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허겁지겁 지하철로 달려갔다. 용산행 전철의 배차 간격이 긴 것도 문제였지만 되도록이면 앞자리에 앉아서 강의를 듣고 싶어서였다.
공병호 박사의 책을 서너권 봤지만, 그 많은 강연은 한 번도 들어보질 못했다.
이번에 신간(두뇌 가동률을 높여라) 발간 기념 강연회가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잽싸게 신청해서 책까지 덤으로 얻는 행운까지 얻었다. 10,000원 주고 신청해서 9,000원짜리 책을 얻고, 친필 사인까지 받고... 이렇게 껍데기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장소 : 국제센터(신용산역) 2층 대강당
시간 : 19:00~21:00
강사 : 공병호 박사
주제 : 두뇌 가동률을 높여라

강의 시작 전에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 미리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은 그리 두껍지도 않고 한 면에 인쇄된 글자 수도 그렇게 많지 않아 매우 쉽게 읽혔다. 그러나 머리 속에 들어오는 건 별로 없었다. 뭐, 별로 대단한 내용은 아닌듯 싶었다.
이런 나를 미리 예상이나 한듯, 어느 부분에선가 '평범한 진리라도 깨우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 이 말이 눈에 들어온 것도 강연회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였다.

공병호 박사는 두뇌 가동률을 높이는 방법 중 미리 메모해 온 16가지를 언급했다.
책의 내용과 중복되는 면도 있으나, 책에 대한 정리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이 자리에서는 오늘 강연회 내용을 옮겨본다.
물론 이유는 단 한가지, 정리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1. 나의 두뇌(Brain)을 객관적 연구 대상으로 삼자.
    예를 들어 공병호 박사는 PC 위에 호두와 호두 알맹이를 몇 개 올려 놓고 본다고 한다. 그걸 자몽 크기만큼 확대하면 실제 뇌 모양과 비슷하단다. 그러면서 두뇌를 객관화시킨다고 한다.
    두뇌를 객관적 연구 대상으로 삼으라는 말은, 자신의 두뇌를 제대로 가동시키기 위한, 일명 '두뇌 가동 프로젝트'를 착수하라는 뜻이다.
    그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과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리라.
    1) 나는 언제 가장 두뇌가 활발하게 작동하는가?
    2) 나의 두뇌는 어떤 상황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가?
    3) 혼자 있을 때 또는 대화, 미팅 중 언제 잘 작동하는가? 등등...

  2. 무엇보다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영어로 "I Will ~ "
    그런데 이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지''의욕'을 강화시킬 수 있을까?
    공병호 박사는 휴먼 스토리를 읽으면서 의욕과 용기를 얻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오카도 마사유키의 자서전 《목숨 걸고 일한다》는 책을 읽었는데 감명받은 바가 많다고 한다. 그 외에 워렌베니스의 《시대와 리더십》, 메들린 올브라이트의 자서전을 예로 들었다.
    이들 책의 공통점은 모두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는 것이다. 시련 - 단련기가 없이 그들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의욕과 용기가 배가된다고 한다.

  3.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마치 누구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었다고 하듯이, '못이 박힐 만큼' 되뇌일 수 있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 집요한 근성이 있어야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근성이야 말로 어떠한 일을 자신의 방식대로 처리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집요한 근성의 결과는 어떤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만든다. 그 때 두뇌도 활발하게 작동한다.

  5. 두뇌는 훈련을 통해 성장한다.
    이것은 공병호 박사가 가장 강조한 말이다. 강연 후에 질문 시간에 누가 "오늘 설명한 여러 가지 중 단 하나만 꼽으라면 어떤 것을 추천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박사는 이 항목을 지목했다.
    공병호 박사의 오늘 이 90분짜리 강의 역시 오늘 아침 메모의 결과가 아니라 17년 간의 경험의 결과라는 것이다. 많이 읽고 쓰고... 그러는 과정에서 두뇌에 도로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6.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경험을 쌓아라. 그리하여 경험적 지식을 확대하라.
    30, 40대에 편하게 사는 것은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한다.
    여담으로 공 박사가 실수 또는 후회하는 3가지는, 운동권을 해보지 못한 것, 고시를 해보지 못한 것, 대학 교수를 해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강연 도중, 이 부분을 적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적어 놓았다 ^^)

  7. 창조는 다양한 정보의 조합에서 나온다.
    앞에서 말한 경험과도 일맥상통한다.
    풍부한 정보가 입력된 가운데 시장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비즈니스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
    많이 입력되지 않은 상태에서 창조라는 것은 없다.
    자신이 하고 있는 분야, 업계의 모든 정보를 습득하라. 그리고 조합하라.

