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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
레오 까락스 감독, 줄리엣 비노쉬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나쁜 피 - 사랑 없는 관계에서 걸린 불치병의 치료약을 훔쳐라!
스무 살,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던 시절, 나는 영화 나쁜 피를 보았고, 평생 그 올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임을 미리 예감해버렸다. 컬러풀한 영상에 뒤섞인 회색빛깔의 세기말적인 우울함. 그리고 머리에 총성을 꽂는 듯한, 부유하고 흩어져 버린 대사들. 이해할 수 없는 배우들의 발작과 함께 대조되는 무미건조한 표정들, 그리고 몽환적인 영상의 이미지들. 그 당시 내 상황과 엇물려 마치 나는 그렇게 밖에 사랑할 수 없고, 그렇게 밖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버렸고, 지금도 그 고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제라도 영화 나쁜 피에 대해 이 글을 통해 되 바라봄으로써 무언가 그 동안 내 속에 자연 알아진 그것들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면, 그래서 또 다른 배움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렇게 그 영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겹지만 않을 수 있다면.......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을 일단 멈추어, 감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본다.
레오 까락스, 우리에겐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폴라X, 특히 퐁네프의 연인들로 매우 친숙한 감독이다. 그러나 그 심각한 우울함과 이해 할 수 없는 난해한 대사와 이미지들은 그를 다시금 우리로부터 예술영화감독이라는 별나라로 격리시킬 수밖에 없게 하였고, 그러하기에 우리에겐 너무나 범접하기 힘든 범죄형의 감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한 번 그에게 빠진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독성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심각한 전염성 불치병까지 얻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하다. 유독 내 경우에는 그 중에서도 나쁜 피 전염성 불치병이라는 레오 까락스 바이러스 균에 감염이 되어, 이제부터 애연가가 금연에 대해 광고하는 심정으로, 그 병의 위험성과 심각성에 대해 천천히 고백해 보고자 한다.
핼리혜성의 접근으로 파리엔 이상 기후의 징조들로 가득하다. 연일 5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STBO라는 세기말적 병이 발발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괴상하게도 이 병은 어떤 바이러스라든가 병균의 감염 문제라기보다는 사랑하지 않는 섹스를 통해 발병되는 현상으로, 도저히 어떻게 미리 예방하기가 힘들뿐더러 치유할 수도 없는 불치병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죽음으로 이르는. 그러하기에 이미 여기서 우린 영화 속 파리의 세기말적인 절망과 우울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절망 가운데에서도 하나의 희망은 꼭 생겨나기 마련인지, 그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백신이 발견되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영화는 어떤 불안과 혼돈의 전조를 드리우게 되고, 여기서 우리의 주인공 알렉스가 등장하게 된다.
알렉스는 거의 고아나 다름없는 존재다. 물론 아버지가 존재했고, 어머니가 존재했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를 평생 내버려둔 채 자신의 삶만을 살아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평생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돌아가신 지 이미 오래이다. 한 마디로, 그의 삶 속에선 아버지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영화 시작부터 그나마 어디선가 존재하던 아버지는 미국 갱단에 의해서 살해되어 버리고, 이제 알렉스는 고아라는 완벽한 자유의 몸이 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던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과 아버지의 흔적들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이룬 지금, 이젠 진정 자신만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 리즈에게마저 그는 이별을 선포하고, 여행의 길에 오른다. 어떤 몽환과 예감들의 전조로 가득한 여정을. 그리고 바로 그런 몽환을 쫓아 가다가 그는 안나를 발견하게 된다. 버스 창 사이로 유독 하얗게 도드라진 여자의 얼굴이 서려있다. 마치 이제껏 그 자신을 위해 존재해 준 것처럼 신비로운 경이로 가득한 여자이다. 이미 어떤 굴레도 없는, 그러하기에 어떤 의미와 희망도 없던 알렉스에게 안나는 과연 어떻게 비추었던 것일까? 그저 떠나지는 것이 목적이 되어 떠나질 때, 우리는 늘 어떤 신비와 경이로움 그리고 몽환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알렉스에게 안나는 나타났고, 그에게 그런 신비와 경이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알렉스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유리창에 서린 얼굴을 따라 미행해 들어간다. 그리고 안나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지....... 안나는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의 애인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버지의 친구는 그동안 그를 간절히 찾아왔다. 한 마디로 자연히 그 둘은 알아질 수밖에 없는 연장선상에 놓여 있던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알렉스의 여행이 자신의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서 떠나지는 것이 목적이 되어 떠나지는 여행이 아닌, 그 동안 자신에게서 부재했던 아버지의 흔적을 쫓아가는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떠올려 보게 한다.
