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시즌 - [초특가판]
토니 뷔 감독, 돈 두옹 외 출연 / SRE (새롬 엔터테인먼트)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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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시즌 - 잃어버린 계절을 위한 염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인류에겐 추운 계절이 지나가면 반드시 봄이 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져 왔다. 그러나 현실은 판도라 때문인지, 모르긴 몰라도, 희망이라는 먼 수평선과의 차이만큼이나 온갖 고통들과 번뇌들 그리고 재앙들로 가득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과 번뇌들, 재앙들은 결국엔 희망마저 앗아가 버리곤 한다. 이 때문인지 우리는 그 숱한 시절들로 거슬러 올라가기 전부터, 이렇게 봄을 빼앗긴 우리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염을 하고 씻김의 의식들을 행함으로써, 새로운 내일로 나아가길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정말로 빼앗긴 봄이 돌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시, 그럼에도 우리는 그 오랜 세월동안 그 허무한 염과 씻김의 의식들을 계속 해왔다. 왜 일까? 아마 당장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쉬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영화 '쓰리시즌'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 물음에 가까운 대답들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1999년 선댄스 영화제에선 놀라운 일이 하나 벌어졌다. 왜냐하면 거의 무명에 가까운, 그것도 매우 젊은, 26살의 한 신인 감독의 영화 하나가 극영화 부문 최고심사위원상과 관객상, 촬영상 등 세 개 부문을 휩쓸어 버리는 일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동안 독립 영화제로선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던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로 다루던 인권 문제나 사회 문제 같은 그런 내용이 아닌,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인데다, 그러한 내용을 뒤집어 버리는 영화이었기에, 그 놀라움은 더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서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베트남계 미국인인 퇴니 부이 감독의 영화 '쓰리시즌'은 이젠 모두에게 잊혀진 베트남의 상처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어르고 매만진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러하기에 영화의 무대는 어제를 묻어두고서 살아가는 오늘의 베트남이며, 그 내용은 크게 세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하나의 큰 줄기로 나아가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베트남 소년 우디와 퇴역한 미국 해병 해거의 이야기

 

  우디는 만물 상자를 자신의 목에 걸고서, 비 오는 거리를 누비며, 시계, 라이터 등 잡동사니를 팔고 다니는 소년이다. 그리고 해거는 퇴역한 해병으로써, 베트남전에서 자신이 버린 딸을 찾아 베트남에 온 미국인이다. 그리고 영화는 전혀 관계없는 이 인물의 우연한 만남을 가정하고 있다.

 

  그날도 비 오는 거리를 오가며,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만물 상자를 목에 걸고, 장사를 하고 있던 우디는 비가 너무 많이 내린 탓인지, 한 술집으로 들어가 장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우디는 우연히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미국인 해거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해거는 무슨 마음에서인지, 갑자기 말도 통하지 않는 어린 우디를 자기 테이블에 앉혀 놓고선, 물건을 팔아 줄 것처럼 하면서 술을 먹이는 것이다. 이제 겨우 열 살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우디에게... 그리고 우디가 취해, 잠시 졸음을 참지 못한 사이, 우디의 생명과도 같은 만물 상자를 가지고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때부터 영화는 우디가 해거를 찾아, 만물 상자를 되돌려 받으려는 이야기로 꾸며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어린 우디에게 매우 잔인한 일처럼 비춰진다. 그렇지만 영화는 여기서 다시 반전을 염두 해두고 있다. 왜냐하면 우디의 만물 상자를 해거가 훔쳐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거는 그저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우디는 사라져 버리고, 수일 후에 나타나, 자신에게 만물 상자를 되돌려 달라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해거에겐 만물상자가 없다. 그리고 그토록 찾고자 원했던 자신의 딸을 찾을 길이 없어, 이제 내일이면 이 곳 베트남을 떠나야만 한다. 결국 영화는 여기서 마치, 어린 베트남 소년 우디와 퇴역한 미국 해병 해거의 아무 의미 없던 허무한 상황에 관한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다시 새롭게 반전된다. 왜냐하면 우디는 해거에게서 만물 상자를 되찾지 못한 채, 비참하게 비를 맞으면서 길을 걷다, 우연히 자신과 같은 처지에 한 소녀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소녀와 함께 비를 피하려 들어선 어느 골목길에서 덤으로 버려진 자신의 만물상자까지 되찾게 된다. 그리고 해거는 우디와 헤어진 후, 괴로움에 술을 마시다, 맞은 편 테이블에서 다른 남자를 접대하고 있는 자신의 딸을 목격하게 된다. 끝으로 영화는 해거와 해거의 딸의 만남을 보여줌으로써, 어색하지만 이제 화해의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첫 번째 에피소드를 마치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은둔 시인 다오 선생과 젊은 아가씨 키엔의 이야기