  8. 가능하면 오래오래 현역으로 뛰어라.
    즉 자신의 두뇌와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다.
    역시 여담인데, 공 박사는 현재의 공 박사가 있게 된 것이, 스스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남들이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듯이 상대적이니까...

  9. 자신만의 방법으로 트레이닝하라.
    공 박사는 스스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예로 들었다.
    1)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노트북에 정리한다.
    2) 생각이나 어떤 주제를 스케치하면서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려 한다.
    3) 읽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의 현안 과제와 계속 연결한다.
    4) 사물을 골똘히 바라보며, 사물과 현안 과제를 연결한다.
    5) 새로운 자극에 자신을 노출한다.
    6) 특정 직업 분야에 Side Project를 해본다.

  10. 항상 미래를 생각하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공 박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3가지 주문 또는 질문을 한다고 한다.
    1) 10년 앞을 내다본다.
    2) 인생은 내가 만든다.
    3) 당대에 반드시 입신한다.
    멋지지 않은가! 당대에 반드시 입신한다.

  11. 구체적인 이익을 체험하라.
    목표가 선언적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공 박사의 경우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정리한 것이 결국 상품화되기 때문에 더욱 아이디어를 많이 찾게 된다는 것이다.

  12. 두뇌의 단위 시간당 생산성에 주목하라.
    언제 어느 순간에 두뇌가 가장 잘 돌아가는지 찾아라.
    필요하다면 자신을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보라.
    예를 들어 새벽형 인간되기, 달라기 하기, 주말 플래닝하기 등.
    달리기는 신체적인 효용 뿐만 아니라 결단력과 추진력을 증진시키는 대단한 기능을 한다.

  13. 데드라인을 생활화하라.
    시간을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일을 하면 두뇌는 폭발적으로 가동한다.
    공 박사는 일요일에 7~10 편의 원고를 쓴다. 원고를 마감할 시간을 정해놓고 집중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14. 핸드폰과 메신저를 현명하게 사용하라.
    지식 근로자에게는 연속적인 시간의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중간 중간 Stop과 Go가 반복되면 두뇌의 피로도만 증가한다.
    공 박사의 경우 요즘 전화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업무 집중도나 효율이 매우 높아졌다고 한다.

  15. 두뇌는 늘 고객에게 조준하라.
    고객이 무엇을 원할까, 고객에게 무엇을 제공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라.
    비즈니스는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16. 두뇌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라.
    그것이 술이라면 술을 피하고...

강연이 끝나고 몇 사람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 중에 공 박사의 평균적인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 있었다.
이미 몇 권의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밤 10시 전후로 해서 잠이 들고 새벽 3시경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강의가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집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어지간히 자기 절제가 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강연회 내용을 옮기면서 특별하게 나의 느낌은 옮기지 않았다.

평범한 진리라도 깨우치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는 법이다.
위의 내용에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게 있는가?
실천만 남았을 뿐이다.

*
저녁도 거르고 급히 갔던 터라 돌아오는 길에 배가 출출하여 집 앞 포장마차에서 국수 하나 말아먹었다.
웬지 모를 자신감에 돌아오는 발길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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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길에 지하철에서 어떤 책을 보다가 '흙 속의 진주'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 책의 주제와는 크게 연관이 없는 그 한 문장을 가지고 갑자기 머리가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머리 속에는 '흙 속의 진주가 과연 진주인가?'라는 엉뚱한 질문으로부터 파생된 온갖 잡다한 생각들로 혼란스러웠다.

흙 속의 진주가 과연 진주인가?

