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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잠의 유혹
폴 마틴 지음, 서민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용인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로 출퇴근을 합니다. 차 안에서는 책을 읽거나 잠을 잡니다. 차창 밖 경치를 보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잠을 잘 때는 항상 휴대전화로 알람을 맞춰 놓고 잡니다. 잠깐 졸다가 괜히 종점까지 가서 난처한 상황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도 가끔 퇴근 길에 집앞을 지나쳐 갈 때가 있습니다(다행히 출근 때 지나친 적은 없습니다).
어제는 졸다가 아예 차고지까지 가버렸습니다. 바깥에서 일을 보고 퇴근하다보니 늘상 타던 곳이 아니라 시간 계산을 잘못했나 봅니다. 게다가 종점에서 버스기사가 조는 승객들을 모두 깨워 내리게 하는데 홀로 졸고 있는 저를 발견하지 못했나 봅니다. 종점에서는 30 여분 정도 걸으면 되는데 차고지까지 들어가면 돌아올 방법이 없습니다. 교외 한적한 곳에 차고지가 있어 다른 교통편이 없습니다.
다행히 차고지가 친숙하여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최근에 버스에 휴대전화를 두고 내려 차고지까지 가서 찾아온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밤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아 차고지에서 출발하는 차가 있어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달콤한 잠의 유혹》은 잠에 대한 종합 보고서입니다. 500쪽이 넘는 분량 빼곡하게 잠과 꿈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되거나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잠과 꿈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사람들은 왜 잠을 자야 하는지, 그리고 잠자는 동안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의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수면의 단계를 4~5 단계로 구분하는데 각각의 단계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그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비렘수면과 렘수면 단계를 거치는지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가 기대했던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잠에 대해서만큼은 밝혀진 것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참 재미있는 읽었습니다. 늘 졸고 있는 현대인들의 수면부족과 그 폐해, 수면의 메커니즘, 하품의 진실, 꿈에 대한 여러 해석, 잠의 기원과 렘수면을 하는 이유, 불면증에 대한 여러 학설을 섭렵할 수 있었습니다.
하품에 대한 일반적인 통설은, 혈중 산소량이 감소하거나 혈중 이산화탄소량이 증가하여 나타나는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수면 부족 또는 지루함으로 인한 졸음을 쫓기 위해 산소를 한꺼번에 들이키는 행위라고 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이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이 정확하다면 이산화탄소가 많이 포함된 공기를 들이마시면 하품이 나오고, 순수한 산소만 들이마시면 하품이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험 결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품은 산소와 거의 혹은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적군 앞에서 하품을 하는 군인, 연주 전에 하품하는 음악가, 시합 전에 하품하는 선수들은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걸까요? 2주간의 실험 결과 하품은 활동이 많아지는 시기 이전에 약 15분마다 한 번씩 규칙적으로 하는 성향을 보였습니다. 피곤하거나 지루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주 하품을 하며, 오히려 하품은 곧 시작될 정신적 육체적 활동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는 마치 기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저속 상태의 기어를 고속으로 바꾸는 행위가 곧 하품이라는 것입니다. 동물원의 사자들이 먹이 먹는 시간 전에 하품을 하는데, 이때는 사자의 일과 중 가장 활발한 시간입니다.
잠과 학습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잠은 크게 렘수면과 비렘수면으로 나눕니다. REM은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의 약어입니다. 잠 자는 동안 눈이 빠르게 움직일 때가 있는데 이때를 렘수면 단계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때 꿈을 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렘수면 단계에는 신비한 현상이 많습니다. 일단 몸을 전혀 가눌 수 없습니다. 마비됩니다. 겉에서 보면 아주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은데 뇌의 활동은 거의 깨어있는 상태와 비슷합니다. 알파파와 베타파를 포함한 저전압 활동이 뒤죽박죽 혼합된 상태입니다. 렘수면 단계에서는 마비 현상이 일어나므로 높은 곳에 둥지를 투는 새들은 렘수면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도 아마 절벽이나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잠을 자야한다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비렘수면과 렘수면을 합쳐 하나의 수면 단계가 되는데, 성인은 보통 90분 정도 됩니다. 아기들은 60분 정도입니다. 이 중 꿈을 꾸는 렘수면 단계는 왜 있는 걸까요? 여기에는 아주 상반된 두 이론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기억을 제거하기 위한 단계라는 주장과, 정반대로 새로 학습된 정보를 저장하는 시기라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깨어있는 동안 수많은 정보를 접합니다. 뇌에는 수많은 시냅스(신경 세포의 연결)가 있어 다양한 기억을 저장하는데, 뇌의 용량에도 한계가 있어 약해진 기억의 흔적을 더욱 약하게 만들고 그 자리에 더 강한 기억을 자리잡게 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렘수면 단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신이 남겨 두고 싶어하는 중요한 기억이 아니라,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쓸데없는 기억이 꿈으로 나타납니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반대로 렘수면 기간 동안 뇌는 새로 입수한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으로 통합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봅니다. 여러 실험을 통해 사람과 동물이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거나 새로운 일을 배운 직후에 렘수면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새로운 무언가를 공부한 후에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렘수면이 양이 더 많다고 해서 잠을 적게 자는 사람보다 학습효과가 더 좋게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무조건 잠만 많이 잔다고 잘 기억되는 건 또 아닌가 봅니다.
이 외에도 잠과 꿈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 이 책은 수면에 관한 한 현재 출간된 책 중에서는 가장 대중적이며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