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 하이드리오타피아, 유골 항아리 매장에 관하여
토머스 브라운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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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영원한 기억을 향한 디지털 집착의 시대, 17세기 의사가 들려주는 역설의 해방감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끊임없이 기록하고 저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와 서버에는 우리가 남긴 일상과 사진이 디지털 영원성이라는 이름 아래 쌓여갑니다. 이 거대한 데이터의 무덤 속에서 역설적으로 깊은 피로와 성찰 없는 불안감이 생깁니다. 잊히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오히려 현재의 삶을 짓눌러 오기 때문입니다.


1650년대 중반, 잉글랜드 노퍽주의 한 들판에서 고대 유골 항아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의사였던 토머스 브라운은 죽은 뒤 내가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 무엇을 남길 것인지, 내 이름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아주 오래된 유골 항아리 앞에 세워놓습니다.


"화장터의 불길이 사그라지고 마지막 고별 의례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땅에 묻은 벗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하곤 했지. 후대가 망자의 재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캐물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하고, 또 자기 유골이 얼마나 오래갈지 겪어 본 적도 없으니, 그런 뒷날의 일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하면서 말일세. 그러나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라는 벗에게 부치는 헌사 속 문장이 흥미롭습니다.





토머스 브라운은 후대가 캐물을 줄 몰랐던 사람들을 말하면서 그 후대인 자신이 지금 그 재를 캐묻고 있다는 사실을 슬쩍 드러냅니다. 옛사람들은 자기 뼈가 수백 년 뒤 들판에서 나와 남의 글감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글을 쓰는 토머스 브라운도 자기 글과 뼈가 어떻게 될지 모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예고는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1658년에 나온 뒤 버지니아 울프, 보르헤스, 제발트 같은 후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라고 물었던 그 자신의 두개골이 먼 훗날 무덤 공사 중 파헤쳐져 지역 병원 박물관에 수십 년간 전시되는 수난을 겪고, 1922년에야 비로소 다시 땅에 묻혔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인류가 시신을 매장하고 화장해 온 장례의 역사를 살피며, 노퍽 들판에서 발굴된 항아리들의 유래와 시대를 추적합니다. 유물 속 뼈와 재, 소박한 기물들을 다루며 관찰과 상상을 오가는 토머스 브라운 특유의 문학적 문장이 돋보입니다. 특히 electricity(전기), hallucination(환각) 같은 어휘를 영어 문헌에 최초로 등장시켰을 만큼,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확장하는 남다른 감각을 보여줍니다.


의사였던 토머스 브라운은 시신의 부패와 화장 과정을 과학적인 시선으로 관찰합니다. 거대한 삶의 무게를 지녔던 인간도 뜨거운 불길을 지나면 불과 몇 파운드의 유기 물질과 염으로 축소됩니다. 하지만 허무주의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오열과 애통함을 지나 육체의 물질적 한계를 직시할 때, 비로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경건함과 숙연함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유골 항아리는 중요한 상징처럼 작동합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주는 물건입니다. 우리는 기록되는 것과 중요한 것을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명한 사람은 검색되고, 많은 사람이 공유한 콘텐츠는 더 오래 노출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고 기록하는 일에 점점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기록의 역설입니다. 많이 남긴다고 반드시 오래 남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오래 남는다고 해서 반드시 본래의 의미까지 보존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름이 남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사라질 수 있고, 물질이 남아도 그것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잊힐 수 있습니다. 저자가 바라본 뼈와 재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존재했다는 강력한 증거이지만,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복원해 주지는 않습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이 책의 무게 중심은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내면적 신념으로 이동합니다. 종교적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영혼의 지속을 믿는 사람과 죽음을 무의 상태로 보는 사람은 죽음을 전혀 다르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사후 세계를 맹신하는 이에게 이승의 삶은 조속히 끝내야 할 과제이자 순교처럼 무겁고, 반대로 소멸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죽음은 완전한 무(無)로의 추락이라는 공포로 다가옵니다. 토머스 브라운은 인간이 죽음이라는 불확실성 앞에서 창조해 낸 신념의 스펙트럼을 기이하면서도 숭고하게 관조하며, 내세에 대한 강박이나 완전한 소멸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사유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려 하고, 너무 오래 흔적을 남기려고 하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평가까지 미리 걱정합니다. 그런데 유골 항아리를 보면 그렇게까지 남으려고 애써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남기려는 흔적의 의미는 결국 내 손을 떠난 뒤에 만들어집니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죽음 이후에도 나라는 존재가 계속 의미 있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기억되고 싶어 하는 동안 지금의 삶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를 짚어줍니다. 내가 남길 유산을 지나치게 계산하지 않고, 평가받을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언젠가 잊힐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살아가는 습관이 오래도록 몸에 깊이 밸수록 우리는 오히려 죽음에 서툴러진다. 더 오래 살고 싶은 탐욕이 우리를 죽음에 서툴게 만든다."라는 문장으로 브라운은 불멸이라는 헛된 야망을 비워냄으로써, 불확실한 미래와 기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오늘이라는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삶의 정서적 자유와 내면의 평온을 선사받는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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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링 & 씨댄스 - 매일매일 쓰는 영상 생성 편집 AI ㅣ 매일매일 AI 시리즈 5
전은재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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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텍스트 프롬프트 한 줄로 하이엔드급 영상을 출력하는 AI 엔진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콘텐츠 창작의 진입장벽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결과물은 천차만별입니다. 어색한 움직임과 제각각인 캐릭터 인상에 좌절하곤 맙니다.


