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구판절판


...우리는 혼돈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어떤 일들은 필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우연이라는 공포를 완화하고, 그럼으로써 삶이라는 혼란에 일관된 목적성과 방향을 부여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주사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향으로 구르지만, 우리는 미친 듯이 필연성의 패턴을 그려보려고 한다. -15쪽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랑의 최초의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25쪽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이야기는 전화를 거는 사람의 손에 놓여 있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그 이야기의 전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30쪽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라는 큰 말이 주는 위압감은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할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임으로써 누그러들 수 있었다. -40쪽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46쪽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장점에 대해서 그녀가 나와 의견이 같다는 사실만큼이나 그녀가 웨이터에게 버터를 주문하는 모습이 귀엽다는 사실과도 관련을 맺고 있었다. -55쪽

...우리의 생각 없는 열정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어디를 가나 우리를 따라다니는 서투름이었다. 그 서투름 때문에 클로이와 나는 결국 함께 침대에 들어오게 된 것이 얼마나 우습고 괴상망측한 일인지를 의식하게 되었다. -61쪽

사랑의 압제적 요구는 보편적 진리를 가장한 자신의 개인적 판단을 앞세워 상대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지 못하고, 사고 싶은 구두를 사지 못하게(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하면서) 강요하는 것이다.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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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마르크스는 그 마르크스가 아니었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사랑"이란 말이 나온다.
"마르크스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줄 클럽에는
머리를 조아리며 가입시켜달라고 빌 생각이 없다고 농담을 했다."면서,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주면,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이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양 실망하는 심리를 가리켜
"마르크스주의적인 사랑"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마르크스를,
나는 바로 그 마르크스, 곧 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인 줄 알고,
어, 마르크스가 이런 말도 했어? 하고 갸우뚱했다.

그런데 오늘 [욕망의 심리학]이란 책을 읽다가 알았다!
저 말을 한 사람은 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아니라
미국의 코미디언 그로초 막스Groucho Marx란 것을!
(아마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심술궂게도 독자의 이런 혼란을 예상하고
일부러 Marxist란 말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십중팔구 옮긴이와 편집자는 나처럼 착각하고 영어식 표기인 "막스" 대신
독일식 표기인 "마르크스"라고 썼을 것이다.) 

 ☜ [욕망의 심리학]은 이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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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6-02-2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걸 마르크스적인 사랑이라고 하는군요.
아, 어리석었어요.
 

그러니까 어떤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배출하지 않으면, 진정한 내 모습이던 위선적인 내 모습이던간에 표출하지 않으면 터져버려 내 몸둥아리가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은 그런 심정이다. 감정에 얽매여 글을 쓴다는 건 자칫 실수나 과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실수도 없겠지만 결과도 없고, 과장도 없겠지만 사실도 없다는 것 또한 잘 안다. 그러기에 난 표현하고, 그런 난 감정적이다. 글을 읽는 사람에게 상대방의 심리 상태까지 이해해주기 바라는 것은, 20점짜리 시험지를 쥔 어머니에게 자식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미 언어는 문자로 전해졌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문자 자체의 애매함과 모호함정도의 해석의 폭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글은 무섭고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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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6-02-27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의 상황과 글을 읽는 사람의 상황의 조합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까지 싱글('아직'과 '싱글'이 함께 사용되어 발생되는 사회적 용인의 문제는 차치하자)인 난, 각종 이벤트에 초대를 받는 수혜자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런 사회(학)적 지위가 언제까지 지속될는지 알 수 없기에 주어진 순간순간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진인사 대천명'을 가슴 속에 되뇌이며 말이다.

어제도 난 최선을 다했다. 자세는 흩트러짐 없었고, 목소리는 낮되 거만하지 않았으며, 시선처리의 형평성을 유지했고, 몸짓은 적절하게 과장됨이 없었다. 적당한 유머로 분위기는 애애했고, 상대방의 불명확한 의사 전달을 적절한 paraphrasing으로 부드럽게 연결시키는 여유 또한 잃지 않았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적당히 낮은 조도는 생면부지의 어색함을 가려주기에 충분했고, 룸 안에 충만한 샹송은 의미를 파악하려는 본능적 욕구마저 근접하지 못하게 하여 우리 모두를 서로에게 충실하게 했다.

그녀들의 직업은 방송댄스 선생님이었다. 방송댄스도 정규교육과정이 있냐는 바람빠지는 질문에 불편한 기색없이 친절히 설명해주는 그녀들을 보면서 난 문득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일에 대한 열정, 내겐 흐릿해져 윤곽조차 희미해진 말이 그녀와의 대화속엔 넘쳐났다.

가벼운 와인과 서로의 눈빛으로 취해버린 우린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멍석은 깔려졌다. 그녀들의 현란한 가무(특히 '무')에 비하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는 노래방 조명은, 수학여행에서의 급조된 스위치 on/off 조명마냥 조악하기 그지 없었다.

너무나 빨리 가버린 시간이었다. 아직도 그 웨이브가 눈앞에 아른아른한데 말이다.

'댄스'하면 하루끼의 '댄스댄스댄스'가 생각나는 지금의 나도

 "댄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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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작이 짧은 하루를 만들었습니다.
일찍 눈을 떴지만,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12시가 되서야 여전히 찌뿌드드한 몸을 바로 세웠으니까요. 덜 깬 잠을 달고 스포츠센터로 갔지만 휴관이더군요. 그래서 머리를 잘랐습니다. 언듯 운동과 헤어컷의 관계가 묘연할 수도 있지만, 두 행위 모두 씻어야 완결되는 행위임을 감안할 때 교집합은 자연히 생성됩니다.
김밥을 두 줄 사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거실 쇼파 위에서 김밥을 먹으며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했습니다. 농어촌 생활-좀 좋게 말하면 전원생활-의 매력은 여유로움에 있습니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한적함 같은 거 말입니다.
거울을 봤습니다.
조금만 잘라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언뜻언뜻 비춰지는 스포티함에 좀 짜증이 났습니다.  
올 겨울 컨셉으로 정한 우수에 젖은 분위기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습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는지도 모르지만.
침대에 걸터앉아 책장을 바라봅니다.
사재기 했던 책들.
민음사의 '세게문학전집'이 이빨 빠진 모습으로, 아니 거의 잇몸만 있는 상태로 덩그러니 책장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그리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뽑습니다.
다른 책들에 눌려 온기 어린 시선조차 받아보지 못한 책들.
그들과 더불어 변화하려 합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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