유물론 관점에서 보자면 흙 속의 진주든 물 속의 진주든, 진주는 진주다.
유물론에서 말하는 '물질'이란 인간의 의식 바깥에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다. 즉 객관적·실재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진주가 어디에 있든 진주는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면 진주가 맞다.

그럼 관념론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가?(객관적 관념론인지 주관적 관념론인지 너무 자세한 건 따지지 말자) 흙 속의 진주는 진주라 하기 어렵다.
보는 사람에 따라 흙 속의 진주가 진주일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치론적으로 보자면 흙 속의 진주는 관념론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흙 속의 진주는 진주로서 가치가 없다. (그래서 진주가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돼지에 진주 목걸이'라는 속담을 보면 진주라는 말이 단순히 조개의 분비물 덩어리라는 객관적 실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식론적으로 보자면 또 어떤가... 인식론에는 가치의 개입이 원천봉쇄된다. 그러므로 진주가 진주인지 아닌지 그것만 중요할 뿐, 진주로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관심 밖이다. 따라서 흙 속의 진주가 정말 "조개류 특히 판새류 조개의 체내에서 형성되는 구슬 모양의 분비물 덩어리로서 주로,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지는데,약간의 유기물이 함유되며 아름다운 빛깔의 광택이 나는 물체"인지 아닌지만 따지면 된다. 그게 맞다면 흙 속의 진주는 진주이고, 아니라면 진주 모양의 다른 어떤 것이 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흙 속의 진주가 왜 나를 갑자기 혼란스럽게 만들고,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철학 사전에서 잠자고 있던 개념들을 끄집어 내도록 만든단 말인가...

아마 퇴근 길에 술 한잔 마신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이제 곧 퇴사를 앞둔 두 사람(그 속에 나도 포함된다)이 술 한잔 하면서 주고 받았던 말들이 떠올라서 그랬었나 보다.
흙 속의 진주가 과연 진주인가? - 이것이 원래 물음은 아니었다.
아까 책 속의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과연 흙 속의 진주인가?" -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그런데 술 한잔 하고 오는 길이라, 애초의 그 질문은 온 데 간 데 없고 '흙 속의 진주가 진주인가'라는 이상한 물음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부터 내가 대학 시절 공부했던 철학 지식을 모두 끄집어 내면서까지 겨우겨우 스스로의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나는 과연 흙 속의 진주인가?"

이 부분에서 나는 자신있게 말해야 한다.
나는 진주가 맞다. 내가 진주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자신감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흙 속의 진주는 결코 진주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실재하지만 아무런 가치가 없다.
흙 속의 진주는 그것이 진주이든, 아니면 지나가던 물고기의 배설물이든 하등의 다를 바가 없다.
진주가 진주이기 위해서는 흙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주임을 아는 사람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막상 자세히 보니 진주더라. 그래서 진주는 眞珠다. 진짜 구슬이다. 진주에는 '진짜'라는 가치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서를 옮기거나 회사를 옮기는 것도, 그 결정적인 이유는 항상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꾸만 쌓여가는 내 주위의 흙을 걷어내고 싶어서였다.

흙 속의 진주는 조개의 딱딱한 배설물 덩어리일 뿐이다.
진주는 진주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비록 보다 값비싼 보석 바로 옆자리라도 말이다.

*
한없이 겸손해져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진주라고 하다니.(쑥스~)
오해하지 마시라, 어디까지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 뿐이다.
칸트의 친구가 와서 '이율배반'이라고 놀려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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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아버지 학교 운동본부(www.father.or.kr)에서 주최하는 아버지 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어느 팀장으로부터 들었는데, 자의반 타의반(첨엔 거의 타의^^)으로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네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도 언뜻 들었는데 참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이트를 통해 자세한 프로그램 내용을 보니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 참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만 빼면 저도 꼭 참가하고 싶기도 한데...

아버지 학교에서는 크게 4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비기독교인인 저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주제가 두 개 있습니다.