 

  일자리를 찾아 호치민시까지 오게 된 키엔은 연꽃을 파는 다오 선생의 집에 고용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키엔은 오전이면 연꽃이 피는 수렁으로 가 연꽃을 딴 후, 오후엔 시내로 나아가, 연꽃을 파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연꽃을 따면서, 키엔은 그곳에서 부르는 연꽃 노래를 부르지 않고, 시장 터에서 아낙네들이 부르는 노래를 부름으로써, 다오 선생의 부름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다오 선생은 은둔자로서 그 곳 일하는 사람 가운데 누구도 본 일이 없었다. 아니, 다오 선생이 기거하는 집 근처에는 무슨 일 때문인지 그 누구도 가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런데 키엔의 노랫소리에 다오 선생의 무슨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새벽녘 아무도 모르게 키엔을 따로 부른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에서 드러낸 사실은 다오 선생이 나병 환자라는 사실과 나병이 걸리기 전까진 시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다오 선생은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그곳에 은둔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키엔의 노랫소리를 듣자, 자신이 나병이 걸리기 전, 시장터에서 아낙네들이 부르던 노래임을 깨닫고서 자신의 젊을 적의 그리운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야심한 새벽 키엔을 몰래 불러, 다시 자신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다오 선생의 집에 종종 들릴 수 있게 된 키엔은 그때부터 다오 선생의 손이 되어, 잃었던 다오 선생의 시심을 되찾아 주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다오 선생의 병이 깊어지면서, 다오 선생은 키엔을 부르지 않고서, 쓸쓸히 혼자서 죽어가게 된다. 그리고 유물로 키엔에게 자신의 젊을 적 사진이 담긴 자신의 시집 한 권을 남겨둔다. 여기까지 영화는 마치, 하나의 못 다한 사랑에 대한 비극적 에피소드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다시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다오 선생의 시를 대필해 줌으로써 다오 선생이 죽어서 연꽃으로 피어나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엔은 무수한 연꽃더미를 가지고서, 자신이 부른 노래를 들었던 시장터 강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 연꽃을 띄움으로써, 다오 선생의 못 다한 소원을 이뤄준다. 실은, 늪 속에서만 가장 아름다운 시심을 꽃피웠던 다오 선생의 연꽃은 죽어서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젊은 시절의 시장터에서도 꽃피우길 간절히 원했던 까닭이다. 그러하기에 영화는 키엔이 불렀던 시장터 아낙네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강가에서 둥둥 떠다니는 연꽃을 보여줌으로써 두 번째 에피소드의 막을 내리고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 창녀 렌과 가난한 씨클로 운전사 하이

 

