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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 감정 코치
존 가트맨 지음, 남은영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4월
평점 :
어제는 많이 피곤했습니다. 회사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그 결정을 위해 근 일주일 넘게 고민을 했었습니다. 막상 결정을 하고 보니 피로가 엄습했습니다. 집에 일찍 돌아왔습니다. 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우리 딸이 처음으로 배냇니를 하나 뽑았습니다. 빠진 이 사이로 혀를 내밀며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무척 행복했습니다. 울지도 않고 이를 뽑았다고 하니 대견스러웠고 아빠가 왔을 때 한없이 기뻐하며 반겨주는 모습에 절로 힘이 났습니다.
아내가 딸을 데리고 치과에 가면서 많이 걱정했다고 합니다. 딸이 두려워하거나 많이 힘들어하면 어떡할까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더러 몇 번이고 딸에게 두려워하지 않도록 힘을 주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종종 딸이 처음 겪게 되는 힘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아내가 그 역할을 못해서가 아니라 아빠가 함께 했을 때 훨씬 효과가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딸에게 치과에 가서 생길 일들에 대해 미리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치과에 가면 잇몸에 약을 바르는데, 그 약을 바르면 꼬집어도 안 아프단다, 그걸 마취약이라고 하는 거야, 그런 다음 주사를 놓는데 주사가 하나도 안 아파, 왜냐하면 미리 약을 발라놨기 때문이야, 그 주사도 마취주사야, 이제 집게로 이를 뽑아도 하나도 안 아파, 아빠 이도 모두 뽑고 새로 난 거야, 그리고 이 빠진 사이로 혀를 내밀면 정말 웃긴다, 이 뽑거든 거울 보면서 한 번 해봐, 정말 재밌어...
주말에 이틀 동안 딸과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딸은 치과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딸 표정에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를 이제는 조금 느낄 수 있습니다. 어젯밤에 딸에게 정말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봤습니다. 사실은 주사를 맞을 때 따끔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울지 않고 다리를 쭉 뻗으면서 참았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내친 김에 좀 더 얘기를 했습니다. 지난 번에 유독 딸에게 질투하며 눈을 흘겨 본다는 아이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대신 어제는 어떤 남자애가 때렸다고 합니다. 팔꿈치로 볼을 네 번 때리고 주먹으로 가슴을 때려 아플 정도였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말씀 드렸냐고 물었습니다. 고자질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 안 했다고 합니다. 고자질하는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해줬습니다. 그 애가 장난으로 그랬을 수도 있는데 만약 반복해서 그러면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야 그 아이의 나쁜 행동이 버릇이 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버릇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이가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노력해서 고쳤다는 부연 설명까지 오히려 저에게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늘 새로운 일의 연속입니다. 그때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듭니다. 불안합니다. 혹시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무엇보다 정말로 내 말을 이해한 건지, 아니면 건성으로 얘기하고 무언가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이 경험은 새롭고 낯섭니다. 물론 늘상 아이 곁에 있는 아내가 겪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겠지만요.
사실 예전에는 어떻게 학습시킬 것인가가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줄곧 사교육 업계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교육에 대한 철학이 섰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교과 학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게는 딸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아이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먼저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알고, 아이가 내 마음을 이해할 때 교육은 자연스레 이루어질 거라 믿습니다. 교육은 양육의 일부이며 혹은 그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아이를 위한 교육의 기술보다 사랑의 기술이 우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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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코치의 세계적 권위자, 가트맨 연구소장인 존 가트맨과 남은영 박사가 함께 쓴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은 참 좋은 책입니다. 작년(2006년) 8월에 MBC 스페셜 2부작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의 원작 도서입니다.
제가 이 책이 좋다고 말씀드리는 건, 대개의 육아 지침서가 '이럴 땐 이렇게 하라'는 사례 중심으로 된 데 반해, 이 책은 육아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리를 알아야 실제 적용이 가능합니다. 세상 사는 일이 모두 그러하겠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늘 새로운 상황의 연속입니다. '이럴 땐 이렇게 하라'는 지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토머스 고든의 《부모 역할 훈련》과 비슷합니다.
