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수성 리더십 SERI 연구에세이 52
박현모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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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독서유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역경의 산 증인입니다. 언제고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때 이 분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처음처럼>이라는 서화 에세이집을 낼 때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역경(逆境)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省察)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목이 잎사귀를 떨고 자신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성찰의 자세가 바로 석과불식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처럼>,p.7)
수많은 처음 중에서도 신년 초는 꽤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계획을 세울 때입니다. 아직 올해의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다면, 이번 한 주는 2008년을 위한 새로운 다짐의 주간으로 삼아봄이 어떠할른지요.

어제 새해 아침을 맞아 가볍게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유효기간이 다한 책을 버렸습니다. 270여 권 정도 됐는데, 거개가 컴퓨터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애착이 가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습니다. 집이 조금 더 넓다면 어떻게든 보관했을 터이지만, 버리면서 서운한 감정보다 시원한 기분이 더 컸습니다. 기술서는 인문서와는 달리 유효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기껏해야 몇 년. 버린 것 이상으로 새로운 것을 익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 초 책 읽기의 주제는 '사람'입니다. 자서전이든 평전이든 한 인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읽어볼 생각입니다. 책보다는 사람을 배우기가 쉽습니다. 열정을 배우고 절절함을 느끼고 반성과 성찰을 통해 나를 이끄는 데는 책보다는 사람이 좋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통해 그가 살았던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생생합니다. 친근하고 생동적입니다. 지식 습득과 마음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 배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과 내일은 세종대왕에 관한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즐겨 보던 대하사극 <대조영>이 끝나고 후속 드라마로 <대왕 세종>을 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상징하는 중심도로의 이름은 '세종로'입니다. 그 거리에 있는 동양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관의 이름은 '세종문화회관',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기지의 이름은 '세종과학기지', 대한민국 최초의 이지스함 1호 이름도 '세종대왕', 현재까지 최고액권인 만원 지폐의 주인공 역시 세종대왕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올해 우리나라는 세종대왕 배우기가 유행이 될 것 같습니다. 정조 배우기가 끝나면 세종 배우기로 넘어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달리했던 두 임금은 비록 그 스타일은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지식으로 신하를 압도하고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개혁을 추진했다는 면에서는 아주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리더십을 소 모는 것에 비유하지면, 정조는 앞에서 소를 끄는 스타일이었고, 세종은 뒤에서 소를 모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두 임금 모두 그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재임 기간 내내 편안한 날이 없었고 잔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세종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터이고, 정조 또한 그 죽음이 독살이 아닌 과로사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이런 면만 보자면 저는 세종을 닮고 싶습니다. 느릴 것 같지만 멀리 오래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소를 몬다고 해서 수동적이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세종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박학다식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곧 그 분야의 전문가가 곤혹스러울 정도로 집중했습니다. 역사에서부터 천문, 역학, 기술, 음악까지 그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범위가 없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도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 없이 세종이 홀로 만들었을 거라는 추측이 지배적입니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 집현전 수장이었던 최만리가 소리 높여 반대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제   목 : 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
   지은이 : 박현모
   펴낸곳 : 삼성경제연구소 / 2006.5.12 초판 발행, 2007.4.25일刊 개정판 4쇄를 읽음 (5,000원)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인 박현모가 쓴 <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을 보면 매우 잘 알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세종의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 곧 위민정치에서부터 공적으로 허물을 덮게하고, 마음을 기울여 인재를 등용하여 한 번 믿은 사람을 끝까지 중용한 그만의 지식경영 방식까지, 이 얇은 책 한 권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세종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 대한 굴욕적인 사대외교 역시 당시로서는 가장 실용적인 외교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직 나라의 기틀이 잡히지 않은 조선 초의 상황에서 보자면 매우 일리 있는 평가입니다.

최근 출간된 이한의 <세종, 나는 조선이다>를 함께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세종대왕의 일대기와 주변인들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지만, 세종에게서 배울 만한 핵심을 조목조목 정리한 데에는 <세종의 수성 리더십>이 훨씬 좋습니다. 얇지만 참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세계적 발명품인 훈민정음 창제도 세종의 여러 위업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그 위대함이 아니라, 세종 시기의 수많은 업적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철학, 사고하는 방식과 일 처리 방식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책 읽기'가 아닌 '사람 배움'의 목적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세종 시기에 수많은 업적이 있었지만, 당시 인재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조금 쓸 만하다 싶으면 고려왕조에 대한 단심(丹心)을 버리지 못하고 두문동에 은둔하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숙청되거나 죄를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천출의 구분 없이 젊은 인재를 구했습니다.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모두 중용했습니다.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 또한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중요했습니다.

