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철학의 역사 - 위대한 전술과 인물들, 개정증보판
조나단 윌슨 지음, 하승연 옮김 / 리북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12.03



    소심한 사춘기 소년이던 내가 학년을 거듭할수록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고 군대에서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축구 덕분이었다. 축구는 내게 ‘조직 속의 역할’이라는 것을 직접 체득하게 해줬다. 개인기와 스피드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만 숭배하던 어린 나에게 팀을 위해 일정부분 희생하는 법과 팀에 녹아들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 쓰는 법을 알려줬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리고 알면 알수록 축구는 어려워졌다. 신체와 본능을 믿는 직감적 축구에서 타인을 믿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면 이제 그 타인들과 어떻게 움직이느냐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그래서 축구는 전술로 완성된다. 축구팬들은 금요일 밤만 되면 ‘치맥’을 시켜놓고 느긋하게 자신의 팀을 응원하지만 필드에서는 두뇌와 육체의 전쟁이 펼쳐진다.


    대체로 그런 듯하다. 아는 만큼 보이게 된다. 지질학자들은 등산을 할 때 대다수의 산객들이 지나치는 암반의 표면을 보면서 근처 지역의 나이를 들여다보게 된다. 별자리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밤하늘에서 더 많은 것을 본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수많은 책들이 연결되어 있는 거미줄 같은 책의 세계가 마음속에 그려진다. 만약 누군가가 “축구에 대해 아는 만큼 볼 수 있으려면 뭘 먼저 알아야 하죠?”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축구전문가들은 전술을 조금 공부해보라고 권할 것이다. 화려한 플레이와 웅장한 사운드가 TV 모니터에서 반복적으로 나올 때마다 우리의 눈은 그러한 것들에 홀리기 마련이지만 축구는 기본적으로 ‘누구를 어디에 배치시켜 어떤 지역에서 어떻게 움직이게 하느냐’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축구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이래 거의 140여 년 가까이 이어져왔다. 실패에서부터 일보 전진하는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또한 축구의 지략가들은 전술을 예술, 과학, 문화 등과 같은 경지로 이끌었다. 축구를 제대로 보려면 그걸 알아야 한다.


    8~9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 축구에 관심을 가졌던 지금의 4~50대 우리나라 해외축구팬들은 사실 소수였다. 유럽 축구를 중계해주는 다양한 채널도 없던 그 시절에 그들이 해외잡지와 별로 양도 많지 않던 소식통으로 바다 건너의 선진 축구에 관심을 가졌던 건 정말 대단한 열정이 아니면 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나와 같은 2~30대 해외축구팬들은 정말 복 받았다. 남아 있는 영상과 축구계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차붐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우리는 박지성, 이청용, 기성용, 손흥민, 그리고 이승우로 이어지는 한국 축구의 아이콘들을 직접 TV와 경기장에서 목격할 수 있다.


    선진축구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시대보다 높다. 그런 이 시대의 축구팬들, 그리고 축구를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일반인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적절한 안내서가 필요하다. 딱딱한 전술 이야기와 훈련법에 대한, 너무 전문적인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그런 책 말고, 소설처럼 지루하지 않은 책. 조나단 윌슨의 <축구철학의 역사(원제 : Inversting the Pyramid)>가 딱 적격이다. 옮긴이 하승연 씨는 ‘축구오덕’이다. 대단한 열정을 갖고 번역했다. 두꺼운 책인데다 조나단이 예로 든 수많은 축구 일화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연 생소할 수밖에 없는데, 술술 읽히도록 완역해냈다는 점이 읽는 내내 가슴 뜨거워지게 했다. 같은 ‘축구 유전자’를 공유하는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이 책은 축구가 드리블 위주의 초보적 단계에 지나지 않았던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해 최근 전 세계 축구 감독들에게 과제처럼 내려진 “바르셀로나 이기기”와 그것을 성취한 “바이에른 뮌헨 이기기”의 판도까지 훑어나간다. 열정으로 쓴 책이고 열정으로 번역된 것이니, 나 역시 모르는 것들을 하나둘 검색해가며 그림 그리고 메모하는 열정으로 읽었다. 완독한 이라면 그 누구든 축구경기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조나단의 책은 축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명저다.