  가난한 씨클로 운전사 하이는 어느 날 손님으로부터 도망치는 콜걸 렌을 자신의 씨클로에 태우게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이는 렌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렌은 자신의 가난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있기에, 콜걸이 되어,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세계인 호텔과 상류층 사회에 한 쪽 발을 들이밀고 있다. 그러니, 그런 렌에게 있어, 가난한 씨클로 운전사 하이는 귀찮기만 한 존재이다. 그렇지만 하이는 렌에게 아무런 바람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렌이 자신의 일을 끝마치고 호텔에서 나올 때면, 기다렸다가 렌을 태우고서, 렌의 집까지 데려다 줌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뿐이다. 그래서 렌도 귀찮지만 자신의 편의를 위해 하이의 그런 행동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러나 그 어느 순간부터 하이의 행동이 부담스러워진 렌은 하이에게 더 이상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며, 자신을 만나기 위해선 하룻밤에 50달러라는, 하이에겐 부담스러운 대금을 요구하게 된다. 이를 위해 하이는 평소 관심 없었던 씨클로 경주 대회에 참가하게까지 되고, 거기서 행운의 1등을 하게 됨으로써, 상금 200달러를 얻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렌과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어이없는 것은, 하이는 렌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자신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의 아름다운 잠옷을 렌에게 선물하고선, 그 옷을 입어 보라고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대로 잠드는 렌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질 않는다. 그리고선 아침밥까지 주문해 놓고서, 그대로 사라져 버린 후, 다음 날 다시 렌을 찾아간다. 하지만 렌은 하이의 그런 사랑이 너무나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러하기에 렌은 돈과 옷을 하이에게 그대로 돌려주며, 제발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하이 앞에서 절규한다. 그러나 여자이기 때문일까? 자신의 집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하이의 그 묵직한 사랑을 렌은 결국 거부하지 못하고, 하이를 자신의 집으로 들어서게 한다. 그리고 그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이 또한 우리가 기존의 생각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왜냐하면 그 둘이 하는 것은 섹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하이는 정성스레 땀으로 가득한 렌의 온 몸을 닦아주며 어름으로써, 그 동안 창녀로써 때 묻은 렌의 육체를 깨끗이 씻겨주고 달래줄 뿐이다. 그리고선, 하이는 렌의 눈을 두건으로 둘러,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 후, 그 어딘 가로 렌을 데리고 간다. 그곳은 언젠가 렌이 하이의 씨클로를 타면서 말했던 곳이었다. 창녀인 렌이 가난했지만 꿈 많던 학창 시절, 나무에 매달린 꽃을 보며 떨어지길 기다렸던 그 시절, 어떤 잘생긴 남학생이 와서 꽃을 따다가 자신의 머리에 꽂아주길 바라던 그 시절, 그 시절 꿈꾸었던....... 나무에서 한없이 꽃이 떨어져,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머리에 꽃으로 화환을 쓸 수 있는 그 시절 그곳. 그러하기에 두건을 벗은 렌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으로 하이의 씨클로가 렌의 집 앞에 언제까지나 머물 것 같은 풍경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만물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 파는 소년 우디, 베트남전 버린 자신의 딸을 찾아 나선 퇴역한 미국 해병 해거, 은둔 시인 다오 선생, 청순한 아가씨 키엔 그리고 가난한 콜걸 렌과 가난한 씨클로 운전사 하이....... 영화는 이 불협화음과도 같은 여섯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시종 씻을 수 없다 믿은 베트남의 상처를 어르고 달래며, 베트남의 잃었던 봄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두 살 때 베트남을 떠나 스무 살까지 줄곧 미국에서 자란 감독, 토니 부이의 서구적 시선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토니는 영화 속에서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마치 우디와 해거를 통해서 오해라고 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당하는 약한 자의 편에선 그것은 오해일 수 없다. 왜냐하면 강한 자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약한 개구리는 피를 토하고 거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약한 개구리들은 강한 자의 던지는 돌팔매와 화해할 수 없고, 공존할 수 없다. 절치부심이라고 했던가? 독하게 이를 악물고, 약한 개구리는 자신의 씻을 한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즉, 약한 개구리에게 씻김이란 건 오직 복수뿐이며, 그도 강한 자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좀 더 넓은 시각 하에서 보면,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오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강한 자의 돌멩이는 말 그대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과 베트남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너무 간단하게 치부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화해와 공존이라는 시각 하에서 뒤늦게라도 내민 손길을 뿌리치지 말자는 얘기이다. 왜냐하면 이미 잃어버린 만물 상자를 아무리 해거에게 돌려 달라 해도 해거에겐 만물상자가 존재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 걸 어떻게 되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씻을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감독은 바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거에게 있을 거라 믿은 우디의 만물 상자의 미련을 버리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히려 우디에게 우디와 같은 처지에 놓은 한 소녀와의 만남을 가정함으로써, 우디에게 이 연약한 소녀라도 잘 보살펴 줄 것을 당부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와 아울러, 그렇게 약한 개구리끼리 오순도순 도우며 살아갈 때, 언젠가 잃어버렸던 만물상자가 예기치 않게 나타날 수 있음을, 그런 희망을 있음을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거가 아무 잘못도 안 했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우디와는 오해일지라도 해거는 분명히 용서받을 일이 있으며, 그것에 대해 고백해야만 된다. 그런 이유로 해거는 자신이 버린 딸을 만나, 매우 두려운 마음으로 어색한 고백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버린 딸의 처지-남자를 접대하는 창녀로써의 처지-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해거는 반드시 고백해야 하며, 눈물을 뿌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약한 개구리와 강한 자의 오해가 풀어지고, 화해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치자.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개구리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살아남은 약한 개구리의 가족이나 친구가 강한 자가 서로 화해했다고 해도, 이미 죽어버린 개구리가 살아날 리는 만무하다. 그러하기에 여기서 감독은 또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생 씻을 없는 나병이라는 하늘의 저주로 살아갔던 다오 선생과 청순한 처녀 키엔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기존의 나병환자와 달리, 영화 속에서 다오 선생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연꽃과 같은 존재이다. 아니, 연꽃이란 건 수렁에서만 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가 알았던가? 연꽃의 마음이란 건 꼭 수렁 안에만 있지 않음을... 어쩌면 그러하기에 되려, 연꽃의 마음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터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연꽃은 그 강가에서 둥둥 떠다니며, 그들의 노랫소리에 화답하며,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싶었다. 그들과 정말로 대화하고 싶고, 정말로 함께 숨 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렁 속에서밖에 피어날 수 없는 연꽃은 어디로 가지 못하고, 그 스스로 은둔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자신의 젊은 시절의 그 꿈을 가슴속에 머금은 채. 그러하기에 영화 속에서 키엔은 죽은 그 연꽃의 마음을 시장 터에 뿌려준다. 동시에 가슴속에서 베트남전이라는 상처 속에 죽어간 아름다웠던 젊음들과 꿈들을 묻어주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되살아날 수 없을지라도, 그들의 넋이라도 강가에서 피어나라고. 아니, 이제 남겨진 사람들 안에서 피어나라고. 그리고 이제 남겨진 이들에겐 사랑의 계절이 돌아오라고. 다시 해거의 딸과 같이 창녀인 렌과 가난한 씨클로 운전사 하이가 다오 선생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 청순한 처녀 키엔과의 못 다한 사랑을 이루어 준다. 그렇게 베트남에게 잃어버린 봄이라는 희망이. 꽃이라는 희망의 화환이 한가득 내려주라고.