황희는 세종의 아버지뻘이었습니다. 상왕인 태종 때 사람으로 세종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환갑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권력을 잡은 동안 매관매직을 일삼았고 사위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조서를 변조하고 죄없는 사람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우기도 했습니다. 면직과 파직을 거듭했던, 결코 깨끗하지 않았던 관리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그를 중용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복잡한 사태도 그 핵심을 파악해 간명하게 정리하는 재주가 있었고, 인재를 발굴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신의 손 장영실도 그의 작품입니다. 세종은 그를 끝까지 믿었고, 황희는 이에 청빈한 재상으로서 대업을 보필했습니다. 황희는 세종으로 인해 청백리로 거듭났고, 세종은 황희의 도움으로 동방의 성주(聖主)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종은 '미스터 뚝심'입니다. 이 별명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세종실록>편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한번 마음 먹은 일은 그 끝을 봐야 했습니다. 물론 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를 발굴하고, 그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가를 긴장시켜 가며 일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참을성이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라고 할 때까지 의견을 구한 후에 시행케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정치를 숙의(熟議)의 정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조선왕조 내내 따라다니는 독살설로부터 자유로운 임금이었습니다.

새해 첫 출근 시간이 다가옵니다. 시간에 쫓기어 글을 어설프게 끝내지만,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기약해야겠습니다. 2008년, 세종과 같은 뚝심으로 계획한 바, 모든 것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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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
시바 료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창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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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새벽 2시 경에 자꾸 눈이 떠집니다. 그제는 2시에 일어나 독서유감 500호를 썼었고, 어제 새벽에도 2시에 일어났다가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코감기가 심하니 잠을 좀 더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2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냥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몸이 시키는 대로 놔둬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일어나서 움직일만 하니 눈이 떠졌겠거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습관적으로 '오늘은 무엇에 대해 쓸까?'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시바 료타로의 《미야모토 무사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달 중순경에 《오륜서》에 대해 쓴 다음,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읽었던 책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 책 표지를 보다가 문득 달마가 생각나 책장에서 라즈니쉬의 달마어록 강의집인 《달마(정신세계사,1992)》를 찾았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사시키 고지로와의 마지막 결투 이후 선(禪)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야모토 무사시 → 선(禪) → 달마'라고 연상했나 봅니다. 《달마》를 펴서 중간중간 대충 훑어 보았습니다. 책을 이렇게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큰 부담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띄엄띄엄 읽다가 가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인 구절을 만나기도 합니다. 홀로 깨어있는 새벽의 여유이기도 합니다.  

라즈니쉬의 해설이 마음에 참 와닿습니다. 달마어록은 달마의 제자들이 쓴 것입니다. 스승인 달마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라 달마의 말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서 참다운 달마를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달마 제자들의 논리이지 달마의 생각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심지어 달마어록을 쓴 달마 추종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달마의 추종자는 있을지언정 제2의 달마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달마가 진정 무엇을 깨달았는지 깨닫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이 달마가 깨달은 것과 같은지는 모릅니다. 그는 제2의 달마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일 뿐입니다. 라즈니쉬도 어쩌면 또 한 명의 달마 추종자일지 모릅니다. 그가 설명하는 것 역시 달마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깨달음은 전수가 되지 않습니다.

스승도 없이 홀로 수행했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천성적으로 선 수행에 적합한 체질이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의 검법은 선을 닮았습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법은 후세에 전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니면 구사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로 전해질 수 없는 성질의 검법이었습니다. 마치 선 수행과 같습니다. 스승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깨달음은 자신의 몫입니다. 깨달음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무사시의 후반부 인생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지위를 얻으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녹봉 3천 석이었습니다. 당시 무사시와 같은 로닌(낭인)은 200석 정도 받는 게 일반적이었고 효고노스케와 같이 일급 무사들도 600석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쿠가와 가문의 요시나오가 그 제의를 수락하려 했습니다. 천하제일의 검객이라면 그 정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반대한 사람은 요시나오의 검술 사범인 효고노스케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사시의 검법은 타인에게 가르쳐주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만의 고유한 기(氣)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시나오가 다시 물었습니다.

"좀더 알기 쉽게 소상히 설명해보게."