*    *    *




    말했던 것처럼 초기의 축구는 지금 보면 거의 엉망진창인 수준이었다. 아니, 비꽈서 말하자면 ‘영국적’이었다. 패스나 수비, 조직력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드리블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이었고, 행여나 공이 멀리 가버리면 골키퍼까지 뛰어가서 공을 잡으려고 아등바등했다. 놀랍게도 골키퍼가 공을 잡는 걸 페널티지역 안으로 규정한 건 1912년의 일이다. 그러니 축구가 제도적으로 도입되고 약 3~40년 동안 경기장의 광경이 어땠을지 상상하면, 축구규칙을 잘 모르는 여자연예인이 예능프로의 축구경기에서 핸드볼을 해놓고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마냥 웃으며 바라볼 것만도 아니다. 그러던 축구가 어떻게 지금처럼 기술과 전술, 체력과 열정의 치열한 전쟁터로 변한 것일까. 조나단은 그 과정을 이따금 유머를 써가며 장대하게 펼쳐놓았다.


    “축구의 사라지지 않을 매력 중 하나는 축구가 하나의 통일된 유기적 게임으로서 경기장의 한 부분에 조그만 변화가 생겨도 다른 곳에서 예상치 못한 심대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나단 윌슨, <축구철학의 역사> 74쪽)


    볼을 그냥 앞으로 내지르는 것(흔히 말하는 ‘똥볼’을 차는 것)과 볼을 앞으로 내지르되 그걸 우리 편이 계속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 전자는 걷어내는 것이므로 볼 소유를 상대팀에게 넘겨줘서 우리 팀이 계속 수비의 부담을 안게 하는 최악의 수다. 후자는 그 반대다. 하지만 과격한 신체 운동의 남성성을 미덕으로 삼던 영국 사람들은 좀처럼 패스앤드무브(짧은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를 할 줄 몰랐다.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게 뭐가 멋있냐고 생각했다. 이런 축구가 지금의 형태에 아주 조금이나마 근접할 수 있었던 건 추상적 개념으로 축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동에 무슨 추상이냐고 묻겠지만 그게 엄연한 사실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이는가? 얼마나 아름답게 움직이는가? 영국이 전 세계에 축구를 퍼뜨렸지만 그걸 받은 남미 사람들은 ‘길거리’라는 한정된 작은 공간에서 축구를 하며 어쩔 수 없이 개인기술들을 연마했고, 그게 필드에 나왔을 때는 일대의 파장이 일어났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는 충격적이었던 다이빙 헤딩, 힐패스, 바이시클킥 같은 건 모두 Made In Latin America이다. 노동자들로 구성된 우루과이 올림픽 대표팀이 1924년 파리로 가서 기술축구를 선보이자 유럽은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게 유럽에 곧장 이식된 건 아니었다. 때가 때였는지라 파시즘 속에서 유럽 열강을 자처하는 나라들은 폭력적 축구를 미덕으로 여겨 상대팀 선수들을 부상 입히곤 했다. 그 시대의 이탈리아와 스페인 축구는 악명 높았다. 정도가 심해 그들을 일컬어 ‘라 푸리아(분노)’라 불렀다. 파시즘은 그걸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미화했다. 1950년대 전 세계를 주름 잡았던 헝가리가 그런 축구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라도 하듯 완벽에 가까운 기록을 세워갔지만 오랜 성공 가도 속에 안일해져 이후 축구는 삼바, 혹은 카포에이라를 접목시킨 것처럼 화려한 기술축구의 천재들로 구성된 브라질에게 그 주도권이 넘어갔다.


