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
스펜서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동아일보사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자녀 교육서를 두루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수확은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의 제1원칙이 바로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바람이 불면 넘어질새라 늘 측은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본다고 아이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아이의 문제를 어른의 관점에서 이래라 저래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아이 스스로의 문제 해결을 방해할 뿐입니다.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아이를 '양육'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나와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격체로 대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어젯밤 집에 왔는데 아내가 좀 심각한 표정이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우리 딸을 유독 시기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들어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우린 딸에게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애가 널 무시하면 너도 무시해버려' 또는 '그 애가 너를 흘겨보면 너도 같이 흘겨봐' 따위의 아이의 결정을 대신하는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말을 들으니 어떤 애가 유독 우리 딸만 보면 흘겨본다는 것입니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니 그건 시기하는 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더 하다보니 딸이 울먹거리더라는 겁니다. 아이의 마음이 많이 아픈가 봅니다. 그래서 아내가 '그럼 너도 흘겨보면 되지 않을까?'라고 했더니, 딸은 '그럼 그 아이는 선생님께 일러 바칠 거야'라고 했더랍니다. 그래서 아내가 다시 '그럼 너도 선생님께 일러 바치면 되잖아' 했더니, 딸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엄마,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래. 선생님께 고자질하는 것은 나쁜 것이잖아.'

아이는 이미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대견하고 착해, 오히려 가슴이 턱 막히더라고 아내는 말합니다. 그 아이로 인해 무척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딸을 보며 아내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저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서 엄마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이상 일부러 그 문제를 다시 들춰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이들 사이의 교우관계는 어른이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아이 고유의 문제라 판단했습니다. 대신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여 혹시 집에 와서 그 문제를 스스로 거론한다면 그때 진지하게 아이와 해결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문제 해결력을 믿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오늘 소개 드릴 책은 스펜서 존슨의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입니다. 스펜서 존슨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베스트 셀러를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다음은 스펜서 존슨의 책 중에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된 책들입니다.

1994년 1분 자기 혁명
1998년 멀리 내다보는 세일즈맨(세일즈우먼)
2000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2000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
2003년 어린이를 위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2003년 1분 경영
2003년 선물
2004년 1분 엄마
2004년 어린이를 위한 선물
2005년 선택
2006년 행복
2007년 멘토

귀에 익은 제목이 몇 편 있을 것입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선물>은 꽤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참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그런 감동이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스펜서 존슨의 책은 '그 책이 그 책' 같았습니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짧은 이야기로 풀어 쓴 것이, 처음에는 신선하고 감동적이었으나 반복되는 형식의 책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이내 곧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약 순서를 바꿔 읽었더라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역시 그리 감동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는 천상 이야기꾼입니다. 이야기를 참 쉽게 풀어냅니다. 읽기 쉽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비교적 단순하고 뚜렷한 것이 그의 책의 최대 장점입니다. 그러나 해당 분야의 다른 좋은 책을 먼저 읽고 그의 책을 접하면 내용의 '얕음'이 느껴집니다. 물론 당연한 말입니다. 스펜서 존슨의 책은 짧은 이야기를 통해 몇 가지 핵심적인 이야기를 전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책을 그를 통해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깊은 통찰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 그 분야의 책을 몇 권 읽은 이에게는 허전하고 알맹이가 빠진 듯한, 그저 읽기에만 쉬운 책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또 그 메시지가 유의미함을 알지만, 책의 진실성이 좀 떨어져 보였습니다. 갑자기 아내를 잃고 무려 다섯 아이를 키우게 된 아빠 이야기라는 다소 작위적인 설정으로 출발하는 이야기는, 비록 부담 없이 읽을 수는 있지만 큰 감동은 없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니 책 내용이 수준 이하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책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책 읽을 당시의 개인적인 상황과 해당 분야의 사전 지식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저의 개인적 느낌이 이 책이 꼭 필요할 수 있는 다른 이들의 선택을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됩니다. 자녀 교육서를 읽고 싶은데 두터운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분이라면, 이 책으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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