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7 



 

 

 

 

 

 

  디터 젱하스의 <문명 내의 충돌>은 지난 계절학기에 들은 종교관련 강의 레포트를 위해 참조했던 것이다. 비록 요한 갈퉁과 강인철 교수의 책을 기반으로 써야 한 레포트였지만 사실 몇 주 간의 심각한 고민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디터였다. 그가 문화에 대해 깊게 알고자 하는 신중한 독자들에게 준 메시지의 중요성은 상당히 크다. 언젠가 제대로 복기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긴 호흡으로 그의 책을 샅샅이 파헤쳐보고자 한다. 몇 편에 걸쳐 긴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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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터는 문화의 불연속성과 투쟁에 대해 꼼꼼하게 역설하고 있는데, 그와 반대되는 테제는 그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이었다. 새뮤얼의 테제는 문명 간의 갈등이 심각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밝혀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요한 갈퉁 역시 이에 동조하여 비폭력 평화주의를 역설했다. 하지만 같은 평화주의자로써 디터는 문명충돌의 세계적 현상을 다르게 바라본다. 그가 보기에 문화는 명백한 실체가 아니다. 문화는 카테고리로써 규정할 수 없다. 여기서 디터는 한 학자(Dirk Baecker)의 문장을 빌린다. 문화란 “가치를 둘러싸고 벌인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투쟁’이라는 단어에 집중한다면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유독 동양에서는 고전적 성격을 띤 민족국가와 대제국이 자주 출현했으나, 유럽은 그렇지 못했다. 독자적인 자율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세력도 쉽게 유럽을 ‘통째로’ 소유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유럽의 ‘빗나간 권력집중현상’을 수 세기동안 진행시켰다. 이의 중요한 예로써 디터는 영국의 <대헌장(1215년)>의 취지, 즉 ‘통제와 균형’을 상기시킨다. 유럽의 역사는 이후 불연속과 혁신이 주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근대화했을 때, 제국주의가 등장했으며, 그들의 정치적 야욕 앞에 비유럽의 문화가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경우 대체로(디터는 분명히 나뉜다고 하진 않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략적인 분류는 해놓았다.) 비유럽의 문화는 서구화 정책, 폐쇄정책, 둘의 적절한 혼합, 혹은 아주 드물게 대단위의 혁신을 이룩하는데, 이 과정 속에서 전통사회는 유례없는 ‘유동성’ 탓에 혼란기를 겪는다. 이것이 바로 문명 내의 문화충돌이며, 디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다. 혼란기를 잘 극복하고 서구화를 이룩한 지역은 대체로 동아시아이고, 여전히 극복하지 못해 숱한 내전과 만성적 개발위기를 겪는 지역은 이슬람이다. 하지만 둘의 문화적 결과는 동일하다. 전통문화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문화는 분화된다. 

