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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풀밭 걷는사람 시인선 135
변영현 지음 / 걷는사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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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하게 된다.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잦아드는 파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살면서 이 시집 하나 지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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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풀밭 걷는사람 시인선 135
변영현 지음 / 걷는사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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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라 살으라고 하지 않는다. 죽겠다 죽으라고 하지 않는다. 호흡하게 된다.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잦아드는 파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살면서 이 시집 하나 지니고 싶다.

새가 되면 좋을까, 너는 묻고
새들에게는 새들의 고난이 있을 거라고
나는 말하고 만다 그렇게 말하지 말걸
금세 후회했지만

<나무 아래 벤치> 부분 - P44

시인의 말

오르골 가게엔 오르골이 있습니다

저마다의 음악이 다 가냘파서
투명한 슬픔이 내릴 것 같은데

태엽 소리를 감추고

회전목마는 오르락내리락
기차는 칙칙폭폭 달려갑니다

신랑 신부는 얼마나 오래 키스하고
무희는 몇 번을 더 회전할까요?

동그라미 동그라미로 도는
부질없는 아름다움이 더없이 명랑합니다


2025년 가을
변영현

숙소에서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
산 정상이 하얗게 덮여 있다

아무도 모르게 살짝살짝
녹았다 얼었는지 모르지만
눈의 이름은 만년설

테라스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바람이 불고

짜이를 삼킬 때마다
평온, 이라는 말이 혀끝에 맴돈다

눈부신 눈 속에 어떤 시체가
눈을 부릅뜨고 누웠다 해도

멀어서, 아득히 멀어서
따스한
만년 평온

<티타임> 전문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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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21.여름
계간문예(월간지) 편집부 지음 / 계간문예(잡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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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아이들과 제주도에 갔었다. 그때 눈이 참 많이 왔었다. 이래적인 폭설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쌓인 눈을 흰 부리로 쪼아 먹고 있는 까마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그 발걸음이 숙소 근처에 있는 절물 휴양림까지 이어졌는데 숲 전체가 눈으로 덮힌 삼나무 숲에 까마귀가 또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장면이 무척 신비롭게 느껴졌는데, <까마귀 숲>이라는 시에서 그 장면이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까마귀 숲

변영현


캄캄한 삼나무 숲은 묘지 같다.

까마귀들이 겁도 없이 옆을 스친다. 이 많은 까마귀는 어디서 왔은까? 지난 봄 알들이 열매처럼 나무에 맺혀 있었던 걸까? 알은 제가 검은 새가 될 줄 알았을까? 깨어나 얼마나 놀랐을까? 까악!

울음을 감춘 사람처럼
검은 외투를 입고 숲의 입구에 섰다
눈이 내리고 눈은 내리고. 폭설이에요, 더는 들어가지 말라는 관리인의 말에 멈춘다. 까마귀는 까악 까악 오는 눈을 다 맞아도 까맣고, 손바닥에 내린 몇 송이 눈도 흰빛을 피해 스러지는데

봄이 오면 맺힐 알들 쏟아진다.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잎은 초록빛을 반사해 초록이 되고 그렇게 밀어내는 힘으로 무성해지지. 그러면 까악 까악 까마귀는 어떤 빛도 내뱉지 않는 걸까? 모든 빛을 담아둔 검은 상자. 그리하여 아무것도 아닌 죽음이 새의 몸 속에서 그렇게 다시 버무려진다면

눈은 왜 하얗게 쏟아지는지
나는 왜 하얀 김을 하악하악 뱉어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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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잠꼬대 시와반시 기획시인선 19
장하빈 지음 / 시와반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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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은유의 시. 다 읽고나면 허공을 떠도는 글귀들이 내게 달라붙어 달빛가루처럼 반짝거립니다. 오래도록 붙어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먼 들판에서 마당귀에서 마루밑에서 내내 그리울 겁니다.



네가 봄이었으면 참 좋겠어

봄은 말이야
보고 싶은 이에게 꽃을 물고 오거든 - P11

달빛 소나타

달빛은 나의 악보
그림자는 나의 악기

나는 그림자 밟으며
달빛을 연주한다 - P38

별리

봄에는 먼 들판에서 울고
여름엔 마당귀에서 울고
가을엔 마루 밑에서 울고
겨울엔 가슴속에서 운다
귀뚜르귀뚜르
천지간에 울음만 수놓고 간 솔아

- P40

산문

어제는 마음이 소란해서 산문에 들고
오늘은 춥고 배고파서 산문을 나섰다
내일은 적막 그리워 산문을 서성일까 - P56

질라래비 훨훨

꽃 본 나비 담 넘어가랴
물 본 기러기 산 넘어가랴

그대 숨기척 못내 그리워
어제는 꽃밭을 맴돌고
오늘은 물가를 맴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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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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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편안하고 차갑지 않은 목소리

영원에 가까운 목소리

목에 석류알처럼 붉은 테를 두른 예쁜 고둥이 내는 목소리

스무 살 내가 처음 바닷가에 갔을 때 들리던 목소리

아득한 바람개비 같은 목소리

수수깡 부러뜨리는 소리 같은 목소리

길고양이 내게오는 발소리 같은 목소리

모서리 동그랗게 오리는 공작가위질같은 목소리

사랑하고픈 목소리 

아름답고도 슬픈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

닮고 싶은 목소리

세월의 바람개비



바람개비 든 손, 앞으로 쭉 뻗고
운동장을 달렸네
동네 골목을 달렸네
배경은 아무래도 좋았지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바람개비
파르르르, 파르르르, 잘도 돌았지
야무진 바람개비 내 심장
벅찬 바람으로 파들거리고
웃음이 절로 터졌지!

서녁



이루고, 무너지고, 복구하고
만들고, 먹고, 싸고, 또 만들고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망각하고
다시 만들고, 먹고, 싸고

하루 햇빛이 일제히 돌아가느라
몰려 있는 하늘

묽어지는 나


이상하다
거품이 일지 않는다

어제는 팔팔했는데
괜히 기진맥진한 오늘의 나
거품이, 거품이 일지 않는다

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진돼버리는
생의 비누의 거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영혼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아무 힘이 없어
그러니까 그런거지

엄마도 죽고 아빠도 죽은
고아들이
고달프고 고독하게
살다가 죽기 일쑤인 거지
없어,
없어,
없어,
죽은 다음에 영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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