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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남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7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평점 :
2013.02.18
이로써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을 다 읽었다. 즉흥적이었지만 이번 방학의 목표는 칼비노의 작품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반쪼가리 자작(1952)』이 나에게 준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1959)』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칼비노의 3부작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었고, 나는 내친 김에 1957년 작품(3부작 중 두 번째)인 『나무 위의 남작』을 사서 읽었다. 그때, 나는 바우만과 피카르트를 같이 읽고 있었다. 어려운 글과 무거운 분위기 속에 한동안 헤매던 때라 칼비노의 작품은 단비와도 같았다. 학기 중에 틈틈이 읽겠노라고 『보이지 않는 도시(1972)』와 『우주만화(1965)』도 사뒀다.
어쩌면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남에게 소개시켜줄 수 있는, 그런 애정과 사랑을 보낼 수 있는 작가를 만난 것이 아닐까 지금도 조심스럽게 기대해보고 있다. 아직 그의 모든 작품을 읽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를 많이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은 칼비노가 20대 후반부터 약 7년 간 문학적 기틀을 다져가며 만들었다. 작가는 40대에 접어들면 30대와는 또 달라진다고 하니, 서재에 꽂아둔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 내가 그를 정말 좋아하게 될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느낌은 아주 좋다.
좋은 느낌의 이유를 나는 칼비노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 거의 비슷한 대답들처럼 열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한 순간도 독자를 지루하게 하는 법이 없는 그의 재치 있는 문장들, “있을 법 하면서도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놀라운 이야기들, 그러한 진행 속에서 분명하게 제시되는 작가의 역사·도덕관 등. 그런데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낙관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한 국내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칼비노는 지나친 낙관과 부담스러운 비관의 사이를 ‘환상’을 통해 돌파한다.
3부작 중 어떤 작품을 읽어도 독자들은 칼비노가 지금의 우리가 갈구하는, 이 시대에도 그가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부재한 채로 막연하게 추구되고 있는 인간상과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반쪼가리 자작』에서는 메다르도를 둘로 쪼개어 선악의 분리가 갖는 의미를 제시하며, 결국 두 동강 난 두 개의 가치를 하나로 봉합해 인간의 ‘원래’ 모습을 보여준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거의 허상과도 같은, 갑옷 속에서만 정신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기사 아질울포와 그 주변의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통해 인간의 ‘전체’를 그려낸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마지막에 읽은 - 발표 년도로는 두 번째(1957)이지만 작품 속 시대상으로는 가장 최근 작품인 - 『나무 위의 남작』에서는 칼비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미 고인이며,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고, 더군다나 그의 작품을 고작 세 편만 읽었을 뿐이라 그가 정확히 이 작품에서 ‘이상적인 인간’을 독자들에게 제시했다고 확신에 찬 채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이 일말이라도 들게 되는 것은, 아마 대다수의 독자들이 공감하겠지만 이 작품이 세 편의 ‘우리의 선조들’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의 인생을 보여준다는 이유, 그것으로 인한 직감 때문이다.
남작의 이름은 코지모이다. 소설 초반부에는 코지모의 어린 시절이 그려진다. 말하는 이는 코지모의 동생 비아조이다. 코지모는 판에 박힌 귀족 생활을, 단 열 두 살의 나이에 청산하기로 마음먹고 나무 위에 올라가 죽을 때까지 내려오지 않기로 결심한다. 코지모의 부모는 귀족답게 ‘정석’대로 반응한다. 아버지는 아버지처럼, 어머니는 어머니처럼 염려한다. 코지모가 나무 위에 올라가 만난 세상은 다채롭다. 코지모의 첫사랑 비올라(신포로사)도 나무 위에 있다가 처음 만났고, 나무 위를 돌아다니는 어린 좀도둑들도 만났다. 나무와 새를 진정으로 만난 것도 바로 그때였다.
비아조가 말한 것처럼 코지모는 은자(隱者)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물물교환도 하고, 숲에 불이 난 뒤로는 마을 사람들을 단결시켜 스스로 진화대(鎭火隊)를 결성하도록 고취시켰다. 그는 나무 위에 숨어 살지만 마음은 계속해서 땅으로, 그러니까 사람들에게로 굽어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배움을 게을리 한 적도 결코 없었기 때문에 많은 책을 두루 섭렵하고, 시대의 명사(디드로, 볼테르, 나폴레옹 등)들과도 교류했다.
코지모의 독서와 관련해서 대조될 만한 인물은 ‘악명 높은’ 잔 데이 브루기이다. 코지모와의 만남 이후 그도 코지모와 마찬가지로 책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책에 빠져 지내는 바람에 그의 ‘역할’인 도적 두목의 일은 내팽개치게 되고, 부하들에게 등 떠밀려 마지못해 도적질을 하다가 예전 같지 않은 어리숙한 행동 탓에 체포된다. 그는 결국 사형을 당하는데, “목에 올가미가 씌워졌을 때”조차 코지모에게 소설 <클라리사>(1784~85년에 발표된 새뮤얼 리처드슨의 서간문 장편소설)의 결말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주인공이 목을 매단다고 하니 잔 데이 부르기는 “나도 그럴 건대”라고 말한 뒤 직접 사다리를 차고 죽는다.
