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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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6

※ 수요일에 우리 학교에서 김애란 작가 초청강연을 한다. 이번 학기, 나는 김경수 교수님의 현대소설론을 듣고 있는데, 이 리뷰는 초청강연을 위해 미리 읽고 제출할 간단한 레포트 글이다.

 

 

1. 너의 여름은 어떠니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미영이 팔뚝에 남긴, 혹은 그녀의 팔뚝에 남겨진 상흔과 병만의 사막 이야기는 나에게 추억과 현실에 대한 상징으로 다가왔다. 나도 미영처럼 누군가의 팔뚝을 잡았을 것이고, 악력의 세기가 때론 지나친 집착 탓에 상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셌을 것이다. 그 힘의 흔적과 상처로부터 아픈 추억이 새겨지게 되었을 것이다. 사막은 바로 그러한 현실이지 않을까. 비가 갑자기 쏟아지면, 대책 없이 당하게 된다는 그곳. 추억은 “고개 좀 들어, 미영아. 고개 좀 들어, 제발.(pg.37)”처럼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예기치 않게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사막에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미영의 눈물은 그런 까닭에 의미가 있다. 만약 선배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아무런 고통의 자각도 없었더라면 미영은 병만의 장례식에 가서 소설의 마지막에서처럼 울 수 없었을 것이다.

 

 

 

 

2. 벌레들

 

  장미빌라에 이사해온 뒤 아내가 가졌던 한동안의 행복한 나날들이 남편의 첫 외박, “해충의 우두머리(pg.73)”라 묘사된 애벌레, 그리고 온갖 날카로운 소음들로부터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그간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였던 임신이 “성공적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pg.81)”는 출산 때문에 수포로 돌아갈 참이다.


  “신성하고 아름답게(pg.54)” 바람 따라 흔들린다고 묘사된 나무가 굴착기의 맹공으로 쓰러질 때, 아내는 산통을 느꼈다. 우연히 동시에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A구역으로 떨어진 “손에 안 맞는 결혼반지를 넣어둔 파란색 벨뱃 상자(pg.74)”를 줍기 위해 내려갔을 때, 아내는 나무의 뚫린 밑둥에서 쏟아져 나오는 벌레들에 놀란다. “자궁이 적출된 여자처럼 헤프게 다리를 벌리고(pg.79)” 있는 것 같은 광경 바로 옆에서 아내는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출산을 시도한다. “살려주세요(pg.80).”라는 아내의 비명은 굴착기가 자신의 몸을 찍어 내릴 때 나무가 지르고자 했던 외마디가 아니었을까.


  한편, 결혼반지가 손에 맞지 않았다는 구절로부터 소설의 이후를 상상해볼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했다. 불투명한 출산의 여부, 외박하는 남편이 혹시 외도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보는 아내의 육감, 그리고 불쾌한 환경 등이 비극을 심화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3. 물속 골리앗

 

  언제 단수될 지 알 수 없어 꾸려놨던 ‘물봉투’들을 터뜨리는 어머니의 모습으로부터 나는 자신이 쌓아둔 희망들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상다반사의 이야기들을 떠올려봤다. 「물속 골리앗」에는 죽음으로부터 탈출하고자 애쓰는 모습들이 절박하게 묘사되어 있다.


