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쎈연필 > [퍼온글] 아돌프 히틀러의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연설문

제2차 세계대전의 개전을 알리는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

수개월간 우리는 베르사이유의 일방적인 결정이 초래한 괴로운 문제로 인하여 고통받아 왔습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습니다. 단치히는 독일 도시였으며 지금도 독일 도시입니다. 회랑지역은 독일 영토였으며 지금도 독일 영토입니다. 이 양 지역의 문화적 발전은 오로지 독일인의 것입니다. 단치히는 분리되었으며 회랑지대는 폴란드에 합병되었습니다. 동부의 다른 독일령처럼 소수 독일계 주민은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멸시받아 왔습니다. 1919~1920년에 백만명 이상의 독일계 주민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평화적인 수정안을 제시함으로써 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하려 시도했습니다. 강제로 개선시키려 한다는 외부 세계의 주장은 거짓입니다. 국가사회주의당이 정권을 잡기 15년전 평화적 정착과 이해로 이러한 개선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의 주도하에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의 개선을 위한 제안을 한번도 아니고 수차례나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모든 제안이 거부되었습니다. 군사력 감축안, 필요하다면 군비철폐, 전쟁규제안, 현대식 무기의 신뢰할 수 있는 방법에 의한 제거 말입니다. 내가 독일영토에 대한 독일주권을 복원할 필연성을 수행하기 위하여 만든 제안을 여러분은 압니다. 여러분은 오스트리아 문제, 그리고 후에 수데텐랜드, 보헤미아, 모라비아의 평화적 해결과 이해를 위해 내가 한 무수한 시도를 압니다. 그 모든 것이 헛되이 되었습니다.

불편한 사태가 평화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바램은 불가능했으며 동시에 끊임없이 평화적인 개선을 거절하였습니다. 이러한 개정의 집행을 떠맡은 자가 스스로 법을 어긴다고 말하는 것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베르사이유의 일방적 결정은 우리에게는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머리에 총을 들이댄채, 수백만 국민의 기아로 협박하면서 서명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쩔 수 없어 서명한 이 문서가 엄숙한 법으로 공포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단치히, 회랑 문제 등도 제안한 평화적 협의로 해결하고자 했었습니다. 문제는 명백히 해결되었어야 했습니다. 문제가 해결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서방의 강국에게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우리에게는 관심 사항이었습니다. 더구나 고통을 가장 많이 받는 자에게 무관심이 아니었고 될 수도 없는 문제였습니다.

폴란드 정치인들과의 협상에서 제국의회에서의 나의 마지막 연설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무도 이것이 지나친 압박 용납할 수 없는 조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무리없이 마침내 독일의 제안을 공식화 하였으며, 이보다 더 적합하고 성실한 제안은 없다고 재차 반복합니다. 전 세계에 이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제안을 만들고자 나 홀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수백만 독일인에 대한 반대를 내 스스로 초래하였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안이 거절 당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국가동원령으로 응수했을 뿐 아니라 독일민족에 대한 테러와 위협을, 단치히 자유시에 대한 점진적인 억압을 증가시켜 왔습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최근 몇주간은 군사력과 운송으로.

폴란드는 단치히 자유시에 대한 공격을 지시하였습니다. 더구나 폴란드는 양쪽 모두에게 공정한 합리적인 방법에서 회랑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소수민족에 대한 의무를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기서 뚜렷하게 밝힙니다. 독일은 다음 의무를 지킵니다. 독일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은 박해받지 않습니다. 자르 지방의 프랑스인 어느 누구도 박해받거나 고문받거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이 일체 없습니다.

나는 4개월 간 전개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며 경고를 계속 하였습니다. 지난 며칠간 나는 경고의 수위를 높혔습니다. 폴란드 대사에게 3주전 통보했습니다. 만약 폴란드가 단치히에 최후통첩을 계속 보낸다면, 폴란드측에서 단치히 무역을 붕괴시키려 하는 관세조정을 종식시키지 않는다면 독일제국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예전의 독일과 지금의 독일을 비교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잘못 생각하는 것임을 확실히 밝힙니다.

그들의 도전 행위는 독일에 대한 박해를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어떤 도전이 여자와 어린이에게 저질러졌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들이 박해받고 어떤 경우에는 살해되었다면. 하나는 압니다. 어떤 위대한 권능도 수동적으로 오랫동안 명예롭게 서서 그런 일을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영국 정부의 협상안에서 나는 마지막 노력을 하였습니다. 영국 정부는 영국이 아닌 독일과 폴란드가 직접 만나 협상하라고 제안했습니다.