효고노스케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무사시는 역시 천하제일의 검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검법은 기술적인 면보다는 철학적인 면이 다분합니다. 그가 시합에 강한 이유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정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은 개구리보다 민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뱀에게는 고유의 정기가 있어, 단지 노려보기만 해도 개구리는 풀숲에서 정신을 잃고 꼼짝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뱀은 개구리에게 다가가 삼키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사시는 그 뱀이나 사자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는 만 명 가운데 한 명에게나 있음직한 고유의 정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효고노스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사시의 검법은 남에게 가르쳐주기 어렵다는 겁니다. 무사시가 자신의 검법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시나오는 그제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시사의 검법은 남에게 가르칠 수 없는 거란 말이지 ……."

남에게 가르치지 못하는 검법이라면 높은 녹봉을 주고 검술 사범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요시나오는 결국 무사시를 고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사시가 죽자마자 그의 검법은 니토류, 엔묘류, 무사시류 등의 이름만 남긴 채 명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보건대, 무사시의 검법에는 원래 결함이 있었지만 무사시가 자신만의 고유한 정기로 그 결함을 메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p.237~238)
이 책은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무사시는 아주 흠이 많은 사람이자, 선(禪)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세속적 욕망 또한 강했습니다. 무사시는 관직에 오르고 싶어 했고 결국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가 결국 동굴에서 좌선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인간 미야모토 무사시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편견 없이 알 수 있는 참 좋은 책입니다.

구마모토 외곽의 긴포 산(金峰山) 산중에 있는 레이간도(靈嚴洞) 동굴에서, 속세의 욕망을 다 이루지 못하고, 조용히 앉아 죽음을 맞이하면서 미야모토 무사시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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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명대시야 세트 - 전4권
베이징대학교 중국전통문화연구중심 지음, 장연 외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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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 드릴 책은 <중국문명대시야>입니다. 중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질(전 4권) 정도 소장할 만한 작품입니다. 제가 아직 1권밖에 읽지 못해, 1권을 중심으로 소개 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탄생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1994년 베이징대 국가연구기관인 ‘중국전통문화연구중심(센터)’이 112명의 대표 석학을 초빙해서 4년간 역사, 자연, 생활, 사회, 예술 등 중국문화 각 분야에 대한 원고로 정리하게 했습니다. 이 원고를 바탕으로 중국 국영 CCTV가 150부작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1995년부터 국내외에 방영했습니다. 이후 추가 사진 촬영과 자료 수집을 통해 2,000여개의 도판을 마련했고 5년 간의 작업 끝에 2002년 <中華文明大視野>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게 됐습니다. 한글 번역본 작업도 내용의 방대함 때문에 번역·편집에만 2년을 소요했다고 합니다. 일단 내용을 차치물론해도 이 정도의 정성을 쏟은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책 전체는 염제와 황제로부터 시작하여 근대 5.4운동까지의 방대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1권은 중국의 신화에서부터 한나라 시대까지의 문명입니다. 기본적으로 역사를 다루고, 해당 시기의 인물, 문화, 철학, 지리, 문학 등을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다룬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을 순서 대로 읽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필요할 때 꺼내 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묵혀 뒀다가 꺼내 읽기에는 참 아깝습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순서 대로 읽었는데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5,000년의 방대한 역사를 담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책 4권에 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5,000년 역사 중에서도 중국인들이 생각하기에 꼭 알아야 할 알짜만을 추려 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내용이 방대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본문 문장도 평이해서 결코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만 유독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읽다 보니 남의 나라 얘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아마 중국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우리 역사, 즉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 뿐만 아니라 열두 띠 이야기와 청명, 한식, 설날 풍속 등의 문화를 다룬 부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절기와 풍속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데, 우리에게 들어와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하며 읽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목적을 가지고 중국을 공부합니다. 중국을 알기 위한 방법은 많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문학, 여행기 등 중국에 관련된 책을 보거나 직접 중국을 다녀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 단시간에 가장 포괄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이 책보다 더 유용한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가히 중국에 관한 지상(紙上) 박물관이라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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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1 - 와인의 세계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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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 중에서 오늘 어떤 책을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제1편 《와인의 세계》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아래의 그림 때문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아침부터 속이 울렁거리지 않나요? 맨 왼쪽 아저씨, 얼마나 마셨는지 입으로 토사물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그걸 누워서 얼떨결에 받아 먹고 있다니... 오른쪽 끝 의자에 앉은 아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초점을 잃고 졸고 있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부어라 마셔라 정신이 없습니다. 쓰러진 술병 수는 사람 수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로랜드슨(Rowlandson)의 1798년 그림인데, 설명을 보니 18세기 말 런던의 와인마시기 클럽 회원은 반드시 최소한으로 정해진 병수만큼 와인을 마셔야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술꾼들이 보기에는 지상의 낙원처럼 보일지 몰라도 대개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가 지나쳐보입니다. 얼굴을 보아하니 나이도 지긋하신 분들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지난 주 술들 많이 마셨죠? 혹시 위와 같은 상황까지 가진 않으셨나요? (이런 말을 하는 제 가슴이 뜨끔합니다^^) 연말이라고, 그래도 뿔뿔히 흩어졌던 사람들 한번씩은 만나게 되니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술, 만나서 할 거라곤 밤새 술마시는 것밖에 없으니 송년회 몇 번 하고 나면 몸이 거의 망가질 지경입니다. 이제 겨우 한 주 남았습니다. 모두들 몸 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인류가 탄생하기 훨씬 전인 약 700만 년 전부터 있어 왔다는, 인류 최초의 음료이자



