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
아르만드 푸치 지음, 송병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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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학자의 현미경으로 해체한 인간 안토니 가우디의 유일무이한 기록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 건축의 성자, 바르셀로나의 영원한 영혼이라 불리는 안토니 가우디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전기의 결정판입니다.


기괴할 정도로 독창적인 곡선의 천재, 환상적인 동화 속 세계를 현실로 불러온 예술가 가우디. 카톨릭 사제이자 성경학 박사인 저자 아르만드 푸치는 가우디가 태어나고 자란 카탈루냐 타라고나 지역 출신으로, 거장이 호흡했던 땅의 빛과 흙, 지중해의 바람과 언어를 몸으로 기억하는 연구자입니다. 바르셀로나 대주교의 공식 요청을 받아 가우디의 시복(諡福) 절차에 필요한 영적 여정을 철저히 실증적으로 추적했습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가우디의 공방과 도면, 메모가 모조리 불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저자는 동시대의 미공개 기록과 건축물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인간 가우디의 내면을 복원해 냅니다.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100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도달한 거장의 내밀한 사유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가우디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눠 추적합니다. 첫 번째 유년기, 가우디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로 고향 레우스와 리우돔스의 자연을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으며 또래 아이들처럼 뛰어노는 대신 자연을 가만히 관찰해야 했던 소년 가우디에게 지중해의 강렬한 빛과 변화무쌍한 공간은 거대한 교과서였습니다.


가우디에게 자연은 묘사하거나 모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이 설계한 완벽한 건축물이었습니다. 레우스의 흙과 지중해의 파도가 준 공간적 직관은 훗날 그가 바르셀로나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가장 단단한 자양분이 됩니다.


그의 초기 사상이 가장 날것의 형태로 담긴 소중한 사료가 바로 1878년에 작성된 레우스 원고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청년 가우디가 적어 내려간 이 장식론은 훗날 그가 보여줄 거대한 건축적 대서사의 예언서와도 같습니다.


청년 가우디에게 장식은 건물의 겉면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장식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건축의 내적 본질과 기능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적 언어였습니다. 가우디는 종교 건물이 지녀야 할 중후함과 장엄함을 파르테논 신전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며, 세속적인 건축과 성스러운 건축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원고를 작성하고 5년 뒤인 1883년,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미 성전을 맡기 전부터 영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거대한 희생의 성소를 지을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1880년대 중반부터 가우디의 창의성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평생의 후원자가 된 에우제비 구엘과의 만남은 가우디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탄생한 카사 비센스, 엘 카프리초, 구엘 별장 등은 이슬람 풍의 오리엔탈리즘과 카탈루냐 전통 양식이 절묘하게 융합된 경이로운 걸작들입니다.


그중에서도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에 맞춰 기획된 구엘 저택은 가우디가 추구한 공간의 유기성과 기능적 장식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우디는 협소한 대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건물 중앙에 거대한 안뜰을 두고, 18미터 높이의 대연회실과 쌍곡포물선 형태의 내부 돔으로 연결하는 혁신적인 설계를 선보입니다.


가우디의 위대함은 단순히 화려한 외관에 있지 않습니다. 구엘 저택의 웅장한 기둥과 천장 장식들은 언뜻 보기엔 과시용 디자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부의 엄청난 하중을 견디기 위해 계산된 구조적 필수품이었습니다. 또한, 가우디가 평생을 바쳐 집착했던 빛의 조절 역시 옥상의 원뿔 모양 중앙 첨탑을 통해 완벽하게 구현됩니다.


그러나 눈부신 성공의 이면에서 가우디는 깊은 내적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아스토르가 주교궁 작업 과정에서의 갈등, 영적인 갈증은 결국 1894년 사순절의 극단적인 단식으로 이어집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 영적 대위기는 가우디의 내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화려한 청년 건축가 가우디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영성의 세계로 침잠하며, 자신의 건축적 재능을 신의 영광을 위해 전적으로 봉헌하기로 결단합니다.