마크는 알렉스의 아버지 장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그 둘은 같은 갱단의 일원이었던 듯싶다. 특히 알렉스의 아버지 장의 경우는 도둑질에 대해선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돈 씀씀이가 좋지 않았는지, 미국 갱단에게 자주 돈을 빌리다 못 갚게 되어, 결국 살해당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연 그 빚의 부채를 장과 같은 일원이었던 마크가 떠맡게 되어, 이제 마크가 다시 살해 위협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그 빚이라는 건, 아들에게 떠맡겨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고전적 방식이라면 아들이란 존재는 당연히 아버지의 그런 죽음에 대해 알고 복수를 할 의무가 있다. 더군다나 알렉스는 장을 닮아 있었다. 한 마디로 알렉스 또한 도둑질에 관해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동안 마크는 알렉스를 찾아왔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 갱단의 빚을 갚기 위해 그 당시 파리에 돌고 있는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 걸린 불치병 STBO의 치료 백신을 훔칠 것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알렉스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알렉스는 안나를 쫓아, 제 발로 찾아 들어왔다. 그러니 마크로선 이 일은 기막힌 행운이었다. 하지만 알렉스로서는 끔찍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가 내린 그 천부적인 도둑질의 재능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 않다. 그가 아는 건 오직 지금 자신이 안나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운명이거나 숙명 같은 믿음이다. 그런데 어떻게 안나가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였던 마크의 애인일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안나는 마크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결코 자신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면 안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결국 마크를 도울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안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다만 안나와의 만남의 매개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마크를 도와 사랑 없는 관계로 발병하는 불치병의 치료 백신을 훔치는 것밖에는 달리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결국, 그 셋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게 된다.
안나는 늘 마크를 바라다본다. 그리고 알렉스는 안나를 바라다본다. 그리고 그 전에 알렉스의 애인이었던 리즈는 아직도 알렉스를 잊지 못하고, 알렉스만을 바라다본다. 그리고 다시 예전부터 리즈를 좋아하였던 알렉스의 절친한 친구인 도마는 리즈만을 바라다본다. 그리고 마지막 그 꼭지 점에 서 있는 마크는 오직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 걸린 불치병의 치료약을 훔쳐야 한다는 것만을 바라다본다. 그리고 다시 역으로 그들은 자신을 바라다보는 존재들에게 매정하지 못하고, 순간순간마다 조금씩의 마음을 내어주고 있다.
'순간으로 완성될 수 있는 사랑이 있을까? 그 순간으로 영원할 수 있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알렉스는 안나에게 묻는다. 그러나 안나를 고개를 젓는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순간의 모든 즉흥적인 감정이 모두 진실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랑일 수 있다면, 안나는 알렉스를 몇 번이고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역으로 알렉스는 그렇게 수십 번 리즈를 사랑했었다. 그런데 왜 불현듯 갑작스럽게 알렉스는 리즈를 버려야만 했고, 전혀 알지도 못하던, 그것도 오직 마크만을 바라보고 있는 안나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알렉스는 말한다. 속도감을 찾고 싶었노라고. 그렇다면 왜 알렉스는 안주하지 못하고 질주해야만 하는가? 안나와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다시금 속도감을 잃어버리는 안주가 아니란 말인가? 사랑이란 것이 그 폭발할 듯한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영원히 식지 않고서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무엇이어야만 한단 말인가? 알렉스의 옛 애인 리즈는 말한다.
'알렉스, 넌 사랑을 몰라. 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그리고 알렉스는 말한다.