먼저, 아버지의 4대 기능이라는 겁니다.
아버지의 4대 기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1. 결속하기
자녀들을 한 인격체로 성장시키며, 전체 가족 구성원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기능

2. 사랑하기
자녀들을 수용하며, 인정하며, 세워주는 기능

3. 인도하기
자녀들의 삶을 통해서 올바른 길을 가도록 지도하는 기능

4. 파송하기
자녀에게 능력을 부가해서 자녀 스스로 독립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기능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아버지가 할 일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만은 이렇게 크게 4개로 정리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외워야겠습니다.

결속! 사랑! 인도! 파송!

그리고 아버지의 4대 사명도 있습니다.

1. 자녀의 원천
아버지는 자녀들의 정신적, 물질적, 영적 원천

2. 자녀의 지표
아버지는 자녀의 나아갈 바를 보여주는 푯대

3. 자녀의 자부심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자녀의 마음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4. 자녀의 미래의 보장
아버지는 신앙의 유산을 통해서 자녀의 미래를 보장한다.

신앙이 없는 저는 4의 항목에서 '신앙의 유산' 대신 다른 것을 넣어야겠네요.
"아버지는 자녀에게 제대로 된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자녀의 미래를 보장한다."

이렇게 아버지의 4대 기능과 4대 사명을 크게 써서 책상 앞에 붙여 놓아야겠습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결국 한 가정의 가장, 아내의 남편, 부모의 자식으로서 제 역할을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리라 봅니다.

    "동주야,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네가 본받을만한 아버지,
    네가 나를 생각할 때마다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아버지가 되도록 더욱더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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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급한 일이 생겨 주말 내내 집에서 동주와 함께 있었다.
평소에 자주 못보니 응당 주말만큼은 딸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온종일 딸의 입장에서 전적으로 놀아 주기는 참 힘들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늘 책 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그럴듯한 핑계로 가급적 책을 손에 쥐고 있으나, 참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이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단 몇 분만이라도 가만히 두려하지 않는다. 책에 줄을 긋기 위해 들고 있는 사인펜 뚜껑을 끼웠다 뺐다 반복하다가 이내 내 무릎 위에 앉아 책 읽는 것을 공격적으로 방해한다. 그러면 나도 더는 책을 보지 못하고 아이와 함께 놀아줄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하루 종일 반복된다.
시간은 많이 갔으나 정작 책은 몇 페이지 못 읽게 된다. 또한 아이를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진다. 책은 책대로 못 보고, 아이에게도 아빠 노릇 제대로 하지 못한 하루가 되고 만다.
어제는 내가 잠깐 눈을 파는 사이에 소파에서 떨어져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아이는 엉엉 울고, 나는 왜 그때 한눈을 팔고 있었을까 자책하며 아이를 얼른 안아 달래주었다. 아이를 안고 달래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은 계속되었다.

사태가 이러하니, 아이가 주말에 나와 함께 책을 읽을 정도로 후딱 컸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러나 아이가 큰다고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 주말 내내 책이나 보고 있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부터 훈련을 해야하나... 아직 말도 배우지 못한 아이를 앞에 두고 이런 얼토당토 않은 상상을 하게 된다.

아내는 나보다 더 심하다. 벌써부터 어떤 학교를 보내야할지 고민하는가 하면, 누구에게 시집보낼까 걱정하기도 한다. '동주가 아이를 낳으면 내가 꼭 키워줘야지' '동주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도록 해야지'하며 몇 십년 뒤의 일을 생각한다. 나는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찬다.

동주가 우리 곁으로 온 지 이제 만 2년이 좀 지났다.
동주를 빼고는 나와 내 가족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을만큼 동주는 우리 가족 생활 아주 깊숙한 곳까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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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 선배의 글입니다.
몇 일 전에도 만나 술 한잔 했지만, 일 때문에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개운해지질 않습니다.
만난 지 12년, 함께 산 지 6년만에 결혼식을 올린 아름다운 사연입니다.