영적 변혁을 거친 가우디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카사 칼베트, 베예스과르드,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구엘 공원과 카사 바트요, 라 페드레라(카사 밀라)가 이 시기에 연달아 쏟아져 나옵니다. 이 시기 가우디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고딕 양식이 지닌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울어진 기둥과 현수선 아치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 시기 가우디의 미학을 설명하면서 그를 현대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가난한 예술: 일상적인 쓰레기나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예술 양식)의 선구자로 임명합니다. 가우디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투박한 재료의 물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를 실용적이면서도 극적인 예술로 승화시키는 천재적인 재활용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정점이 바로 콜로니아 구엘 교회의 지하 소성전입니다. 자투리 참나무 판자가 가우디의 손을 거쳐 수백 년을 견딜 성스러운 예배당의 벤치로 탈바꿈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1910년과 1911년 사이, 가우디는 브루셀라증이라는 심각한 질병을 얻어 또다시 죽음의 경계에 서게 됩니다. 육체적인 쇠약과 고통 속에서 그는 자신의 두 번째 파사드, 즉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수난의 파사드에 대한 직관을 얻습니다. 그것은 미학적 유희를 완전히 걷어낸, 질병의 고통 속에서 뼈만 남은 인간의 형상을 닮은 처절하고도 명확한 도면이었습니다.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 가우디는 세상의 모든 세속적 의뢰를 거절하고 오직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만 전념합니다. 성당 공방에 침대를 들여놓고 살며, 매일 미사를 드리고 성경을 묵상하는 수도자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의복은 해어졌고 겉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1926년 6월 7일, 평소와 다름없이 성당에서 일을 마치고 산 펠리페 네리 수도원으로 기도를 드리러 가던 노건축가는 레스 코르츠 카탈라네스 대로를 건너다 달려오는 전차에 치이고 맙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6월 10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시민이 통곡했던 거장의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가우디의 서명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 단계로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하며 그의 실존적 궤적을 요약합니다. 청년기의 화려하고 외형적인 확장 지향적 서명에서 시작하여, 중기의 내면적 고뇌가 담긴 형태를 거쳐, 말년의 지극히 절제되고 본질만 남은 서명에 이르기까지 그의 서명은 곧 그의 삶 자체였습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했습니다. 오래 걸리는 것, 끝이 보이지 않는 것, 당대에 인정받지 못해도 해야 하는 일을 붙드는 삶.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제 가우디라는 한 개인의 천재적인 예술품을 넘어, 세대를 거쳐 수많은 사람이 함께 시간을 쌓아가며 완성하는 인류 모두의 역사이자 공동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가우디 서거 100주년과 맞물린 이 시점에 이 책은 단순한 기념 출판물이 아닙니다. 저자가 집필한 원서는 가우디 서거 100주년 기념 미사를 위해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교황 레오 14세에게 헌정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존에 알려진 가우디에 대한 수많은 인용구 중 상당수는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후대에 각색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그 하나하나를 검토하고 가능한 한 동시대 자료와 작품 자체로 돌아갑니다.


화려한 도판은 없지만 가우디의 미공개 스케치와 엄격한 문헌 검증을 종횡무진 누비는 저자의 분석은 한 인간이 자신의 전 생애와 영혼을 바쳐 지어 올린 건축물이 지닌 시간의 깊이를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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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체질밥상
임부돌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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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마흔 넘어 주방에 선 의사가 10년 임상 끝에 완성한 내 몸 맞춤 식단의 모든 것 『오색체질밥상』. 메스를 잡는 손으로 어느 날 도마 앞에 섰습니다. 임부돌 원장은 '숲속의원'에서 암 환우와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들을 돌보며 현대 의학의 어떤 처방전도 채워주지 못하는 공백을 발견했습니다. 그 공백의 이름은 밥상입니다.


『오색체질밥상』은 그 깨달음 이후 10년의 임상 기록입니다. 매월 2박 3일간의 라이프 힐링캠프와 밥상 강좌를 운영하며 환자들과 함께 요리하고 먹고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그저 레시피를 모은 요리책이 아닙니다. 사상체질에 근거한 다섯 가지 색깔의 식재료를 활용해 개인의 혈액검사 결과와 인바디 데이터를 스스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밥상을 구성하도록 돕는 식단 설계 지침서입니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주방을 대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나 자신과 가족을 먹이는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점검하라고 조언합니다. 다이어트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식단을 관리할 때, 마치 몸을 처벌하듯 억제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내 몸의 세포를 가장 귀한 손님처럼 대접하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프거나 기력이 떨어지면 더 화려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저자의 시각은 정반대입니다. 몸이 약해질수록 인공적인 감칠맛과 과도한 양념의 자극에서 벗어나 식재료 본연의 맛으로 돌아가야 장기가 휴식을 취하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미각의 과부하를 걷어내고 자연의 맛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건강한 축복의 통로를 개척하는 첫걸음입니다.