정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삼촌 카레가(코지모와 비아조의 삼촌으로 등장하는 에네아 실비오 카레가는 왠지 『반쪼가리 자작』에 등장하는 의사 트렐로니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여러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예컨대, 트렐로니는 쿡 선장과 함께 바다로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카레가는 터키로 돌아가려다가 회교도들의 칼에 목이 잘린다. 아마 그가 비밀거래를 마을 사람들에게 폭로함으로써 해안에서 습격당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제공했다고 여긴 듯하다.)의 죽음으로 아버지가 실의에 빠져 죽자, 코지모는 ‘디 론도 남작’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으며, 코지모는 “광적인 이야기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가 늘 결핍된 느낌이 들었다. “사랑을 모르고 다른 경험을 다 해보는 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211쪽)” 이것은 비아조의 말이기도, 코지모의 말이기도 했다.
코지모가 사랑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카를로스 3세에게 내쫓긴 귀족 가문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 산다는 올리바바사에 간 코지모는 가문의 수장인 돈 프레데리코의 딸 중 우르술라와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둘을 결국 가르게 되는 다른 이유 때문에 흐지부지 끝난다. 국왕이 “관대한 사면”을 베풀어 프레데리코의 가문이 스페인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코지모는 나무에서 내려가지 않겠다는, “난 저항을 하고 싶소.”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는 그의 오래된 결심을 끝내 저버리지 않았다. 결국 우르술라는 억지로 끌려간다. (그녀의 결말은 알 수 없다. 올리바바사에서 프레데리코를 선동한다는 이유로 코지모와 대결을 했던 예수회 신부 술피시오는 훗날 코지모와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때 그는 코지모에게 우르술라가 수녀원에서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비아조는 그것이 거짓말일 수 있다고 했다.)
코지모와 비아조의 어머니가 죽고, 두 가지의 좋은 일 - 사실 그 중 하나는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인데 - 이 일어났다. 하나는 비아조가 결혼을 한 것이다. 형을 존경하고, 역시 형의 삶을 동경했지만 비아조는 보통 귀족의 삶을 살았다. 다른 하나는 코지모가 비올라와 다시 만난 것이다. 여후작이자 과부인 비올라는 코지모와 소위 ‘밀당’을 한다. 그런 그녀는 코지모에게 “닿을 수 없는 세계의 일부분”이었고, 그녀가 들려주는 다른 남자들의 이야기에 질투를 느끼게 된다.
로맨티스트인 그녀는 분명 계몽주의자(소설에는 “볼테르주의자”라고 언급된다.)인 코지모와 많은 면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인물이었다. 둘의 사랑 방식은 거의 완벽하게 어긋났고, 코지모는 그녀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그녀는 코지모가 너무 자주 질투심을 느끼는 완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둘은 비올라가 두 명의 기사 - 한 명은 프랑스인, 다른 한 명은 영국인 - 로부터 코지모의 사랑을 실험한 일을 마지막으로 모든 관계를 끝냈다. 둘의 사랑에 대해서 비아조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모든 불만과 변덕은, 금방 절정에 도달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서서히, 절정에 이를 때까지 키워나가려는 만족할 줄 모르는 강한 갈망일 뿐이었다. 형은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가 떠나는 순간까지 그녀를 괴롭혔던 것이다.(307쪽)”
코지모는 뼈아픈 이별 이후 거의 미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전채, 비범한 인물 중 한 사람”이라 존경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직 동생 비아조만이 코지모가 추구하던 세계를 알고 있었다. 가령, 프리메이슨에 가입하여 활동했지만 열의를 갖는 때와 그렇지 않는 때가 들쑥날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못 박았을 것이다. 그러나 비아조는 “많은 단체들 중 정의롭다거나 다른 단체와 완전히 구별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 때문에 형은 철저하게 자연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327쪽)”면서 그가 보편사회를 추구했음을 말한다.
연이은 대격변의 시대에도 비아조가 알려준 코지모의 속마음은 그대로 드러난다. 대혁명의 여파로 옴브로사에서도 ‘불평 노트’가 작성되고, 마을 사람들은 “변화의 열망”을 갖게 된다. 결국 포도수확시기에 십일조를 거두러 온 경찰들이 포도를 담은 통 안에 거꾸로 처박히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자유의 나무’도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분노”를 외쳤다. 다행이도 그들은 진압되었을 때 주동자들이 도망쳤다고 주장하며 석방되었고, 언제나 그렇듯 코지모는 나무 위에서 결코 잡히지 않았다.