'여자들이 나에게 그러더군. 단순해지라고. 그런데 그 단순해진다는 게 나한테는 너무 어려웠던 거야.'
어쩌면 알렉스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안나에 대한 그 사랑에 있어서, 잃었던 자신의 열정의 속도감을 발견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뒤바꾸어 버린 알렉스의 선택은 자신 하나에게만 속해 있던 문제는 아니었다. 마치 먹이 사슬처럼 알렉스의 친구 도마는 닿을 수 없는 리즈를, 다시 리즈는 닿을 수 없는 알렉스를, 그리고 다시 알렉스는 닿을 수 없는 안나를, 마찬가지로 안나는 닿을 수 없는 마크라는 수평선을 쫓아 달려가는 형국이 되어, 결국 그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있던 리즈와 도마에게로 그 모든 관계의 병적증상이 드러나게 된다. 리즈는 알렉스에 대한 복수심으로 알렉스와 가장 절친하던 친구 도마와 관계를 가짐으로써 알렉스를 배신한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 없는 관계를 통해 도마는 STBO라는 사랑 없는 관계에서 오는 세기말적 병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이것은 역으로 알렉스에게로 되돌아오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 없는 관계에서 걸린 불치병 STBO를 치유하기 위한 백신을 알렉스가 훔치는 과정에서 도마가 이 모든 일에 대한 복수심으로 경찰에 밀고를 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렉스는 연구소에서 백신을 훔치는 순간, 사방에 경찰들에게 포위되어 버리게 된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단 하나의 인질인 자기 자신의 머리통에 총을 꽂고선, 당당하게 경찰들 앞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미리 도마의 밀고를 눈치 챈 리즈의 도움으로 그 곳을 탈출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일은 약간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알렉스는 도주과정에서 자신을 쫓던 경관을 총으로 쏴 죽였을 뿐 아니라, 갑작스런 리즈의 등장으로 인해 마크와 안나 그리고 또 다른 모두에게 배신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방법은 있다. 다시 자신을 도피시켜 준 리즈에게로 영영 안주하면 된다. 그러면 그 모두에게 배신자가 될지언정, 어쩌면 자신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는 또 다시 잠든 리즈를 버려두고서, 안나와 마크에게로 달려간다. 마치 늘 부재하였음에도 떨쳐버릴 수 없던 자신의 냉정한 아버지를 평생 바라보던 어머니에 대한 그 연민을 져버릴 수 없었던 것처럼.
사실 그 이전에 영화에선 아마 과거에 알렉스의 아버지 장과 연인이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미국 갱단의 여두목이라는 존재가 나와, 알렉스에게 마크와 안나를 배신할 것을 촉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알렉스는 마치 그 배신에 대해 거의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어차피 알렉스에게 중요한 것은 안나이지 마크가 아니다. 그리고 그 미국 갱단 여두목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것 또한 알렉스가 아닌 마크이며, 게다가 사실 마크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 알렉스를 이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 무엇보다도 마크는 안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늙었음에 비해 안나가 너무 젊고,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크의 목숨만 보장된다면, 알렉스 자신은 그 미국 갱단에게 STBO의 치료 백신을 넘겨주고서, 받은 돈으로 안나와 함께 어딘가 먼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된다. 어쩌면 이것은 마크가 가장 바라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련하게도 안나는 결코 마크를 저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어리석게도 알렉스는 죽어도 안나를 배신할 수가 없다. 그러하기에 결국, 알렉스는 리즈의 도움으로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리즈를 버려두고서 안나와 마크에게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신의 대가로 미국 갱단에게 총상을 입게 된다.