    브라질의 축구 열정은 우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보여줬던 것 이상이다. 우리의 열정도 대단하긴 했지만 사실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축구가 곧 삶이다. 우리도 일본을 원정에서 꺾으면 ‘대첩(大捷)’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국가적 승리까지 그 의미를 끌어올리지만, 브라질은 대표팀이 지기라도 하면 팬들이 자살을 하거나 선수들이 살해 위협을 받는다. 종교적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에게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그들은 공화국 건립 이후 브라질이 겪은 가장 큰 참사라며 대성통곡했다. 당시 결승전이 열린 브라질 축구의 심장 마라카낭(Maracanã)에는 (공식적인 FIFA의 기록은 173,850명이지만) 20여 만 명의 관중이 들어차 있었다. 브라질이 기억하기 싫은 순간이긴 하겠지만 그 시절에 축구에는 처음으로 ‘공격형 풀백’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측면 수비를 보다가 공격 시에는 전방까지 쭉 전진하는 이 특이한 개념은 이후 전술 변화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UFO슛으로 유명했던 호베르투 카를로스, AC 밀란의 전설로 얼마 전 자선경기에서 박지성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 카푸,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선수 중 한 명인 마르셀루 등이 이 개념을 충실히 이행한 역사적 선수들이다.


    이렇게 세계는 변화하는데 영국은 무슨 고집을 그렇게나 부렸느냐, 이게 조나단의 기본 입장이다. 비판조로 쓰인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 나름대로 보수적 시스템 내에서 새로운 응용전술을 내놓긴 했다. 최전방에 다섯 명을 배치한 2-3-5 포메이션에서 한 단계 나아간 W-M 포메이션 중 영국 나름의 방식으로 진화한 사례들이 몇 있었다.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3개 구단을 돌며 모두 리그 우승을 차지한, 스코틀랜드 축구의 오래된 영웅인 고든 스미스의 히베르니안, 박지성 팬들에게는 익히 알려졌을 전설 보비 찰튼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현재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 핫스퍼의 옛 시절이 일례들이다. 이때부터 영국도 패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간은 어떻게 창출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공간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가 보면 그때의 축구는 너무 느리다. 나도 가끔 Youtube에 들어가 전설들의 활약을 검색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도발적인 생각이 났다. ‘저렇게 공간을 내주면 나라도 들어가서 패스하고 슛하겠다.’ 과거 축구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과연 오늘날 숨 쉴 틈조차 없는 압박축구의 전쟁터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만큼 현대축구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 속에서 현실에 적응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우리가 본격적으로 (이 책에서) 들여다봐야 하는 건 축구와 압박이 접목된 토탈풋볼(totaalvoetbal)의 시대부터다. 물론 1930년대에 스위스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오스트리아 출신의 카를 라판이 ‘베로우(verrou, 빗장)’ 시스템을 선보인 적도 있었고, 1940년대에도 소련 리그에서 시도된 적이 있지만 압박이 중시되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 봐도 꽤 최근의 일이다.


    이런 말이 있다. ‘골을 넣으면 경기를 이기지만 골을 먹지 않으면 우승한다.’ 현대축구에서 수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명언이다. 이것이 명제이므로 축구를 연구하는 이들의 과제는 그 반대가 된다. 골을 넣으면서 우승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최전방 공격수부터 상대팀을 압박하는 ‘전방압박’이 요구되었다. 상대팀 공격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오프사이드 라인 자체를 끌어올리고, 공격과 수비의 간격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실은 무시무시한 전술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줘야 한다. 그래서 스포츠 과학과 영양학의 발달이 축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들 말하는 것이다. 만약 저 말대로 아마추어 동호회 축구인들이 경기를 하면, 체력이 비교적 좋다는 가정 하에 말하건대 골키퍼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10분 내에 토를 하면서 쓰러질 수도 있다. 그런 축구를 네덜란드에서 해냈고, 그 중심에는 지금도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회자되는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다. 1970년대 초에는 쉴 새 없는 로테이션으로 상대팀을 압박하고 상대팀 진영에서 재차 공격을 시작하는 토탈풋볼의 네덜란드가 세계를 제패했다.