칼비노는 코지모와 프랑스 혁명을 나란히 대비시키면서 이것 한 가지를 말하려는 듯하다. 진정한 혁명은 코지모의 주장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충분히 관철된 후에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혁명가들이 보수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형식주의자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352쪽)” 코지모의 글은 ‘죽은 글’이 되었고, 세상은 그가 원하는 보편사회를 등진 채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혁명은 끝나고,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왕정복고의 시대가 열렸다. 이 피비린내 나는 시대에 사람들을 지켜준 건 코지모였다.
칼비노에게도 나폴레옹보다는 코지모가 더 바람직한 인물이었다. 그는 보나파르트가 코지모에게 이런 말을 해주길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이것이 코지모의 꿈이다. “당신 말이 맞았소, 시민 론도. 당신이 저술한 헌법을 다시 내게 주시오. 위원회에서도 통령 정부에서도 제국에서도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던 당신의 충고를 내게 들려주시오.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자유의 나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전 조국을 구합시다!(360쪽)”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패퇴했을 때, 코지모는 파리로 향하는 러시아의 안드레이 왕자와 아주 잠깐 마주친다. 이렇게 프랑스와 러시아는 코지모와 무관한 사이인 것처럼 나무 밑으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젊은이들의 이상과 빛과 18세기의 희망이 모두 재가 된” 19세기에 이르렀고, 칼비노는 비아조의 입을 빌려 그가 소설의 훨씬 이전에 독자들에게 미리 넌지시 던졌던 한 뭉텅이의 말을 다시금 상기시키도록 만든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세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며 세상 모든 것,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은 세대의 출현으로 세상은 변해 버렸다. 이제 나무 위로 당당히 걸을 수 있는 코지모 같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178쪽)”
그 코지모가 늙어 병에 걸렸을 때, 사람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하지만 여전히 뭔지 잘 모르겠는 코지모만의 의미가 상실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오랜만에 사려를 발휘해 그를 보살피려고 했지만 이 기이한 인물은 최후마저도 환상적으로 끝냈다.
나는 그 장면이 정말 멋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거의 운명처럼 나타난 한 열기구의 닻에 뛰어들어 그것을 잡고 열기구와 함께 대양의 한복판으로 사라져가는 모습. 이것은 극적이면서도 황당무계한 결말인데, 사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코지모의 최후, 칼비노가 비아조와 마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코지모’다운 최후였다고 말하고 싶다.
“나무 위에서 살았고 - 땅을 사랑했으며 - 하늘로 올라갔노라.(374쪽)”
이것이 코지모의 비문이 되었다. 비문의 뒤로 옴브로사의 배경이 펼쳐지고, 그곳에 격동의 19세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대로, 그 역시 펼쳐질 것이다. 코지모가 죽자 “옴브로사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나무를 사정없이 베어냈다. 타지에서 들어온 나무들이 옴브로사의 옛 나무들을 밀어냈고, 비아조는 옴브로사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변한 것 같았다고 했다. 야자수의 잎은 빈약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가히 ‘나무의 고장’이 됐을 법한 옴브로사의 상실이 무엇을 의미할 수밖에 없는지, 독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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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들’ 3부작 중 유일하게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반쪼가리 자작』에는 두 개의 ‘해피엔딩’이 겹쳐 있었다. 메다르도가 본래의 모습으로, 그러나 한껏 현명해져서 돌아왔고, 트렐로니는 바다로 다시 떠났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에서는 비록 아질울포가 사라지긴 했지만 소설의 서술자임을 끝내 숨겨왔던 브라다만테가 랭보와 다시 만났고,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는 “이제 달라질 것이다.”라는 풍성한 의미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나무 위의 남작』에서는 사라져버린 이상과 여전히 존재하는 빈약한 현실 사이의, 그러니까 하늘로 사라져간 코지모와 땅에 남은 사람들의 일상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격차만이 오로지 확인될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칼비노 특유의 낙관적 태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코지모 그 자체이다. 사랑에 실패한 것은 분명 그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한 가지 불리한 이유(그러나 코지모가 볼테르주의자라는 것, 우르술라와의 이별, 그리고 비올라와의 파탄 등은 계몽주의가 낭만주의와 결합할 수 없다는 칼비노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소설 속 장치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가 되겠지만 그가 땅 위의 사람들에게 제시한 이상과 직접 헌신적인 행동으로 보여준 이상은 적어도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한 어떤 가치들을 생각해볼 때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칼비노가 그런 사람의 등장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그가 희망하는 것은 우리의 열린 태도이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의 의미에 대한, 우리를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정말 허황된 것도 같은 주장들이 나폴레옹과 코지모, 즉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디오게네스의 관계로 비유되는 것처럼 실은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는 것. 이것이 바로 칼비노의 메시지이며, 또한 ‘환상’이라는 장르가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해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의미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소설을 덮고, 이제 막 밝아오는 우수(雨水)의 나무들 사이에 혹시 코지모 남작이 앉아 있나 쳐다보게 된다면, 칼비노는 우리를 보며 웃어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고, 그렇게 아주 미세하게 바뀌어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