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제 선배의 글입니다.
몇 일 전에도 만나 술 한잔 했지만, 일 때문에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개운해지질 않습니다.
만난 지 12년, 함께 산 지 6년만에 결혼식을 올린 아름다운 사연입니다.
참, 이 내용은 인터넷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해당 기사 바로가기

지난 8일 드디어 우리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다. 대개의 경우 결혼식을 올린 후 부부가 되지만 우린 그 순서를 뒤바꾼 셈이다. 만난 지 12년, 같이 산 지 6년 만이었다. 그 사이 딸아이 둘이 태어났고 스물둘 꽃다운 나이였던 아내는 30대 중반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난 10여년간 우린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안타까운 건 그것들 대부분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는 것. 원인은 늘 내 쪽에 있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돼서도 여전히 생활인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글쟁이 꿈에만 흠뻑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연속되는 고통으로 우린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않을 만큼 내성을 쌓았다고 자부하며 버텨왔다. 그러나 그 내성은 결혼식을 앞둔 두달 동안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6년씩이나 같이 살아 온 우리지만 막상 결혼식을 앞두고는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며 다투곤 했다. 결혼식을 앞둔 짝 대부분이 다투기 마련이라는 세간의 속설에서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갈등의 원인이야 말할 것도 없이 돈이었다. 제아무리 간소하게 하려 해도 늘어나는 결혼식 비용을 감당하기는 버겁기만 했다. 하필 그즈음 TV에서는 올 가을 결혼비용이 평균 9천여만원에 이른다는 뉴스가 나와 우리의 열패감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물론 우리와는 상관없는 얘기라며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당혹스러움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9천만원은커녕 단돈 몇백도 없이 '설마 적자야 보겠냐'는 배짱으로 덤벼든 우리의 결혼식은 그야말로 친지분들과 주위 분들의 이해심을 믿고 대부분 인사치레를 생략하는 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의례를 생략한 채 준비해 온 결혼식이었지만 거기에도 의외의 암초는 있었다. 결혼식 준비 내내 혹시 내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염려하며 매사 내 의견을 존중하던 아내였다. 그러나 한가지 아내가 고집한 것이 있었다. 아내는 난데없이 신혼여행만큼은 해외로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이없게도 난 그제서야 아내 역시 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가 무작정 고집만 피운 건 아니었다. 아내는 글쟁이인 내가 조금만 신경쓰면 해외신혼여행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연유인즉, KBS 제2라디오의 <유열의 음악앨범>에 결혼 사연을 써보내면 심사 후 두 쌍에게 프랑스 신혼여행 티켓을 주는 행사가 있다는 것. 출근길 차안에서 우연히 라디오를 들은 아내는 마치 신혼여행 문제가 다 해결되기라도 한양 호들갑을 떨며 내게 전화를 했다.
행사 마감까지는 1주일 남아 있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그날밤 KBS 홈페이지를 뒤져 작년도 행사의 당선작(사연)도 읽어보고, 이미 올라와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사연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내심 나 또한 파리여행의 환상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난 마감날이 되도록 원고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
아내는 내게 실망한 눈치였다. 평소 쓸데없는 글은 자주 쓰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왜 글을 쓰지 않느냐는 게 아내의 생각인 듯했다. 며칠후 아내는 스스로 아쉬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같은 방송의 일반 사연란에 '편안한 결혼'이라는 단상을 올려 그 내용이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진행자 유열씨의 음성으로 소개된 아내의 결혼단상은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순간 아내의 소망을 외면한 나의 비겁함이 후회되기도 했다. 사연 소개 뒤 아내는 신청곡으로 연애시절 자신이 녹음해 내게 선물했던 '뷰티플 걸'을 신청했고, 덤으로 청소기를 선물로 받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것은 어쩜 나에 대한 무언의 항의였을지 모른다.
'글쟁이 아닌 나도 글 올려서 채택되는데 당신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그날 나는 아내에게 차분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
"난 어쨌거나 직업이 글쟁인데 나 같은 사람이 그런데 글을 올리는 건 일반 청취자에 대한 실례야. 채택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약 채택된다면 두고두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야.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거고 말야. 날 좀 이해해줘."
마침 입동(立冬)이기도 했던 결혼식 날 하루종일 겨울을 재촉하는 듯한 비가 내렸다. 조촐하게 결혼식을 마친 우리는 수원까지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온 친구, 후배들과 함께 밤늦도록 피로연을 했다. 다음날 우리는 늙으신 어머님, 두 딸아이와 함께 신혼여행 겸 가족여행을 떠났다.
절정에 이른 내장산의 단풍은 겨울을 재촉하며 연이틀째 내리는 빗물에 젖어 조용히 땅위에 내려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