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았다
어제 아이들이 얼음을 깨던 그 계곡에 다녀왔어. 아이들은 다시 얼음 깨기를 하고 싶어 계곡을 따라 올랐지만 얼음은 어디에도 없었어. 저 물 속에 있을까? 녹아서 벌써 저 아래로 흘러갔을까? 풀잎에 앉은 이슬을 하나하나 닦지 않아도 해가 뜨면 일시에 다 사라지듯 봄이 온다고 얼음은 이슬처럼 다 사라지고 없어.
날씨가 무척 따뜻해서 모두 외투를 벗었어. 마치 여름처럼 아이들은 바지를 걷고 물에 들어갔어. 아이들은 비치볼을 들고 와서 물에서 공받기 놀이를 했어. 발이 빨갛게 차가워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지. 아직 산엔 꽃도 없는데 봄이 먼저 온 듯이 한참을 계곡에 있었어.
애들이 정말 잘 놀아서 시골집에 가서 뜨거운 물과 컵라면을 들고 와 거기서 먹었어. 그런 곳에서 먹는 건 다 꿀맛이지. 나도 계곡에 늘어지게 앉아서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물소리와 아이들 웃음을 잔뜩 먹었어.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어제 먹은 웃음으로 배부를 줄 알았더니 어제 먹은 것은 어제 먹은 것이요, 오늘은 다시 배가 고픈 건지. 아침에 아이에게 얼굴을 찌푸렸어. 그래, 나는 화날 만해. 화낼 만하다고, 걸레질을 하며 나를 합리화했지만 아무래도 몸이 피곤해서 짜증이 더 묻어난 것 같아 후회했어. 사과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인데 아이는 어제 찔린 가시를 아직 못 뺐다고 끙끙. 둘이 머리를 맞대고 가시 뽑는 데 집중했더니 하던 생각 다 잊고, 뽑았다! 기쁨에 다시 알콩달콩.
이번 주가 아이들 방학 마지막 주야. 분노와 기쁨이 혼재된 이 어지러운 생활이 끝나긴 끝나겠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듯, 아이들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커 가겠지. 내가 계절에 맞춰 옷을 입고, 날씨에 맞춰 일정을 잡듯 아이들이 자라는 계절에 잘 적응하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어. 우선 오는 봄부터 잘 맞이해야지.
봄
_오규원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집 개의 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 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