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유니버스 - UFO, 외계인, 외계 지적 생명체에 관한 모든 것
돈 링컨 지음, 김지선 옮김 / 컬처룩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10.15



    다큐멘터리인 척 하는 영화에 <유로파 리포트(Europa Report)>라는 2013년 SF 스릴러가 있다.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만났다는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인 결말에 대원들의 역경과 희생, 불신 등으로 살을 붙인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샬토 코플리(우리에게도 영화 <디스트릭트 9>의 비운의 주인공으로 비교적 잘 알려진 배우)가 희생하는 대원으로 나와 반가웠다. 사실 NASA와 세계 유수의 우주 관련 학자들은 유로파에 생명체가 살 확률을 높게 잡는다.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되었는데, 이를 아는 이에게 <유로파 리포트>는 ‘정해진 결말을 향해가는 그저 그런 영화’ 정도로 비춰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이 글의 서문을 영화 이야기로 연 까닭은, 그럼에도 <유로파 리포트>가 외계생명체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하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외계생명체는 흡사 영화 <매트릭스>의 ‘추적자’를 생각나게 하는, ‘오징어’형이다. 눈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불빛도 쏜다. 일그러진 화면이라 아무리 돌려봐도 정확히 볼 순 없지만 이 영화 역시 우리가 생각해온 전형적인 외계생명체 중 하나를 등장시켰다. 그래도 ‘오징어’형 외계생명체가 유로파에 실제 있을 수 있다. 유로파의 광활한 얼음 대지 밑은 바다로 추정된다. 지구의 바다에는 오징어가 있다. 아무렇게나 영화 제작자들이 그런 외계생명체를 가져다 CG로 심어놓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선 밝히겠는데, 나는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E.T.>나 <디스트릭트 9>, <에일리언>, <프로메테우스>, <스타워즈> 시리즈, 드라마 <X 파일>처럼 주로 서구 문화가 흥행몰이를 위해 개량한 외계생명체의 형태가 실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영화 <콘택트>처럼 신비한 체험으로 그들을 만날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외계‘인’에 대한 인류의 로망은 정말 오래되었지만 나는 그런 지적 존재가 우리와 접촉할 가능성, 그리고 그들의 문명이 우리와 만날 만큼 충분히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다소 회의적이다. 단지 바다를 유영하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혹은 땅을 기어 다니거나 뛰는 정도의 외계생명체는 이른바 항성계의 ‘골디락’에 들어가 있는 행성에서는 충분히 출현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문제는 그게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서양에서는 온갖 공상들이 나왔지만 별로 과학적이진 않았다.



*    *    *



    이 책 <에일리언 유니버스(원제 : Alien Universe : Extraterrestrial Life in Our Minds and in the Cosmos)>에서 저자 돈 링컨은 외계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로망을 확인하고, 실제 존재가능한 형태의 외계생명체를 지구의 조건과 사례를 기준으로 추정한다. 증명하거나 아직까지는 발견할 수 없는 그 존재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혹자들은 물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단순히 외계만 바라보진 않는다. 오히려 이 책에는 지구의 유구한 물리∙화학적 역사가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된 조건들 안에서 인간이 탄생했다는 건, 그 단순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대해 많은 걸 얘기한다. 어쨌든 외계‘생명체’이지 않은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들을 만나면 과학계는 (마치 화성의 물을 보고 실성한 우리처럼) 또 한 번 발칵 뒤집히겠지만 우리는 그 ‘전혀 다른 방식’을 아직 알지 못하기에 확인가능한 방식으로만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우리가 모를 수도 있는 영역에 대해 활짝 열려 있다.


    보통 우리가 ‘외계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그 저변에는 일종의 음모론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외계문명이 인류의 주요 고대문명들을 키워줬다는 이른바 ‘역기술론(역공학)’이 대표적일 것이다. 드라마 <X 파일>도 음모론의 대표주자다. 특히 돈 링컨은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람들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강화할까봐 걱정스럽다.”(193쪽)고 우려를 드러냈다. 스컬리가 항상 멀더에게 결과적으로 승복하는 플롯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음모론들을 잘 들여다보면 그 입증 외에도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음모론>이라는 데이비드 사우스웰의 책을 번역한 이종인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소개된 음모론은 휘어진 공간의 착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발하고 파격적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또한 생각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심외무물(心外無物)이라는 말도 있듯이 인간의 생각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데이비드 사우스웰, <음모론>, 이종인 譯, 9쪽)


    돈 링컨은 <에일리언 유니버스>의 거의 절반이 넘는 분량을 이 ‘생각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사례로 입증하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정말 재밌다. 달에 기이한 존재들이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가십거리들로 가득한 페니 프레스, 즉 1 페니면 살 수 있는 저급 신문에 실리면서 1835년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이야기, 외계인을 목격했다고 와전된 대표적 사례인 푸 파이터(이건 미국의 밴드 푸 파이터스가 아니다.), 지금도 ‘재탕’되면 늘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로스웰 사건, 자신들이 외계인과 접촉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혹시 이런 접촉 사건을 다룬 인상적인 영화를 찾는다면 영화 <포스 카인드>를 추천한다. 나이지리아의 젊은 감독 올라턴드가 만든 이 영화의 주연은 밀라 요보비치다.) 등을 저자는 위트 있는 문체로 전한다.


