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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수성 리더십 ㅣ SERI 연구에세이 52
박현모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6년 5월
평점 :
새해 첫 <독서유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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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역경의 산 증인입니다. 언제고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때 이 분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처음처럼>이라는 서화 에세이집을 낼 때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역경(逆境)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省察)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목이 잎사귀를 떨고 자신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성찰의 자세가 바로 석과불식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처럼>,p.7)
수많은 처음 중에서도 신년 초는 꽤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계획을 세울 때입니다. 아직 올해의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다면, 이번 한 주는 2008년을 위한 새로운 다짐의 주간으로 삼아봄이 어떠할른지요.
어제 새해 아침을 맞아 가볍게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유효기간이 다한 책을 버렸습니다. 270여 권 정도 됐는데, 거개가 컴퓨터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애착이 가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습니다. 집이 조금 더 넓다면 어떻게든 보관했을 터이지만, 버리면서 서운한 감정보다 시원한 기분이 더 컸습니다. 기술서는 인문서와는 달리 유효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기껏해야 몇 년. 버린 것 이상으로 새로운 것을 익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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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책 읽기의 주제는 '사람'입니다. 자서전이든 평전이든 한 인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읽어볼 생각입니다. 책보다는 사람을 배우기가 쉽습니다. 열정을 배우고 절절함을 느끼고 반성과 성찰을 통해 나를 이끄는 데는 책보다는 사람이 좋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통해 그가 살았던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생생합니다. 친근하고 생동적입니다. 지식 습득과 마음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 배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과 내일은 세종대왕에 관한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즐겨 보던 대하사극 <대조영>이 끝나고 후속 드라마로 <대왕 세종>을 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상징하는 중심도로의 이름은 '세종로'입니다. 그 거리에 있는 동양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관의 이름은 '세종문화회관',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기지의 이름은 '세종과학기지', 대한민국 최초의 이지스함 1호 이름도 '세종대왕', 현재까지 최고액권인 만원 지폐의 주인공 역시 세종대왕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올해 우리나라는 세종대왕 배우기가 유행이 될 것 같습니다. 정조 배우기가 끝나면 세종 배우기로 넘어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달리했던 두 임금은 비록 그 스타일은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지식으로 신하를 압도하고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개혁을 추진했다는 면에서는 아주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리더십을 소 모는 것에 비유하지면, 정조는 앞에서 소를 끄는 스타일이었고, 세종은 뒤에서 소를 모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두 임금 모두 그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재임 기간 내내 편안한 날이 없었고 잔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세종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터이고, 정조 또한 그 죽음이 독살이 아닌 과로사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이런 면만 보자면 저는 세종을 닮고 싶습니다. 느릴 것 같지만 멀리 오래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소를 몬다고 해서 수동적이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세종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박학다식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곧 그 분야의 전문가가 곤혹스러울 정도로 집중했습니다. 역사에서부터 천문, 역학, 기술, 음악까지 그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범위가 없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도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 없이 세종이 홀로 만들었을 거라는 추측이 지배적입니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 집현전 수장이었던 최만리가 소리 높여 반대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제 목 : 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
지은이 : 박현모
펴낸곳 : 삼성경제연구소 / 2006.5.12 초판 발행, 2007.4.25일刊 개정판 4쇄를 읽음 (5,000원)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인 박현모가 쓴 <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을 보면 매우 잘 알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세종의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 곧 위민정치에서부터 공적으로 허물을 덮게하고, 마음을 기울여 인재를 등용하여 한 번 믿은 사람을 끝까지 중용한 그만의 지식경영 방식까지, 이 얇은 책 한 권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세종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 대한 굴욕적인 사대외교 역시 당시로서는 가장 실용적인 외교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직 나라의 기틀이 잡히지 않은 조선 초의 상황에서 보자면 매우 일리 있는 평가입니다.
최근 출간된 이한의 <세종, 나는 조선이다>를 함께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세종대왕의 일대기와 주변인들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지만, 세종에게서 배울 만한 핵심을 조목조목 정리한 데에는 <세종의 수성 리더십>이 훨씬 좋습니다. 얇지만 참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세계적 발명품인 훈민정음 창제도 세종의 여러 위업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그 위대함이 아니라, 세종 시기의 수많은 업적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철학, 사고하는 방식과 일 처리 방식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책 읽기'가 아닌 '사람 배움'의 목적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세종 시기에 수많은 업적이 있었지만, 당시 인재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조금 쓸 만하다 싶으면 고려왕조에 대한 단심(丹心)을 버리지 못하고 두문동에 은둔하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숙청되거나 죄를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천출의 구분 없이 젊은 인재를 구했습니다.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모두 중용했습니다.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 또한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중요했습니다.
황희는 세종의 아버지뻘이었습니다. 상왕인 태종 때 사람으로 세종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환갑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권력을 잡은 동안 매관매직을 일삼았고 사위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조서를 변조하고 죄없는 사람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우기도 했습니다. 면직과 파직을 거듭했던, 결코 깨끗하지 않았던 관리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그를 중용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복잡한 사태도 그 핵심을 파악해 간명하게 정리하는 재주가 있었고, 인재를 발굴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신의 손 장영실도 그의 작품입니다. 세종은 그를 끝까지 믿었고, 황희는 이에 청빈한 재상으로서 대업을 보필했습니다. 황희는 세종으로 인해 청백리로 거듭났고, 세종은 황희의 도움으로 동방의 성주(聖主)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종은 '미스터 뚝심'입니다. 이 별명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세종실록>편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한번 마음 먹은 일은 그 끝을 봐야 했습니다. 물론 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를 발굴하고, 그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가를 긴장시켜 가며 일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참을성이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라고 할 때까지 의견을 구한 후에 시행케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정치를 숙의(熟議)의 정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조선왕조 내내 따라다니는 독살설로부터 자유로운 임금이었습니다.
새해 첫 출근 시간이 다가옵니다. 시간에 쫓기어 글을 어설프게 끝내지만,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기약해야겠습니다. 2008년, 세종과 같은 뚝심으로 계획한 바, 모든 것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