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1998 제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220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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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쩌면 그 어느 날 나도 흐린 酒店(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이거나 혹은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단 하나의 존재를 설명해 낸다는 것? 예전부터 나는 여기에 깊은 매력을 느낌과 동시에 매우 큰 두려움을 느껴왔던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우주나 신, 혹은 이데올로기나 역사와 같은 거대한 문제와 결부되지 않다손 치더라도, 자신과 가장 가까운 대상들에 대한 묘사를 결코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 그리고 사랑했던 그 누군가...... 그러나 언제나 하나의 묘사 속에서 그들은 왜곡되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왜곡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랑했던 그 누군가를 바라보는 자아 또한 심하게 왜곡되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의 대상을 그 자체로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자아란 이 세상에 없을뿐더러, 그것을 알아버린 자아라면 대상을 왜곡할 수밖에 없는 이미 왜곡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조차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가(아니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건 대체 무엇이 있을까?

 

 주.절.거.림... 주.접.거.림... 처음 황지우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를 접했을 때, 나는 이 단어를 머릿속에서 연신 떠올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적어도 나는 詩라는 것이 머릿속에 맺힌 어떤 소리의 울림이거나 떨림이라고, 혹은 숨김이거나 미끄러짐이라고, 아직까지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지우의 시는 그것은 고사하고, 자기 넋두리 비슷한 것이 마치, 한낱 관념의 찌꺼기나 쓰레기 같은 이미지들을 조합 시켜 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시의 내용이라는 것도 얼마나 황폐하기 그지없는지, 그의 표현처럼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발가벗겨진 부산물들처럼 부질없어만 보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시집 뒤편에 있는 소설쟁이라는 그의 친구 이인성의 시집에 대한 평론을 보면 이것을 ‘겹의 두께’라느니, ‘에로틱한 몸뚱이’라느니 하면서 극찬을 해대는데, 한 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역하기 그지없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느글거리는 비곗살 가득한 삼겹살의 그 두툼한 육질이 어디 에로틱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설령 에로틱하다손 치더라도, 그건 육체에 대한 지나친 병적 관념이 아니라고 감히 그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하기에 나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황지우의 시를 다시 펼쳐보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왜 증오하거나 역한 것들이란 어느 새면 슬며시 다가와 그 거부했던 몸짓으로 옭아 들어가게 되는 건지...

 

 겨울, 찬바람의 느낌이 볼 살을 부비우면서 새로운 삶, 새로운 스피드에 적응하기로 한 난, 이제까지 일하던 독서실 일을 그만두고서, 오랫동안 고집스레 써오던 삐삐를 버리고, 핸드폰을 사고, 운전 면허증을 땄다. 그리고 다시 스무 살 때처럼 집을 나와, 노가다 판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집에 할머님 제사가 있어, 다시 며칠 만에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뭐, 한 집안의 장손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내 개인의 피치 못할 사정상, 나는 집안의 제사가 있을 때마다 늘 부담스럽기만 하다. 왜냐하면 나는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적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그 때부터... 그리고 신학대를 갔다는 이유로 오래 동안 나는 그 어디서든지 절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 식구들 또한 뭐라 그런 적은 없었다. 이미 하나의 관행처럼 식구 모두가 절을 하고 그 때마다 나는 뻣뻣하게 서서 그것을 찬찬히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 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와는 거의 스무 살 터울 나는 우리 집안 막내가 절을 하다 말고, 갑자기 내게 물어 보았다.

 

“왜 큰 형은 절을 안 해요?”

 

 왜일까? 언제나 거대하거나 혹은 형이상학적인 질문들보다 갑작스레 순진무구함으로 던져지는 질문들 앞에서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이유는...

 

 아주 오래 전에는 물론 나는 분명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서, 절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언젠가부터 나에게 그 신념은 이미 버려져 너덜거리는 누더기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러하기에 응당 나는 한 집안에 장손으로서, 그리고 사람 된 도리로서, 응당 제사상에 절을 했어야함이 옳았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그러고자 마음먹은 적이 없었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뭐, 달리 이유가 있어선 아니다. 그저 이것이 너무나 오랫동안 굳어져 편안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군가들에게 나는 그렇게 대답한 적은 없었다. 그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 알아 지게 될 거라고...