마음을 가다듬었다면 이제는 손발을 움직여 실천할 때입니다. 유기농 식재료를 아무리 열심히 조리하더라도, 가열 과정이나 보관 과정에서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봉지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미세 플라스틱과 환경호르몬이 체내 내분비계를 교란하게 됩니다. 저자는 스테인레스 주방도구 선택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며, 사소한 도구의 변화가 몸의 염증 수치를 낮추는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짚어줍니다.


조리 단계에서는 요리에 서툰 초보자나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을 위해 30분 완성 아침 식단 타임테이블을 제안하며 실천 장벽을 대폭 낮춥니다. 식사 후의 뒷정리는 15분 이내에 끝내라고 합니다. 요리가 끝없는 가사 노동으로 전락하여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도록 위함입니다.


자연치유, 오색체질밥상, 맞춤 식단짜기가 포진한 단계에서는 오직 자신의 몸이 보내는 데이터와 신호 안에 해답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한국인의 생체 리듬에 최적화된 3끼 기본상차림이 큰 도움됩니다.


저자는 하루 3끼가 지닌 각각의 생리학적 역할에 따라 영양소와 식재료를 다르게 배치합니다. 아침은 하루의 에너지를 깨우는 탄수화물과 비타민 위주로 구성하며, 특히 저자가 고안한 콩사고(콩, 사과, 고구마)조합은 소화 효율을 극대화합니다. 점심은 신체 활동과 세포 재생을 위한 단백질과 지방을 충분히 섭취하는 골든타임입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14시간 공복을 유지하자고 합니다. 저녁을 숙면을 돕는 가벼운 단품 탄수화물 위주로 소량 섭취하고 긴 공복을 유지하면, 소화기관이 밤새 휴식을 취하면서 체내의 노폐물과 염증 세포를 스스로 청소하는 강력한 해독 작용이 일어납니다.


현미는 영양 면에서 가장 좋지만 소화력이 떨어지는 환자나 노인에게는 백미나 분도미를 적절히 섞어 유동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현장에서 환자들과 부대끼며 다듬어진 베테랑 의사의 조언이 엿보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식단도 작심삼일에 그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폭발하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독이 될 뿐입니다. 저자는 어떻게 이 치유의 과정을 평생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로 정착시킬 수 있을지 기반을 탄탄히 다져줍니다.


부록으로 실린 실습 노트가 유용합니다. 마흔이 넘도록 칼질 한 번 제대로 못 하던 의사도 해냈다면, 당신도 마땅히 해낼 수 있다는 따뜻한 격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색체질밥상』은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 그리하여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첫 번째 기술을 전수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안내에 따라 당신만의 오색 식단을 짜고 14시간의 공복이 주는 몸의 기적을 직접 경험해 보세요.


요리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내 세포 하나하나에 생명의 기운을 채워 넣는 가장 거룩한 명상임을 보여줍니다. 자신도 몰랐던 영역을 환자들과 함께 배워가며 식단을 만들었다는 과정이 오히려 신뢰감을 줍니다. 몸 상태를 스스로 읽고 식단을 조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오래 활용할 수 있는 생활형 건강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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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품위 있게 이혼할 수 있습니다 - 천 번의 이별을 지켜본 변호사가 꼭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박상희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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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천 번의 이별을 지켜본 변호사가 건네는 『당신도 품위 있게 이혼할 수 있습니다』. 이혼이라는 제도가 개인의 실패나 도덕적 낙인이 아니라, 붕괴한 일상에서 자기 자신을 구출해 내는 가장 합법적이고 품격 있는 권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튜브 채널 '박상희변호사의 이혼특강'을 운영하며 대중과 직접 소통해온 이혼전문·형사전문 변호사 박상희 저자는 1,000건이 넘는 이혼 사건을 통해 체득한 법률적 감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동시에 풀어놓습니다.