  끝없이 내리는 비는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재앙들이 무상(無想)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뜻하는 듯하다. “폭우 속, 사물들은 흐려졌고 그럴수록 기이한 생기를 띠었다.(pg.87)”는 구절에서처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과 규모를 지닌 역경 앞에서는 명확한 판단을 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벌레들」에서처럼 「물속 골리앗」의 나무도 인세(人世)에 비춰 본 상징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답게 번식하고 나무답게 죽는 것(pg.86)”이야말로 나무가 지닌 생의 의지인 것처럼 인간의 것 역시 그러하다. 소년은 나무답게 죽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말을 하는데, 사실 인간의 경우도 그렇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답게 죽는 것이란 소년이 처해 있는, 흡사 재난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무지막지한 재앙 앞에서 처참하게 물에 불어 식어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남는다는 것’ 사이의 미묘한 어감 차이가 「벌레들」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김애란은 절박한 소년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후자가 바로 현실일 수밖에 없는 비극으로부터 일말의 희망을 끌어내려고 한 것 같다. 아버지가 즐겨하던 체조가 ‘나’에게는 물 밖의 추위를 견디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어지는 것도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의 일정한 하나의 방향처럼 살아남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에는, 소설 상에서는 어렵다. 그런 삶에 나의 경험을 비춰보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4.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흔히 ‘루저(loser)’라 불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감동받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의 앞부분을 읽다가 ‘용대’의 처지를 알게 됐을 때 내가 갑작스레 이면지에 적은 질문이었다. 친척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그의 상황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해될 법한 것이다. “이 새끼가 하다 하다 별 지랄을 다 한다(pg.136)”며 용대의 뺨을 날린 형의 행동도 그러하다. 그렇게 비난받던 용대의 삶을 후비고 들어온 임명화의 의미는, 때문에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용대가 하는 일이 택시기사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운전대를 잡고 그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을 것인데, 그 중에는 “반짝이는 동전(pg.144)”처럼 값어치 있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감동적인 노래는 끝내 그것의 정체를 몰라야 더 좋은 것으로 남는다고 한 여자의 말이 용대에게는 임명화의 기억과 대응된 것이다. ‘지훈’에게는 잘 살아있다고 둘러댔지만 이미 죽은 아내에 대해서 용대는 끝내 죄스런 울음을 터뜨린다.


  위암에 걸린 줄 진짜 모르고 시집온 거냐고, “뒤지려면 혼자 뒤지지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그러냐.(pg.163)” ‘쌍년’이라 윽박지른 그의 진심은 그녀를 살리려는 간곡함이었겠지만 마음 한 켠에는 욕이 담겨져 있었고, 그것이 지금껏 살아왔던 그의 성격 탓에 마구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아내 나라의 말을 배우며 스스로 나아지고 있다고 여긴 그에게 아내의 죽음은 어쩌면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여기서 멉니까?”라는 마지막 음성으로부터 어렴풋하게나마 추측된다.


  우리가 무언가에 올라타고 - 택시이든 버스이든 지하철이든 케이블카이든 상관없는 모든 탈 것들 - 어딘가로 향하고자 하는 목적 지향적인 삶은 비극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고, 때론 비극 없는 도착지가 여기서부터 얼마나 먼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5. 하루의 축


  “어째서 이렇게 한 가족의 단란이 시시하게 망가지는가(pg.196)”라는 과거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기옥 씨’는 끝내 찾지 못했다. 외동아들 ‘영웅’에게 이어놨던 단 하나의 끈도 이미 망가진 가족의 단란을 상징하는 아들의 편지, 사식 좀 보내달라는 짧은 편지로부터 끊어질 듯 위태롭게 대롱거렸다. 일방적인 아들의 훼손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뭐 흘릴까(pg.192).”


  기옥 씨의 이 궁금증을 비롯해서 그녀가 내내 공항에서 보는 ‘버리는 것’, ‘흘려진 것’, ‘배출한 것(싼 것)’, ‘헤어지는 것’ 등이 선명하게 드러내는 의미는 우리의 삶에 여기저기난 생채기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다만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든 가려서 타인의 눈에는 띠지 않게끔 처신하는 것뿐이리라, 생각한다.


  혹 처신이, 아니 ‘자기방어’가 순탄치 않는 날이면 파트장 앞에 탈모를 ‘노출’한 기옥 씨와 같은 입장에 되고 말 것이다. 무심코 훼손당한 삶의 여러 면들이 「벌레들」에서 아내를 놀라게 한 큰 애벌레처럼 고개를 벌떡 든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무서운 걸 보기라도 한 듯(pg.201)” 뒷걸음치게 될 것이다.

