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무엇인가
김대행 지음 / 문학사상사 / 1992년 7월
평점 :
절판


2012.08.21

[2012년 여름방학 논픽션 11선 中 제 9권]

 

 

  지금은 웃고 지나갈 추억이나, 나는 중학생 때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는 꿈을 꿨었다. 무엇이 문학을 그리도 쉽게 보게 했는지, 혹 문학을 일상처럼 여기게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나는 글을 퍽 많이 쓰고 지웠다. 문학비평이나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어려운 기법 같은 것을 공부하지도 않은 채, 나는 글로 일상을 실험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접하고 배울수록 나는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차츰 깨닫게 되었다.

 

  벽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벽을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없다.”고 선언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를 마지막으로 쓴 날은 입대 이틀 전이었다. 벌써 7년 전이다.


  국문학과는 고등학교 시절의 꿈 때문에 지원했었다. 주변에서 ‘문학소년’이라 불러주는 것도 듣기 좋았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이 길이 아니다.”라고 단언해버렸는데, 내가 음미하던 문학의 묘미를 학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건 카뮈의 <이방인>이나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을, 단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대표작이라는 까닭에 사들어 - 고등학생의 어린 머리와 부족한 경험, 방어적인 감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 문학의 벽을 느낀 것과는 전혀 다른 상처를 줬다. 그 길을 4년이나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거의 자폐적 방황의 길로 빠뜨렸다.


  시간이 지나니까 내성은 생기더라.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는 ‘참을성’도, 물론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지만 조금씩 생긴다. 학기 내내 부모님께 “다시 태어나면 국문과 절대 안 갈 거예요.”라고 투정을 하면서도, 국어교사이신 두 분의 여러 조언을 받아가며 정말 ‘꾸역꾸역’ 공부했고 다행이도 성과는 좋았다. 그래도 여전한 시각(혹은 편견)은 남아 있다. 비평은 문학의 양파껍질을 한 꺼풀 벗기는 작업이 아니라, 문학을 양파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


  어려운 이론을 공부할 때는 쉬운 책을 곁들여 줘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쉬운’이라는 형용사가 ‘문학의 본질에 더 가까운’이라는 형용사구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기회를 김대행氏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찾았다.

 

 

*   *   *

 


  이 책이 유명한지는 모르겠다. (물론 국문학계에서 저자의 명성은 높다. 수능 총감독을 한 적도 있는데, 사실 그보다는 시조 연구가 유명하다.) 약간 촌스러운 겉표지에, 역시 약간 촌스러운 폰트. “재미있고 쉽게 풀이한 교양강좌”라는 노골적인 선전문구도 그렇고, 약간 누렇게 바란 속지들을 보니, …, 그런데 이 책은 대체 언제부터 내 방에 있었던 것일까. 펼쳐보니 군데군데 얼핏 기억나는 구절들도 있다. 위로받은 흔적들이다.


  “중뿔나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뭐니 하는 난삽한 용어를 갖다 붙이는 것도 실상에 어긋난다. 우리는 농부의 모내기 소리도 문학이라고 하고, 자손에게 전한 집안 어른의 내력을 적은 것도 문학이라고 했는데, 요즘에 와서 조금 선을 긋고 칸을 지어서 구분하려고 한다고 이해하면 그만이다.(p.226)


  이런 말도 있다. 문학이 ‘거짓말’이라는 이론의 설명이다.


  “문학의 이런 성격을 두고 의사진술(pseudo-statement)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유명해진 이가 리처즈(I. A. Richards)라는 사람이고, 문학 용어를 풀이하는 책을 보면 이 용어에 대해 자세히 설명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런 일로 밥을 먹는 평론가나 학자들에게 맡겨 두면 된다. 의사진술이라는 말은 결국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문학은 거짓말이라는 말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p.115)


  그가 쓴 논문이, 아마 읽어볼 수밖에 없는 나와 같은 국문학도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이와 같이 쉽진 않다. 그러나 이따금 비평이라고 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거나 책으로 나온 것들 - 그것도 “쉽다.”는 것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문구가 광고로 들어가 있는 것들 - 을 보면 소위 ‘대중서’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저자 개인이나 저자가 속한 집단, 혹은 학계의 지적수준을 뽐내는 것 같은 뉘앙스를 주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어려운 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아예’ 안 썼다. 이런 종류의 책들을 문학팬들은 마땅히 반겨야 할 것이지만 많이 읽은 이들일수록 어려운 비평에 유혹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상위 독자’와 ‘그렇고 그런 독자’의 층위를 나눈다. 어느새 우리나라의 비뚤어진 ‘문학 문화’는 롤랑 바르트, 라캉, 고진 등을 알아야 문학에 대한 글을 번듯이 내놓을 수 있는 풍경을 만들었다.


