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신의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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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기교육의 종주국인 미국, 미국 덴버에서 가장 좋다는 어느 유치원에는 유아용 교재나 교구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흔한 장난감 기차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있는 것이라고는 넓은 풀밭과 진흑, 노끈, 타이어 따위입니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그 아이들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연구하여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장난감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떨어뜨리므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의 저자 신의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에게 무얼 가르칠까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그 유치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곳에 가면 아이들을 왜 느리게 키워야 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제목만으로 봐서는 조기교육을 비판하는 대신 무언가 획기적인 대안이 있을 법한데 그런 건 없습니다. 저자는 소아정신과 교수이자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쓸 당시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두 아들의 엄마였습니다. 의사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엄마로서 경험한 그의 육아 경험담입니다.

제목이 자극적입니다. 책 표지를 보니 '20만 독자가 인정한 0~6세 부모들의 필독서'라고 적혀 있습니다. 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문구도 있습니다. '욕 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쓴 조기교육 비판서'.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기교육을 비판하고 오히려 아이를 느리게 키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느리게 키운다는 것은 아이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떤 지식을 가르치려 애쓰기 전에 먼저 아이의 '자기 정체성(self-identity)'를 확립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복합적이고 불확실한 위험 사회로 이행되는 만큼 '공부를 이만큼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식의 근대적 발상의 룰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합니다. 사회가 불확실할수록,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발현할 기회가 많이 주어질수록, 그리고 개인의 선택의 폭이 다각화될수록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 정체성'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나는 내 아이들이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억지로 급하게 가려하지 말고 아이가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깨달음을 통해 스스로 되돌아 보며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가도록 지도해 주라고 말합니다. 자기 정체성이란 누가 주입하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이의 성장 곡선은 꾸준히 발전하는 사선형이 아니라 어느 기간 동안 정체되었다가 갑자기 발전하는 계단식 발전형이니 조금 늦더라도 보챌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정도가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것을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의 경험담을 통해 설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언가 체계적인 이론이나 대안을 기대했다면 이 책이 다소 기대 이하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어도,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자 말마따나 느리게 키우기는 결코 무심한 부모들이나 하는 육아법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는 현명한 부모들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어려운 육아법이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일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육아에도 연습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실전입니다. 한두 권의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어찌됐든 부딪치며 보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책이 해답을 줄 수는 없지만 부모로서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계기를 줄 수는 있을 겁니다.

육아는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작업입니다. 인류 최고의 지혜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개인사로 보더라도 인생 최대의 작업입니다. 아이가 없다면 몰라도 아이가 있는 이상 육아의 결과는 부모의 행·불행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입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여러 책을 읽고 실천하고 반성하는 과정이 특별한 부모의 유별남이 아니라 모든 부모들의 필수 과정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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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행복한 독서습관 들이기 현명한 부모를 위한 10분 자녀교육 2
윤순영 지음, 김소희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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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주부터 저는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될 때 가끔 한두 권씩 읽어주는 것 말고,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아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독서놀이 활동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우선 도서 목록부터 작성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아이와 함께 '독서놀이' 활동을 하려 합니다. 독서 '교육'이 아니라 '놀이'입니다. 이 놀이의 이름을 저는 '독서유희'라 지어봤습니다. '유희(遊戱)'란 '즐겁게 놀며 장난함'을 말합니다. 책을 읽으며 아이와 즐겁게 놀고 장난하다보면 그것 자체가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기쁨이 있으니 유희(有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놀면서(戱) 기쁘니(喜) 그래서 '유희'라 해봤습니다.

이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인데 이제 실천에 옮겨야 할 때가 왔습니다. 딸 친구 몇 명을 모아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 오래오래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인디고 서원에서 행복한 책읽기를 하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시작도 안 해놓고선 꿈만 거창합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아이가 좋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슨 책을 어떻게 읽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정작 부모 자신은 책도 읽지 않으면서 아이는 책을 많이 읽어 주길 바라기도 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독서습관 들이기》에서 추천하는 책에 맛 들이는 법 제1항은 '부모가 읽으면 아이도 읽는다'입니다.

2005년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주당 독서 시간은 3.1시간, 하루로 환산하면 30분도 채 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인도는 주당 10.7시간입니다. 이에 비해 여가 시간 활용 1순위는 텔레비전 시청으로, 하루 2시간이었습니다. 통계를 보자면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는 변명은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인 것 같습니다.