이혼은 막장의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첫 장이며, 그 첫 장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감정보다 전략이, 눈물보다 증거가, 체념보다 정보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고통으로부터의 탈출구로 상상합니다. 일종의 이혼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하지만 박상희 변호사가 마주한 현실의 법정은 극적인 화해나 깔끔한 이별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별을 결심하는 순간, 어제까지 삶을 공유하던 동반자는 나의 자산과 과거를 파헤치는 위협적인 적대자로 돌변하기 때문입니다. "이혼은 기대와 달리 감정을 치유해 주는 사건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오래 누적된 실망과 피로로 인한 감정의 잔여물은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 직후 예상보다 더 복잡한 감정과 관계의 흔들림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특히 저자는 미루면 관계가 더욱 파괴적인 종말로 치닫는 위험한 신호들을 포착하라고 조언합니다. 도박이나 중독 혹은 반복되는 가정 폭력의 굴레 속에서 아이 때문에 참는다는 변명은 가정을 지키는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정서적 안전망을 서서히 갉아먹는 유해한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급증하는 황혼이혼의 트렌드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어 온 가정이 어떻게 법적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지 황혼이혼의 본질을 들려줍니다.


서류상의 관계를 대책 없이 끝내는 협의 이혼의 치명적인 구멍도 파헤칩니다. 당사자 간의 감정적 합의나 섣부른 양보로 끝낸 협의 이혼은 추후 재산 분할 청구나 양육비 미지급 문제로 이어져 결국 소송보다 더 잔인한 2차전의 시동을 걸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변호사의 문턱을 넘는 행위는 내 삶의 경계선을 명확히 긋고 불필요한 소모전을 예방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어기제입니다.


이혼 소송은 철저하게 입증 책임을 따지는 협상 테이블에 가깝습니다. 박상희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법정이라는 낯선 링 위에 올라갔을 때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이라는 개념을 처방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심 때문에 모든 전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과욕을 부리면, 결국 소송의 장기화와 심리적 파산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고 합니다. 법관과 가사조사관은 감정적인 호소에 쉽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움직이는 원동력은 오직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증거의 무게와 진실성입니다.


더불어 소송 비용의 투명한 내막을 공개합니다. 이혼 소송 비용은 변호사 선임료에 그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악의적으로 은닉한 자산을 파헤치기 위해 법원에 신청하는 수많은 금융 조회와 사실조회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영수증들이 따라붙습니다. 저자는 소송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실전 기술들을 소개합니다.


이혼 소송에서 가장 치열한 전장은 아이의 거취를 둘러싼 양육권 다툼입니다.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의 경우 재정적 능력이 월등한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법원이 경계하는 것은 기본적인 양육 환경의 붕괴라고 합니다. 아이를 세밀하게 살피고 챙길 수 있는 양육자의 정서적 안정감이 우선된다고 합니다. 경제적 부족함은 상대방에게 받을 양육비로 보충하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모성이나 부성의 권리가 박탈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자녀만큼 소중히 여기는 펫팸족이 늘어나면서, 이혼 시 반려동물 양육권을 두고 벌어지는 가사 분쟁도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현행 민법상 반려동물은 애석하게도 물건으로 분류되기에 재산 분할의 틀 안에서 소유권 판정을 받게 됩니다.


재판 심리에서는 누가 동물병원 진료 기록을 관리했는지, 분양 계약서 명의자가 누구인지, 사료와 용품 결제 내역을 누가 부담했는지 등 주 보호자로서의 일상적인 돌봄 기록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쪽의 손을 들어줍니다.


소송 초기에는 아이만 주면 맨몸으로 나가겠다며 호기롭게 외치던 의뢰인들도 소송이 중반부로 접어들어 당장 이혼 이후의 생계와 주거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면 십 원짜리 하나, 중고 가구 하나를 두고도 피 터지는 설전을 벌이게 됩니다.





법원은 부부가 결혼 생활 동안 공동으로 일구어낸 자산만을 분할 대상으로 삼습니다. 재산 분할 전쟁에서 공평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과 상대를 파멸시키겠다는 과도한 분노를 경계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가사 노동의 가치입니다. 요즘은 가사 노동이 공동 재산을 유지하고 배우자의 경제 활동을 뒷받침한 중대한 자산 형성 기여도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가사 노동의 기여도가 법정에서 어떻게 수치화되는지, 황혼이혼이 왜 단순한 관계 정리가 아니라 남은 생애의 안전망을 재설계하는 선택인지를 짚어줍니다.


