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27
영화 《Gravity》의 시작은 인상적이었다.
우주에는 소리를 전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으며
기압도 없고,
산소도 없다.
우주에서의 삶은 불가능하다.
There is nothing to carry sound
No air pressure
No Oxygen
Life in space is impossible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우 희귀한 물질들이다. 우주의 규모에서 우리는 구성의 잔여물로 이뤄진 압축파일과도 같다. 죽어야만 압축파일이 풀린다. 삶의 의지는 압축파일을 풀지 못하도록 애당초 걸어져 있었던 비밀번호이다. ******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해커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암호를 간직한 채 여생을 보내게 된다.
우주관련 서적들, 진화론 관련 명저들을 읽으면서 부족하게나마 내가 쫓는 건 그 암호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우주가 배경인 영화,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 인터넷에서 보는 우주 사진. 하나같이 지금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보다 매우 큰, 너무나도 큰, 크다고 말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큰 무언가를 담고 있다. 큰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린 자연스레 작은 것 역시 바라보게 된다. 이 과정은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다. 인식의 범위를 벗어난 것들 앞에서 느끼는 무력함이 그 추상을 낳는다. 그러나 재밌는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관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세균학자들은 초정밀현미경을, 천문학자들은 허블망원경을 들여다본다. 그러면 그곳의 세계가 마치 우리의 것인 듯 다가오며, 우리는 인식 밖에서도 존재하게 된다. 이 유연함과 자유로움은 식상한 것을 몹시 참지 못하는 우리에게 흥미를 준다. 내가 우주를 좋아하는 건 순전히 그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가 즐겨 듣는 밴드가 '중력'을 주제로 한 앨범을 2년 만에 냈다. 급히 챙겨 듣는 중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이야기. 노래는 그 안에서 사랑을 그려내고 있었다. 우주와 사랑. 이 거창한 낭만은 별자리에 간절함과 그리움을 새겨넣은 저 먼 고대의 사람들을 우리 곁에 불러놓기 충분하다. 물론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그러나 우주는, 천체는 그야말로 도서관이다. 수많은 이야기로 넘쳐난다. 그 위에 우리 역시 많은 이야기를 써넣을 수 있다. 다소 이상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 꾸준한 궤도를 가지고 (우리 눈에는) 달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화성은 멀리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우리의 마음,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온갖 스모그와 밝은 빛 때문에 도시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던 금성이 어느 날 밤 환하게 눈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희망의 도래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스토리텔러가 되며, 우리는 스토리텔러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내가 칼비노의 『우주만화』에서 놀라운 감동을 느낀 까닭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단세포, 막 육지 생활을 시작한 과도기의 생명체, 공룡 등에서 유전자 그 자체로 살아가면서 멸망하지도 멸종하지도 않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상상력. 우주의 초창기. 여러 물질을 가지고 놀이를 해서 우주의 모습이 형성되었다는 신화적인 이야기. 장대 하나로 지구와 달을 오고 갈 수 있었던 신비한 시대의 모험담. 오래 전에 읽었으나, 지금 당장이라도 독서 당시 상상했던 장면들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내게는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잔상들 속에서 나의 우주는 다시 문학적으로 재생되기 시작하며, 물질과 성분의 우주에서 벗어나 '인간의 우주'가 무엇인지 되새기게 된다.
한 교수는 "우주에는 공짜가 없다.", 혹은 "우주는 우리에게 당위를 주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면서 우주에 대한 문학적 입장에 반대되는 의견으로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 강의에 감명을 받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나,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시와 소설, 희극과 영화로써의 우주가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인간의 상상은 고갈되지 않을 것이니, 우주가 그 우물이요, 물질을 먹고 내뱉는 블랙홀이요, 또한 융합되고 폭발하는 초신성과도 같다.
우주에 대한 새벽의 동경을 재료로 휘갈겨 글 한 편을 남겨본다.
아기별이 별들의 탁아소 안에서 수많은 물질을 끌어모으듯
우리도 그렇게 글을 쓰고 읽으니.
p.s 올해에는 다시 한 번 『우주만화』를 읽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