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2012.07.05
[2012년 여름방학 논픽션 11선 中 제 4권]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유명한 왕의 셋째 아들이 데리고 있는 궁녀였다. 하루는 어떤 선비가 궁에 찾아와 시를 짓는데, 그녀가 벼루에 먹을 가는 시중을 들게 되었다. 선비와 그녀는 첫눈에 반해 서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 왕의 셋째 아들은 둘 사이의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마침 여인이 선비를 보고 싶어 궁을 몰래 빠져갔으나 한 종놈의 밀고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물증을 얻게 된 왕의 셋째 아들은 크게 진노하여 그녀와 다른 궁녀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했다. 다행이 궁녀들의 애긍한 설득으로 화를 푼 그는 그녀를 별궁에 가 뒀다. 가슴에 난 구멍을 그녀가 어찌 막을 수 있었을까. 결국 목을 맸다. 소식을 들은 선비는 절에서 향을 피워 그녀를 기린 뒤, 그녀의 뒤를 밟았다.


  일상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수많은 조각들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트린다. 하지만 책 앞에 앉아, 자욱한 물안개를 거두는 햇빛을 기다리며 옛 추억을 되살려보면 그것들이 선명하게 돌아올 때가 있다. 고전문학은 아마 그런 의미일 것이다. 학창시절의 고리타분한 무언가로 기억되던 그것을 새삼 진심으로 읽게 되는 때. 그렇다. 저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비극, 조선 유일의 비극 소설 <운영전(雲英傳)>이다.


  나에게 ‘궁녀’는 운영의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밀폐된 공간 속에서 단 한 사람만을 섬기고, 문예에 능하여 흡사 ‘해어화(解語花 :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으로 보통 기생을 일컫는다. 원래 당 현종이 양귀비를 부를 때 썼던 말이다.)’를 연상케 하는 그녀들. 치열한 궁궐의 삶을 버텨가며 느꼈던 엄청난 (목숨을 건) 긴장과 암투, 살육. 폐쇄된 집단 속에서 어떠한 불합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지 조금이나마 느낀 나의 경험으로, 그녀들의 삶은 압축기 속의 답답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만면에는 미소를 머금거나,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때문에 나는 궁궐이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 종종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부족한 이해에서 연유한 이미지, 오해 그 자체이겠으나, 결과적으로 나는 덕수궁 돌담길에서 약간의 낭만을 덜어내야 했다. 머리를 조아리며, 가마 옆을 종종 걸음으로 쫓아가는 여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신명호氏의 <궁녀>를 읽기 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궁녀에 대해 위처럼 정리해봤다. 과연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학자의 객관적인 (하지만 학자적 애정이 풍부한) 시각으로 고증된 궁녀의 삶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최근 궁녀를 소재로 한 여러 영화들에서 비춰진 잔인한, 혹은 에로틱한 모습은 정말 그녀들의 실제일까? 나는 들여다봐서는 안 될 구멍을 엿보는 것처럼 한 장 한 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이 왕족의 삶과 매우 밀착된 일상을 보내면서도 넘어서는 안 될 마지노선을 지켜야만 했던 것처럼, 이라고 비유하면 어울리는 모양새일까.


  두괄식으로, 이 책에서 느낀 바를 다소간 요약하자면 일단 그녀들의 삶을 절반 정도는 이해했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나머지 절반은 궁녀에 대한 고증자료의 빈약한 수량(신명호氏가 믿음직한 자료로 선정한 것은 <실록>, <계축일기>, <인현황후전>, <한중록> 등이다.)으로 인해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 ‘실제’들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또한 저자가 상세한 문헌들을 쉬운 말투로 소개하며 독자들의 이해를 확장시킨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가 밝혀낸 그녀들의 삶은 우리에게 쉽게 체감되기 힘든 것이라, 때론 그 이해가 또 다른 신비를 낳기도 한다.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궁중 생활의 민낯”과 “조선 역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치부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드러나더라도 끝내 치부로 남아 있는 것.