법적 절차가 종결된 순간 모든 고통이 마법처럼 증발하고 찬란한 해방감이 찾아올 것 같지만, 실상 문을 열고 나선 의뢰인들을 기다리는 것은 짙은 고독감과 알 수 없는 공허함입니다. 상처 입은 영혼이 온전하게 자생력을 회복하기 전에는, 그 어떤 달콤한 도피처도 결국 또 다른 형태의 덫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이혼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타인에게서 내 손으로 완벽하게 회수해 오는 독립 선언입니다. 품위 있는 이혼이란 우아하게 헤어지는 기술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자기 삶의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이혼을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낭만화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서적 위로를 넘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법률적 방어기제와 실용적인 로드맵을 안겨주는 책입니다. 이혼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결혼 제도와 법적 권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교양서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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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를 종료합니다 - 나를 괴롭히는 108번뇌 탈출 필사
필로소피랩 지음 / 각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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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누웠지만 정작 머릿속의 백그라운드 앱은 수십 개가 동시에 돌아가며 배터리를 갉아먹는 듯한 피로감. 짜증, 박탈감, 과거를 복기하는 후회의 감정들까지. 복잡다단한 마음의 과부하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불안과 번뇌라는 이름의 무한 루프에 갇힌 현대인을 위한 심리 최적화 가이드 『번뇌를 종료합니다』. 부제는 '나를 괴롭히는 108번뇌 탈출 필사'. 고전의 깊은 지혜를 일상의 언어로 재번역하는 콘텐츠 연구소 필로소피랩은 불교의 번뇌 분류 체계를 우리의 감정 지형 위에 겹쳐 놓습니다.


번뇌를 마음의 오류 코드로 바라봅니다. 번뇌 CODE 001부터 108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각각의 번뇌에는 근원(진단명), 경전 문장(처방전), 해석(복약 설명서), 필사란(직접 투약), 체크리스트(복용 확인)가 따라붙습니다. 마음을 다루는 일에도 순서와 방법이 있습니다.


왼쪽 페이지에 번뇌의 진단과 해석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필사 공간과 3단계 실천 체크리스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첫 번째 오류는 탐욕개(貪欲蓋)입니다. 누군가의 성공이 나의 실패처럼 느껴진다거나 SNS를 볼 때마다 초라해진다 같은 상태가 대표적입니다.


탐욕개가 다루는 번뇌들의 공통 구조는 비교입니다. 나와 타인, 현재와 과거,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욕망을 생산하고, 그 욕망은 충족될수록 다음 결핍을 예약합니다. 만족의 불가능성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 작동 방식 자체의 문제라는 인식, 이것이 탐욕개가 주는 첫 번째 전환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 명언을 찾아 헤매는 이유도 결국 비교와 결핍의 굴레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얻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두 번째 오류인 진에개(瞋恚蓋)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타인을 향해 뿜어내는 날카로운 저항선, 즉 분노와 원망을 다룹니다. 화가 날 때마다 폭발시키는 것은 에너지가 넘쳐서가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다루는 심리적 근력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겉으로는 점잖게 상황을 정리한 것 같지만 내면에서는 여전히 앙금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 즉 위장된 용서의 모순까지 파고듭니다. "깨달았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이제 분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자체가 또 하나의 집착이다."라고 짚어줍니다.


3부에서 다루는 수면개(睡眠蓋)는 정신이 혼미하고 무기력하여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심리적 셧다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감각이 무뎌졌다, 계속 미룬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어렵다 등 번아웃 신드롬에 신음하는 직장인들의 일상을 보는 듯합니다.


수면개의 번뇌들이 공통으로 가진 구조는 지금 이 순간의 회피입니다. 과거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미래의 결과를 계산하면서 현재의 행동을 유예하는 패턴. 이를 마음의 백그라운드에서 꺼지지 않은 프로세스로 묘사합니다. 처리되지 않은 번뇌는 소멸하지 않고 자원을 소모하며 작동 중이라는 겁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짜릿하고 강력한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손끝에 닿는 촉감이나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같은 미시적인 존재들에 다시 주의를 기울이는 섬세한 깨어있음입니다.


4부 도회개(掉悔蓋)는 마음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치며 조급해하거나, 지나간 실수를 끊임없이 곱씹으며 자책하는 상태를 조명합니다. 들뜸과 후회의 마음입니다.


그때 이랬더라면 하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일을 끝내지 못하고 계속 다른 것을 건드린다 등의 오류 코드는 우리의 마음이 지금, 여기라는 현재 시제에 안착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인지 오류를 보여줍니다.


