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1 - 와인의 세계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 중에서 오늘 어떤 책을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제1편 《와인의 세계》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아래의 그림 때문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아침부터 속이 울렁거리지 않나요? 맨 왼쪽 아저씨, 얼마나 마셨는지 입으로 토사물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그걸 누워서 얼떨결에 받아 먹고 있다니... 오른쪽 끝 의자에 앉은 아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초점을 잃고 졸고 있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부어라 마셔라 정신이 없습니다. 쓰러진 술병 수는 사람 수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로랜드슨(Rowlandson)의 1798년 그림인데, 설명을 보니 18세기 말 런던의 와인마시기 클럽 회원은 반드시 최소한으로 정해진 병수만큼 와인을 마셔야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술꾼들이 보기에는 지상의 낙원처럼 보일지 몰라도 대개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가 지나쳐보입니다. 얼굴을 보아하니 나이도 지긋하신 분들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지난 주 술들 많이 마셨죠? 혹시 위와 같은 상황까지 가진 않으셨나요? (이런 말을 하는 제 가슴이 뜨끔합니다^^) 연말이라고, 그래도 뿔뿔히 흩어졌던 사람들 한번씩은 만나게 되니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술, 만나서 할 거라곤 밤새 술마시는 것밖에 없으니 송년회 몇 번 하고 나면 몸이 거의 망가질 지경입니다. 이제 겨우 한 주 남았습니다. 모두들 몸 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인류가 탄생하기 훨씬 전인 약 700만 년 전부터 있어 왔다는, 인류 최초의 음료이자



포도 외에는 그 어떤 물질도 첨가하지 않은 가장 순수한 음료라는 와인도



주거니 받거니,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면, 여느 술과 전혀 다를 바 없어집니다. 유럽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와인을 식사 때 물처럼 마셔왔다가 1820년 대에 와인에도 알코올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합니다. 19세기 초까지 식품으로 취급하다가 그 후로 기호품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경에도 나오는 이 '순수한' 음료에 알코올 성분이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니, 지금 시각으로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와인의 세계》에는 와인의 기원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와인 포도의 품종, 양조법 등 와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도 이원복 교수 특유의 지식 전달법으로 방대한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그려놓았습니다. 이 책을 보며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교육 방법이었듯이, 이 책 역시 와인에 대한 새롭고 참신한 소개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만화라고 가볍게 시작했지만, 다 보는 데는 꼬박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텍스트 양도 꽤 많습니다. 그래도 만화인지라 읽기가 매우 수월해서 와인에 대한 그 어떤 소개서보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옵니다.

책을 보면 와인에 대한 상식 뿐만 아니라 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늘어납니다. 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와인과 맥주, 청주, 탁주, 기타 곡주와 과실주를 양조주(釀造酒)라고 합니다. 한자 그대로 풀자면, 빚을 양, 지을 조, '빚어 만든 술'입니다. 코냑과 같은 브랜디, 위스키, 아쿠아비트, 보드카, 소주를 증류주(蒸溜酒)라고 합니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찔 증, 방울져 떨어질 류, '쪄서 방울이 떨어져 만들어진 술'입니다. 양조주에 과즙이나 향료를 첨가하여 만든 술을 혼성주(混成酒)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책은 와인에 대한 그 어떤 책보다 와인을 제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와인을 통해, 와인 그 자체만이 아니라, 관련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구대륙, 특히 프랑스 와인에 대한 지나친 경외의 감정과 빈티지 차트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아주 산산히 깨뜨립니다. 와인을 마실 때 유독 따지게 되는 복잡한 절차에 대해 그 의미를 제대로 소개하면서도 굳이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 또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르고 거부하는 것과 알면서 무시하는 것은 좀 다릅니다. 와인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하고, 그러나 마시는 행위에 얽매이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로랜드슨의 거북한 그림으로 시작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주권 회복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

"비싼 와인이 반드시 좋은 와인은 아니다! 저렴하다고 나쁜 와인도 아니다! 내 입에 맞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다!"
"수백, 수천의 샤토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에 주눅들지 말자! 와인은 단지 우리가 즐기는 알코올음료일 뿐이다!"
"진정으로 와인을 즐기는 것은 와인 주권을 확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주눅들지 않고 와인을 마시는 방법,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와인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음미하는 방법이 이 책 한 권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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