 

 

  그러하기에 이제 남겨진 우리에게 남은 계절은 우리 가슴속에 묻어둔 그들의 못 다한 사랑을 꽃피우는 봄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해 죽어간 이 땅에 혼백들은 생각보다 그리 치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우리가 자신들의 고통 속에 머물러 헤어 나오지 못하길 바라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자신들을 곱게 묻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못 다한 사랑을 우리 안에서 새롭게 피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만약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연꽃은 수렁에서만 피어오르지만, 해거와 해거의 딸의 대화하는 테이블 가운데 놓여 있기도 하고, 시장 아낙네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강가에 띄워지기도 하며, 창녀 렌의 꿈 많던 시절로 돌아가 머리에 화환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만약 그렇다면, 우리 가슴속에 묻어둘 것은 이제 묻어두자. 그리고 꽃피울 것은 꽃피워, 지나간 상처들과 고통들과의 화해와 사랑의 계절을 꽃피워 보자.

 

    

 

연꽃의 마음


진창에서만 피어나는

천한 태생의 꽃이라고

깊고 어두운 수렁 안에서만

절 찾지 마세요

당신의 곁에 가까이 피어나

가 닿을 순 없어도

화사한 꽃밭에 어여삐 피어나

고이 드리울 순 없어도

여기저기 모르게 피어나

당신 발치에 부딪치는

얕은 파문처럼

고요히 번져 지고 싶어요

바람에 흔들려 흩날리는 벚꽃처럼

발그레 부끄러운 당신 머리 위로

황홀히 화환을 씌울 순 없지만

당신 머리맡을 밝히는

환한 촛불처럼

고요히 흔들리고 싶어요

깊고 어두운 수렁 안에서만

절 찾지 마세요

당신 가슴 안에 먼저

놓여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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