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기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9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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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5

 

 

 

  칼비노에게 물어볼 것이 많다. 그러나 그는 내가 태어나기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현존하지 않는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비석(碑石)을 앞에 둔 기분이 든다. 살아 있는 작가들에게 시시콜콜 편지나 메일로 뭘 물어볼 성격인 것도 아닌데, 괜스레 그렇다. 죽은 자들이 남긴 질문은 파피루스에 그려진 이집트 문자 같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문자(작품)들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여전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뜻이니까. 나와 같은 기분으로 칼비노 역시 미해결의 문제를 탐구했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원제 : Il Cavaliere Inesistente)』는 그가 1959년에 발표한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며, 인간을 끝없이 괴롭히는 난제, 아니 난어(難語) ‘존재’에 대한 흥미로운 환상소설이다. 그는 제목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만들었다. 하얀 갑옷 속에는 아무 것도 없으나, 명령을 하고 움직이는 존재.


  “존재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힘에 의해 눈을 감고 스스로의 의식을 놓아 버리고 시간의 진공 속으로 잠겨 들었다가 얼마 후 잠들기 전과 똑같이 깨어나서 삶의 끈들을 다시 엮어 나가는 건지 아질울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는 사실 육체만 존재하지 않을 뿐, 의지는 존재한다. 여기서 의지만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과학적 논쟁은 차치한다. 이런 논쟁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육체 없이 존재하는 의지가 얼마나 불안한 상태일지에 대해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다. 그 상태란 쉽게 말해 공중에 붕 떠 있는 아찔함일 것이다. 부재(不在)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까닭에 아질울포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들과 친분을 원하면서도 특유의 거만함으로 수줍음을 가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순하고 사무적이어서 몰두하기 쉬운 일 따위로 항상 자신이 분명하게 무언가를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아질울포 자체가 ‘인식’이다.


  그는 정확하다. 모든 기록을 기억하며, 또한 모든 것을 기록한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함을 추구하고, 동작 또한 정확해서 그의 무용을 따라잡을 용장은 없다. 때문에 적군인 사라센인들에게 그는 두려움의 상징이고, 아군인 카롤루스 대제 휘하 장수들에게는 가시바늘이다. 그는 항상 명확함을 추구할 만큼 의식적으로 불안정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실제’ 존재 자체도, 즉 관계도 불안정하다.


  칼비노는 또 다른 인물들을 연이어 소개한다. 수많은 이름을 가진 구르둘루는 근래 내가 만난 작품 속 인물들 중에서 단연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 세상 이름을 모두 가질 수도 있는 사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그는 정신병자이다. 사물과 자신을 일치시키기도 하고, 해괴한 짓, 음탕한 짓에도 도가 텄다. 아니, 사실 본능과 생각 사이의 경계가 거의 없어 그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할 줄 아는 짐승에 가깝다. 카롤루스 대제가 그를 처음 발견했을 때, 구르둘루는 오리인 양 굴었고, 나중에는 말의 등에 올라타 말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가져다대고 털털 걸어갔는데 칼비노는 그것이 말의 머리인지 구르둘루의 머리인지 모를 지경이었다고 표현했다.


  랭보는 아질울포와 구르둘루의 환상적인 행보에 잠시 가려 있다가 소설 말미에 가서 자신의 존재감을 폭발시키는, 이른바 ‘숨은 주인공’이다. 랭보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적장 이소아르와의 대결을 간절히 바라는 젊은이이다. 열정이 대단하다. 그러나 그는 아질울포를 만나고 “확실히 존재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고, 난삽한 인간들보다는 차라리 “존재하지는 않으나 의식이 분명한” 아질울포가 진정한 ‘존재자’라는 역전의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 쯤 되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들이 거의 눈에 보인다. 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복수에 대한 자신의 열정이 아질울포가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단순히 반복하기만 하는 것들에 대한 열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에 빠진다. 그러다가 ‘존재’하는 것을 의심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이소아르와 대결할 때에 “나의 적이 맞는가?”라고 자문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이 정확한 복수인지도 확신을 하지 못한다.