부모가 먼저 책을 읽기 위해서는,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끄고, 과도한 저녁 모임을 자제하고, 한 달에 한 권 이상 의무적으로 책을 사라고 이 책은 조언합니다. 지금까지 독서에서 동떨어져 있었다면 어떤 책을 골라야할지조차 막막할 것입니다. 이럴 땐 먼저 관심 분야를 정하고 찾는 방법도 있고, 특별한 관심 분야가 없다면 고전을 골라 보거나, 아니면 차라리 아이 책을 함께 읽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독서습관 들이기》는 전체 내용이 142쪽밖에 되지 않습니다만 책에 맛 들이는 법, 좋은 책 고르는 방법, 책을 잘 읽는 방법, 책 읽고 독후 활동하는 방법 등 자녀의 독서 교육과 관련된 왠만한 주제는 거의 다루고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부모들이라면 아주 쉽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의 도움을 받아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실천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특히 읽은 책을 맛있게 소화하기 위해 아이와 이야기하는 방법, 주의할 점 등은 참 유용한 정보입니다. 자칫 아이에게 뻔한 교훈을 강요하여 책 읽고 대화하는 것이 또 하나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이 부분은 유념해서 읽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독서습관 들이기》는 '현명한 부모를 위한 10분 자녀교육' 시리즈 중의 하나입니다. 이 외에 《초등학교 입학준비》, 《엄마표 영어교육》, 《효과만점 예체능교육》, 《우리가족 체험학습》, 《엄마표 놀이교육》, 《건강한 먹거리》 등이 나와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의 자녀나 초등학생을 둔 부모가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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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
스펜서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동아일보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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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자녀 교육서를 두루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수확은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의 제1원칙이 바로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바람이 불면 넘어질새라 늘 측은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본다고 아이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아이의 문제를 어른의 관점에서 이래라 저래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아이 스스로의 문제 해결을 방해할 뿐입니다.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아이를 '양육'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나와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격체로 대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어젯밤 집에 왔는데 아내가 좀 심각한 표정이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우리 딸을 유독 시기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들어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우린 딸에게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애가 널 무시하면 너도 무시해버려' 또는 '그 애가 너를 흘겨보면 너도 같이 흘겨봐' 따위의 아이의 결정을 대신하는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말을 들으니 어떤 애가 유독 우리 딸만 보면 흘겨본다는 것입니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니 그건 시기하는 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더 하다보니 딸이 울먹거리더라는 겁니다. 아이의 마음이 많이 아픈가 봅니다. 그래서 아내가 '그럼 너도 흘겨보면 되지 않을까?'라고 했더니, 딸은 '그럼 그 아이는 선생님께 일러 바칠 거야'라고 했더랍니다. 그래서 아내가 다시 '그럼 너도 선생님께 일러 바치면 되잖아' 했더니, 딸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엄마,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래. 선생님께 고자질하는 것은 나쁜 것이잖아.'

아이는 이미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대견하고 착해, 오히려 가슴이 턱 막히더라고 아내는 말합니다. 그 아이로 인해 무척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딸을 보며 아내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저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서 엄마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이상 일부러 그 문제를 다시 들춰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이들 사이의 교우관계는 어른이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아이 고유의 문제라 판단했습니다. 대신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여 혹시 집에 와서 그 문제를 스스로 거론한다면 그때 진지하게 아이와 해결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문제 해결력을 믿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오늘 소개 드릴 책은 스펜서 존슨의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입니다. 스펜서 존슨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베스트 셀러를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다음은 스펜서 존슨의 책 중에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된 책들입니다.

1994년 1분 자기 혁명
1998년 멀리 내다보는 세일즈맨(세일즈우먼)
2000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2000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
2003년 어린이를 위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2003년 1분 경영
2003년 선물
2004년 1분 엄마
2004년 어린이를 위한 선물
2005년 선택
2006년 행복
2007년 멘토