    이런 사건과 더불어 인간의 창작물이 외계에 대한 인류의 환상이 다양해지고 점점 강력해지는데 일조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톰 크루즈 주연 영화 <우주 전쟁>으로 알려진 H. G. 웰스의 <우주 전쟁(1898년)>은 한 라디오 감독이 각색했다가 미국 뉴저지 주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오래된 소설과 영화 중 최근에 리메이크되어 다시금 조명을 받은 작품들도 꽤 있다.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바숨> 시리즈는 앤드류 스탠튼 감독의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으로 2012년 개봉했었고, 1951년의 <지구 최후의 날>은 2008년,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로 리메이크되었다. (하지만 후자는 거의 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블록버스터가 미국의 영화시장을 상징하게 되면서 <스타 트렉>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 <에일리언> 시리즈, <스타게이트> 시리즈, <미지와의 조우> 등이 환상을 불어넣었고, 드라마 <X 파일>이 거기에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음모론을 조장하며 종지부를 찍었다. 사실 오늘날 나오는 이와 비슷한 종류의 영화들은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나마 가장 최근의 독창적 사례라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영화가 아니라 PC 게임이다. Maxis 사에서 2008년에 내놓은 게임 <스포어(Spore)>는 진화론과 환상의 조화나 다름없다.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로 ‘크리처’를 진화시켜 지성을 얻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게 목표이고, 진화의 단계를 넘을 때마다 모습을 각양각색으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게임을 일컬어 플레이어에게 무궁무진한 권한을 줬다 하여 ‘God Game’이라 부르는데, 사실 나름 과학적인 구석이 많은 게임이다.)


    여기까지가 1~4장의 내용이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MBC의 TV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를 생각하며 다채로운 사례들에 매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 링컨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5장부터 나온다. 지구의 생명이 등장한다. 놀랍게도 그 모습은 흡사 외계에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기이하다. 하지만 그 생명들은 다름 아닌 지구에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환상하는 외계인의 모습에 너무 젖어있지 말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언젠가 만나게 될지 모르는 외계인이 그토록 친숙한 존재일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전무하다. 선사 시대로의 방문은 외계 세계가 얼마나 이상할지를 보여주는 가장 미미한 실마리일 뿐이다.” (224쪽)


    지구에는 진핵생물, 균, 식물, 동물 등이 있다. 나는 대학의 한 과학 관련 강의에서 노(老) 교수가 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우주에는 수많은 원자∙분자들이 있으며 그 가능한 조합의 경우의 수도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지구의 생물들이 보여주는 조합의 경우의 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니 그 교수는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가능한 생물’들의 형태가 존재하겠느냐고 학생들에게 반문했다. 물론 그 가능한 경우의 수가 전부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돈 링컨도 마찬가지. 그는 몸 대칭성, 다리의 수, 체구, 골격, 신경계, 이동, 속도 등 여러 조건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외계인은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라는 우리의 공상을 좀 더 현실적인 이미지로 그릴 수 있게 도와준다. 지구중심적이며,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는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알아낸 바로는 생명의 4대 핵심 필요조건이 있다. 열역학 불균형(에너지 이동과 관련), 원자결합(탄소와 생명 관련), 액체 환경(액체는 생명의 ‘보편 용제’), 그리고 진화 구조(자기 복제 관련)이다. 6장 원소는 화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는 외계생명체와 외계인을 생각해볼 때 꼭 고려해봐야 하는, 적어도 지구인의 입장에서는 들여다봐야 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담고 있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생명의 방식을 잘 안다. 그 생명은 꼭 인간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엄청난 고도에서 사는 벌레나 열수공에서 서식하는 해저 생물들이 과학계에 안겨줬던 충격을 잊지 않고 있는 과학자들은 외계도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외계인’에 한정해서는 지구와 비슷한 조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믿음이 아니라 체계적 학문에 따른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6장 원소를 보면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콘택트>에서는 외계(베가 항성)에서 온 전파를 수신하는 순간이 아주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콘택트>는 1950년대에 등장한 전파천문학과 드레이크 방정식을 기초로 한 영화다. 그 방정식의 값은 시대와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되었지만 이 기저에는 오늘날 SETI 프로젝트가 그러하듯 외계문명에 대한 인류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1964년에 제시된 니콜라이 카르다셰프의 ‘카르다셰프 척도’도 그렇다. 외계문명의 유형에 대한 이론이다. 돈 링컨은 이 책을 2012년에 썼는데, 향후 길면 몇 십 년 안에 “우리가 유일한 존재인가?”에 대한 확답이 내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나는 화성이나 유로파가 그 답의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가능성과 환경을 생각해볼 수 없다.) 아마 저자의 기대가 현실이 된다면 외계문명에 대한 인류의 로망 ‘수치’는 역사상 최고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   *   *




    <에일리언 유니버스>가 외계를 향한 나의 환상을 부추겼다는 걸 부인하진 않겠다. 과학은 인류의 오래된 질문인 “우리는 혼자인가?”에 답하기 위해 실제로 행동하고 있으며,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혼자이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이는 믿음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믿음과 별개이기도 하다. 과학은 확증에 기초한다. UFO 신봉자들이 그린 외계인의 해괴한 모습과 과학이 제시하는 ‘가능한 생명체의 형태’는 엄연히 다르다. 그렇다고 과학이 우리의 환상을 억지로 막진 않는다. 오히려 나처럼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도심의 밝은 밤하늘에서 익숙한 별자리를 찾아보려고 검은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될 것이다. 돈 링컨도 이렇게 책을 닫는다.


    “하늘을 감시하라.”(36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