  이들의 행동은 아질울포의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칼비노가 환상소설들을 쓸 때 사용한 풍자의 전략은 때론 그로테스크하기도 하다. 가령 전쟁의 참혹함이 그려지는 모습이 그렇다. 욕의 등급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통역관이 반드시 참전하는데 그들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랭보가 마주한 실제 전쟁의 모습도 그렇다. 전쟁의 시작 신호가 다름 아닌 ‘기침’이라는 구절에서는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의 모습과 그들이 곧 마주하게 될 죽음의 운명이 묘하게 겹친다. 칼비노는 전설 속의 전투들이 곱게 모셔져 있던 포장지를 뜯고, 실제 그랬을 법한 우스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존재’라는 이 소설의 중심 테마는 우리에게 이 환상세계를 우리의 삶으로 끌어오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4장의 시작이다. 돌연 ‘테오도라’라는 이름의 수녀가 등장해서 앞의 이야기를 쓴 사람과 이어질 이야기를 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이로써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액자소설이 된다. 그러나 테오도라가 소설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차라리 독자들은 테오도라가 칼비노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테오도라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으면서 종종 여러 사건들의 의미를 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테오도라가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다는 것이다. ‘글 쓰는 수녀’라는 가상의 직함을 빌려 칼비노는 고뇌하는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봤을 난점들을 툭툭 떨어뜨려 놓는다. 나는 미진하게나마 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인 탓에 존재의 테마 외에 별도로 테오도라의 고백을 정리해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공간을 빌려 나의 정리를 풀어놓자면 이렇다. 첫째, 테오도라는 자신이 전해들은 바와 상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그녀의 이 고백은 거짓말임이 밝혀진다. 그러므로 나의 정리는 그녀의 거짓말에서 분리된 ‘글쓰기의 한계’만을 뜻한다. 이 거짓말의 정체는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경험할 수 있고, 또한 경험한 바를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일기만 해도 그렇다. 일기는 고작해야 하루의 수 천 분의 1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질울포처럼 모든 것을 남기는 건 살인적인 일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험을 글로 옮기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고, 때문에 아무리 위대한 책이라고 해도 모든 경험을 다룰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글 쓰는 이들은 자신의 경험이 특별히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기는 전제 하에 타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연 그것은 얼마나 정당한 판단일까? 게다가 ‘상상’이라는 것이 더해진다면 우리는 과연 세상의 이야기들에 대해 얼마나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이건 굉장히 초보적인 고민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글쓰기는 영혼을 구원하는 수단으로 적격하지 않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수녀원장이 추천해준 ‘글쓰기’라는 회개 방법을 꾸준히 이어나갈 것이라 당당하게 밝힌다.) 이는 글쓰기가 단순한 이야기나 기록이 아니라, 한 개인의 수양으로 여겨질 때에 글 쓰는 이들이 갖게 되는 고민이다. 이는 실존과도 곧장 연결되므로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화(詩畵)가 하나의 수련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지금도 “배운 것을 글로 쓰지 못하면 그건 배운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통설로 입 모아 전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를 글로 표현하지 못하면 나는 나를 잘 아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성립된다. 하물며 글과 신, 영혼의 관계를 고민할 수 있는 마음 상태의 사람들에게 글은 어떤 의미일까. 종교적 함의까지는 아니지만, 나 역시 글을 쓰며 나를 정화해나가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를 매일 자문한다. 하지만 이처럼 불안한 작업도 없다. 테오도라는 글을 쓰다 보면 “영혼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고 술회했다.


  셋째, 이것은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데, 테오도라가 말하기를,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서술하지 못하며, 만약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별 의미가 없는 일임을 고백한다. 글은 기록이 아니다. 기록과는 달리 다른 부분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글쓰기이다. 누가 어딜 지나서, 어느 마을을 통과하거나 들르는 것, 혹은 어느 성문을 지나서 또 어떤 이름의 섬까지 무슨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 따윈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테오도라는 마치 지도 위에 부대의 이동선을 그리는 장군처럼 (내가 그녀의 행동을 장군에 비유한 것을 빈 말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뒤에서 밝혀진다.) 여러 인물들이 어딜 지나갔는지를 직선과 곡선으로 빠르게 서술한 것은 따라서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한 본질을 올바르게 짚은 것과 같다. 글을 쓰는 것은 아질울포의 기술(記述)적 엄격함과는 전혀 다르다.


