또한 그 선비들이 어찌하여 죽음의 늪속으로 빠져야 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자의든 타의든 죽임을 면치 못했던 선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해 본다.
그 선비들의 모습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백성일까? 아니면 권력가들의 속성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들이 단지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
학창시절에 저 문구를 외워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시대적으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는 잘 알지 못했어도 역사시간이 되면
줄줄이 외워대던 왕들의 계보.
책속에서 만나지던 왕들의 휘장 저편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앉아 있었을 선비들의 모습.
어려웠던 한편의 역사서 해설편을 읽은 듯한 느낌이다.
우리의 학생들에게 혹은 우리의 역사에 한발 다가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또다른 조선사 이야기를 찾아 헤매게 될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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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 신들의 보물에서 반지전설까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의 세계
안인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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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북유럽신화를 만났을때는 혹시나 그리스로마신화의 아류가 아닌가 싶었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들을 읽으면서도 흐름을 읽어내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둘의 내용과 구도가 어쩌면 그리도 비슷하던지...
그러다가 물음표와 만났던 것 같다.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시작하여 북유럽신화, 중국신화, 일본신화, 우리신화를 보게 된 것은
그 물음표에 어떤 느낌표를 찍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우리신화를 만나면서 민간신앙의 일부로 자리잡혀져 있는 모습에 약간의 실망도 느껴야했지만
왜 우리는 우리의 신화를 그토록 홀대하면서 살아야했는가 묻고 싶었었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우리의 신화만큼은 서민들의 마음과 힘겨움을 달래주던
진짜 신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愚問과 愚答에 매달려보기도 했었다.
신화라는 게 어느나라의 신화가 되었든 구도는 비슷한 것 같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없었던 가운데에서 불현듯 무언가가 나타나 이름을 얻게 되고
그 이름속에서 하나둘씩 태어나던 것들속에서 우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뺀 나머지 존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고 이름을 부여하게 되고
그 이름에 따라 어떤 가치를 부여하게 되고...
그렇게해서 이 세상은 커다란 하나의 그림처럼 만들어지게 되고..