마지막 5부 의개(疑蓋)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믿지 못해 끊임없이 망설이고 유예하는 결정 장애와 냉소의 오류를 정조준합니다. 잘하고 있는 걸까 걱정된다, 완벽한 답을 찾을 때까지 움직이지 못한다, 실패가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안 한다 등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방어기제가 도리어 삶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순간들을 담아냅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작은 변수에도 판단을 뒤집으며 스스로를 의심하는 과정은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습니다. 의심과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스크를 경계하는 합리적인 의심은 필요하지만, 그 의심이 내면을 잠식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영혼의 감옥일 뿐입니다.


『번뇌를 종료합니다』는 인생이라는 랜덤 게임 속에서 완벽한 확신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임을 명확히 짚어냅니다. 108배를 통해 108가지 감정 과부하를 내려놓듯, 내 안의 웅크린 의심을 거두고 일단 가볍게 선을 그으며 한 걸음을 내딛는 것. 두려움을 용기로 치환하는 고전의 진짜 사용법입니다.





무기력, 번아웃, 관계 갈등, 만성적 불안을 겪는 이들이라면 108가지 번뇌 목록 어딘가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매일 밤 하루 한 페이지씩, 내 마음에 켜진 버그 가득한 윈도우 창을 하나씩 닫아가는 심리적인 아웃트로 루틴을 만들어보세요.


2600년 동안 검증된 부처의 디버깅 가이드를 따라 108일간 묵묵히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불필요한 백그라운드 앱이 모두 정리된, 몰라보게 가볍고 쾌적해진 내면의 진짜 나를 만나게 될 겁니다.


종교적 색채를 최소화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경전은 등장하지만 설교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래된 철학을 현대인의 정신 관리 매뉴얼처럼 번역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의 반복되는 패턴이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원래 흔들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체념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번뇌를 관찰하고 이름 붙이고 정리하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건 번뇌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번뇌에 끌려다니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유행처럼 소비되는 인생 명언 모음집을 넘어,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가며 삶의 태도를 바꾸게 만드는 실천서 『번뇌를 종료합니다』. 매일 하나의 번뇌를 진단하고 경전 문장을 따라 쓰는 3단계 필사 루틴을 통해 주도적인 마인드 컨트롤러로 거듭나는 실천적이고 즉각적인 마음 정리의 효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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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야 놀자
김선규 외 지음 / 문학고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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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문학고을 강원지부 동인들이 엮어낸 『감자야 놀자』. 강원도와 감자라는 시각적 기표가 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읽는다면 깜짝 놀랄 겁니다. 향토적인 서정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혼의 허기짐을 앓고 있는 고독한 현대인들 특히 오늘날의 청춘들에게 무척이나 유효한 생의 지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던 아홉 명의 문우들 (김수진, 신기순, 김선규, 달빛바람, 정우연, 유영숙, 윤장은, 주진복, 유영준)이 각자의 삶에서 채취한 원료들을 이 책 한 권에 모아냈습니다. 시, 수필, 단편소설을 가로지르는 이 동인지는 지금도 익어가는 사람들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김수진 작가의 작품은 일상의 풍경을 세심하게 포착합니다. 시 「소나무」는 그 진수를 보여줍니다. "살아살아 살아진다. / 푸른 잎새 늘 그 자리 / 등껍질 벗긴 자리 솔방울 떨어지면 / 하늘 향한 굳은 신념 / 살아짐에 순응한다."


살아살아 살아진다라는 시어가 참 좋습니다. 가만히 소리 내어 읊조릴 때의 그 맛이 남다릅니다. 눈으로 읽을 때보다 입술과 혀를 거쳐 귀로 들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되는 참 근사한 시어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악착같이 버텨내는 '살아'라는 능동의 외침이 반복되다가 세상의 흐름에 몸을 툭 맡겨버리는 '살아진다'라는 수동의 울림으로 끝맺음합니다. 그저 존재 자체로 살아냄을 보여줄 뿐입니다.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살아짐에 몸을 맡기는 것, 이것이 강원의 자연이 가르쳐 준 지혜인지도 모릅니다.





