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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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0

 신촌로터리에서 만난 친구와 느닷없이 헌혈을 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먹을 것 대신 우산을 받아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집에 없을 겁니다. 비올 때에만 찾게 되는 것이라 어디 부러지고 구멍 뚫려도 새로 살 생각을 못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우산 입장에서는 족히 섭섭하고도 남을 일이나, 누가 알까요. 


  잡아두고 싶은 추억은 매정하게 잊히고, 잊고 싶은 것들은 열정적으로 살아남습니다. 신촌에서의 기억도 서서히 희미해지는 듯합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한 권의 책도 모가 떨어지고 헤졌습니다. 제목은 <허삼관매혈기>인데,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면 “판타지 소설이니?”라는 질문이 되돌아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면 “좋은 책이니까 그냥 읽어봐.”라고 웃으며 손에 쥐어줬습니다. 언제 이 책을 처음 샀는지는 기억조차 없습니다. 광화문 교보를 안방 드나들 듯 했던 무렵이고, 아마 대학교 초년생이었을까요. 책을 좋아하지만 깨작깨작 반찬 집어먹는 것처럼 독서를 했을 때였는데, 웬일로 이 책은 단숨에 읽어버렸습다. 생각해보니 눈물도 참 많이 흘렸습니다. 울려고 샀던 것은 아니라, 뜻밖의 깨달음을 얻어 마음이 한동안 울렁거렸습니다. 군대에 가서도 많이 읽었고, 많은 친구들에게 빌려줘 읽게 했습니다. 책을 다시 건네주는 표정들은 하나같이 밝았습니다. 


   위화(余華)의 소설입니다. 그의 글은 간결하고, 해학적이고, 슬픔을  참고, 뜨겁고, 한편으로는 지극히 냉정합니다. 반찬이 몇 첩 없는 밥상 같습니다. 하지만 반찬은 모두 맛있습니다. 오미(五味)가 모두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한 아버지의 뚝심 같은 자녀사랑이 중국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훑어지나가며 극적으로 펼쳐집니다. 군대에 가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남정네들 사이에서 울음 참아가며 버겁게 읽으면서도 위화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큰 위로가 됐습니다. 그날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부모님 목소리가 더 아련해지는 날이었습니다. 앞이 막막하여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으면 한 번 바라보고, 시간 나면 한 번 더 읽어볼 수 있는 책이 있어 남들처럼 무사히 2년을 보내고 나온 기억이 지나갑니다.   


  아버지 허삼관은 아이들을 위해 피를 팔아 돈을 법니다.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첫 대목에 묘사된 우악스러운 그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뽑아내는 피를 보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몸이 허약해져 쇼크로 쓰러진 뒤에도 피를 뽑으려고 하자 의사가 “망할 놈의 자식”이라며 허삼관을 욕하지만 그는 “그게 아니라, 내 아들 때문에……”라며 말을 흐리죠. 40년간 피를 팔아 집안 문제를 해결하던 그는 소설 마지막 즈음에 “당신 피는 가구 칠감으로 딱 알맞다니까.”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심한 굴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합니다. 집안의 문제가 생기면 또 어떻게 하나. 이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이 허삼관의 아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그리고 아내 허옥란을 찾아가 빨리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러오라 재촉합니다. 모든 일을 다 떠맡고 가족을 키워 지금은 심한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허삼관은 연신 걱정입니다. 아이들은 그 마음도 모르고 동네창피라며 울고 싶으시면 집에 가서 우시라고 합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따끔하게 혼을 내시죠.
  “너희들은 너희 아버지가 피를 팔아 키운 거란 말이다.”
  훈계는 계속 이어지고, 내용은 절절합니다. 허삼관의 오랜 속내가 마침내 아내의 입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위화는 짠해지는 독자들의 마음을 훈훈한 허삼관의 저질스러운 농담으로 끝냅니다.  


  부모님이 겪으신 지난 시절의 역경은 저에게 한 편의 추상화와 같습니다. 들여다보기 힘들고, 들여다봐도 도무지 그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십니다. 저와 동생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하시기 위해 당신께서 흘리신 땀은 드러내신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여쭤보면 삶의 교훈 삼아 말씀해주실 뿐입니다. 저에게는 그간 못해준 것들만 말씀하십니다.  


  어느 철학자(하이데거일 겁니다.)가 “사랑은 완전한 개방이다.”고 했습니다. 이따금 싫다며 밀쳐내고, 귀찮다고 입을 닫으면서 진심 아닌 투정들을 부려왔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열려 있는 문이셨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무슨 용기가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머쓱해서 그랬던 것일까요. 점점 야위어가는 부모님의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두려움이 일어 무서운 꿈을 꾸는 때가 예보다 잦아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 마음을 헤아릴 즈음이 되면, 그땐 너무 늦었겠지만, 위화의 허삼관 이야기가 또 어떻게 다가올지 까마득합니다. 허삼관은 가족과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위화는 따뜻한 뉘앙스로 마무리합니다. 저 역시 같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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