참, 이 내용은 인터넷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해당 기사 바로가기



지난 8일 드디어 우리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다. 대개의 경우 결혼식을 올린 후 부부가 되지만 우린 그 순서를 뒤바꾼 셈이다. 만난 지 12년, 같이 산 지 6년 만이었다. 그 사이 딸아이 둘이 태어났고 스물둘 꽃다운 나이였던 아내는 30대 중반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난 10여년간 우린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안타까운 건 그것들 대부분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는 것. 원인은 늘 내 쪽에 있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돼서도 여전히 생활인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글쟁이 꿈에만 흠뻑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연속되는 고통으로 우린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않을 만큼 내성을 쌓았다고 자부하며 버텨왔다. 그러나 그 내성은 결혼식을 앞둔 두달 동안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6년씩이나 같이 살아 온 우리지만 막상 결혼식을 앞두고는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며 다투곤 했다. 결혼식을 앞둔 짝 대부분이 다투기 마련이라는 세간의 속설에서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갈등의 원인이야 말할 것도 없이 돈이었다. 제아무리 간소하게 하려 해도 늘어나는 결혼식 비용을 감당하기는 버겁기만 했다. 하필 그즈음 TV에서는 올 가을 결혼비용이 평균 9천여만원에 이른다는 뉴스가 나와 우리의 열패감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물론 우리와는 상관없는 얘기라며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당혹스러움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9천만원은커녕 단돈 몇백도 없이 '설마 적자야 보겠냐'는 배짱으로 덤벼든 우리의 결혼식은 그야말로 친지분들과 주위 분들의 이해심을 믿고 대부분 인사치레를 생략하는 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의례를 생략한 채 준비해 온 결혼식이었지만 거기에도 의외의 암초는 있었다. 결혼식 준비 내내 혹시 내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염려하며 매사 내 의견을 존중하던 아내였다. 그러나 한가지 아내가 고집한 것이 있었다. 아내는 난데없이 신혼여행만큼은 해외로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이없게도 난 그제서야 아내 역시 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가 무작정 고집만 피운 건 아니었다. 아내는 글쟁이인 내가 조금만 신경쓰면 해외신혼여행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연유인즉, KBS 제2라디오의 <유열의 음악앨범>에 결혼 사연을 써보내면 심사 후 두 쌍에게 프랑스 신혼여행 티켓을 주는 행사가 있다는 것. 출근길 차안에서 우연히 라디오를 들은 아내는 마치 신혼여행 문제가 다 해결되기라도 한양 호들갑을 떨며 내게 전화를 했다.

행사 마감까지는 1주일 남아 있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그날밤 KBS 홈페이지를 뒤져 작년도 행사의 당선작(사연)도 읽어보고, 이미 올라와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사연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내심 나 또한 파리여행의 환상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난 마감날이 되도록 원고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

아내는 내게 실망한 눈치였다. 평소 쓸데없는 글은 자주 쓰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왜 글을 쓰지 않느냐는 게 아내의 생각인 듯했다. 며칠후 아내는 스스로 아쉬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같은 방송의 일반 사연란에 '편안한 결혼'이라는 단상을 올려 그 내용이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진행자 유열씨의 음성으로 소개된 아내의 결혼단상은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순간 아내의 소망을 외면한 나의 비겁함이 후회되기도 했다. 사연 소개 뒤 아내는 신청곡으로 연애시절 자신이 녹음해 내게 선물했던 '뷰티플 걸'을 신청했고, 덤으로 청소기를 선물로 받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것은 어쩜 나에 대한 무언의 항의였을지 모른다.

'글쟁이 아닌 나도 글 올려서 채택되는데 당신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그날 나는 아내에게 차분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

"난 어쨌거나 직업이 글쟁인데 나 같은 사람이 그런데 글을 올리는 건 일반 청취자에 대한 실례야. 채택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약 채택된다면 두고두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야.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거고 말야. 날 좀 이해해줘."

마침 입동(立冬)이기도 했던 결혼식 날 하루종일 겨울을 재촉하는 듯한 비가 내렸다. 조촐하게 결혼식을 마친 우리는 수원까지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온 친구, 후배들과 함께 밤늦도록 피로연을 했다. 다음날 우리는 늙으신 어머님, 두 딸아이와 함께 신혼여행 겸 가족여행을 떠났다.

절정에 이른 내장산의 단풍은 겨울을 재촉하며 연이틀째 내리는 빗물에 젖어 조용히 땅위에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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