 

 

初經(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제사를 마치고서, 다음 날, 나는 제사일로 인해 하루 일을 빠지게 되어 24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어머니가 일하는 동대문 밀레오레의 지하 매장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제사일로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고, 일한 어머니가 아침 10시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일하기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멋도 모르고 간 그곳은 여성 속옷 전문점이었다. 그 동안 어머니께서 새벽에 동대문 시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여자 속옷을 파는 일인지는 전혀 몰랐었다. 그러하기에 무척이나 당황한 나는 처음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런 아들을 잘 알고 있을 어머니이기에 이런 일을 예상하셨는지, 미리 앞의 가게 아가씨들에게 귀띔을 해 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의 가게 아가씨들이 나를 대신해 가게를 정리해주고, 물건을 팔아주는 것을 온종일 멀건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니, 나는 심지어 손님이 오든 말든, 가게에 물건 파는 일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종일 앉아 책을 읽는 데만 여념이 없었다. 그것도 오랫동안 결코 다시 펼쳐 보지 않았던 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왜냐하면 그런 곳에서 詩를 읽는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왠지 詩 같아 보이지 않는 긴 활자채의 황지우 시들이 제법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황지우의 시는 전혀 그로테스크 하지 않은 속옷 가게에서 그로테스크 하게 시를 읽는 나와 너무도 어울려 있었다.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오후 3시 넘어서 어머니가 오셨다. 그리고 그 때까지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어, 황지우 시집을 덮었다 다시 읽고, 그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심하게 어지러웠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등장으로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있게 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오랜만에 종로로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시집과 음반을 사볼 요량이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왜냐하면 그간 나는 의도적으로 무언가 시를 읽고, 새로운 음악에 심취해 보는 일에 대해 경계하였기 때문이다. 하루 고된 노동으로 겨우 번 돈으로 그런 부르주아한 삶에 갔다 바치기가 억울하기도 하였고, 시나 음악 같은 것들에 대한 나의 집착이 자꾸 나를 뒤쳐지게 한 원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졸업한 학교의 동아리에서 후배들이 준비한 시낭송회를 다녀온 뒤, 나는 나의 그런 생각들을 다시 고쳐먹어야한다고, 금세 변절해 버렸다. 뭐랄까... 왠지 이런 것마저 없다면 내 삶이 너무나 황폐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나의 아버지처럼...

 

 

 젊을 적 신학생이기를 원하였고, 시인이기를 원하였던 아버지는, 그리고 언젠가 자기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와 결혼했다고 말한 나의 아버지는, 그럼에도 술 한 잔 할 줄 모르고, 바람 한 번 피워보지 못한 나의 아버지는, 그 언젠가부터 언어를 잃어버리셨다. 그러하기에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없었다. 대부분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꼭꼭 숨겨져 있던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기 시작한 날 이후로는 보통 나 혼자 머릿속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한다. 아버지 너무 죄송하다고...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이 너무 무섭다고... 그러나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서로를 잘 이해한다. 그러하기에 결코 서로의 삶에 대해 타박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같이 단 둘이 식사를 할 때도 우리는 마찬가지로 아무 말 없이 서로의 할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국을 끓이고, 나는 밥상을 차리고,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면, 나도 따라 들고... 아버지가 식사를 마치시면 내가 밥상을 치우고, 아버지는 설거지를 하시고... 그리고 나는 그 와중에 언젠가 우연히 아버지께서 혼잣말처럼 뱉어낸 주절거림을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우리가 다 결혼하고 나면, 시골로 내려가 못 다한 공부를 하시면서, 정원이나 가꾸고 싶다던...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씁쓸한 주절거림을.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가만히 거울을 바라다본다. 아직 아랫배도 나오지 않았고, 단정하게 빗어 내린 머리는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은 봐줄만 하다. 그리고 아직 치기 어린 눈빛은 슬픔을 알기엔 반항심으로 그늘져 있다. 그러나 바싹 말라버린 볼 살 위로 튀어나온 광대뼈와 부르튼 입술은 벌써 아버지의 그것과 닮아 있어 보인다. 그리고 찌든 듯한 고통의 눈빛이 지어보여 진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廢人(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그러나 어쩌면 그 어느 날 나도 흐린 酒店(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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