귀에 익은 제목이 몇 편 있을 것입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선물>은 꽤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참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그런 감동이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스펜서 존슨의 책은 '그 책이 그 책' 같았습니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짧은 이야기로 풀어 쓴 것이, 처음에는 신선하고 감동적이었으나 반복되는 형식의 책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이내 곧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약 순서를 바꿔 읽었더라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역시 그리 감동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는 천상 이야기꾼입니다. 이야기를 참 쉽게 풀어냅니다. 읽기 쉽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비교적 단순하고 뚜렷한 것이 그의 책의 최대 장점입니다. 그러나 해당 분야의 다른 좋은 책을 먼저 읽고 그의 책을 접하면 내용의 '얕음'이 느껴집니다. 물론 당연한 말입니다. 스펜서 존슨의 책은 짧은 이야기를 통해 몇 가지 핵심적인 이야기를 전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책을 그를 통해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깊은 통찰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 그 분야의 책을 몇 권 읽은 이에게는 허전하고 알맹이가 빠진 듯한, 그저 읽기에만 쉬운 책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또 그 메시지가 유의미함을 알지만, 책의 진실성이 좀 떨어져 보였습니다. 갑자기 아내를 잃고 무려 다섯 아이를 키우게 된 아빠 이야기라는 다소 작위적인 설정으로 출발하는 이야기는, 비록 부담 없이 읽을 수는 있지만 큰 감동은 없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니 책 내용이 수준 이하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책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책 읽을 당시의 개인적인 상황과 해당 분야의 사전 지식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저의 개인적 느낌이 이 책이 꼭 필요할 수 있는 다른 이들의 선택을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됩니다. 자녀 교육서를 읽고 싶은데 두터운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분이라면, 이 책으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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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수면법 - 수험생과 직장인의 두뇌를 100% 활용케하는
후지모도 겐고 지음, 최운권 옮김 / 백만문화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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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날씨가 쌀쌀해질수록 이불 속이 그립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5분만~, 5분만~" 하다가 지각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충분한 자고 눈을 떴는데 5시밖에 안 된 경우도 있습니다.
"뭐야, 아직 5시밖에 안 됐잖아. 1시간 더 자도 되겠네. 한숨 더 자자."
이렇게 더 자고나서는 또 깰 때쯤 되면 "5분만~, 5분만~" 하다가 허겁지겁 출근을 합니다. 아침 식사는 생각도 못합니다. 회사에 도착해 책상 앞에 앉으면 11시부터 점심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드디어 점심 시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기름진 음식으로 배불리 먹습니다. '으~ 이제 살 것 같다', 배를 내리쓸며 회사에 들어와 오후 업무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만복 후의 나른한 기분이 곧 찾아옵니다. 다량의 음식이 위에 채워지면 대뇌에 있던 혈액이 일제히 밑으로 내려와 소화 흡수를 위해 분주해집니다. 머리의 혈액 소통이 급감하고 사고력은 썰물처럼 밀려 나갑니다.
점심의 만복감은 저녁 식사를 더 많이 먹고 싶게 합니다. 과도한 식사의 반복이 되고, 이는 내장의 피로를 증가시켜 그것을 회복하자면 오랜 시간 잠을 자야 합니다. 수면 시간이 길어지면 지방은 걷잡을 수 없이 체내에 축적되어 에너지 과잉 상태가 되고 세포의 신진 대사 리듬은 깨어지고 서서히 건강까지 손상되게 됩니다.

어, 내 얘기네,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 주위를 둘러봐도 많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수면 시간만 줄여도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저를 걱정합니다. 10년 가까이 함께 산 아내조차도 걱정합니다. 하루 서너 시간 자고 어떻게 버티는지 걱정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아예 '체질'이 다른 사람으로 예외 처리합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독한 놈~~~"

중학교 때 《4시간 수면법》이라는 책을 접했습니다. 일본인이 쓴 책이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너무 감명(?)을 받은 나머지 《3시간 수면법》, 《5분간 가면법》을 연달아 사서 읽었습니다. 당시 책은 곧 진리였습니다. 활자로 찍은 모든 인쇄물은 거역할 수 없는 진리라고 여길 때였습니다. 어렵지 않게 실천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읽은 책을 다시 보려고 서점을 뒤졌지만 없었습니다. 《3시간 수면법》, 《4시간 수면법》이라는 제목의 책은 대개 절판 또는 품절이 되었고, 후지모도 겐고가 쓴 이 책만이 유일하게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백만문화사에서 나온 《3시간 수면법》을 읽었습니다.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는 별로 읽은 책도 없는 상태에서 워낙 감동적으로 읽고 실천에 옮겼던 책이라, 거의 기억하고 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읽으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중학교 때 처음 읽고 실천할 때,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시 실천에 옮길 때,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든 생각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중학교 때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습니다. 혼란하고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공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 거의 365일 술을 마시며 보낸 탓에 수면 주기는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생존'을 위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은 꼭 자야한다는 생각이 애당초 없었기 때문에 다시 실천에 옮기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책을 봤습니다.

남보다 한 자라도 더 공부하기 위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비록 책에는 여전히 수험생과 직장인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문구가 많지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그 어떤 방법도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을뿐더러 자신의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듦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와의 경쟁도 싸움도 아닌 오직 저 자신을 위한 수행과 수양을 위해 다시 읽었습니다.

3시간 수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식(小食)이 필수입니다. 수면은 대뇌 뿐만 아니라 내장이 피로하여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내장을 피로하게 하는 큰 요인이 위장의 소화활동입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내장을 피로하게 하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수면이 필요해집니다.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필요 이상으로 자야 합니다.

3시간 수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써야 합니다. 두뇌를 써야하고 몸을 써야 합니다. 열정을 다해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써야 합니다. 모든 것이 비어버린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주 깊은 숙면이 필요합니다. 뇌와 육체와 내장(자율신경)이 함께 푹 쉬면 그것이 곧 숙면입니다. 숙면은 수면의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입니다.