이 책의 주제는 '감정코치(Emotion coach)'입니다.
"감정은 다 받아 주고 행동은 잘 고쳐주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존 가트맨 박사가 여러 부모(30년간 약 3,000 쌍의 부부)를 조사해본 결과 부모들의 자녀 교육에는 네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축소전환형, 억압형, 방임형, 감정코치형이 그것입니다.
축소전환형 부모는 자녀가 느끼는 분노, 두려움, 슬픔 같은 감정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가 슬퍼하거나 화가 나 있으면 당장 풀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겉보기에는 매우 자상한 부모처럼 보입니다. 또 실제 그러합니다. 자녀가 슬프거나 화낼 때 아이들의 주의를 전환하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일에 아주 능숙합니다. 그러나 실은 자녀가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축소전환형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슬프다는 사실이나 다른 감정들을 부모에게 알리기 위해 자기 감정을 크게 부풀려야만 합니다. 정말 슬프고 화가 났는데 자꾸 그 기분을 바꾸려고만 드니 감정에 혼란이 일어나고, 그것을 알리기 위해 지나치게 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소한 감정은 숨기게 됩니다.
억압형 부모는 자녀가 슬퍼하거나 화내면 비난하거나 벌을 주는 유형입니다. 이 유형의 부모는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전환시키려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잘못이라며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아이가 혼자 자는 것이 무섭다고 하면, 전혀 무섭지 않다고 말합니다.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하면 귀신이란 거 없으니까 어서 들어가 자라고 합니다. 슬픔, 두려움, 분노와 같은 감정은 자녀에게 매우 생소한 감정이지만 이를 이해하려기 보다는 어른의 기준으로 묵살합니다. 아이는 이런 감정을 느낄 때의 올바른 대처법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축소전환형과 억압형 부모의 아이들은 자기 감정을 믿지 말라고 배웁니다.
방임형 부모는 자녀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전적으로 받아줍니다. 하지만 감정과 관련된 행동에 적절한 지도를 해주지는 못합니다. 방임형 부모는 모든 종류의 감정을 다 허용합니다. 그래서 자녀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자기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방임형 부모의 문제는 자녀에게 무엇이 적절한 행동인지, 화나거나 슬프거나 무서울 때는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는지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감정에만 관심이 있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회성이 저하됩니다. 결국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도 힘들어집니다.
감정코치형 부모는 자녀가 느끼는 감정들을 중요시합니다. 자녀가 자기 감정을 이해하고, 그런 감정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도록 도와줍니다. 정의는 이렇게 단순하지만 사실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감정코치란 자녀의 감정을 같이 느끼고 방향을 안내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대신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신뢰하고 잘 대처하며, 더욱 확신을 가지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존 가트맨은 이런 감정코칭을 더 잘 실천할 수 있도록 감정코칭 5단계를 착안했습니다.
1단계, 감정을 인식하기(Emotional awareness).
2단계, 정서적으로 교감하기(connecting).
3단계, 잘 들어주기(listening).
4단계, 감정에 이름 붙이기(Naming emotions).
5단계, 좋은 해결방안 찾기(Finding good solutions).
자세한 방법은 책을 참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섣부른 실천이 오히려 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감정코칭형 부모가 이상형이라 하더라도 실생활에서 100% 이러한 부모로 살기란 불가능합니다. 책에서도 충고합니다. 너무 바빠 시간에 쫓길 때,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너무 피곤하거나 화가 나 있을 때, 정말 심각한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 할 때, 아이가 부모를 교묘히 속이려 할 때 감정코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약은 체질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모든 약에는 또한 부작용이 있습니다. 자녀교육 방법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꼼꼼히 읽어보시고 충분히 공감하셔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