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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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겨레21]을 받아보는 내게 박노자는 친근하다. 그런데도 그의 책을 읽지 않던 내가 알라딘의 할인과 저자 사인에 마음이 동해 읽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이어령의 [신한국인]과 비슷한 류로, 외국인의 시각에서 쓴 책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에세이 같은 책이라기보다 지금의 역사서이고, 역사서라기보다는 또 일기장에 가까운 묘한 책이었다. 어쨌든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이 책은 내가 내 생활 하나하나에 묻어있는 역사적 실체들을 습관과 관습으로, 혹은 '평화로운' 생활을 위한 어쩔수 없는 것들로 말하면서 나와 내 이웃들을 더 일그러지게 하고 있음을 보게 한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 책을 읽고나서야 대학때 '학번 위주'의 원칙 때문에 같은 또래끼리, 혹은 나이 많은 낮은 학번과 나이 어린 높은 학번이 서로 높임말을 하는 일이 이상하게 보였던 까닭을 알게 되었다. 군대문화는 중세의 대학처럼 자치적으로 보이는 곳에까지 스며든 것일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혹은 인종주의에 관한 한국사에서의 고찰은 한국사에 대한 나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근원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당연시하고, 혹은 신성시하는 많은 일들이 그 시작이 어처구니 없음을 확인할 때 좀더 쉽게 그 거대한 그물망을 찢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대학에서도 조선인 유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중국인이나 여타 외국인에 비해 더 열악한 예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도 단순히 부당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문제의식을 갖지는 못했다. 개개의 사실이 아닌 일반적인 문제인데도 말이다.

비판을 담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비난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는 그가 한국인으로 귀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몽고인 바트자갈처럼 한국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 모든 문제를 파악하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의 비판이 고맙다. 그런데도 마음이 무겁다. 한껏 진보를 외치고, 남녀평등을 말하던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여자 후배가 과음하거나 담배 피는 모습을 '여자가..'라고 뒤에서 말하는 모습을 보아왔던 내가, 일의 합리성보다 스스로 윗사람에게는 공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내가, 결혼으로 박노자가 말하는 특권층(그의 표현이다)에 편입될지 모르는 내가 머리로나 몸으로나 그의 충고를 잊지 않고 생활에 적용해 갈 수 있을지....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가던 대학생이 교수님의 부당한 심부름과 지시를 따르는 모습을 이상하게 본 외국인이자 내국인인 그에게 나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지금 변화하지 못하면 영원히 변화할 수 없다는 게 내 신념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자각한 후인 지금,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 한국인인 나로서가 아니라 보편 인류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변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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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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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지 몇 달이 지났다. 그래서 생생하게 이 책에 대한 인상이 남아있지는 않다. 책을 안 읽어도 습관적으로 알라딘에서 <금강경>이라고 빨리찾기를 치는 내게 이 책은 언제나 눈에 띈다. 오늘은 제일 위에 이 책이 놓여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려는 마음이 없었다. 도올의 노자에 대한 책이나 화두에 관한 책을 읽고 크게 실망했던 나로서는 다시 그의 책을 읽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스님이 쓰신 금강경 관련 서적-제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에서 도올이 쓴 이 책이 재가자가 쓴 서적 가운데 훌륭하다는 평가가 있어서 읽게 되었다. 서문에 법정 스님까지 글을 남겨 주셨으니 이 책은 무언가 다르리라.

그러나 내 인상으로는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일반적인 내용에 현학적 색채와 자신의 감동을 입혀 두었다. 아래의 10편의 마이리뷰 가운데 여러 편이 이 책이 한역이 아닌 방식으로 번역해서 읽기가 좋았다거나 산스크리트어를 인용해 원전해석에 접근해 있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만일 그런 책을 원한다면 석진오의 <금강경연구>나 각묵스님의 <금강경역해>가 더 적절할 것이다.

도올의 금강경은 '자기식으로' '자기 세계'를 갖고 싶어하는 지식인과 신앙인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답습하지 않는 태도는 훌륭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올의 금강경의 독창성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금강경강해>가 아닌 '금강경 에세이' 정도가 더 진솔한 태도의 제목이리라.