'마치 나의 인생은 연습장에 마음대로 그려진 낙서처럼 그렇게 살아져 왔어. 마치 바다 한 가운데 부셔지기만 하고, 해변이나 바위에 닿지 못하는 파도처럼. 그리고 인생을 알았을 땐 모든 것은 이미 늦어버렸지. 하지만 그래도 난 믿었어. 아직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그들 모두는 원래 예정대로 스위스로 달아날 비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알렉스는 총상이 심각해져, 이제 거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엔 미국 갱단이 쫓아오고 있고, 다시 그 뒤로 리즈의 오토바이가 뒤따르고 있다. 처음 이 사실을 몰랐던 마크와 안나 일행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즐겁기만 하다. 그러나 알렉스의 숨겨진 총상에서 피가 새어나와 바닥을 흥건히 적시면서, 마크와 안나는 사태를 파악하게 된다. 마크는 복수심에 그동안 두려움에 떨었던 미국 갱단과 그 여두목에게 총을 겨누어, 그들을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이미 그렇다 해도 알렉스의 죽음만은 도저히 어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알렉스는 비행장에 도착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둔다. 뒤따라온 리즈에게 그 특유의 복화술로 이야기하면서.
'리즈, 나의 귀여운 리즈, 모든 것은 끝났어.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우리의 지난날처럼 되겠지.'
알렉스가 그렇게 숨을 거두자, 리즈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홀연히 왔던 그 모습 그대로 오토바이를 타고서 돌아간다. 그리고 안나는 갑자기 미친 듯이 비행장 활주로에서 뛰기 시작한다. 마크가 그 뒤를 쫓지만 금세 멀어져 가고, 마치 한 마리 새가 된 듯 뛰어가는 안나의 모습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영화 나쁜 피는 사실 그 줄거리 잡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고, 또 여러 가지 이야기로 읽힐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씬 하나하나에 담긴 이미지는 마치 의미의 과열된 포화 상태처럼 여기저기 흩날려 있어, 영화를 보아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강의 줄거리와 어설픈 평을 가지고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질 않는다. 더군다나 비록 '나쁜 피'라는 영화 하나 자체로 완전한 하나의 영화로 볼 수는 있긴 하지만, '소년 소녀를 만나다'와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레오 까락스의 영화들과 기묘하게 연관되어 있기까지 하다. 이 때문에 이 영화를 보았을 적에 나는 그 몽환적이고 발작적인 배우들의 동작과 대사들 말고는 머릿속에 모호한 느낌들을 어떻게 표현해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슴에 남아, 무언가 파도치는 것처럼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다시 그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게 되었고, 결국 시간이 오래지나 어느 순간에 내가 그 속에 흠뻑 담가졌다 나왔음을 자연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나는 여러 번에 사랑을 했고, 그것이 불가능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사랑이란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 무슨 사랑이기에, 그것은 불가능으로 밖에 치달을 수 없는 것이었을까?
영화에선 줄곧 사랑 없는 관계 속에서 걸린 불치병의 치료 백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유야 어떻든 간에 모두가 그 곳으로 향해져 있음을 우린 그 관계의 고리 속에서 알 수가 있다. 심지어 미국 갱단의 여두목마저도 그 치료약에 목말라 있음을 우린 영화를 보면서 금세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관계에서 걸린 불치병의 치료약이라는 게 대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사랑이 없어서 생긴 병이라면 사랑만 있다면 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그 사랑 없는 관계에서 걸린 불치병의 치료약이라는 의미는 종국적으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왜 알렉스는 그리고 모두는 사랑이 오길 자연 기다리지 않고서, 그것을 훔쳐내려 한단 말인가? 사랑이 훔쳐질 수 있는 그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결코 사랑은 훔쳐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런데 왜 알렉스는 그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고, 끝내는 그 죽음에 이르는 그 불치병으로 자신을 내던진 것일까? 여기서 잠깐 우리는 알렉스의 부재했던 아버지에 대해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알렉스의 아버지 장은 천부적인 도둑이었다. 