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닫히고

 

 

해가 지고 있어. 문 닫기 전 도서관에서 흐르는 음악처럼 노을을 먼저 울리며 낮의 문이 닫히고 있어. 어두워지기 전엔 사물이 더 진하게 보여. 나뭇가지를 봐. 더 검고 뚜렷해. 조금 더 어두워지면 나무는 나무의 시간을 가지겠지.

 

하루 종일 공을 쫓던 아이들은 저녁이 너무 빨리 왔다고 투덜거리고, 반찬거리를 걱정하는 사람과 퇴근길 정체를 염려하는 사람이 모여 앉아 뉴스를 보겠지. 뉴스 속에는 낮이 끝나지 않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성대겠지.

 

밤은 조급하지 않아. 느릿느릿 거대한 그림자처럼 와. 일은 끝났고, 식사도 마쳤으니까. 잠들 수 없는 사람만이 실핏줄 터진 눈을 껌뻑일 뿐 모두들 어둠을 덮고 하루를 마치겠지. 기슭아, 어둠 속에서 더 잘 보이는 게 뭔지 알아? 자기 자신이야. 어둠 속에서는 숨을 곳이 없어. 자기 스스로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휴대폰과 책 속으로 빛을 찾아 헤매겠지.

 

압력밥솥이 칙칙 소리를 내고 있어. 노을 음악은 끝나고 이제 정말 저녁이야. 곧 저녁은 저 녘으로 가고 밤이 오겠지. 나날이 오던 대로, 그러나 늘 똑같지는 않게. 

 

 

 

 

하루

_장하빈

 

 

 

 

밥숟가락 들었다 놓는 사이

하루가 지나갔다

하얗게 피어난 밥 한 공기

시래깃국 말아 후루룩 넘기는

아침상 물리자마자

쪽문으로 들어온 이웃집 멍멍이

개똥 차반 차려놓고 가는

따뜻한 저녁 맞는다

식탁 귀에 놓인 앉은뱅이달력

당기면 하루가 오고

밀치면 하루가 갔다

허공의 까치밥 쳐다보는 사이

한 생이 지나갔다

 

-장하빈, 까치 낙관(시학,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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