    그에 비해 브라질의 ‘아트풋볼’은 좀 특이하다. 이건 아마추어들이 따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단히 특출 난 선수가 있다면 말이다. 펠레, 제르송, 토스탕, 호베르투 히벨리누 등 오늘날 브라질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고 말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해낼 그 역사적 영웅들은 축구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천재들이었다. 그래서 브라질은 그들에게 “알아서 뛰어라.”라는 지시를 내리고는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를 두고 ‘아름다운 플레이’라는 뜻의 조구 보니투(jogo bonito)라는 말이 태어났다. 이런 경우는 현대축구에서 두 번 다시는 없었다. 압박이 강박적으로 강조되면서 앞서 말한 천재들의 단독 플레이, 심지어는 유기적 플레이마저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가 그렇게 플레이하지 못할 바에야 상대팀 천재들을 필드에서 죽이면 되는 거였다.


    축구의 역사는 각 시대별로 정점에 올라가 있다고 평가받는 구단이나 국가의 축구를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를 고뇌하는 역사다. 그리고 전혀 재미없는 축구를 하면서도 이 과제를 성실히 수행해 놀라운 신화를 만들어낸 나라들이 심심찮게 나오곤 한다. 1998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브라질을 꺾은 노르웨이가 대표적인 예다. 노르웨이의 상징 격인 에길 올센 감독은 193cm나 되는 플로(Tore André Flo)의 헤딩을 믿고 전방으로 롱볼을 계속 투입하게 했다. 브라질은 말도 안 되는 높이로 계속 대포를 날리는 노르웨이를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고, 카푸, 로베르토 카를로스, 둥가, 히바우두, 호나우두, 베베투 등 최강의 라인업으로 상대했지만 1-2로 패하고 말았다. 축구 전문가들은 충격에 빠졌다. 비슷한 예로 그다지 강하지도 않았던 그리스가 EURO 2004 우승국이 된 적도 있다. 이가 없으면, 축구에서는 잇몸으로도 상대팀을 충분히 물고 늘어질 수 있었다. 전술에 대한 고뇌, 즉 필드의 철학 때문에 가능한 기적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압박이 강조되고 상대팀의 천재적인 선수들, 주로 ‘10’이라는 번호로 상징되는 이들을 막기 위해 현대축구는 자연스레 수비를 강화하는 진일보를 택했다. 아니, ‘진일보’라는 표현을 쓰면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축구전술의 대가들 중에는 아름다운 축구는 1980년대 이후 끝났다고 선언하는 이들이 많다. 심미주의와 낭만주의의 몰락. 더 이상 축구는 신비롭지가 않다. 아름다운 축구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지금도 여러 칼럼과 인터뷰에서 현대축구를 비판하는 요한 크루이프는 축구가 윙어를 윙백으로 내리면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주장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쉽게 말해 수비 일변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창의력이 떨어진 건 아니다. 축구천재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크루이프가 비판하는 건 그들이 활동할 실질적인 공간이 필드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 위주의 축구가 축구의 미를 죽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에 들어서서 FIFA는 좀처럼 골이 시원시원하게 터지지 않는, 그래서 재미없어지는 축구 때문에 고민을 해야 했다. 고민 끝에 수비와 관련된 규정들을 더 엄격하게 만들었다. 백태클을 금지한 것이 바로 이때다. 이러한 규정들에도 불구하고 현대축구에서 살아남아 우승하는 팀은 대체로 수비가 강력한 팀이었다. 아리고 사키의 AC 밀란은 전설이다. 수비와 공격 사이의 공간을 무려 25m까지 줄여버린 이 말도 안 되는 전술은 코스타쿠르타, 바레시, 말디니, 레이카르트, 안첼로티, 도나도니, 굴리트, 반 바스텐 등 최강 라인업을 통해 실제로 구현됐다. 이탈리아 리그는 그래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유럽 최고였다.


