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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21.여름
계간문예(월간지) 편집부 지음 / 계간문예(잡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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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아이들과 제주도에 갔었다. 그때 눈이 참 많이 왔었다. 이래적인 폭설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쌓인 눈을 흰 부리로 쪼아 먹고 있는 까마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그 발걸음이 숙소 근처에 있는 절물 휴양림까지 이어졌는데 숲 전체가 눈으로 덮힌 삼나무 숲에 까마귀가 또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장면이 무척 신비롭게 느껴졌는데, <까마귀 숲>이라는 시에서 그 장면이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까마귀 숲

변영현


캄캄한 삼나무 숲은 묘지 같다.

까마귀들이 겁도 없이 옆을 스친다. 이 많은 까마귀는 어디서 왔은까? 지난 봄 알들이 열매처럼 나무에 맺혀 있었던 걸까? 알은 제가 검은 새가 될 줄 알았을까? 깨어나 얼마나 놀랐을까? 까악!

울음을 감춘 사람처럼
검은 외투를 입고 숲의 입구에 섰다
눈이 내리고 눈은 내리고. 폭설이에요, 더는 들어가지 말라는 관리인의 말에 멈춘다. 까마귀는 까악 까악 오는 눈을 다 맞아도 까맣고, 손바닥에 내린 몇 송이 눈도 흰빛을 피해 스러지는데

봄이 오면 맺힐 알들 쏟아진다.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잎은 초록빛을 반사해 초록이 되고 그렇게 밀어내는 힘으로 무성해지지. 그러면 까악 까악 까마귀는 어떤 빛도 내뱉지 않는 걸까? 모든 빛을 담아둔 검은 상자. 그리하여 아무것도 아닌 죽음이 새의 몸 속에서 그렇게 다시 버무려진다면

눈은 왜 하얗게 쏟아지는지
나는 왜 하얀 김을 하악하악 뱉어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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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잠꼬대 시와반시 기획시인선 19
장하빈 지음 / 시와반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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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은유의 시. 다 읽고나면 허공을 떠도는 글귀들이 내게 달라붙어 달빛가루처럼 반짝거립니다. 오래도록 붙어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먼 들판에서 마당귀에서 마루밑에서 내내 그리울 겁니다.



네가 봄이었으면 참 좋겠어

봄은 말이야
보고 싶은 이에게 꽃을 물고 오거든 - P11

달빛 소나타

달빛은 나의 악보
그림자는 나의 악기

나는 그림자 밟으며
달빛을 연주한다 - P38

별리

봄에는 먼 들판에서 울고
여름엔 마당귀에서 울고
가을엔 마루 밑에서 울고
겨울엔 가슴속에서 운다
귀뚜르귀뚜르
천지간에 울음만 수놓고 간 솔아

- P40

산문

어제는 마음이 소란해서 산문에 들고
오늘은 춥고 배고파서 산문을 나섰다
내일은 적막 그리워 산문을 서성일까 - P56

질라래비 훨훨

꽃 본 나비 담 넘어가랴
물 본 기러기 산 넘어가랴

그대 숨기척 못내 그리워
어제는 꽃밭을 맴돌고
오늘은 물가를 맴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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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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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편안하고 차갑지 않은 목소리

영원에 가까운 목소리

목에 석류알처럼 붉은 테를 두른 예쁜 고둥이 내는 목소리

스무 살 내가 처음 바닷가에 갔을 때 들리던 목소리

아득한 바람개비 같은 목소리

수수깡 부러뜨리는 소리 같은 목소리

길고양이 내게오는 발소리 같은 목소리

모서리 동그랗게 오리는 공작가위질같은 목소리

사랑하고픈 목소리 

아름답고도 슬픈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

닮고 싶은 목소리

세월의 바람개비



바람개비 든 손, 앞으로 쭉 뻗고
운동장을 달렸네
동네 골목을 달렸네
배경은 아무래도 좋았지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바람개비
파르르르, 파르르르, 잘도 돌았지
야무진 바람개비 내 심장
벅찬 바람으로 파들거리고
웃음이 절로 터졌지!

서녁



이루고, 무너지고, 복구하고
만들고, 먹고, 싸고, 또 만들고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망각하고
다시 만들고, 먹고, 싸고

하루 햇빛이 일제히 돌아가느라
몰려 있는 하늘

묽어지는 나


이상하다
거품이 일지 않는다

어제는 팔팔했는데
괜히 기진맥진한 오늘의 나
거품이, 거품이 일지 않는다

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진돼버리는
생의 비누의 거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영혼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아무 힘이 없어
그러니까 그런거지

엄마도 죽고 아빠도 죽은
고아들이
고달프고 고독하게
살다가 죽기 일쑤인 거지
없어,
없어,
없어,
죽은 다음에 영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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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눈뜨고 5분이 채 되기전에 나는 미친듯이 자전거 패달을 돌려야 했다.

오늘 아이 학교 현장학습 가는 날이고 큰애 우는 소리에 눈 떳을 때 8시10분이었지

팝콘치킨을 돌려놓고 김밥을 찾아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앉으니 8시28분

다행히 늦지는 않았을거야 우리집과 학교거리는 맘만 먹으면 2분안에도 갈 수 있는 거리거든


어제 늦은 커피와 늦게까지 돌려 듣던 라디오가 밤새 뒤척이게 했어

요즘 계속 게운하지 않은 몸 뜬금없이 화끈거리는 얼굴 올해들어 이런 일이 벌써 두번째야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지 들어야지 하는데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면 갑자기 주어진 고요에 마음을 뺏기고 시간을 자꾸 잊어버려 요즘은 체력때문에 자주 그러지도 못하지만


가끔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때가 있어

나는 그대론데 내 주변만 변해 있는 것 같은 내가 서있는 곳에 갑자기 떨어진 것 같은 이상한 느낌말이야 

내 가족도 그럴까 어느날 가장이 되었고 원하지도 않는 초등학생이 되어있다고......


양팔을 뒤로 뻗어 기지개를 켜는데 뼈마디에서 소리가 나

너무 바쁜 아침이었어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8시 10분에 눈을떠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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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2 - 프랑스 먼나라 이웃나라 2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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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미술 읽기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편이다. 프랑스인들의 사상과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할 수 있다. 역사를 건너뛰고 지금을 이해하기란 훨씬 힘들지 않을까 작은 고리 고리들이 미세하게 연결되어 여기를 바로 알게되는 것. 만화책만 들고 파는 우리집 아들도 일없이 툭펼쳤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손에 놓는다. 말 맛나게 흥미롭게 시선 뗄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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