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으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1.
1인 2표제의 실현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한 표의 여유가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투표가 끝났으니 저의 투표 용지를 공개하죠.
한 표는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 또 한 표는 민주노동당에 힘을 보탰습니다.
제가 행사한 투표가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김희선 의원은 당선되었고,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2명을 포함해 전체 10석의 쾌거를 올렸습니다. 말 그대로의 '진보정당'이, 그것도 두 자리 수로 원내 진출에 성공하였습니다.
2.
그러나 지역주의의 벽은 결국 넘지 못했습니다.
국민은 탄핵의 부당성과 반국민적 행태에 대해 심판을 했지만, 갑자기 상승된 지역주의의 바람 또한 막지 못하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지킴이를 자처한 여당은 턱걸이 과반의 의석을 획득했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개혁 정치는 지속하되 결코 자만하지 말라는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3.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합니다.
보수의 탈을 쓴 수구로 인해,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이념과 정책 대결이 다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구는 보수로, 보수는 진보로, 진보는 급진 세력으로 인식될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4.
이번 선거는 마치 기업 이미지 캠페인과도 같은 이미지 정치, 감성 정치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지만, 마케팅 차원에서 분석하자면 결국 '차별화'만이 유효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한나라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에 대한 과거의 '향수' 전략이 크게 성공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개헌 저지선(개헌은 그들이 한다고 했습니다)'을 초과하는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탄핵 심판과 '대통령 지키기' 전략으로 일관했습니다. 당 내에서는 보다 진보적인 정책 대결로 가자는 의견도 있었느나, 네커티브 캠페인으로까지 비쳐질 정도로 그들은 '대통령 지키기'라는 하나의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유일한 진보 정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습니다. 투표 성향 분석을 보면 나타나듯이, 열린우리당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민단체에서 분석한 정당 정책 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았듯이, 그들은 사안별 정책 대결로 진보적 요구를 반영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민주당은 지역주의에 기대어 겨우 몇 석을 건지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정체는... 며느리도 모릅니다.
자민련은 대한민국 코미디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가끔 가다가 남의 장기판에 훈수를 두는 시골 노인정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김종필의 10선을 위해 비례대표 1번에 자신을 배정한 웃기지 않는 쇼를 보여주었습니다.
5.
대통령 지키기에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질적 변화를 기대합니다.
태생적 원죄를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은, 부자가 망해도 삼대가 간다는 교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못된 부자의 이미지를 벗어야겠으나,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막는다는 것을 제발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들은 '개헌을 저지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영남 지방의 향수병과 경제적 불안정이 빚어낸 왜곡된 민심의 표현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