포도 외에는 그 어떤 물질도 첨가하지 않은 가장 순수한 음료라는 와인도



주거니 받거니,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면, 여느 술과 전혀 다를 바 없어집니다. 유럽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와인을 식사 때 물처럼 마셔왔다가 1820년 대에 와인에도 알코올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합니다. 19세기 초까지 식품으로 취급하다가 그 후로 기호품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경에도 나오는 이 '순수한' 음료에 알코올 성분이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니, 지금 시각으로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와인의 세계》에는 와인의 기원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와인 포도의 품종, 양조법 등 와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도 이원복 교수 특유의 지식 전달법으로 방대한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그려놓았습니다. 이 책을 보며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교육 방법이었듯이, 이 책 역시 와인에 대한 새롭고 참신한 소개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만화라고 가볍게 시작했지만, 다 보는 데는 꼬박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텍스트 양도 꽤 많습니다. 그래도 만화인지라 읽기가 매우 수월해서 와인에 대한 그 어떤 소개서보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옵니다.

책을 보면 와인에 대한 상식 뿐만 아니라 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늘어납니다. 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와인과 맥주, 청주, 탁주, 기타 곡주와 과실주를 양조주(釀造酒)라고 합니다. 한자 그대로 풀자면, 빚을 양, 지을 조, '빚어 만든 술'입니다. 코냑과 같은 브랜디, 위스키, 아쿠아비트, 보드카, 소주를 증류주(蒸溜酒)라고 합니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찔 증, 방울져 떨어질 류, '쪄서 방울이 떨어져 만들어진 술'입니다. 양조주에 과즙이나 향료를 첨가하여 만든 술을 혼성주(混成酒)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책은 와인에 대한 그 어떤 책보다 와인을 제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와인을 통해, 와인 그 자체만이 아니라, 관련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구대륙, 특히 프랑스 와인에 대한 지나친 경외의 감정과 빈티지 차트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아주 산산히 깨뜨립니다. 와인을 마실 때 유독 따지게 되는 복잡한 절차에 대해 그 의미를 제대로 소개하면서도 굳이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 또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르고 거부하는 것과 알면서 무시하는 것은 좀 다릅니다. 와인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하고, 그러나 마시는 행위에 얽매이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로랜드슨의 거북한 그림으로 시작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주권 회복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

"비싼 와인이 반드시 좋은 와인은 아니다! 저렴하다고 나쁜 와인도 아니다! 내 입에 맞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다!"
"수백, 수천의 샤토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에 주눅들지 말자! 와인은 단지 우리가 즐기는 알코올음료일 뿐이다!"
"진정으로 와인을 즐기는 것은 와인 주권을 확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주눅들지 않고 와인을 마시는 방법,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와인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음미하는 방법이 이 책 한 권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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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서
미야모토 무사시 지음, 양원곤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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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무언가를 이룬 사람더러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학문이나 예술 분야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야이든지 독자적인 경지나 체계를 이룬 상태를 ‘일가(一家)’라고 합니다. 역사를 보면 일가를 이룬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삶의 지혜와 열정을 배웁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검술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입니다. 평생 60여 회가 넘는 결투를 벌여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전설적인 무사입니다. 그것도 29살이 되기 전에 이룬 성과이며, 그 후로 천하에 적수가 없어 오직 검도를 통한 깨달음을 얻는 데만 몰두하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에 제자에게 불러주어 기록한 것이 《오륜서》입니다.