나는 이 제안을 수용했다고 밝혀야 했습니다. 이러한 협상을 위한 여러분에게 알려진 기본안을 완성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전권대사를 파견하는 것이 폴란드 정부에 편리한가를 보면서 이틀간을 기다렸습니다. 지난 밤 그들은 전권대사 파견 대신 폴란드 대사를 통하여 영국정부안의 수용여부, 허용 범위에 대하여 아직도 생각중이라고 알려 왔습니다. 폴란드 정부는 결정 사항을 영국에 알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원 여러분, 독일 정부와 지도자들이 그러한 대접을 묵과한다면 독일은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릇된 판단으로 평화에 대한 나의 사랑과 인내심이 나약함과 비겁함으로 오해받을지. 그래서 나는 지난밤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정부에 알렸습니다. 이러한 상활하에서 더 이상 폴란드 정부와의 진지한 협상이 불가함을.

무엇보다도 갑작스런 폴란드의 총동원령과 뒤이은 폴란드인의 잔학행위로 타협안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지난 밤 또 다시 일어났습니다. 요즈음 지난 밤 21번 만큼이나 심각한 국경충돌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폴란드에게 수개월 전 폴란드가 우리에게 사용했던 그 말 그대로 단호하게 밝힙니다. 제국에 대한 이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우리의 태도를 이해합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를 지지한 이탈리아에 대하여 사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해할 것입니다. 이 투쟁의 승리를 위해 외국의 도움을 호소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스스로 이 과업을 수행할 것입니다. 중립국들은 우리가 이미 그들의 중립을 보장했듯이 그들의 중립을 약속했습니다.

서방의 정치인들이 이것이 그들의 관심사라 말했을 때, 그런 발표를 유감으로 생각할 수만 있습니다. 나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한 순간이라도 주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엄숙하게 약속합니다. 반복합니다. 서방에 대하여 어떠한 요구도 안하며 또 없을 것입니다. 나는 독불 국경선이 최종적인 국경이라고 밝혔습니다. 나는 반복해서 우정을 필요하다면 영국과의 협력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방적인 요청으로 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쪽의 반응을 요구합니다. 독일은 서방에 대하여 관심이 없으며 우리의 서부 장벽은 오랫동안 제국 서쪽의 국경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서방에 대한 어떠한 목표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중립을 지키는 한 이러한 보장은 엄숙히 충실히 지켜질 것이며 우리 또한 그들을 존경할 것입니다.

여러분께 하나의 사건을 말할 수 있어 나는 특히 행복합니다. 독일과 소련은 상이한 교리로 통치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독일은 교리를 전파할 의도가 없습니다. 소련이 공산주의를 독일에 전파시킬 의도가 없다면 더 이상 서로를 적으로 볼 이유는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양측은 그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독소간 분쟁은 다른 쪽에 이익만 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히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조약은 유럽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할 의무를 지웁니다. 경제협력이 가능하며 양 강국이 서로 불가침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러한 의지를 바꾸려는 서방의 어떠한 시도도 실패할 것입니다.

동시에 이 자리에서 이 정치적인 결정은 미래를 위한 멋진 출발을 의미한다는 것임을, 그리고 최종적임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독일과 러시아는 (1차)세계대전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다시는 러시아와 싸우지 않을 것이며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 조약은 여러분이 환영하는 것처럼 모스크바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외상 몰로토프의 연설에 대하여 똑같은 말로 시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1) 단치히 문제, (2) 회랑 문제를 해결하기로, (3) 평화적 상호공존을 보장할 독일-폴란드 관계에서 야기된 변화를 주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현재의 폴란드 정부가 기꺼이 이 변화를 지속적으로 가져오거나 새로운 폴란드 정부가 그렇게 할 준비를 할 때까지 계속 싸우겠습니다. 독일 국경선으로부터 불확실한 요인을, 국지전 같은 지루한 상황을 제거하겟습니다. 나는 다른 국경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평화가 동부 국경에도 있음을 볼 것입니다.

이에 전세계에 대하여 이미 제국의회에서 공포한 제안을 그들이 반박하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나는 중요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부인과 어린이를 상대로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공군에게 군사적 목표에 한한 제한 폭격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적이 다른 방법으로 싸우기 위하여 그의 편으로 백지위임장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면 그에게서 듣고 보는 것을 빼앗길 것이라는 답장을 받을 것입니다.