처음 그리스로마신화를 만났을때 가장 잘 기억되어지던 것은 신들의 이름이었던 것 같다.
제우스,헤라,아폴론,하데스,아프로디테 등등등.
하지만 북유럽신화를 만났을때는 달랐다.
맨처음 이세상이 열리는 과정이 놀라웠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리고 또 그 아래 땅속세상이 열리는 과정들.
커다란 생명나무에서 하나둘씩 태어나던 것들.
그 생명나무가 뿌리를 담근 세개의 샘물.
그리고 인간처럼 아파하고 고뇌하는 모습.
대표적인 예로 오딘이 지혜를 얻기위해 눈을 빼앗기고 고통을 당하는 장면처럼
그리스로마신화속의 신들과는 뭔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의 신화에서도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겨나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져 있다.
하늘과 땅속세계의 중간계에 인간이 자리한다는 것은 우리신화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신기하게도 인간은 두세계의 중간에서 두세계의 지배를 모두 받는 듯 하다.
뭐 그럴수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북유럽신화에 빠지게 된 요인은 간단하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비해 신들의 모습이 인간에 좀 더 가깝다는 거였다.
인간을 무조건 다스리며 발아래 두기보다는 함께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
북유럽신화속의 신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신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가 살아온 모습 또는 살아가는 모습,
살아가야 할 모습들이 녹아져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세계관이나 경제관 혹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맛깔나게 보여주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 광범위한 테두리를 두르고 있는 것이 신화가 아닐까 싶다.
더구나 이 책은 내가 그토록 찾아헤매며 알고 싶어하던
신화속에서 살아숨쉬며 함께 어울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친절하게도 구절구절마다 잘 풀어주었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음이다.
결코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곁에서 살아 숨쉬는
하나의 이야기로써 존재하는 신화를 이 책에서는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책속에서 잠시 김춘수님의 詩 '꽃'을 인용한 부분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렇게 저렇게 이름붙이기를 좋아하는 우리네 습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반가운 것은 우리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영화들의 속성을 알게 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반지의 제왕>에서 알게되었던 절대반지의 탄생이나 골룸의 존재,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보여주었던 그 절대반지의 여정이나 저주 같은 것들은
보는내내 머릿속에서 영화의 장면과 함께 하며 책속세상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했다.
물론 영화가 원전을 충실하게 따른다는 건 좀 어렵지만 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조차도 약간의 각색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모든 이야기와 시문학의 원천이라고.
가장 단순하게 보이는 것 속에 가장 깊은 뜻이 숨어있다고.
멋진 말이다. 모든 이야기의 원천이란 말에 공감한다.
또한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단 한줄의 문구를 빠뜨릴수가 없다.
한번쯤은 들어봄 직한, 하지만 아직은 낯선 북유럽신들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느낄수 있도록 우리네 정서로 친절하게 풀어낸 책이라는 말...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숙제를 생각해냈다.
가지를 잘라 물에 담그면 물이 파래진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고 불린다는 나무.
그 많고 많은 나무들중에서 물푸레나무를 탄생나무로 정한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산기슭이나 골짜기 물가에서 자라지만 분포은 아시아권으로 나오는데?
나는 왜 그게 궁금한거지?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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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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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준 책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읽는 중이나 읽고 난 후에도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매력을 지닌 책이 아닐까 싶다.
책속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의 생각을 빌어 어른들의 세상을 비꼬는 책은 몇권 본 듯한데
이 책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시기에서 방황을 하는 청소년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홀든 콜필드라는 아이의 생각과 시선을 통해서 물욕과 탐욕,그리고 성욕에 물들어버린
어른들의 세계를 아주 통렬하게 비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전에 겪어야 할 하나의 시련인지도 모르겠다.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은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것들 뿐이다.
어느것 하나 가식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어느것 하나 미사여구를 끌어다 붙여가면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사로 잡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에 드는 멋진 책을 읽고나면 그 작가와 전화통화라도 하고 싶어진다는 말은
종종 내가 책을 읽고 난 뒤에 느낄 수 있는 감정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읽고나서 나는 정말이지 그 작가에게 달려가고 싶었었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그랬었던 기억이 떠올라 살풋 웃음지어 보기도 한다.
그 나이적에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이나 이성에 관한 감정들을 정말이지 아주 솔직담백하게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누구나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릴만큼.
꿈은 클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꿈때문에 또한 좌절과 포기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도 역부족으로 느껴지는 현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까닭이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그것들을 원하는만큼 내게서 필요로 하는 것들도 많은 까닭이다.
그런 까닭에 젊은 시절의 꿈은 아름답다는 말일까?
 
"지금 네가 뛰어들고 있는 타락은 일종의 특수한 타락인데, 그건 무서운 거다.
 타락해가는 인간에게는 감촉할 수 있다든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바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본인은 자꾸 타락해가기만 할 뿐이야.
 이 세상에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신의 환경이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걸 도저히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단념해버리는 거야. 실제로는 찾으려는 시도도 해보지 않고 단념해버리는 거야.
 내 말 알겠니?"<276쪽>

방황하는 홀든 콜필드에게 앤톨리니 선생이 들려준 말이다.
듣고 있는 콜필드는 무조건 네,네, 알겠습니다로만 응대를 하고.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콜필드의 마음을 붙잡아 준 것은 부모님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닌
어린 동생의 마음이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나름대로는 힘겨운 오빠를 이해해 주었던 그 순수함에
끝없는 타락의 세상속으로 발을 디딜뻔하던 콜필드는 다시 자신의 세상속으로 돌아와 웃음짓는다.
純粹...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게 몇번째지?
늘 그렇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이렇게 아이처럼 군다.
생각뿐인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는 핑게를 대지. 무엇무엇때문이라고.
책장을 덮고 느끼는 이 나른함은 무엇일까?
그냥 부드러운 이불을 덮고 한숨 자고 싶어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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