  4장 이후부터는 각 장의 시작마다 항상 테오도라가 등장하고, 그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수녀원에서 힘겹게 글을 쓰고 있음을 계속 밝히기 때문에, 내가 위의 몇 문단을 굳이 거칠게 뜯어 붙여 글쓰기에 대해 서술한 것은 결코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 세 명의 인물과 테오도라의 개입으로 돌아가던 이야기가 갑작스레 빨라지기 시작한 건 랭보가 청색 갑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전사 브라다만테를 사랑하게 된 것, 그리고 그 브라다만테가 아질울포의 엄격하고 이성적이며 정확함을 사랑하게 된 것을 비롯해서, 랭보에게 또 다른 기사 토리스먼드가 나타났는데 그는 다름 아닌 스코틀랜드 왕녀 소프로니아의 아들이었고, 소프로니아는 아질울포가 예전에 구해준 처녀였다는 사실이 폭로된 시점부터이다.


  이 폭로는 소설의 전환점이다. 토리스먼드는 콘월 공작의 아들이라는 가짜 신분으로 기사 작위를 유지했다. 그것이 가짜임을 스스로 밝혔으므로 그는 기사 작위를 박탈당할 수 있다. 아질울포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알기에 소프로니아는 처녀였다. 그런데 그녀에게 아들 토리스먼드가 있다. 처녀를 구해준 것이 아니므로 아질울포의 기사 작위 역시 박탈당할 수 있다. 결국 아질울포는 소프로니아의 처녀성을 입증하겠다고 주장했고, 대제는 휴가를 허한다. 아질울포가 떠나면 브라다만테가 그를 쫓을 것이고, 랭보는 브라다만테를 쫓을 것이다. 구르둘루는 아질울포의 하인이 되었다. 토리스먼드도 자신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성배기사단’을 찾아 떠난다. 또 다른 모험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중간에 등장하는 프리쉴라의 의미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 그녀는 색정, 음란, 색욕 등의 상징일 것인데, 아질울포의 이성적인 모습에 반해 소위 ‘플라토닉’한 사랑을 발견하여 아질울포에게 경외 섞인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교만한 여인이다. 랭보나 구르둘루가 아질울포와 전적으로 다른 존재임이 증명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의 또 다른 소설 『반쪼가리 자작』에도 야성의 처녀가 등장한다. 그녀는 반쪼가리 자작 중 착한 자작에게서 교화를 받는다. 그러나 그 교화는 역시 반쪼가리 성공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 처녀와 프리쉴라는 연관될 것도 같다.)


  모험의 묘사는 압축적이다. 소프로니아는 ‘팔미라 수녀’라 불렸는데, 모로코의 군대가 쳐들어와 노예로 잡혀갔다. 그리고 술탄의 새 후궁이 되었다. 계략을 낸 아질울포는 그녀를 구해 도망치다가 난파를 당해 한 섬의 동굴에 그녀를 남겨놓고 대제에게 간다. 그러던 사이 토리스먼드가 섬에 도착하고, 그는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둘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아질울포가 보게 되고, 아질울포는 자리를 뜬다. 대제에게 간 소프로니아는 사실 토리스먼드는 자신의 의붓동생이었다고 고백하고 대제는 죄가 없다며 인정해준다. 이어 결혼을 승낙한다. 랭보는 아질울포를 찾아가지만 그는 갑옷을 벗고 사라진 뒤였으며, 갑옷은 아질울포의 유언에 따라 랭보의 것이 된다. 아질울포의 갑옷을 입은 랭보를 여전히 아질울포라 여긴 브라다만테는 랭보와 관계를 멪지만 사실을 알고 난 뒤 랭보를 내차고 도망간다.