    축구에서 이제 ‘아트’는 죽었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고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루이스 판 할 감독은 90년대 네덜란드 아약스의 부활을 외치면서 옛 요한 크루이프 시대의 토탈풋볼을 가져와 현대식으로 개량한 인물이었다. 재밌는 건, 당시에도 재미없다고 비난을 받았다는 거다. 하지만 규율과 의사소통, 팀 빌딩의 삼위일체를 중시하는 판 할 감독의 강점은 수비에 있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골 넣는 것 이외의 일을 시키면서 거의 전 포지션의 선수가 만능의 역할의 소화했다. 팀이 기계처럼 돌아갔다. 더불어 재미는 없어졌다.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비슷하다. 리빌딩 과정에서 구설수에 거의 매일 오르곤 했던 판 할 감독이지만 맨유는 지금 리그 2위다. 그리고 가장 적게 실점한 팀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흐름이 이어졌다. 남미는 어떠했을까? 그곳에는 낭만주의가 아직 숨 쉬고 있진 않을까? 라틴인데? 그런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남미도 이상적인 축구의 해답을 기본적으로는 압박에 찾았다. 현재 잘 나간다는 감독들에게는 ‘멘토’와도 같았던 마르셀로 비엘사는 공간을 내주지 않는 축구를 추구했다. 당연히 압박을 중시했으며, 여기에다 세트피스 훈련을 하면서 프리킥과 코너킥 등 정지 상황을 잘 활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압박을 해서 볼을 빼앗되 공격상황에서는 황소처럼 무섭게 적을 향해 돌진하는 기술적 축구를 덧입히려고 했다. 그는 현대 공격축구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그가 이끌던 칠레 대표팀의 경기를 본 국내 축구팬들은 분명 그 칭호에 동의할 것이다. 비엘사는 남미 특유의 즉흥성(repenitizacion)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팀은 무시무시한 공격을 감행했다. 문제는 그 전술을 매 경기 쓰는 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런 걸 ‘만화축구’라 부르곤 한다.


    잠시 축구에도 ‘아트’가 귀환했던 적이 있었다. EURO 2000은 그래서 많은 축구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대회였다. 프랑스는 지단, 뒤가리, 앙리, 조르카에프를, 네덜란드는 젠덴, 오베르마스, 베르캄프를, 그리고 포르투갈은 피구, 루이 코스타, 주앙 핀투를 보유했었다. 압박의 시대에 숨을 쉰 적이 있는 보헤미안들이다. 그들의 플레이는 지금 봐도 정말 아름답다. 아니, 지금 그들처럼 아름답게 축구하는 톱스타들은 거의 없다. 이들을 ‘마지막 10번’이라 불러도 괜찮을까. 남미도 현대축구에 역행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상징은 후안 리켈메다. 한 시대 전에 태어났어야 했던 그는 필드의 고독한 시인이었고, 10번을 질식시키는 유럽 축구에는 맞지 않았다. 우루과이의 레코바도 비슷한 선수였다. 이러한 10번을 ‘엔간체’라 부른다. 미드필더와 공격수 사이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마라도나 이후 다시 나타난 유형의 선수들이다. 이것이 불가능한 유럽에서는 피를로가 나타났다. 안첼로티 감독은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에 이 천재적인 선수를 배치시켜 팀을 후방에서부터 추진했다. (그런 피를로를 질식시킨 ‘현대축구 압박’의 대명사가 박지성이다.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퍼거슨 감독의 지시에 따라 박지성은 피를로를 거의 지워버렸다. 맨유는 피를로를 묶어놓고 승리했다.)


