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의 선장들 - 당장의 삶, 다가올 죽음, 그 사이를 채운 책에 관한 216일간의 대화
김새섬.김진경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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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의 대표 김새섬과 스위스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김진경 작가가 나눈 깊고 아늑한 대화의 기록 『난파선의 선장들』.


2025년 4월, 평균 생존 기간이 12~14개월에 불과한 악성 뇌종양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은 김새섬 대표. 시한부 판정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남편 장강명 작가와 함께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시작하여 자신의 상황과 독서 일기를 담담히 기록해 나갔습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 팟캐스트를 접한 김진경 작가는 고통과 죽음 앞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는 김새섬의 태도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단순한 일회성 인터뷰를 제안했으나,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과하며 두 사람의 대화는 2025년 9월부터 2026년 4월까지 총 12회, 216일 동안 이어지는 여정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난파선의 선장들』에서 김새섬 대표가 보여주는 태도는 현실적이며 지적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라는 구절을 끌어옵니다. 하늘과 땅은 너그럽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추구(지푸라기 인형)처럼 여긴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내 위주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병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세상에 어떤 일들이,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자동차 사고, 비행기 사고, 희귀병, 전쟁, 내란, 이런 게 왜 우리를 쏙 피해가야 될까요? 내가 뭐길래?"라는 말을 합니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특별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님을 겸허히 인정하는 순간, 억울함과 자기 연민은 설자리를 잃습니다. 절망에 빠진 자의 자포자기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객관화하며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겁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질문에는 끝이 없을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일이 벌어진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선택지가 생깁니다.


침울한 죽음의 서사에 갇히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김새섬 대표 특유의 위트와 유머감각 덕분입니다. 수술 직후 삭발한 자신의 모습을 처음 거울로 마주했을 때 황비홍이 됐다며 웃어넘길 수 있는 담력을 가졌습니다.


김새섬의 생애 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사시입니다. 20대 중반까지 도시 빈민으로서 폐지를 줍던 할머니가 가져다준 잡지와 폐책을 읽으며 가난을 견디던 인생 1막, 25세에 무작정 호주로 떠나 회계사 자격을 취득하고 이방인으로서 견뎌낸 외로움의 시간을 보낸 인생 2막, 외국계 기업 재무팀에서 금전적 성취와 안정된 삶을 위해 돌진하던 직장인 시절의 인생 3막, 마흔넷의 나이에 남을 위한 일을 내려놓고 책으로 사람을 연결하는 독서 플랫폼을 만든 인생 4막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인생 5막은 시한부라는 제한된 시한 속에서 삶의 진정한 레거시를 구축해 나가는 현재입니다.


인생의 1~4막 동안 스스로 키를 잡고 항해하는 법을 훈련해왔기에 5막이라는 예상치 못한 거친 풍랑 앞에서도 그는 당황하지 않고 선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었던 겁니다.


김새섬 씨가 자신의 장례에 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대목입니다. 나는 이렇게 죽겠다는 선언 그 자체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죽음의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읽는 내내 죽음에 관한 준비가 반드시 우울한 일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확인하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관한 대화를 이어오던 두 사람이 마지막에 독서의 이유를 묻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삶이 한정되어 있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책은 우리에게 죽음을 설명해 주는 안내서가 아닙니다. 대신 여러 삶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어떤 인물의 선택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삶을 안전한 거리에서 경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 자신의 삶을 수정할 기회를 줍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김진경 작가의 심리 변화 역시 울림을 줍니다. 자신을 안전한 육지에 서서 풍랑 속 김새섬을 바라보는 관찰자(구경꾼)로 시작했지만, 216일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부터 《도덕경》, 《길가메시 서사시》에 이르는 책들을 매개로 대화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자신 역시 언젠가 반드시 난파될 배에 올라탄 선장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건을 앞두고 타인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것저것 재밌게 해보다 가는 여행으로 정의하는 태도는 커다란 자극을 줍니다. 김새섬 씨만 죽음을 앞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차이는 그것을 얼마나 가까이 인식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난파선은 죽음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인생의 은유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배에 타고 있습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곧 삶을 살아내는 실력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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