그리고 알렉스는 그런 장의 아들로 아버지에게 아무 것도 물려받은 것이 없지만, 그 천부적인 도둑질 재능 하나만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어떤 물건에 대한 것이 아닌 사랑에 대한 것임을 우린 금세 눈치 챌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이 전혀 훔쳐질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하기에 다시 어쩌면, 그들은 결국 아무것도 도둑질 할 수 없는 도둑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그런 이유로 유독 그들의 관계는 사랑 없는 관계 속에만이 놓여 있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을 훔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랑은 결코 훔쳐지지 않고, 훔쳐진 사랑이라면 그들한테 이미 흥미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장은 사랑 없는 관계 속에서 알렉스를 낳았고, 알렉스는 다시 부재했지만 평생 그에게 짐이 된 그의 아버지 장을 떨쳐내려 몽환적인 안나와의 사랑에 기대었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배운 도둑질이라는 재능 말고는 아무 재능도 없었기에, 다시 영원히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 속에서 죽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안나는 이런 알렉스가 절망으로 흘린 나쁜 피를 얼굴에 묻히고선, 마치 새가 된 듯 비행장 활주로를 뛰어감으로써 끝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목마름과 함께 그 불가능성을 재확인 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왜? 왜? 사랑은 그렇게 끝까지 그 목마름으로 불가능해야만 하는 것일까? 알렉스와 안나, 리즈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버지라는 그 부재한 대상의 나쁜 피들을 정녕 떨쳐 낼 수 없단 말인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알렉스는 안주하지 않고 질주하길 원했다. 아마도 알렉스는 그것을 사랑의 의미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러하기에 어쩌면 안나의 마지막 심장이 터질듯 달리는 모습은 그러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알렉스인 감독 자신(레오 까락스의 본명은 알렉스 뒤퐁이다)의 염일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레오 까락스는 사랑하는 그 순간순간 자체가 완전한 채로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순간의 감정들 그리고 열정들, 불꽃같은 욕정들....... 이런 사랑에 대해, 자연 시간이 지나지면서, 우리는 늘 불신해 왔다. 왜냐하면 빨리 불타오르는 불줄기일수록 금세 식어지는 모양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그 찬연히 불타올랐던 그 순간 보다 더욱 오래도록 남는, 싸늘히 다 타버린 잿더미들을 아직도 치우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이 순간에 완성될 수 있는 진실 일 수 있으며, 순간의 감정이 오래도록 지속된다 말할 수 있겠는가? 쉽게 우리는 그것이 거짓이었다고, 그것은 사춘기적 불장난이었다고, 아니면 그것은 쉽게 써 내려져간 낙서였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 사랑이란 건 오래 지속되어야 하며, 서로 간에 불꽃이 튀어 올라 빚어질 상처들은 미연에 방지하면서 혹은 조금씩 양보해 가면서, 그렇게 버티어 가는 것이, 그렇게 밀고 당기면서 자연 익숙해지는 것이어야지, 확 피어올랐다 금세 사라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단 하룻밤의 사랑이라도 그 순간 진실했고, 진정 사랑하고 싶었다면,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이 아니라 말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말 아닐까? 어차피 영원한 것은 없다. 그리고 순간은 지나가면 사라져 버리는 그 무엇이지, 오래도록 멈춰 서는 그 무엇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잠깐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아니, 레오 까락스는 진심으로 그런 자기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묻고 싶었던 거 같다.
'순간으로 완성될 수 있는 사랑이 있을까? 그 순간으로 영원할 수 있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그러나 우리는 안나처럼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니 우리 모두의 나쁜 피라는 굴레들은 그것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다. 그것은 거짓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하기도 버거운 것처럼 안주할 곳을 찾아, 연일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부표들 같이 맞닿지 못하고 서로를 부유해야 하는 것일지도.......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렉스도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리즈와의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대체 사랑이란 건 무엇이란 말인가? 심장이 터져 버리도록 날아오를 수 있다면, 그리고 마치 다리를 잃어버린 새처럼 다시는 내려오지 않을 수 있다면, 끝내 곤두박질치며 맨 머리로 맨 바닥에 부딪친다 해도 우리의 모든 나쁜 피들을 이 땅에 흩뿌릴 수 있다면, 추락하는 모든 것들에 날개가 없다 해도, 피비린내 나는 온 몸으로 섞어지는 자태가 추악하다 해도, 언젠가는 그 위로 꽃이 피어 오를 수 있을지도, 그리고 한 마리 새가 그곳에 내려 앉아 있을 수 있을지도,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순간의 사랑! 어쩌면 그것은 이런 권태로운 기적 속에서 일어난 신비일 것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다시 어쩌면 순간순간의 모든 사랑들로 영원한 사랑이 가능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그렇게 믿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