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작이 짧은 하루를 만들었습니다.
일찍 눈을 떴지만,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12시가 되서야 여전히 찌뿌드드한 몸을 바로 세웠으니까요. 덜 깬 잠을 달고 스포츠센터로 갔지만 휴관이더군요. 그래서 머리를 잘랐습니다. 언듯 운동과 헤어컷의 관계가 묘연할 수도 있지만, 두 행위 모두 씻어야 완결되는 행위임을 감안할 때 교집합은 자연히 생성됩니다.
김밥을 두 줄 사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거실 쇼파 위에서 김밥을 먹으며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했습니다. 농어촌 생활-좀 좋게 말하면 전원생활-의 매력은 여유로움에 있습니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한적함 같은 거 말입니다.
거울을 봤습니다.
조금만 잘라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언뜻언뜻 비춰지는 스포티함에 좀 짜증이 났습니다.  
올 겨울 컨셉으로 정한 우수에 젖은 분위기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습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는지도 모르지만.
침대에 걸터앉아 책장을 바라봅니다.
사재기 했던 책들.
민음사의 '세게문학전집'이 이빨 빠진 모습으로, 아니 거의 잇몸만 있는 상태로 덩그러니 책장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그리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뽑습니다.
다른 책들에 눌려 온기 어린 시선조차 받아보지 못한 책들.
그들과 더불어 변화하려 합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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