  분화된 문화가 일률적으로 서구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전통사회의 가치관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즉, 근대화를 통해 개조된 가치관이 해당 문화를 거의 독점하게 되는데, 이는 유럽이나 비유럽이나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유럽은 근대화의 시작과 함께 각종 사회적 병폐들을 떠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권’, ‘민주적’, ‘사회적’, ‘법치(法治)’ 등의 제도적 완충장치가 마련되게 된다. 이는 철학적으로 정당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과정 중 그들의 선택에 의해 확보된 가치관으로써 어떠한 역사적 보편성도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세계가 마치 그리스도교 對 이슬람교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처럼 ‘보도’되는 편향적인 현상에 사람들이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서구의 가치관은 비유럽의 전통문화를 파괴시킨다. 다만 유럽이 천천히 계몽된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비유럽에서는 서구화의 압력과 제국주의의 압제, 혹은 스스로의 개혁의지가 빠르게 박차를 가했다는 점에서 유럽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우리나라가 이와 같은 상황의 대표적 국가이다. 서구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처럼 보이나, 그 과정이 너무 빨랐고, 정신적 가치들이 전통문화와 거의 강제적으로 충돌하면서도 제대로 흡수되지 않은 채, 혹은 왜곡된 채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각종 사회적 병폐들이 ‘치유’되지 못한 선진국이 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빨랐기 때문에 디터의 말에 따르면 “그에 대한 방어로서 더욱 강렬하게 기존의 문화, 그리고 일상적 혹은 상상된 전통을 찾게 되는” 현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진단은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견지하려는 수많은 국내도서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디터는 1장에 들어가기 전, 생소한 용어 하나를 제시한다. “문화 상호 간의 비교를 새로운 과제로 인식한 철학”이라는 뜻의 ‘간문화적 철학(Interkulturelle Philosophie)’이다. 용어는 낯설지 모르나, 개념은 익숙하다. 디터의 글이 완성된 때는 21세기가 아니었다. 당시 우리는 세계화, 지구촌, “세계는 하나”와 같은, 나름 ‘트렌디’한 용어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과연 어떠한가? 21세기에 접어들어 이 시대의 철학자들에게는 새삼스러운 과제가 하나 주어졌다. 전례 없었던 세계화를 철학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전통사회를 기반으로 했던 역대 유명 철학자들의 원대한 사고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요구하는 철학이었다. 

  세계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는 매년 발행되는 각국의 미래보고서를 통해 수 있고, 우리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많이 사회가 ‘개조’되었는지를 진단해볼 수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읽을 때에도 느낀 것이지만 라다크 사회의 개조는 우리가 흔히 각 분야라 여기는 ‘사회’와 ‘정치’가 서로 얽히면서 일어난 충돌과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결과는 안타까웠으나, 라다크가 예외일수는 없었다. 문화개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 “코카콜라”나 “나이키”, 혹은 “켈빈 클라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라다크의 티벳 불교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이야 서양인들에게 재조명되고 있으나, 소위 ‘문명화’된 사회에서 티벳 불교와 같은 ‘우주중심적’인 전통철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전통철학이 유지해오던 사회의 유기적인 모습은 산산조각난다. 라다크 사람들은 갈등이라는 것을 거의 몰랐었다. 하지만 서구화되는 동안 양산된 각종 갈등둘이 그들을 시시각각 괴롭혔고, 결국 그들은 열등감에 빠져 남의 손을 빌리는 처지로 내몰렸다. 