 

 

 

 

6. 큐티클

 

  「큐티클」의 ‘나’는 나에게 중심이 서 있지 않은 인물로 비춰졌다. 그건 곧 나 역시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그녀의 조심스러운 행동들마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생산력에 맞춰 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를, “유행과 문법(pg.213)”에 따르면 안색이 얼마나 맑아지고, 심지어는 아직 20대인데도 어제보다 오늘의 얼굴이 더 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불안 그 자체이다. 누군가의 잘 묶여진 신발끈을 보면 나의 신발 매무새도 한 번 고쳐봐야 할 것 같은 일상적인 비교와 그로부터 말미암는 불안. ‘자기관리’라는 항목에 체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일종의 ‘태만죄(怠慢罪)’가 성립될 것 같은 불안이다.


  이렇게 나의 어딘가를 관리한다는 것은 그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상의 또 다른 비극은, 보여주고 싶은 것보다 보여주기 싫은 것이 타인에게 기억된다는 것에 있다. 소위 작품 속 ‘겨땀’의 창피함처럼. 그리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 깨져버린다는 비극도 있다. 때문에 손톱이라는 조그마한 곳에 들어가는 시간이나 노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어떤 큰 것, 혹 ‘궁극적인 것’이라 표현할 수 있는 삶의 어떤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데, 일상은 배꼽을 배보다 크게 만들곤 한다. 크고 작은 것 사이의 맥락이 뒤집혀버린 일상은 하릴없는 말이나 하고, 맥주나 마시고, 엉덩이를 털며 일어서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힘들 것이다.

 

 

 

 

7. 호텔 니약 따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의외로 죽이 잘 맞는다. 신중과 배짱. 20대의 불안한 삶을 서로에게 기대어 왔던 것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충족시켜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위안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내 몫을 살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지막 걸음은 혼자 걸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은지와 서윤이 처한 상황은 이렇다. “세상이 조금 만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느 날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시한 인간이 돼 있던 거다.(pg.251)

 

  「하루의 축」에 등장했던 공항에서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한 건 「호텔 니약 따」에서였다. (혹 기옥 씨가 은지를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든지 출발은 산뜻하고, 그 기분은 한동안 이어진다. 「벌레들」에서처럼, 하지만 그 행복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불협화음이 생기고, 여러 사건들이 두 사람의 사이에 개입된다. 전 세계 청춘들의 성지(聖地)라 흔히 불리는 카오산 로드에서 서윤과 은지는 끝내 틀어지게 된다. 이등변삼각형의 한 변이 순간 기형적으로 늘어나면서 도형 자체가 깨져버릴 것 같이 소설은 끝이 난다. 먼 타국에서의 비극은 막연한 고립감마저 불러일으킨다.

 

 

 

 

8. 서른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니까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거쳐갔겠죠? 어떤 건 극복도 했을까요? 때로는 추억이 되는 것도 있을까요?(pg.293~294)


  「서른」에서 발신자인 ‘나’가 ‘면목동 학원의 아이들’에게 가졌던 마음,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pg.297)”라는 구절을 앞에 두고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아직 자라지 않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고 가는 버스의 TV에서 우연찮게 얼마 전부터 나는 청출어람(靑出於藍)과 비슷한 의미의 사자성어를 반복적으로 보게 됐다. 후배가 나보다 미래에는 나아질 수도 있으니 존경하듯 대하라는 뜻이었는데, 막상 사자성어의 정체가 생각나진 않는다. 여하튼 나는 그것을 떠올리며 ‘나’의 푸념을 “너는 자라 나보다 큰 사람이 되겠지……더 멋있어지겠지.”라고 바꾸고 나만 모든 것이 잘 안 되가는 중이라는 근거 없는 불안함을 보채봤다.


  남자친구의 속임수에 빠진 다단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끌어들인 ‘혜미’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고백은 열심히는 산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런 사람(pg.316)”이 되는 이 시대 청춘들이 털어놓을 수 있는 고백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만일 언니가 지금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아마 제가 혜미가 있는 병원에 찾아갔다는 뜻일 거예요.(pg.318)” 다행이도 ‘나’는 모든 것을 감당하기 위한 일말의 시작으로 ‘혜미’를 찾아간 듯하다. 그러나 이미 식물인간이 된 ‘혜미’에게서 ‘나’가 들을 수 있는 것이란 어떤 종류의 용서가, 혹은 복수심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청춘의 한 자화상이 ‘나’의 삶의 중앙에 버티고 ‘나’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무서운 대면의 순간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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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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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2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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