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눈 내리는 날 묻다

 

 

눈이 내린다.

하얗게 흩어지는 벚꽃처럼

봄날을 가장하며 눈이 내린다.

동네 꼬마 녀석들이 모두

밖으로 나온다.

강아지 새끼들도 신이 나

꼬리를 흔든다.

어여쁜 아가씨들도 좋아라고

미소를 띠운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는 걸까?

정말로 모두 알고 있는 걸까?

이 날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반드시

지독히도 추워져

밟히고 밟힌 눈발은 단단히 굳은 채

검게 물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 위로 지나가던 바로 그네들이

모두 미끄러져 내리고

자신 때문에 추악해진 눈발에

가혹한 침을 뱉어버린다는 사실을!

그렇게 스스로 녹아져 나리는 꿈

버리고서 나려지는 나락이라는 사실을!

그런 슬픔이라는 사실을

.

.

.

 

 

그러나 그 모든 슬픔이 이토록

황홀히 아름다운 것은

내.어.쩔.수.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에 관한 짧은 문장

 

 

그대의 구들장 밑 감춰진 오래도록 해묵은 잿더미들을

나는 매일 들춰내 닦아줄 수 없다.

그러나 군불로 지펴진 뜨거운 아랫목 같은 그대 가슴에

연일 고단히 내려앉은 흙먼지들을

나는 매일 샅샅이 핥아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엘리베이터에 갇히다

 


안녕하십니까? 본 엘리베이터는

지하 69층에서부터 지상 33층까지

초고속으로 수직상승하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원하시는 층수를 눌러주세요.

16층 버튼을 누른다.

네. 16층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가 알 수 없는 속도로 올라가고

올라가는 층마다 차례로 불이 켜진다.

지하 68층, 지하 67층, 지하 66층......

지상 1층, 지상 2층, 지상 3층......

지상 13층, 지상14층, 지상 15층.

불이 꺼진다.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같이 있던 여자의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가 무언가를 꺼내든다.

섬뜩하게 반짝이는 빛깔이 눈에 들어온다.

은장도일까? 너무 고전적이다.

그렇다면 가스총일까?

바닥에 옷깃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다.

지퍼를 여는 강한 소리가 공간에 부딪친다.

라이터를 켠다.

거울에 발가벗겨진 내 모습이 비췬다.

그럼 여자는 원래 없었던 것일까?

라이터를 떨어뜨린다.

숨이 막혀온다. 점점 더워진다.

환각 속에 가스총의 총구가 보인다.

어쩌면 은장도의 예리한 빛깔일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 문을 두드린다.

소리가 되돌아온다.

'거기 누구 없어요. 누가 나 좀 구해 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꽃의 은유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의 말로

너에게 편지를 띄운다.

오! 그대! 꽃을 닮은 그대!

봉긋이 선 젖무덤에 파묻혀

깊고 그윽한 음부 밑바닥까지

핥아주고 싶은 그대!

그대의 영혼은 벌거벗은 나신!

그대의 진실은 거짓 없는 몸뚱이!

한없이 교태로운 몸짓으로

끝없이 나를 유혹하는 그대!

라고 쓰지 않는다.

안부를 묻는다.

단조로운 호흡으로 미소를 띄우며

그대는 꽃을 닮았노라고

수줍게 고백한다.

 

 

그러나, 모든 꽃들은

에로틱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꽃을 향한 염원 

 

 

부드러운 입술을 포개어

달콤한 혀끝 감각을 느끼는

당신의 아랫배는

따스하게 달떠 오르고

살짝 상기되어 불그스레한

당신의 수줍은 윗볼에

나는 갓 피어나 꽃잎을 펼친

당신의 질 옆 소음순을

상상하며 굵고 단단하게

그만 발기해버립니다.

 

온몸으로 발열하는 당신을

하나의 꽃이라고

살짝 젖혀진 당신의 입구를

하나의 꽃봉오리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지금 짐승처럼 발기한

나의 성기도

당신을 받혀주는 줄기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듯 하늘거리며

당신 안에 흩뿌려질

나의 정액도

감히 꽃씨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의 의미 있는 아름다움으로

불리울 수 있을까요?

그렇게 당신과 같이 저도 감히

꽃이라 칭할 수 있을까요?

 

당신과 하나의 꽃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나의 의미 있는

아름다움이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