3시간 수면을 하면 새벽이 내 것이 됩니다. 누구를 위해 싸우는 새벽이 아닌, 순전히 나를 위한 새벽 시간을 갖게 됩니다. 여명의 순간이 '잠에 취한 잠'으로 소비되지 아니하고 나를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으로 살아납니다.

*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아침형 인간을 위한 건강 수면법'과 '식사법'이라는 제목으로 주베트남 대사관 이상학님의 글이 여러 블로그에 올라와 있었습니다(원본 글은 찾지 못했습니다). 잘 정리해 놓은 것 같습니다. 검색의 수고를 덜고자 그 중 하나를 아래에 링크해 두었습니다.

- '아침형 인간'을 위한 건강 수면법 (바로가기-클릭)
- '아침형 인간'을 위한 건강 식사법 (바로가기-클릭)

**
위 글을 보면 4, 6, 8시간 수면이 좋다고 하는데, 이는 수면의 주기를 2시간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차가 있지만 수면 주기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사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1시간 반이 수면 주기인 사람은 4시간이 아니라 3시간이라도 충분한 숙면이 된다는 뜻에서 《3시간 수면법》이라는 책 제목이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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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없는 나라
양 얼처 나무.크리스틴 매튜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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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사회라고 들어보셨나요?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보면, 오랜 옛날 군혼제에서는 혈통이 어머니 편에 따라서만 확정될 수 있었으며, 따라서 모계만이 인정되는 모계제 사회가 정립되었는데, 이 때 여성은 경제를 장악하게 되었고, 정착생활로 이어져 가내 경제가 출연하자 여성의 역할은 더욱 증대되었다고 합니다. '모계'사회이면서 '모권'사회가 역사적으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오래된 이야기, 호랑이가 담배를 피기도 전의 일이라, 오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 그것도 바로 지금 이 시간, '모계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호기심을 넘어 충격에 가깝습니다. 중국 윈난성 오지 루구호 주변의 모쒀족 마을이 바로 그곳입니다.

모쒀족 출신 양얼처나무(杨二车娜姆)의 이야기를 인류학자 크리스틴 매튜가 엮은 《아버지가 없는 나라》는 지상 유일의 모계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인류학자가 쓴 글이라 학술적인 무미건조한 글일 거라는 선입견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도 이혼도 없고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딸이 집안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 모쒀족의 양얼처나무의 이야기는 팩트(fact)이지만 그 어떤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번역서임에도 전혀 번역서처럼 느껴지지 않는 매끄러운 번역이 마치 원래 우리 글을 읽는 듯 자연스럽습니다.

모쒀족은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혼이라는 제도를 가정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유일한 민족입니다. 중국 혁명 이후에 정식으로 결혼하여 핵가족을 이룬 가정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형제, 어머니, 자매, 외삼촌, 딸과 아들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삽니다. 비록 남편과 부인과 아버지는 없어도 그 자리에 형재 자매와 어머니, 외삼촌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가하지 않으며, 집안의 재산을 공동으로 보유하고 온 가족의 이익을 위해 공평하게 사용합니다. 자녀들이 어머니와 외삼촌의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재산도 대를 잇기 때문에 상속의 개념도 무의미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정을 이룰 수 있는지 궁금하시죠? 그들의 성관계는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난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성인이 된 모쒀족 처녀는 꽃방이라는 자신만의 방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남자는 성인이 되어도 자신의 방조차 없습니다. 밤이 되면 남자가 여자의 방을 찾아오고 그 남자가 마음에 들면 여자는 문을 열어 줍니다. 이를 주혼(走婚)이라 부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혼(婚)이 아닙니다. 모쒀족은 이를 '세세'라 부릅니다. 남자가 여자를 찾아가고, 혼인서약이나 재산 분배, 자녀 양육같은 문제는 거론되지 않으며, 자신을 찾아온 남자가 자신에게만 충실할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인간이니 비록 질투와 상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애인에게서 버림받은 사실을 떠벌리는 것은 자신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로 치부됩니다.

모쒀족 양얼처나무는 열 세살에 성년식을 치르고 애인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어머니의 뒤를 이어 집안의 가장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지역 문화국에서 주최하는 노래경연대회에 참석하게 되고 거기서 인정을 받아 베이징 본선에서도 1등을 차지합니다. 그때 바깥 세상을 보고 자극을 받아 무작정 도시로 도망쳐 나옵니다. 모쒀족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그녀의 모쒀족 탈출기(?)는 소설 이상의 재미가 있습니다.

모쒀족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넘어 참 아름답습니다. 어머니의 호수라는 뜻의 루구호처럼 평온하고 따뜻합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은 보기에 따라 이상적으로까지 보입니다. 모쒀족과 양얼처나무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모계사회와 부계사회, 과거와 현재,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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