먼저 오늘 밤 폴란드 정규군이 우리 영토에 발포를 했습니다. 05:45 이후 우리도 응사하여 포탄에 포탄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독가스로 싸운다면 독가스로 맞설 것입니다. 인도적 교전행위를 벗어나는 자는 누구든 우리에게서 같은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제국이 안전하고 제국의 권리가 보호될 때 까지 상대가 누구이든 이 투쟁을 계속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6년간 나는 독일국방강화에 힘써왔습니다. 그 기간 중 9,000만 마르크 이상이 군비 강화에 쓰여졌습니다. 아군은 가장 잘 무장되어 있으며 특히 1914년의 독일군에 필적합니다. 그들에 대한 나의 신뢰는 확고합니다. 내가 이 군대를 부를 때, 독일 국민의 희생을 요구할 때, 또한 모든 희생이 팔요하다면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우리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가능한 희생을 할 확실한 준비가 오늘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느 국민에게도 4년간 언제라도 일어서려고 내 자신이 준비했던 것 이상으로 요청하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감수하지 않는 고통은 국민에게 없을 것입니다. 이후 나의 모든 삶은 국민의 것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독일제국의 첫 군인입니다. 가장 신성하고 나의 가장 소중한 군복을 한번 더 입습니다. 승리의 날가지 결코 벗지 않을 것이며 그날까지 살지 않을 것입니다.

전투 중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당의 동료인 괴링이 뒤를 이을 것이며, 괴링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헤스가 뒤를 이을 것입니다. 그깨 여러분은 나에 대하여 그러했듯이 그들에게도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바칠 의무를 지녀야 합니다. 헤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법에 따라 의회가 소집되어 최선의 최적의 인물을 뽑을 것입니다. 가장 용감한 자, 후계자를 말입니다.

국가사회주의자로써, 독일 군인으로써 나는 영정을 갖고 이 투쟁에 참여합니다. 나의 일생은 오직 나의 국민과 국민의 부흥과 독일을 위한 긴 투쟁이었습니다. 그 투쟁을 위한 유일한 구호가 있습니다. 이 민족의 신념입니다. 내가 결코 배우지 않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항복입니다.

그러나 곤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된다면 나는 그에게 묻겠습니다. 너무나도 작은 영토에서 그 국가가 우리가 지금 바라는 강인한 정신을 지녔기에 훨씬 강력한 동맹세력을 누르고 세번의 전쟁에서 결국 승리를 쟁취한 프러시아의 왕을 기억하라고. 따라서 1918년 11월이 독일 역사에서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하고자 합니다. 내가 언제든지 나의 삶을 정하는 것을 준비하듯 어느 누구도 국민과 조국을 위하여 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똑같이 요청합니다.

누구라도, 어떻게라도 이 국가적 명령에 반할 수 있다 생각한다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실패할 것입니다. 배신자와 함께 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오래된 원칙에 충실합니다. 우리가 살건 죽건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생존, 독일의 생존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희생은 지난 세대가 겪었던 희생보다 더 많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맹세코 함께 도약하는 사회를 꾸린다면,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결심한다면 우리의 의지는 곤경과 난관을 헤쳐 나갈 것입니다. 제국의 힘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는 시간, 다시 한번 발표함으로써 마치고자 합니다. 나는 말합니다. "우리 의지가 너무나 강하여 어떠한 곤경이나 고통도 우리의 의지를 억누를 수 없다고. 우리의 의지와 조국은 극복할 것입니다."라고

1939년 9월 1일 베를린, 제국의회에서

아돌프 히틀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밥헬퍼 > 얼음과 물의 경계에서 만난 나희덕과 기형도 시인