무엇보다 가장 난감한 순간은 그럴듯한 영상은 나왔는데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장면과는 전혀 다를 때입니다. 프롬프트는 무엇을 입력할 것인가의 문제지만 영상 제작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영상 문법이 들어가야 하고 배워야 하는 부분입니다.


전은재 저자의 『매일매일 쓰는 영상 생성 편집 AI 클링 & 씨댄스』는 실무 중심 가이드북입니다. 저자는 Zach King Studio에서의 VFX 디자이너 경험을 바탕으로 삼양, FILA, 투썸플레이스, 현대카드 등 국내외 유수 브랜드 광고와 아이유, VIVIZ 등 탑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 비주얼을 담당했던 베테랑 현장 전문가입니다. AI 도구를 처음 접하는 입문자조차 감독의 시선으로 이끌어줍니다.





AI 영상 생성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입문자라면 도대체 클링과 씨댄스가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클링 AI (Kling AI)는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는 차세대 AI 영상, 이미지, 사운드 생성 도구입니다. 이미지 3.0 Omni 및 비디오 생성 엔진을 통해 한 장의 스틸컷에서 시네마틱한 영상으로 확장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드리미나 씨댄스 (Seedance)는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AI 도구입니다. 캐릭터의 얼굴과 공간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최대 15초 길이의 스토리 샷을 구성할 수 있어 콘티나 숏폼, 드라마 연출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덕트 테이프 (Duct Tape / GPT Image 2.0)에 대한 파트도 있습니다. 디자인과 한글 텍스트 표현에 특화된 포토샵급 이미지 생성 모델로, 정확한 그래픽과 텍스트가 포함된 비주얼을 쉽게 만들어내 클링이나 씨댄스의 기초 원천 소스로 활용됩니다. 기존 생성형 AI에서 한글 깨짐으로 좌절해 본 경험이 있다면 눈이 번쩍 뜨일 겁니다.





이 세 가지 도구는 저마다 장점을 지니고 있어, 『클링 & 씨댄스』 책으로 세 도구를 결합하는 방식을 익히면 초보자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콘텐츠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됩니다.


AI 이미지나 영상을 처음 만들어보면 한 번쯤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 이미지에서는 멋진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두 번째 이미지를 만들자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옷이 달라지고 얼굴이 달라지고 헤어스타일까지 달라집니다.


AI가 영상 제작을 쉽게 만들어준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AI는 영상을 만드는 과정의 여러 물리적 장벽을 낮춰주지만, 무엇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사람의 역할까지 없애지는 않습니다. 기술이 쉬워질수록 콘텐츠의 질문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클링 & 씨댄스』는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3D 모델링 프로그램 없이도 텍스트만으로 정면, 측면, 후면의 다각도 캐릭터 이미지를 일정하게 확보하는 기법을 다룹니다. 단순히 예쁜 그림을 뽑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외형과 특징을 유지하는 주체 등록을 통해 이후의 연속된 영상 연출까지 연결하는 프레임워크를 훈련시킵니다.





