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집쟁이들
박종인 글.사진 / 나무생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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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6

 

 

  고뇌에 가득 찬 두껍고 무거운 책들을 곁에 두는 것은 그 자체로 피곤한 일이다. 읽다 보면 쉽게 지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단박에 읽는 일은 거의 없다. 곰처럼 우직하게 앉아 있을 성격이, 나는 못 된다. 그래서 편법을 쓴다. 이면지에 꼼꼼하게 적지 않고도 고개 끄덕이며 설렁설렁 읽어 넘어갈 수 있는 책들을 간식으로 곁들이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시 읽는다고 해도 별 부담이 없기 때문에 굳이 독후감으로 기억할 필요가 없다. 기억나면 읽는 거고, 아니면 서재에 두는 거다.


  그럴 요양으로 나는 오늘도 별 생각 없이 한 권을 서재에서 꺼내 들었다. 그 책이 꽂혀 있던 칸에는 카를 융, 리오 휴버먼, 리처드 도킨스, 레이첼 카슨, 이름만 들어도 벌써부터 부담되는 유명 작가의 저작들이 유럽의 향기를 뿜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은 철수나 순이, 아니면 영희 정도이다. 저자와 출판사는 들어본 적이 없고, 겉보기에 ‘이거다’ 싶은 것도 없다. 『한국의 고집쟁이들』, 이름도 참 평범하다.


  ‘잠시 넘겨봐야지’ 하던 것이, 그런데 두 시간이 지났다. 뚝딱 읽어버렸다. 사진도 많고, 줄 사이도 널찍하다. 어려운 말도 없다. 속독하는 사람이면 한 시간 안에 읽어버릴 양이다. 그런데 말이다, 읽어버린 시간과 이 책의 내용에는 별다른 상관관계랄까, 그런 것이 없다. 초장(初章)서부터 울기 시작한 나는 뜨끈뜨끈한 욕조물 속에서 글을 읽는 것처럼, 그렇게 읽었다. 몇 번을 훌쩍였는지 모른다. 거실에 있는 가족 모르게 궁상떠느라 휴지 몇 장을 뽑아 썼는데 지금 보니 눈물을 머금고 땅땅하게 공처럼 뭉쳐 있다. 그걸 이리저리 굴렸다. 눈물을 가느다랗게 뽑아 직조한 뭔가를 글로 남겨볼 테다.

 

  고집쟁이. 좋은 고집쟁이. 그들의 삶은 우리가 갑옷처럼 입고 있는 아집이 펄펄 끓어 녹아 흘러내릴 정도의 뜨거운 열정으로 주조되어 있다.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니, 나는 그들의 단단함이 부러웠다.


  소설책 한 권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불편한 이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이들, 한우물만 파다가 돈을 벌지 못한 이들, 혹은 부자가 된 이들, 부자의 자식이었는데 하고픈 일에 돈 다 써버린 이, 아버지가 때려죽인다는데도 일을 배운 이, 유명한 사진작가, ‘엔터테이너’ 스님, 잊혀가는 것들 끝까지 잡고 있겠다고 이 빠른 세상 속 한 구석에서 살아가는 이, 있는 거 다 물려주고 산에 들어와 사는 이. 소설 같은 삶들이다.


  ‘이거다’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부터 조심했다. 감동이 불러오는 섣부른 예단, 아니면 일반화, 그리고 비근한 나만의 거짓말, 그런 것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삶을 따라한다거나 그들의 말을 앵무새마냥 종알종알 별 의미 없이 되뇌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다.


  대신 나는 그냥 읽었다. 저자는 감칠맛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묵묵하게 써내려갔고, 나는 조용히 따라갔다. 그러자 만난 적이 없는 그들이 그리워졌고, 보고 싶어졌다. 남궁정부氏의 구두, 김민식氏의 시, 혜관 스님(아니 ‘사장님’)의 매직쇼, 윤씨 부자의 엿, 멍딩이마을 경씨 할아버지들의 볏짚 공예품. 더 쓸 것도 없이, 나는 그들이 맺은 열매들이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그리워졌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능력에 대한 욕심,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경외, 나의 삶에 대한 비관 따위 등이 그리움의 까닭은 아니었다. 정체를 조금 생각해보니, 그건 그들이 하나같이 뭔가를 지키고 있다는 든든함이었다. 미친 사람들만이 하는 거, 고집. 좋은 고집.


  고집이 가치가 될 수 있을까? 글쎄다. 용기, 정의, 사랑, 배려, 책임감, 사명감 등 그동안 숱하게 회자되어 온, 그리고 강조되어 온 가치들은 알겠는데, 고집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의 고집이 보여주는 건, 신기하게도 내가 방금 말한 가치들의 총합에 가까운 것 같다. 그들에게는 용기가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정의로웠다. 사랑은 죽지 않고 버티도록 그들을 도와줬다. 없는 형편이었던 그들은 없는 사람을 별 망설임과 고민 없이 있는 그대로 배려해줬다. 우리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책임감과 사명감도 있었다.


  어쩌면 고집이라는 것은 이러한 가치들을 하나로 뭉쳐주는 ‘미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좋은 고집과 좋은 가치 사이의 고리.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도 부술 수 없을 저 단단함을, 나는 방금 눈물 콧물 닦으며 읽었던 것이다.


  없으면 남아 있는 것으로 희망을 찾고, 삶이 얼마 남지 않았어도 희망으로 삶을 찾고, 감당할 수 없는 가난에 죽자고 했던 각오를 자신이 하는 일에 죽자고 열정을 토하는 각오로 바꾸고, 그렇게 뭔가를 모으면 나눌 줄 아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치들이 우리가 처음 본 그들을, 그리고 그들을 만든 주변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나는 경험이 미천해서 삶이 뭔지 모른다. 현자들도 삶의 정체를 탐구하느라 고통스러워 하니, 사실 모든 것에 겸손해야 하는 것이리라. 떵떵거리며 사는 이들, 얄팍한 경험으로 제 할 말만 진리처럼 쏟아놓는 이들, 많은 이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서 하는 이들의 말과 삶은 깃털처럼 가볍다. 서재에 꽂아놓는다면 그들의 삶은 철수, 영희, 순이, 그 평범함 정도가 될 것이다. 꽂을 가치도 없다. 서재 공간도 별로 없는데.


  그러나 이 책의 삶들은 투박하고 정나미 나는 제목과는 달리 비할 바 없는 향기를 머금고 있다. 뭐가 중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뭘 봐야 하는지는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느낀 바가, 그래서 나에게는 소중하다.


  저자 박종인氏가 쓴 서문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글귀가 짤막하게 실려 있었다. 나는 눈앞의 일렁이던 호수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걸 애써 참아가며 다시 그걸 읽어봤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다네
  그러나 우리 중 몇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지

 

  내가 앞으로 힘들 때, 지금은 얼마만큼 힘들지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나중에 내가 힘이 들 때, 저들의 고집이 나의 눈을 별로 이끌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큰 위안이다. 이 위안을 12,000원 짜리 책에서 얻는 건 순전히 도둑질이다. 저자도 수 십 년은 거치며 터득한 저들의 삶을 단 며칠만의 만남으로 알아낸 것을 도둑질이라, 아니 ‘행복한 도둑질’이라 했다. 나의 행복은 그의 행복보다 더 짙은 색일까. 비교할 것 없다. 나는 그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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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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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6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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