                               얼음과 물의 경계

                                                                 나 희 덕


  메멘트모리.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어느 수도원에선가는 이 말로 인사말을 대신한다고 한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세간의 풍속과는 달리 부재의 확인을 통해 존재를 성찰하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세간의 인사에 길들어 살아가는 나에게도 누군가 그런 인사를 건네는 날이 이따금 있기는 하다. 매년 삼월 첫째 주말, 기형도 시인의 묘소에 갈 때마다 내 안에 살아있는 그가 이렇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메멘트모리.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는 못했다. 나는 2학년 때 연세문학회에 들어갔는데, 그는 이미 졸업을 한 뒤라 술자리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1989년에 그는 중앙일보 편집부 기자였지만, 그 후 석 달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중앙일보 복도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며 창밖의 희부연 풍경을 바라보던 모습이 내가 가장 가까이 본 모습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조금씩 엇갈린 인연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십년 동안 그의 주기 때마다 묘소에 가는 것을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스럽기도 하다. 나는 그에 대해 추억할 무엇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렇다고 내가 유별난 의리의 소유자인 것도 아니기에 말이다. 그것은 마치 신년을 맞이하며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과 비슷하게, 봄이 오기 직전 어떤 죽음 하나를 만나러 가는 습관화된 의식 같은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왠지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죽음은 결국 살아 잇는 자에 의해 유추되고 해석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죽음은 해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의 묘소에 가려면 늘 지나치는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그 무렵이 되면 얼었던 물도 다 풀리고 나무마다 새싹이 돋아나곤 한다. 그런데 막상 그가 묻힌 산언덕에 이르면 왜 그리도 춥고 음산하던지 그의 죽음에 온통 살얼음이 박혀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도 시린 느낌은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아마 그의 시에 유난히 많이 나오는 얼음과 눈(雪) 이미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에게는 안개나 구름조차도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이나 “희고 딱딱한 액체”(「안개」)와 다름없었다.

  “밤에 깨어 있음, 방안에 물이 얼어 있음. 손(手)은 영하 1도”(「새벽이 오는 방법」)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살았던 방의 윗목, 아니 늘 윗목인 삶을 떠올린다. 거기서 그는 시린 손으로 ‘겨울 판화’를 새기듯 시를 써나갔으리라. “내 몸은 얼음으로 꽉 찬 모양이다”(「聖誕木」)중얼거리며 성냥을 그어대기도 하고, 눈길 위에 떨어진 서류봉투를 주우며 “나는 불행하다/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 진눈깨비”(「진눈깨비」)라고 탄식하기도 한다.

  그때 그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얼음과 진눈깨비는 실은 그의 눈물이 응결된 것이다. 세상을 너무 축복하였기에 거꾸로 매달려 외로운 천형을 견디고 있는 고드름처럼, 부단히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정신으로 말미암아 그는 오래도록 고통 받아야 했다.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노래하면서. 그는 녹아 흐르고 싶어 했으며, 그러기 위해 자신의 삶 속에 얼음처럼 박인 죽음의 그림자를 향해 힘겹게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러나 그가 지핀 불은 대체로 작은 성냥개비나 창백한 초 또는 램프에 붙여진 불이어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10월」)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빈 병 또는 빈 방은 결국 그의 육체를 가두고 말았지만, 그의 시만은 오히려 결빙된 절망으로 빛나는 날을 가지게 되었고 수많은 영혼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특히 그의 범상치 않은 죽음의 에피소드를 둘러싸고 진행되어온 신비화가 없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그의 시는 일정한 부가가치를 얻은 대신 문학으로서는 갇힌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의 죽음 자체가 던진 충격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란 모든 대상을 빛바래게 하는 대신 적절한 거리를 베풀어줌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발견을 가능케 한다.

  십년 만에 전집으로 새롭게 묶인 그의 시들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얼음과 물의 경계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이십대의 나에게 그의 시는 결코 녹을 것 같지 않은 단단한 얼음이었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간절히 녹고자 한 영혼, 이미 녹기 시작한 영혼의 일렁임 같은 게 만져진다. 이것이 세월을 거슬러 흘러갈 수 있는 시의 고유한 힘인지, 젊음의 팽팽한 긴장에서 어느 정도 놓여난 내 마음의 반영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삶과 죽음의 경계란 물과 얼음의 경계처럼 단호한 듯하지만 끊임없이 삼투하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이 인사가 마침내 일상이 될 때까지 우리는 언 물과 얼지 않은 물 사이에서 오래 출렁거려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기억하는 일이 더 이상 죽음의 성채를 쌓는 일이 아니라 삶으로 죽음을 녹여내는 일이 될 때, 그와 그의 시는 무연한 강물처럼 자유스러워 질 것이다. 그 역시 「잎․눈(雪)․ 바람 속에서」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살아 있다. 해빙의 강과 얼음산 속을 오가며 살아 있다.”<나희덕, 반통의 물, 창작과 비평사, 1999>

........................................................