신기순 작가의 시 「계란 한 판」은 사회적 시선을 담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미끄러운 길보다 / 미끄러울까 봐 더 조심스러운 것은 / 그 하루의 끼니일지도 모르겠다"


등 굽은 할아버지가 왼손에는 지팡이, 오른손에는 계란 한 판을 들고 걷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계란들이 서로를 끌어안는다는 표현이 빛납니다. 넘어질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끼니를 놓칠까 봐 두려운 노인의 하루. 문학의 언어로 짚어내니 더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동인지 발간사를 쓴 김선규 작가의 「총알과 사랑의 상관관계相關關係」는 오발탄-불발탄-연발탄의 3부 구조로 사랑의 방식을 해부합니다. "내가 그의 심장을 향해 쏜 총이 /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듯 지나갔다 / 아무 일도 없는 조용한 침묵 / 오발된 총알은 어디에서도 / 찾을 수 없고 그는 떠나갔다"


사랑을 총알의 물리학으로 설명하는 발상이 낯설고도 정확합니다. 닿지 못한 사랑(오발탄), 터지지 않은 사랑(불발탄), 방탄복을 뚫지 못한 사랑(연발탄). 실패의 양태는 사랑이 언제나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합니다.


필명 달빛바람의 시는 유머를 머금고 있습니다. 「방귀들의 대화」, 「T의 표현법」, 「배고픈 숟가락」처럼 웃음 속에 삶의 결핍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독과 결핍을 억지로 포장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쓸쓸함의 실체를 투명하게 대면하게 만듭니다. 「바람」에서의 "아픔 도둑 / 세월 도둑"이라는 극도로 압축된 두 행짜리 시구도 매력적입니다.


정우연 작가의 「목련」은 가슴 아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시대의 한파 앞에서 제대로 피어나지 못하고 스러지는 청춘들의 좌절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봄볕에 취해 / 철모르고 피어"났으나, 세상은 여전히 "겨울 같은 바람"으로 가득 차 있기에 꽃잎은 아리게 멍들고 맙니다. "빛을 잃은 날 / 꿈을 잃고 / 다시는 보지 못할 / 고운 봄을 잃었다"라는 가슴 시린 이야기. 저마다의 마음속에 묻어둔 잃어버린 봄을 생각나게 합니다.





유영숙 작가의 「저온 저장고」는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에 대한 탁월한 은유가 빛납니다. "나도 기억 저장고를 만들고자 한다 / 사시사철 기억 저장고를 들어가 / 돌풍과 폭우로 당혹스러웠던 이별의 날들을 / 차곡차곡 경험으로 빚어 / 저장고에 넣어두고자 한다"라며 상처를 잊으려 하지 않고 저온 저장하겠다는 선택, 이별을 경험으로 빚어 저장하겠다는 태도에서 삶에 대한 단단한 성숙이 느껴집니다.


윤장은 작가의 작품들은 이 동인지에서 가장 긴 호흡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허기짐을 착각해서」와 함께 「사람이… 그리웁다」 등은 한 편의 소설처럼 전개됩니다. 현대인들이 겪는 고질적인 정신적 질환인 소외와 공허를 재구성해 냅니다.


주진복 작가의 「자기 삶에 대한 예의」에서는 "대충 살아도 된다고 하지만 / 그 말 뒤에 숨은 쓸쓸함 / 한 번뿐인 인생 / 조금 더 따뜻하게 / 진심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문장이 와닿습니다. 허무주의와 무기력증에 빠진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입니다.


마지막 주자 유영준 작가는 수필과 단편소설로 이 동인지의 문을 닫습니다. 수필 「소설을 써야 하는 변명」에서 "오늘은 내가 왜 소설을 쓰는지 그 고집스러운 내막과 변명을 늘어놓고자 한다. 굳이 왜 '소설' 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라며 운을 뗍니다.





시에서 수필로, 수필에서 소설로 장르를 넘나든 이력은 언어에 대한 끝없는 갈증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단편소설 「환상방황環狀彷徨」을 선보입니다. 동인지 안에서 비교적 실험적인 작품인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습니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안개가 걷히고 나면 늘 제자리인 것만 같은 청춘들의 불안감과 좌절감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삶이란 결국 제자리걸음인지, 아니면 계속 맴돌며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인지 질문하게 만듭니다.


중장년층 독자에게는 자신의 기억과 공명하는 시어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고, 젊은 청년층 독자에게는 세대 너머의 감각을 날것으로 경험할 기회가 됩니다. 거창한 문학이 아닌, 삶의 틈새에서 피어난 언어들이 얼마나 깊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삶에 지친 밤, 밥 냄새 같은 시와 수필이 필요하다면 『감자야 놀자』를 펼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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