  물론 누구나 작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작가가 발표한 작품들 중에는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든지 어린이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수준의 것이 간혹 있기도 하다.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은 거의 없다. 그러나 창작과 소통이 다소 제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독자의 수용’은 그보다 훨씬 넓은 운신의 폭을 갖는다. 나에게 어렵다면 그것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거나 지식을 갖춘 후에 다시 읽으면 되는 것이고, 나에게 알맞다면 그것이 별 인기가 없는 작품이거나 혹 ‘유아용 책’이라고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휘황찬란한 비평들이 굉음을 내며 하늘을 날고 있는 이 시대의 풍경 속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문학은 목소리를 가질 기회를 번번이 잃고 있다.


  “우리 살아가는 확인이 문학으로 가능하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 ‘밤새 안녕’을 묻듯이 우리는 문학을 통해 인사하리라.(p.237)


  문학은 생각보다 간단한 기능을 갖고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건 거의 구분이 없는 거대한 물질덩어리일 뿐이다. 그래서 장르구분이나 ‘작가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별로 효율적이지 못하다. 시인이 소설을 쓰고, 소설가가 시를 쓰면 ‘시인이며 소설가’, 혹은 ‘소설가이며 시인’인데, 둘은 전혀 다르지 않고, 여기에 그들이 문학비평까지 한다면 ‘시인이며 소설가, 그리고 비평가’인데 말이 너무 길어서 ‘작가이며 비평가’라고 한다. ‘시인이며 소설가’가 곧 ‘작가’인 셈이다. 하지만 김대행氏의 말마따나 일기도 문학이니, 이건 정말 복잡한 일이 된다. 이러한 ‘구분 없음’이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저자는 그것이 옳다고 말한다. 미술로 예를 들자면 중세시대에는 수도승들이 필사(筆寫)도 했고, 그림도 그렸다. 그렇다고 그들을 “수도승이며 필사가이고, 또한 화가”라고 하진 않는다. 그땐 거의 다 그랬으니까.


  더군다나 문학이 ‘자기표현의 길’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학을 향유할 기회를 갖고 있는 셈이다. 나는 미술블로그를 할 적에 몇몇 주변 분들과의 추억을 만들려고 “여러분이 미술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메일로 보내주세요.”라는 부탁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웃분들이 메일에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어서…”라는 겸손의 추신을 달아주셨다. 그 말이 사실일수도 있다. 바쁜 중에 정말로 글을 별로 써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글’이라는 것에 대한 왜곡된 정의가 있다. 뭔가 갖춰야 할 것 같은.


  김대행氏는 작가의 모습을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엉덩이의 수술 자국”이라 말한다. 글은 치부를 드러낸다. (혹 그것이 보통 용기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결정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창피한 일일수도 있다. 글에는 허점투성이가 많아 굳이 분석해 따지려는 이가 있으면 우리의 대부분은 언제든지 약점을 잡힐 수가 있다.


  그러나 글쓰기란 원래 그런 작업이다. 다 보여주는 것, 혹은 일부라도 보여주는 것. 그건 문을 여는 행위이다. 따라서 작가는 우리에게 문을 ‘열어놓은’ 상태이다. 공감과 형상화의 언어로 되어 있는 그 방, 혹은 건물의 바깥은 우리가 체험할 공간이 된다. 그 공간을 저마다의 눈으로 보는 연습이 저 어려운 이론을 섭렵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훨씬 어울리는 일이 될 것이다. 어려운 건 나중에 해도 된다.


  “문학을 우리 일상 속으로 가져오는 데 주저가 없기를 바란다.”


  오랜 세월 학자의 삶을 산 저자의 이 마지막 문장에는 어떤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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