                             잎. 눈[雪]. 바람 속에서

                                                              기 형 도


나무가 서 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 있다.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조용한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아니다. 잎을 달고 서 있다. 나무가 바람을 기다린다. 자유롭게 춤추기를 기다린다. 나무가 우수수 웃을 채비를 한다. 천천히 피부를 닦는다. 노래를 부른다.


나는 살아 있다. 解氷의 江과 얼음山 속을 오가며 살아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은빛 바늘 꼽으며 분다. 기쁨에 겨워 나무는 목이 메인다. 갈증으로 병든 잎을 떨군다. 기쁨에 겨워 와그르르 웃는다. 나무가 웃는다. 자유에 겨워 혼자 춤춘다. 폭포처럼 웃는다. 이파리들이 물고기처럼 꼬리치며 떨어진다. 흰 배를 뒤집으며 헤엄친다. 바람이 빛깔 고운 웃음을 쓸어간다. 淸潔한 겨울이 서 있다.


겨울 숲 깊숙이 첫눈 뿌리며 하늘이 조용히 安心한다.

 

 

 

 

 

 

 


 

 

 

 

 

 

 

 

 

제임스 콜만, Country Road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드무비 > [퍼온글] 다른 사이트에 있는 그림이나 동영상 가져다 올리는 법

전에 후배가 제게 가르쳐준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 주의 : 여기서 [  ]로 표시된 부분은, 실제 적용할 때는 모두 <  >로 바꿔야 합니다.

***

옮겨놓고 싶은 이미지 위에서 오른쪽 마우스버튼을 클릭하시면 등록정보라는 메뉴가 나옵니다.


그걸 클릭하면 주소(url)이라는 항목이 있는데요.


거기 나온 주소를 카피하셔서


게시판에 쓰기할 때 ( HTML 직접입력에 체크하시고 <body> </body> 사이에)


<img src="주소"> 이런식으로 적어 넣으시면 됩니다.

 

다음은 동영상 올리기에 관한 html 태그입니다.


1) 웹사이트 링크 시키기

가장 좋은 방법은 웹싸이트를 직접 링크하는 방법으로 HTML 기호는


[A HREF="동영상.mpg"]동영상[/A]입니다..


동영상은 모두 파일 크기가 크므로 이 방법이 제일 좋답니다.. 


참고) 다른 웹사이트 링크하기


 HTML명령어 = [a href=웹사이트 주소 target=blank] 클릭 [/a] ☜==* 클릭하세요!


★ 설명

           - "target = blank"는 새창으로 여는 옵션

           - "클릭"은 마우스로 클릭할 위치

           - [/a] : 명령 종료.


★ 예제 :  동문회 ☜==* 클릭하세요


위의 "동문회"를 클릭해 보세요. 새로운 창이 열렸나요?


[a href=http://dr43.hihome.com/] 동문회 [/a] ☜==* 클릭하세요!


이런 식으로 링크할 곳의 주소만 바꾸어 넣어주면 됩니다.


[ ]를 < >로 바꾸는 거 잊지 않으셨죠?



2) EMBED 태그


게시판에 플래시 카드를 올릴 때 흔히 쓰는 것, Real Video로

rm 사운드만을 지원하던 Real Audio에 비디오 기능을 추가한 것입니다.

파일 크기가 작고 전송 속도는 빨라 뮤직 비디오, 실시간 방송 등에 사용됩니다.


그럼 이 태그는 어떻게 적용하는지..

지난번 음악 올리기에서 알려 드렸던 EMBED 태그를 쓰면 됩니다..



<예>


*위 플래시 카드의 소스입니다.


 

<embed Src="http://www.songabang.com/cheonsung/pds_m/data/자연의놀이터2.swf" width=534 height=400 Quality="height" pluginspage="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 showstatusbar="1"
></embe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밥헬퍼 > [퍼온글] Andrew Kiss의 그림

 

"Devil's Club" 14 x 18 - oil

 

 

 

 

 

 

 

 

 

 

 

 

"Forest Glade" 20 x 30 - oil

 

 

 

 

 

 

 

 

 

 

"Rust in Peace" 16 x 20 - oil


 

 

 

 

 

 

 

 

 

 

 

"Misty Swamp" 18 x 24 - oil

 

 

 

 

 

 

 

 

 

 

 

 

 

"Sunflower" 10 x 12 - oil

 

 

 

 

 

 

 

 

 

 

 

 

"Sunset at the Beach, Vancouver Island" 24 x 30 - oi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드무비 > [퍼온글] Bill Coleman이 보여주는 아미쉬공동체의 가을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