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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 - 헤세전집 7
헤르만 헤세 지음, 원당희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땐가?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곧 이 책을 잊어 버렸다. 그런데 몇 달 뒤 꿈 속에서 페터의 친구인 곱추 보피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 노래가 얼마나 슬펐던지 베개를 적시며 눈을 떴다. 페터와 그의 친구 가족들이 보피를 집에 혼자 두고 문을 잠그고 소풍을 갔다가 페터가 양심에 걸려 혼자 집에 돌아와 열쇠를 찾던 중에 보피의 노래를 듣게 된다. 낮게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그 이후 그들은 진정한 친구가 된다. 아마 그 노래였으리라. 꿈 속에서 나를 울렸던 노래.
그리고 또 나는 이 책을 잊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반 때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책을 샀다가 다시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놀랐다. 잊고 있던 이 책이 내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발견한 것이다. 나는 보피가 좋아하는 동물원에 가기를 좋아하고, 보피가 좋아하는 물개(나는 바다사자를 좋아하지만 비슷하다) 보기를 즐기며, 페터가 존경하는 프란치스꼬에 관한 책과 소설을 읽고 있었다. 우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내 인생에 흐르는 시냇물이었던 것이다.
보피는 헤세의 또다른 책 <싯탈타>에서의 봐즈디바와 흡사하다. 잘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지고, 침묵을 이해하는 모습이나 페터와 싯탈타의 친구이자 스승인 점이 그렇다. 그들의 이미지는 연약하면서도 평온하고, 맑다. 이렇게 그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노라니 다시 그들이 보고 싶어진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 그들! 가슴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