후반부의 덕트 테이프와 씨댄스 활용도 재밌습니다. 덕트 테이프에서는 디자인과 한글을 지원하는 이미지 생성 기능, 텍스트 생성, 이미지 수정 등을 살펴보고, 생성된 이미지를 클링 AI와 드리미나 씨댄스로 확장하는 흐름이 이어집니다. 서로 다른 도구를 제작 과정에서 연결하는 방식도 짚어주고 있어 유용합니다.


『클링 & 씨댄스』는 VFX 디자이너로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온 저자의 정교한 프레임 설정 능력과 시각적 연출관이 AI라는 새로운 도구와 완벽하게 결합한 실전 연출 지침서입니다.


처음에는 로그인부터 시작합니다. 이미지 하나를 만들어보고, 이미지를 수정하고, 인물을 유지해 다른 구도를 만들고, 제품 이미지를 활용합니다. 이후 영상으로 넘어가 행동과 카메라를 설정하고, 여러 장면을 연결합니다. 씨댄스로 넘어가서는 대화와 영화적 장면, 광고와 타임랩스 등을 만들어봅니다. 마지막에는 다른 AI 도구와 편집 프로그램까지 연결합니다.


초보자도 막힘없이 따라 할 수 있는 예제와 직관적인 설명 덕분에, 텍스트가 어떻게 하나의 생생한 장면으로 변모하는지 그 경이로운 과정을 쉽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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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사회 정서 - 5~7세 평생 관계의 기초가 되는 5가지 사회 정서 학습법 ㅣ 바른 교육 시리즈 49
박밝음 지음 / 서사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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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는 누구와도 두루 잘 어울리고, 착하게 양보하며,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아이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14년 차 유아교육 전문가 박밝음 저자는 『다섯 살 사회 정서』를 통해 이 상식을 뒤집습니다.


서울대 출신의 공립 유치원 교사인 저자는 전작 『다섯 살 공부 정서』를 통해 사교육 없이 아이의 내면적 학습 지능을 높이는 법으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와 부모를 만나고 200여 회 이상의 강의를 진행해 온 저자는, 유아기 사회성의 핵심이 단지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타협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진짜 사회성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조율하며, 거절당해도 다시 일어서는 정서적 자립과 건강한 의사소통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2026학년도부터 모든 교육과정 전반으로 사회정서학습(SEL)이 확대 도입되는 시점에서 『다섯 살 사회 정서』는 일상에서 부모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를 선사합니다.


미국 사회정서학습 대표 연구 기관인 CASEL은 사회 정서 역량을 자기 인식, 자기 관리, 사회적 인식, 관계 기술, 책임 있는 의사결정 5가지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가정에서 우리 아이의 자기 관리를 어떻게 높일까라고 접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섯 살 사회 정서』는 자기 조절, 갈등 해결, 사회적 접근, 정서적 자립이라는 4가지 구체적 영역으로 재설계했습니다. 책에 수록된 체크리스트는 아이를 평가하거나 또래와 비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정서적 과부하를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성장 신호 관찰용입니다.


부모가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상황별 코칭이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놀이 상황에서 고집을 피우는 아이에게 주의를 줄 때, 저자는 부모의 언어 습관을 바꾸는 지점을 짚어냅니다.


"차례를 지켜야지.",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려?", "그렇게 하면 친구들이 싫어해."라고 말하지는 않는지요? 저자는 아이의 욕구를 먼저 인정해 주고, 규칙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 경험을 강조하는 대화법을 소개합니다. "의사 역할이 정말 하고 싶었구나.", "순서를 기다리면 놀이가 더 재밌을 거야.", "차례가 올 때까지 참은 거 정말 멋지다."라고 말입니다.


저자는 관찰과 탐색이 필요한 아이에게 강제로 관계를 맺게 하는 행위가 오히려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사회성은 일정한 속도로 정형화되어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 고유의 기질을 인정하고 한 발짝 다가가는 작은 시도 자체를 성취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을 강조합니다.


유아기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양보를 요구하면 억울함이나 무기력감을 배우기 쉽습니다. 저자는 아이가 리더십과 고집 사이에서 균형을 잡도록 돕기 위해, 타인의 표정을 읽고 서로의 니즈를 조율하는 협상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거짓말이나 침묵을 혼내기보다, 아이가 자신의 실수를 부모에게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심리적 안전지대를 가정 내에 구축하는 것이 사회정서 교육의 시작점이라는 것도 짚어줍니다.