  내용 상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할 것 같은 이 중세적인 이야기는 빠르고 짧게 묘사되어 있다. 만약 독자가 칼비노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난 것이라면 그가 너무 성기게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을 읽은 이라면 이런 그의 서술 방식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칼비노는 테오도라의 말을 빌려 구태의연한 변명을 하는데, 이 변명이 예기치 못한 반전이다. 테오도라는 다름 아닌 여전사 브라다만테였다!


  앞서 나는 불가피하게 괄호를 동원하여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첫 번째 고백이 거짓말이라고 밝혔었는데, 사실 그녀는 모든 것을 경험했다. 여전사였으므로 저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고, 전투와 사랑, 그리고 명상을 했다. 따라서 그녀의 글은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신뢰 있는 글이다. 그녀는 랭보를 내찬 뒤 수녀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기를 자신이 글을 빨리 전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랭보가 자신에게 왔음을 알기 때문이며, 그녀는 랭보를 곧 만나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사랑에 대한 열정이 바로 반전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자는 사라졌고, 살아 있는 자의 뜨거운 열정만이 남아 있다. 소설은 끝났고, 그녀는 분명 랭보와 만나 사랑을 나눴을 것이다. 이만한 실존이 또 어디에 있을까? (또 하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존재의 의미 중 하나는 ‘평등’인데, 이는 토리스먼드가 섬에 도착해 소프로니아를 만나기 전에 쿠르발디아라는 마을에서 성배기사단의 역겨움과 마주한 이야기에서 도출된다. 그는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오로지 ‘성배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성배기사단이 마을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분노를 느꼈으며, 마을 주민들을 위해 싸웠다. 훗날 카롤루스 대제는 그와 소프로니아를 결혼시키고 쿠르발디아의 통치자로 임명했는데, 마을에 도착한 둘에게 주민들은 투쟁으로 얻은 동등함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결국 둘은 백작의 높은 지위를 포기했다.) 아질울포는 프리쉴라가 교태를 부리며 사랑을 갈구할 때에 사랑의 이성적인 것들에 대해 장황하고 엄숙한 언변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랭보는 브라다만테와 사랑했고, 토리스먼드는 소프로니아와 결혼했다. 유일하게 사라진 존재는 오직 ‘존재하지 않는 자’였다.


  『반쪼가리 자작』에서도 그러했지만 칼비노는 극단의 대상들을 놔두고 가치와 의미가 대립하는 현상에서 모순을 찾아내는 작가이다. 존재하지 않는 자, 존재는 하지만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자, 존재하는데 존재하는지 모르는 자. 이성적이고 엄격한 자,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자를 동경하는 자, 그리고 전혀 그렇지 않은 자.


  우리에게는 이 모든 면들이 존재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소설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정확하고자 하는 사람은 실제 정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질울포는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어떻게 정확하기만 할 수 있단 말인가! 육체가 없어 심해의 보행이 가능하고, 아무리 걸어도 숨 한 번 차지 않는다는 이점이 우리에게 뭐가 중요한가! 한편으로는 심지어 구르둘루의 해괴망측한 행동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랭보와 토리스먼드는 젊은 존재의 심각한 방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의 ‘한 때’, 혹은 ‘지금’이자 ‘미래’인 것이다.


  확실한 존재에는 혐오스러운 존재와 영예로운 존재가 있다. 불안한 존재는 부정하는 존재와 의심하는 존재를 거느린다.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에게 속해 있는 존재이다. 다행이도 우리의 여러 존재들을 『반쪼가리 자작』에서와 같이, 사라센인들의 대포 앞에 세워두고 정확하게 몇 등분으로 나눠 우리 앞에 대면시킬 수는 없다. 존재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다. 물어보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의 질문에 우리가 답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은 나의 존재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타인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가 경합하며 열정을 만들어낸다. 칼비노는 그 중 열정적인 사랑이야말로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한 ‘존재의 근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뜨거워 테오도라가 소설을 급하게 마치고 독자들을 이 책에서 퇴장시킬 만큼 위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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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9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9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