  반면, 서구에서 진행된 이 갈등들, 혼돈과 카오스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답을 내놓은 지역은 역시 서구였다. 담론, 규율, 기능적 분화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역할 분화, 민주적 참여 요구, 분배의 정의와 공정에 대한 논란, 그리고 이를 모두 합친 바로 ‘정치문화’이다. 디터는 이를 “문명화의 육면체”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들의 실체는 사실 임시이자, 강제였다. 결과는 어떠한가? 분배의 정의와 공정을 위해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항상 참패를 맞이해야 했다. 오히려 그것은 갈등을 드러내기만 했다. 어떠한가? 우리가 저지르는 온갖 병폐와 비리가 자연스러운가? 아니면 그것을 방지하고 처벌하는 제도들이 자연스러운가? 디터는 전자라고 답한다. 전자가 선행한다. 즉, 문명화는 전통사회에 대한 투쟁이다. 따라서 ‘문화 본질주의’라는 단어는 성립하지 않는다. 문화에는 본질이 없다. 그것은 DNA도 없고, 상속도 없다. 문화 본질주의는 때론 우생학적 궤변(에드문트 후설)으로 잘못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유럽은 대단히 힘든 역사를 거쳐 만든 가치로써 병폐와 맞서고자 했고, 때론 운이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성립된 유럽 내의 ‘서구화’는 국제적 표준안이 된 듯 큰 권력을 행사했고, 비유럽이 그 권력 앞에 놓였다. 이는 유럽이 스스로 받았던 힘보다 더 큰 힘이 된다. (유럽이 열광했던 오리엔탈리즘, 시느와즈리, 우키요에, 유교 유입, 러시아 문화 유입, 최근 티벳 불교에의 관심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힘은 다양한 현상을 낳는다. 중국처럼 최근에 들어서도 전통문화를 대체할 서구적 사상들 중 하나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국가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처럼 비교적 명확하게 서구화된 나라도 있다. 반대로 이를 저지하는 움직임으로 디터는 간디를 예로 든다. 절반만 추구하려는 움직임에서는 다소 민족주의적 경향(독일의 경우)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정신을 그대로 두는 쪽에는 오늘날 상당한 문제가 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최근 KBS, NHK, CCTV, 대만TV 등을 비롯한 아시아 유수의 방송들이 “아시아적 가치”를 모토로 한 여러 다큐멘터리, 가령 <차마고도>, <누들로드>, <아시안 트리> 등을 기획하는 것도 이런 정신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앞서 말한 네 번째 경우인 혁신에는 서아프리카의 철학자들이 포함(이들의 사상에 대해서 나는 거의 모른다.)된다고 하나, 이는 대안적 인식론일 뿐 어떠한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혁신이란 대체로 전통사회와 서구화 사이의 문제점을 깨닫고 사회 전체의 질적 변화, 소위 ‘점프’를 요하는 것인데, 한 사회가 전적으로 완전히 개방되리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디터는 위의 과정을 거치는 유럽적 경험들이 반복될 자명한 현상, 즉 세계화는 앞으로 수 십 년은 지속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슬람의 ‘봄’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디터는 이어 중국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에 등장한 대표적인 다섯 가지 사상을 예로 들면서 그곳으로부터 현재의 우리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필요한 교훈 몇 가지를 끌어낸다. 이 부분은 특별히 정리하지 않아도 중국역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묵자, 양주, 그리고 도교 등의 사상은 유명하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이 모두 역사적 혼돈기에 사회의 질서를 구비하고자 나타난 것임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디터는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이들이 모두 현대적 사상을 설파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아주 명료하다. 우리는 흔히 공자를 수직사회의 병폐를 야기한 인물로 보나, 실제 공자가 내놓은 패러다임은 “지배자의 정당성 문제를 사회적 복지와 관련”해 생각했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맹자가 이에 근거해 역성혁명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디터는 도교의 ‘문명저항’적 이미지에 대해 갖는 편견을 반박하며 “공적 질서의 형성을 위한 하나의 기본 입장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법을 모두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패러다임을 설파한 한비자, 자율적 윤리(사랑)에 호소하는 묵자, 자기중심적 삶의 영위를 주장한 양주 역시 현대적 인물들이라 주장한다. 

  이런 사상들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상호보완적 특성을 지닌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중국이 현대적 사상을 내놓을 수 있었던 까닭을 디터는 유럽의 근대화와 맞닿아 설명한다. 즉, 유럽의 근대화는 전통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룩되었는데, 중국의 백가쟁명 역시 그러했다는 것이다. 이를 디터는 “전통을 비판하는 전통”이라 부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날의 중국이 그 전통을 다시 한 번 상기하도록 우리가 격려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이는 “중국이 틀리니 미국이 옳다.”고 말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견해와는 다르다. 디터는 중국의 과거에서 다양성의 긍정을 보고 고무되었던 것이다. 현 중국정부의 체제와 이를 비교해봤을 때, 분명 디터의 주장은 실효성이 적어 보이기는 하나, 중국의 올바른 근대화를 이끌기 위해서 중국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중국은 중국 나름의 중앙체제적 발전방법이 있다고 말한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의 옹호에도 일견 타당한 면이 있으나, 그런 개발이 준 폐해는 서양이 지적해온 바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의 폐단도 늘 상기되기 때문에 故 김대중氏가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에 반대해 서로 다른 가치의 융합인 “지구적 민주주의”를 말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민주주의만이 유일한 결론이라고 봤다.)    

 



- 2편으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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