나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도올의 이름과 그의 강한 어투가 많은 사람에게 책장을 쉽게 넘기게 한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나 역시 도서관에서 금강경에 관한 서적을 열 권 가까이 빌려왔을 때 제일 먼저 그의 책을 읽었다. 왜냐하면 빨리,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고, 내 생각은 적중했다. 사실 이 책은 쉽다. 그러나 현학적인 색채로 읽은 이에게 뭔가 새롭고 대단한 것을 읽게 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쨌든 대중에의 접근성이 돋보인다. 금강경 같은 서적을 텔레비전에 소개하고, 책으로 읽게 하는 도올의 힘은 가이 가공할 만하다. 조금의 비아냥도 없이, 진심으로 고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일으킨 점에서는 도올과 그의 서적에 대해서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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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 21세기를 사는 지혜의 서 7 21세기를 사는 지혜의 서 7
오쇼 라즈니쉬 지음, 손민규 옮김 / 태일출판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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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각기의 눈과 제각기의 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제각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즈니쉬를 보면 그가 이 세상 속의 다른 세상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수보리가 묻는다. 라즈니쉬는 수보리의 질문을 이미 저 언덕에 가 있는 자가 이 언덕에 어떻게 남아 우리를 도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해한다. 그는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일까?

나는 매일 금강경을 읽는다. 완전히 몰입해서, 기쁘고 즐거워서 여러 번 책을 읽는 내게 유일한 예외가 금강경이다. 금강경은 막연하다.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그 막연함은 이 언덕의 세계의 내가 저 언덕의 글을 읽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금강경은 아득하고, 구체적으로 몰라진다.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몰라가는 책...

라즈니쉬의 강의는 한자어로 번역되지 않아 꽤 독특한 느낌을 준다. 마치 시를 읽는 듯한 인상,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생동감! 이것이 이 책의 매력이자 라즈니쉬 자신의 매력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구마라집의 금강경도 말고, 라즈니쉬의 금강경도 말고, 내 금강경을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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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답을 알고 있다 - 물이 전하는 놀라운 메시지
에모토 마사루 지음, 양억관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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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엄마가 집을 새로 짓는다고 좋아하는 내게 '쉿, 지금 집이 듣는다'고 하신 적이 있다. 엄마는 집도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셨다. 저자는 물이 우리 말과 마음에 파동으로 공감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보이는 것은 얼마나 마음을 흔드는가? 보지 않고도 믿던 시대는 지난 것일까?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저자의 말투가...

저자는 여러 과학자와 증거들,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애쓴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일그러지고, 읽는 이를 답답하게 하는 부분이다. 마치 일본에서 80년대 유행했던 심령과학서적 같은 느낌을 준다. 과학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걸 답답하게 보여준다. 동화가 차라리 나으리라. 게다가 유일하게 과학적으로 보이는 그의 사진조차 과학적이지 못하다.

초능력자들이 초능력을 행할 때 초능력을 믿는 실험자가 그렇지 않은 실험자에 비해 월등히 높은 성공률을 보이듯 그의 마음이 결과를 예상하는 대로 사진은 그려진다. 가끔의 예외가 있고, 그 예외를 저자가 언급하는 것으로 그가 거의 항상 사진을 찍을 때 예상결과를 추측한다는 걸 증명한다. 여러모로 과학적, 혹은 객관적 데이타를 내세우는 태도가, 사진을 설명하거나 다른 이론들을 끌어들여 중언부언하는 설명들이 아름다운 책을 작은 방에 가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것만 빼면 아름다운 그림과 실천하기 좋은 사랑스런 마음을 일게 하는 환한 책이다. 그래서 별 네 개를 표시한다. 읽는 동안만이라도 물만이 아니라 세상 만물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고, 세상 만물을 살아있게 한다. 이러한 실험으로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일깨웠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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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 - 헤세전집 7
헤르만 헤세 지음, 원당희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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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땐가?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곧 이 책을 잊어 버렸다. 그런데 몇 달 뒤 꿈 속에서 페터의 친구인 곱추 보피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 노래가 얼마나 슬펐던지 베개를 적시며 눈을 떴다. 페터와 그의 친구 가족들이 보피를 집에 혼자 두고 문을 잠그고 소풍을 갔다가 페터가 양심에 걸려 혼자 집에 돌아와 열쇠를 찾던 중에 보피의 노래를 듣게 된다. 낮게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그 이후 그들은 진정한 친구가 된다. 아마 그 노래였으리라. 꿈 속에서 나를 울렸던 노래.

그리고 또 나는 이 책을 잊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반 때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책을 샀다가 다시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놀랐다. 잊고 있던 이 책이 내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발견한 것이다. 나는 보피가 좋아하는 동물원에 가기를 좋아하고, 보피가 좋아하는 물개(나는 바다사자를 좋아하지만 비슷하다) 보기를 즐기며, 페터가 존경하는 프란치스꼬에 관한 책과 소설을 읽고 있었다. 우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내 인생에 흐르는 시냇물이었던 것이다.

보피는 헤세의 또다른 책 <싯탈타>에서의 봐즈디바와 흡사하다. 잘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지고, 침묵을 이해하는 모습이나 페터와 싯탈타의 친구이자 스승인 점이 그렇다. 그들의 이미지는 연약하면서도 평온하고, 맑다. 이렇게 그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노라니 다시 그들이 보고 싶어진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 그들!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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