    축구의 천재는 상대팀의 수비와 미드필더 공간 사이에서 탄생하는 듯하다. 메시와 사비, 이니에스타, 메수트 외질, 에당 아자르 등 우리가 봤었고 현재 목격하고 있는 세기의 천재들은 다 그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현대축구는 ‘안티풋볼’의 오명을 쓰더라도 그들을 막아내려는 유혹을 상대팀 감독들에게 계속 심어준다. 그러다보니 전형적인 10번의 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위치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골잡이는 골만 넣지 않아도 됐다. ‘공격수’라는 개념은 더욱 세밀하게 나뉘어졌다. 시스템에 녹아 골 이외의 공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방압박, 연계플레이, 수비 시 깊숙이 내려오는 헌신까지. 그렇게 폴스나인(False 9)이 태어났다. (사실 몇몇 정상급 구단이나 국가에나 적용가능한 말이지만) 이제 정통 스트라이커는 없어도 된다. 제공권을 노리는 키 큰 스트라이커도 필요 없다. 최전방에서도 세밀한 연계 플레이를 하며 상대팀 수비진을 농락하면 된다. 이를 4-6-0,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제로톱’이라 불렀다. 이건 가장 최근에 일어난 전술적 변화 중 하나다. 페르난도 토레스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스페인 대표팀은 천재 파브레가스를 최전방으로 올려 세웠다. 그러나 그건 가짜였다. 미드필더의 패스플레이가 상대팀의 문전까지 이어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면서 나는 제멋대로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저건 축구의 정점이다.’ 물론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이후 지금까지 축구는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으로 나뉘어 있다. ‘티키타카’는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때 유행어처럼 번진 적이 있는 스페인어다. 짧은 패스를 수도 없이 하면서 볼을 계속 소유하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바르셀로나는 정말 최고였다. 5초 안에 볼을 되찾지 못하면 바로 수비로 전환된다는 점에서는 판 할 감독의 수비 축구와 비슷했지만 그들에게는 다름 아닌 메시가 있었다. 높은 위치의 압박은 비엘사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바르셀로나는 볼을 지배하는 만큼 골도 참 많이 넣었다. 그 어떤 팀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볼 소유 시간을 늘릴 수가 없었다. 반대발 윙어가 배치되면서 드리블에 이은 패스와 슛 시도가 늘어났고, 메시는 폴스나인으로 뛰었다.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들은 키가 175cm를 넘지 않았다. 그런 왜소한 선수들이 세계 정상이 됐다. 그런데 이걸 바이에른 뮌헨은 ‘직선적 버전’으로 해냈다. 롱볼 플레이와 체격의 우위를 섞었더니 현재 세계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같은 리그의 도르트문트는 그런 뮌헨을 상대하기 위해 최전방에서부터 맞불을 놓는 ‘게겐프레싱’ 전술을 썼고, 이를 도입한 위르겐 클롭 감독은 지금 세상에서 제일 ‘핫한’ 감독이다.




*    *    *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종말을 외쳤다. 그러나 지금까지 누구의 말도 적중한 적이 없다.” (위의 책, 564쪽)


    꼭 크루이프를 겨냥한 발언 같지만, 사실 크루이프 말고도 옛날의 축구가 죽었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많다. 예술에서도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는 절대주의까지 가자, 러시아의 그 텅 빈 무채색의 그림을 본 서유럽과 미국 예술가들은 “이제 뭘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예술의 종말을 외쳤었다. 그러나 예술은 이어지고 있고, 축구도 그렇다. 앞으로 전술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전술의 대가들은 바이에른 뮌헨과 바르셀로나와 같은 최정상 구단의 축구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조만간 그걸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의 선수들과 함께 필드에서 자신들이 성공했음을 입증할 것이다. 축구는 그런 식으로 변화하며, 또한 현실에 적응하는 거대한 세계다. 그리고 매 시대마다 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효율과 아름다움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축구는 푸른 잔디 위에 펼쳐진 인간사의 집약과 다름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