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무사시
시바 료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창해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요 며칠 새벽 2시 경에 자꾸 눈이 떠집니다. 그제는 2시에 일어나 독서유감 500호를 썼었고, 어제 새벽에도 2시에 일어났다가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코감기가 심하니 잠을 좀 더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2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냥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몸이 시키는 대로 놔둬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일어나서 움직일만 하니 눈이 떠졌겠거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습관적으로 '오늘은 무엇에 대해 쓸까?'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시바 료타로의 《미야모토 무사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달 중순경에 《오륜서》에 대해 쓴 다음,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읽었던 책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 책 표지를 보다가 문득 달마가 생각나 책장에서 라즈니쉬의 달마어록 강의집인 《달마(정신세계사,1992)》를 찾았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사시키 고지로와의 마지막 결투 이후 선(禪)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야모토 무사시 → 선(禪) → 달마'라고 연상했나 봅니다. 《달마》를 펴서 중간중간 대충 훑어 보았습니다. 책을 이렇게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큰 부담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띄엄띄엄 읽다가 가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인 구절을 만나기도 합니다. 홀로 깨어있는 새벽의 여유이기도 합니다.  

라즈니쉬의 해설이 마음에 참 와닿습니다. 달마어록은 달마의 제자들이 쓴 것입니다. 스승인 달마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라 달마의 말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서 참다운 달마를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달마 제자들의 논리이지 달마의 생각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심지어 달마어록을 쓴 달마 추종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달마의 추종자는 있을지언정 제2의 달마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달마가 진정 무엇을 깨달았는지 깨닫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이 달마가 깨달은 것과 같은지는 모릅니다. 그는 제2의 달마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일 뿐입니다. 라즈니쉬도 어쩌면 또 한 명의 달마 추종자일지 모릅니다. 그가 설명하는 것 역시 달마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깨달음은 전수가 되지 않습니다.

스승도 없이 홀로 수행했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천성적으로 선 수행에 적합한 체질이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의 검법은 선을 닮았습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법은 후세에 전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니면 구사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로 전해질 수 없는 성질의 검법이었습니다. 마치 선 수행과 같습니다. 스승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깨달음은 자신의 몫입니다. 깨달음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무사시의 후반부 인생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지위를 얻으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녹봉 3천 석이었습니다. 당시 무사시와 같은 로닌(낭인)은 200석 정도 받는 게 일반적이었고 효고노스케와 같이 일급 무사들도 600석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쿠가와 가문의 요시나오가 그 제의를 수락하려 했습니다. 천하제일의 검객이라면 그 정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반대한 사람은 요시나오의 검술 사범인 효고노스케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사시의 검법은 타인에게 가르쳐주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만의 고유한 기(氣)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시나오가 다시 물었습니다.

"좀더 알기 쉽게 소상히 설명해보게."

효고노스케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무사시는 역시 천하제일의 검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검법은 기술적인 면보다는 철학적인 면이 다분합니다. 그가 시합에 강한 이유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정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은 개구리보다 민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뱀에게는 고유의 정기가 있어, 단지 노려보기만 해도 개구리는 풀숲에서 정신을 잃고 꼼짝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뱀은 개구리에게 다가가 삼키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사시는 그 뱀이나 사자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는 만 명 가운데 한 명에게나 있음직한 고유의 정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효고노스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사시의 검법은 남에게 가르쳐주기 어렵다는 겁니다. 무사시가 자신의 검법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시나오는 그제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시사의 검법은 남에게 가르칠 수 없는 거란 말이지 ……."

남에게 가르치지 못하는 검법이라면 높은 녹봉을 주고 검술 사범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요시나오는 결국 무사시를 고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사시가 죽자마자 그의 검법은 니토류, 엔묘류, 무사시류 등의 이름만 남긴 채 명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보건대, 무사시의 검법에는 원래 결함이 있었지만 무사시가 자신만의 고유한 정기로 그 결함을 메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p.237~238)
이 책은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무사시는 아주 흠이 많은 사람이자, 선(禪)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세속적 욕망 또한 강했습니다. 무사시는 관직에 오르고 싶어 했고 결국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가 결국 동굴에서 좌선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인간 미야모토 무사시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편견 없이 알 수 있는 참 좋은 책입니다.

구마모토 외곽의 긴포 산(金峰山) 산중에 있는 레이간도(靈嚴洞) 동굴에서, 속세의 욕망을 다 이루지 못하고, 조용히 앉아 죽음을 맞이하면서 미야모토 무사시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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