당시 결투는 생사를 건 싸움이었습니다. 어느 한 쪽이 불구가 되거나 죽어야 끝이 났습니다. 그러니 미야모토 무사시는 전쟁터에서 살상한 수많은 사람을 제외하고도 최소한 개인적으로 60여 명의 목숨을 빼앗거나 불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는 끔찍하리만치 잔인했습니다. 결투에 임해서는 털끝만치의 용서도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배울 게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눈으로 과거를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 많은 무사들이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누구나 허리에 칼을 찼으며 결투를 요청하면 응해야했고 둘 중 하나가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대입니다. 시대 자체가 야만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륜서》에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기술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손자병법》이 전투를 앞둔 군인들에게만 읽히는 게 아니듯이 《오륜서》 또한 눈앞의 사람을 칼로 베기 위해 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중세의 전투 상황과도 같은 현실을 사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 읽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살던 시대에는 전국을 떠돌며 무예 수련을 하는 낭인(방랑무사)이 많았습니다. 말이 ‘사무라이’지 실은 일자리를 잃은 떠돌이 검객이었습니다. 조일전쟁(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가 되자 지방 군벌들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평화의 시대가 되니 많은 수의 사무라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전국을 떠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지방 영주의 눈에 띄면 운 좋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도 처음에는 크게 이름을 얻어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기 위해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습니다. 술도 마시지 않고 아내도 얻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천일 동안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만일 동안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마침내 그는 하늘 아래 겨룰 자가 없는 경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주역을 보면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라는 말이 나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핵심은 ‘궁’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궁’은 ‘곤공하다’는 의미의 궁이 아닙니다. ‘다하다’, ‘궁구하다’는 의미의 ‘궁’입니다. 궁구하다는 말은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게 연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게 연구해야 변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변화가 있은 연후에 ‘통’함이 있고, 그 ‘통’함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말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진실로 ‘궁(窮)’했습니다. 그리하여 천하제일의 검객으로 ‘변(變)’하고 세상의 이치를 ‘통(變)’했으며, 그것을 《오륜서》로 남겨 오늘에 이르기까지 ‘구(久)’하였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일상이 지루하고 지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늘 술자리의 푸념으로만 그치고 일상에 변화가 없습니다. 아직 ‘궁’하지 않은 게 아닐까요?





■  《오륜서》를 읽으며 밑줄 그어 놓았던 부분입니다.
  • 병법의 도에서 말하는 마음가짐이란 곧 평소와 다름 없는 마음이다.
  • 몸을 움직이지 않고 쉬고 있을 때라도 생각은 멈추지 아니하며, 몸을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에도 마음은 평온하게 유지한다.
  • 사물을 보는 눈은 '관(觀)'과 '견(見)'의 두 가지 눈이 있다. '관의 눈'이라 함은 상대방의 생각을 간파하는 마음의 눈을 말하며, '견의 눈'이라 함은 육안으로 상대의 현상을 보는 것을 이른다. 싸울 때는 '관의 눈'을 크게, '견의 눈'을 작게 뜨고서 먼 곳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가까운 곳의 움직임을 통하여 대국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다치(太刀)를 쥐고 싸우든 맨손으로 싸우든 전투에 임해서는 멈칫해서는 안 된다. '멈칫'하는 자세는 죽는 수법이며, '멈칫'하지 않는 것만이 살아남는 수법이다.
  • 겨눔 자세에는 이 다섯 가지밖에 없다. 어느 자세든 자세를 취한다 생각하지 말고 적을 벤다고 생각하라.
  • 이런 까닭으로, 자세는 있되 자세가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우선 다치를 손에 들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적을 베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다. 만약 나를 베려고 달려드는 적의 다치를 받고, 치고, 찌르고, 감아 치고, 스쳐 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적을 벨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받거나 치거나 부딪치거나 또는 달라붙거나 스친다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을 집중하여 적을 벨 수 없는 것이다. 모든 행위는 적을 베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천일 동안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만일 동안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 검술의 진정한 도는 적과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며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 사람을 공격하는 방법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혼란스럽다. 결국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모두 같다. 병법을 아는 사람, 알지 못하는 사람, 여자, 어린이를 다치로 내려치는 방법은 결국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 병법의 길이기 때문에 그 방법은 많지 않다.
  • 다치의 고정된 자세를 최고로 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고정된 자세'는 적이 없을 때에나 적용된다.
  • 무슨 일이든지 능숙한 사람이 하는 행동은 서두른다는 느낌이 없고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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