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좌파생활 - 우리, 좌파 합시다!
우석훈 지음 / 오픈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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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래서 어쩌라고? 책을 읽고 바로 묻게 된다. 하지만 답은 이미 책표지에 나와 있다. 그러니까 우리, 좌파합시다! 라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좌파라는 게 참 별거 아니다. 그렇다면 나도 좌파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베이비부머세대의 막차를 탄 사람으로써 하는 말이다. 어쩌면 툭하면 나오는 이념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들이 지긋지긋해서일 수도 있다. 책을 통해 진보라는 개념에 대해 어느정도는 틀을 잡게 되었다. 진보가 좌파는 아니다. 늘 궁금했었다. 약국에서 파는 약과 의사가 처방하는 약의 차이가 무엇일까? 확실한 건 약국에서 파는 약의 효능이 덜하다는 거였다. 일단 약국에서 파는 약보다 처방전으로 사는 약의 효과가 훨씬 세기는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결론적으로 말하면 처방전으로 사는 약이 약국에서 그냥 사먹는 약보다 약성분이 조금 더 많다는 것인데 그것을 빗대어 진보의 성향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지 않은가 말이다. 한국에서 좌파들이 사라지면 은밀한 토건과 음습한 거래에서 진보와 보수가 대동단결하는 지점이 너무 짧아진다.(-40쪽) 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보수니 진보니, 좌파니 우파니, 내 편이니 남의 편이니 하는 말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그냥 찌그러져 살고 있다. 이놈의 세상은 어찌된 일인지 각자의 생각을 존중해주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아들녀석이 살아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저는 좌파인데요, 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을 빌려보자면 좌파는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중요하며, 삶에 있어서 같은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남녀평등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평등... 3포세대, 이삼십대가 포기한 채 살아야 한다는 세가지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1세기, 아직도 한국의 진보는 너무 비분강개형이다.(-65쪽) 비분강개란 의롭지 못한 일이나 잘못되어가는 세태가 슬프고 분하여 마음이 북받친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진보는 앞으로도 쭈~욱 비분강개형일 듯 하다. 한국의 진보는 정책적으로, 미학적으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완전 실패,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학벌없고, 선후배없고, 나이 상관없는 만남이 가능해질까? 유교적 엄숙주의에 일본식 선후배문화가 찌들어서 엄청 엄숙한, 족보없는 엄숙함이 한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말에 실소했다. 과연! 잘은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서. 지나치게 엄숙한 건, 더구나 집단적으로 엄숙한 건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성이 매우 약한 상태라는 증거(-84쪽) 라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지금과 같이 피곤한 시대에 엄숙함이라는 건 아마도 사람들을 지쳐 쓰러지게 만들 것이다. 그런 세상일수록 웃음이 필요하고 그런 세상일수록 너그러움이 필요할 것이다. 웃음을 잃고 너그러움이 사라지다보니 뉴스에서는 연신 험악한 사건들만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뉴스에서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걸러내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참 딱하다. 모두가 근원적인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외면하는 까닭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일이 너무 슬프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의 말이 숙연하다.힘을 가진 패거리를 사람들이 피하는 것은 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에 공감한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속담도 있다.


이갈리테리언, 21세기 좌파의 본질은 평등주의자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게 좌파다.(-109쪽) 책을 보면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모든 인간이 프로그램에 의해 정해진대로 태어나고, 정해진대로의 일만 하다가, 정해진 순간이 되면 사라지는 세계가 멋진 세계라고 믿는다면 그건 정말 불행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세계를 거부하며 아나로그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들은 결코 낙후된 존재가 아니다. 교육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라는 말이 10대인 중학생의 입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북한이 중2 때문에 넘어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무슨 말이야? 했었는데 이 책에서 우리의 청소년 문제에 대해 하는 말들은 예사롭지가 않다. 잘못된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사교육 문제는 정말이지 백퍼센트 공감하게 된다. 늘 하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은 정말 심각하다. 철저히 이론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유럽 여러나라의 좋다는 제도는 다 가져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만 오면 본질을 잃고 이상하게 변질되어 버린 채 그 형식만 열심히 떠들어댄다. 그러니 우리의 청소년들은 마음 둘 곳을 잃은 채 방황하게 되고 뭐든 1등만 원하는 상태에서 자살률까지 세계1위를 달리고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서글프고 안스럽다. 놀라운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정도에 커피중독이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애들이 무슨 죄라고 그 나이때부터 인생을 고민하고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한국 교육의 목표와 목적은 딱 하나뿐이다. 대학입시를 위하여,라는. 좁고 짧은 생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교육이 바뀌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단언컨대 청년들이 포기했던 그 세가지의 문제도 점차 해결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를 얘기할 수가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를 그 똑똑한 사람들이 몰라서 안하고 있을까? 그게 아니라서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알면서도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빨리 없어져야 한다. 월수입이 600만원임에도 자신을 가난하다고 생각한다는 현실은 그야말로 비극이면서 또한 희극이 아닐 수가 없다.


좌파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저자의 말을 다시 빌려보자면 이렇다. 근로기준법을 외치고 떠난 전태일이 진보냐, 좌파냐? 당연히 좌파다. 전태일이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싸웠지 진보의 집권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싸우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진보와 좌파는 이렇게 다르다. 좌파에게 남녀평등은 기본이다. 좌파라는 말에 말도 안되는 색을 입히지 말자. 한국 자본주의의 약점은 너무 단기적 이익에만 몰두하다보니 시스템의 재생산은 물론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경제주체의 재생산에 실패했다. 이런 경제 시스템에서는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195쪽) 공유하고 협력하기, 이것은 자본주의 모순앞에서 좌파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209쪽) 우파들은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남아도는데도 '배가 불러서' 힘든 일자리는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일자리란 중소기업 일자리를 가리킨다.(-238쪽)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자식에게 왜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가? 대한민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현장직을 무시하고 있다. 기술을 천대했던 옛날과 지금이 얼만큼이나 달라졌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오래된 영화 <친구>의 대사가 생각난다. 그렇게 좋다면 니가 가라! 쓰다보니 열받는다. 이제 결론을 말해보자. 말만 번지르르하고 형식만 그럴듯한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적 이념은 이제 바뀔 때도 되었다. 21세기에 개인의 행복을 넘어서는 이념이나 종교는 없다. 만약 있다면 과도한 이념 현상일 뿐이다. 적당히 가벼워지고, 적당히 취향에 관한 문제로 생각하고 넘어가도 된다. 이념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생활하기 힘들어진다.(-338쪽) 한마디로 좌파는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문제가 생기면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는 게 맞다. 이 책을 읽는데 꽤나 시간을 소비했다. 한 줄, 한 줄을 아껴가며 읽었다는 말이다. 때로는 실실 웃으면서, 때로는 어이없어 하면서, 때로는 분노하면서 그렇게 읽었다.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시간이었다. 뜻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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