부모가 가장 불안해하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기준을 알려줍니다. 아이 스스로 툴툴 털고 일어나거나 관계를 복구하려 시도하는 회복성이 보인다면 개입을 자제하고 기다려주면 되고,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회복하지 못할 때는 디딤돌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의 작은 다툼이나 실패를 보며 부모가 과도한 미래의 불안을 투사하는 현상도 짚어냅니다. 아이는 오늘 울고 내일 다시 웃으며 자라는 존재입니다. 부모 역시 아이의 자생력을 믿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정서적 여유가 필요함을 일깨워 줍니다.


유치원, 어린이집 입학을 앞두고 아이의 또래 관계가 걱정되는 부모, 아이의 작은 갈등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 부모라면 상황별 대화 가이드와 가정 내 놀이법, 사회성을 키워주는 추천 그림책 목록 등 유용한 노하우가 가득하니 참고하세요. 아이의 사회성을 단기적 기술이 아닌 평생을 살아갈 정서적 자산으로 키우는 안목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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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의 선장들 - 당장의 삶, 다가올 죽음, 그 사이를 채운 책에 관한 216일간의 대화
김새섬.김진경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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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의 대표 김새섬과 스위스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김진경 작가가 나눈 깊고 아늑한 대화의 기록 『난파선의 선장들』.


2025년 4월, 평균 생존 기간이 12~14개월에 불과한 악성 뇌종양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은 김새섬 대표. 시한부 판정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남편 장강명 작가와 함께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시작하여 자신의 상황과 독서 일기를 담담히 기록해 나갔습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 팟캐스트를 접한 김진경 작가는 고통과 죽음 앞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는 김새섬의 태도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단순한 일회성 인터뷰를 제안했으나,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과하며 두 사람의 대화는 2025년 9월부터 2026년 4월까지 총 12회, 216일 동안 이어지는 여정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난파선의 선장들』에서 김새섬 대표가 보여주는 태도는 현실적이며 지적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라는 구절을 끌어옵니다. 하늘과 땅은 너그럽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추구(지푸라기 인형)처럼 여긴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내 위주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병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세상에 어떤 일들이,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자동차 사고, 비행기 사고, 희귀병, 전쟁, 내란, 이런 게 왜 우리를 쏙 피해가야 될까요? 내가 뭐길래?"라는 말을 합니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특별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님을 겸허히 인정하는 순간, 억울함과 자기 연민은 설자리를 잃습니다. 절망에 빠진 자의 자포자기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객관화하며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겁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질문에는 끝이 없을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일이 벌어진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선택지가 생깁니다.


침울한 죽음의 서사에 갇히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김새섬 대표 특유의 위트와 유머감각 덕분입니다. 수술 직후 삭발한 자신의 모습을 처음 거울로 마주했을 때 황비홍이 됐다며 웃어넘길 수 있는 담력을 가졌습니다.


김새섬의 생애 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사시입니다. 20대 중반까지 도시 빈민으로서 폐지를 줍던 할머니가 가져다준 잡지와 폐책을 읽으며 가난을 견디던 인생 1막, 25세에 무작정 호주로 떠나 회계사 자격을 취득하고 이방인으로서 견뎌낸 외로움의 시간을 보낸 인생 2막, 외국계 기업 재무팀에서 금전적 성취와 안정된 삶을 위해 돌진하던 직장인 시절의 인생 3막, 마흔넷의 나이에 남을 위한 일을 내려놓고 책으로 사람을 연결하는 독서 플랫폼을 만든 인생 4막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인생 5막은 시한부라는 제한된 시한 속에서 삶의 진정한 레거시를 구축해 나가는 현재입니다.


인생의 1~4막 동안 스스로 키를 잡고 항해하는 법을 훈련해왔기에 5막이라는 예상치 못한 거친 풍랑 앞에서도 그는 당황하지 않고 선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었던 겁니다.