  1장에서 궁녀의 실체를 알아내야 하는 역사학적인 이유와 고증 작업의 방법을 소개한 그는 대표적인 우리의 오해로 의자왕과 삼천궁녀를 든다. ‘역사를 빛낸 100명의 위인’인가,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위인 이름 외운다고 즐겨 불렀던 그 노래에도 “삼천궁녀 의지왕”이라는 가사가 명확히 들어 있다. 저 레퍼토리가 궁녀의 비극적 이미지를 유행처럼 퍼뜨렸던 것일 텐데, 이 오해를 이해로 바꾸기 위해 저자는 2장에서 대표적인 궁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부끄럽지만 사실 그 중 내가 아는 사례는 장녹수가 유일했다.)


  세종과 행복한 삶을 보냈던 신빈 김씨(본래 소헌왕후의 궁녀였다. 소헌왕후는 세조와 안평대군의 어머니이다.)의 이야기, 광해군의 ‘그녀’ 김개시의 이야기, 김옥균과 갑신정변을 도모한 고대수의 이야기, 명나라에 가서 영락제(명나라 제 3대 황제. 주원장의 넷째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씨의 이야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녀였으나 천주교 금지령(1612년)으로 인해 유배된 오따 줄리에의 이야기, 쑤저우 출신으로 소현세자(인조의 맏아들)의 ‘귀국선물’이 되어 조선으로 들어온 굴씨(그녀의 묘는 필자가 사는 일산과 꽤 가까운 곳에 있다. 지금의 고양외고가 있는 대자동 일대이다.)의 이야기 등은 그녀들이 실제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3장부터 6장까지는 궁녀들의 삶을 문헌고증을 통해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공간으로, 접하기 쉽지 않은 자료들을 간략하게 읽어볼 수 있다. 궁녀를 발탁하는 과정, 궁녀의 종류, 입궁의 제한, 일과 근무지, 궁녀와 하녀의 관계, 월급, 재산, 패션, 동성애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하나하나 꼼꼼하게 정리해 다시 한 번 되새겨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마다 성향이 다르니, 이 책을 읽고 오해가 어느 정도 이해로 교정되는 정도들도 편차만별일 것이다.


  나처럼 고등학교 시절의 어렴풋한 이해(‘역사관’이라도 할 수 없을 취약한 이해)로 책을 읽으며 더러 “역시 그랬군.”이라고 하든가, 아니면 대개 “그랬던 것이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겠고, 본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일찍 책을 덮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이 책을 읽든 간에 독자들은 서문에 적힌 저자의 의도를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그는 “조선 시대 역사 자체까지도 상상의 영역으로 빠지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부분의 오해가 전체의 오해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접하는데 있어 픽션만큼 매력적인 통로도 없다. 소설 읽는 것보다는 드라마나 영화 보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 드라마와 영화가 소설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보기 전에 ‘사실(史實)’이 적어도 두 번 이상 각색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물론 이러한 복잡한 생각을 픽션 감상에 일일이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고, 때론 억지인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힘들다.


  하지만 역사는 픽션이 아니다. 누리꾼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갯소리이겠으나, 한 초등학생이 시험에 나온 “한글을 창제한 사람은 누구일까요?”라는 주관식 문제에 “한석규”라고 답을 썼다는 일화는 과소평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일반인들에게 역사공부를 강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적어도 올바른 역사를 판명하려는 역사학자들의 노력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신명호氏는 무명(無名)의 역사에 눈을 두려는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으레 그러는 것처럼 서문을 한 번 더 읽다가 “이 책이 이름 없이 살다 간 수많은 궁녀들 그리고 그 궁녀들이 살아갔던 한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구절에서 순간 먹먹해졌다.


  출판광고계에서는 역사적 자료를 모아 쉽게 소개했다는 것을 이 책의 의미라고 대체로 선전하는 모양이다. 독자인 우리는 그 이면의 의미를 찾아서,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찾아서 조금 더 걸어 가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만약 경복궁이든지 창덕궁이든지, 아니면 다른 궁을 갈 기회가 있다면, 머리를 조아리고 궁내 모든 비밀을 함묵하며 그 역사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름 모를 그녀들을 한 번 기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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