김새섬 씨가 자신의 장례에 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대목입니다. 나는 이렇게 죽겠다는 선언 그 자체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죽음의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읽는 내내 죽음에 관한 준비가 반드시 우울한 일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확인하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관한 대화를 이어오던 두 사람이 마지막에 독서의 이유를 묻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삶이 한정되어 있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책은 우리에게 죽음을 설명해 주는 안내서가 아닙니다. 대신 여러 삶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어떤 인물의 선택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삶을 안전한 거리에서 경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 자신의 삶을 수정할 기회를 줍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김진경 작가의 심리 변화 역시 울림을 줍니다. 자신을 안전한 육지에 서서 풍랑 속 김새섬을 바라보는 관찰자(구경꾼)로 시작했지만, 216일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부터 《도덕경》, 《길가메시 서사시》에 이르는 책들을 매개로 대화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자신 역시 언젠가 반드시 난파될 배에 올라탄 선장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건을 앞두고 타인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것저것 재밌게 해보다 가는 여행으로 정의하는 태도는 커다란 자극을 줍니다. 김새섬 씨만 죽음을 앞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차이는 그것을 얼마나 가까이 인식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난파선은 죽음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인생의 은유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배에 타고 있습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곧 삶을 살아내는 실력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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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 오래된 상처를 알아차리고 다정하게 회복하기
멜라니 피그니터 지음, 김희상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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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그럭저럭 무난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때로 아주 사소한 자극 하나에 감정이 송두리째 흔들리곤 합니다. 무심한 지적 한마디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존재처럼 느껴지거나, 답장이 조금 늦어졌을 뿐인데 온갖 상상을 하며 불안에 사로잡히는 경험이 대표적입니다.


저자 멜라니 피그니터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에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린 상처를 들여다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육체적 질병으로 삶의 위기를 맞았던 저자는 스스로 심리 및 자기애 훈련에 몰입하며 병을 극복한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오랜 상담 임상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어른이 된 내가 스스로 어린 나를 구원하는 실용적인 방법을 알려줍니다.


인간의 잠재의식 속 70~90%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어릴 적 형성된 거부의 기억, 인정받지 못했던 외로움 혹은 조건부 사랑의 기억은 뇌의 변연계와 편도체 주변에 정서적 기억으로 각인됩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었다고 착각할지언정, 뇌의 감정 중추는 그 시절의 공포와 결핍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내면 아이를 뇌과학과 심리학이 결합된 무의식의 형상화로 접근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심리적 상흔들은 결국 무의식이라는 공간에서 아직 구원받지 못한 아이가 보내는 신호입니다.


아이에게 어른의 보호와 애정은 단순한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보호자가 차갑거나, 미숙하거나, 조건부로만 사랑을 줄 때 아이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본능적으로 개발합니다. 저자는 이를 사랑받기 기술이자 낡은 안전모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어린 시절 자신을 지켜주었던 그 방어 무기들이 성인이 된 지금의 인간관계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점입니다. 어릴 적 부모의 다툼을 중재해야 했던 아이는 성인이 되어 조직 내에서 과도하게 눈치를 보고 관계의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조화 중독이나 도우미 증후군을 앓게 됩니다. 늘 뛰어난 성과를 내야만 칭찬을 받았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조금의 실수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통제 강박과 완벽주의에 시달립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은 내면 아이를 괴롭히는 일곱 가지 상처와 부정적 고정관념의 실체를 파헤치며,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심리적 도구들을 소개합니다.





작은 막대 그림 기법은 종이에 나와 부모의 형상을 막대 그림으로 그리고 빛의 원을 그려 넣으며 정서적 고리를 건강하게 분리하는 시각적 훈련입니다. 무작정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뇌파를 안정적인 알파파나 세타파 상태로 유도하여 내면 아이를 만나고 위로하는 명상 스크립트와 QR 코드도 있습니다.


저자는 과거에 일어난 일 자체는 되돌릴 수 없지만, 그 과거가 오늘날 나의 일상을 휘두르게 둘 것인지는 오직 현재의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주체적 회복에 무게를 둡니다.


책 속의 다양한 문답 체크리스트는 자신의 무의식적 자화상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도록 돕습니다. "나는 어딘가 모르게 부족해", "나는 실수해서는 안 돼"라는 부정적 고정관념 선상에 자신의 위치를 표시해 보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내면에서 소리 없이 훼방을 놓던 비판적인 목소리를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과거가 당신의 시작을 만들었을지라도, 당신의 다음 장을 쓰는 것은 현재의 당신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어른이 된 내가 어린 시절 내가 그토록 바랐던 안전하고 다정한 보호자가 되어주는 순간, 내면의 아이는 비로소 방어태세를 풀고 밝음과 창의성, 자신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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