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
아르만드 푸치 지음, 송병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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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성서학자의 현미경으로 해체한 인간 안토니 가우디의 유일무이한 기록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 건축의 성자, 바르셀로나의 영원한 영혼이라 불리는 안토니 가우디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전기의 결정판입니다.


기괴할 정도로 독창적인 곡선의 천재, 환상적인 동화 속 세계를 현실로 불러온 예술가 가우디. 카톨릭 사제이자 성경학 박사인 저자 아르만드 푸치는 가우디가 태어나고 자란 카탈루냐 타라고나 지역 출신으로, 거장이 호흡했던 땅의 빛과 흙, 지중해의 바람과 언어를 몸으로 기억하는 연구자입니다. 바르셀로나 대주교의 공식 요청을 받아 가우디의 시복(諡福) 절차에 필요한 영적 여정을 철저히 실증적으로 추적했습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가우디의 공방과 도면, 메모가 모조리 불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저자는 동시대의 미공개 기록과 건축물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인간 가우디의 내면을 복원해 냅니다.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100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도달한 거장의 내밀한 사유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가우디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눠 추적합니다. 첫 번째 유년기, 가우디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로 고향 레우스와 리우돔스의 자연을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으며 또래 아이들처럼 뛰어노는 대신 자연을 가만히 관찰해야 했던 소년 가우디에게 지중해의 강렬한 빛과 변화무쌍한 공간은 거대한 교과서였습니다.


가우디에게 자연은 묘사하거나 모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이 설계한 완벽한 건축물이었습니다. 레우스의 흙과 지중해의 파도가 준 공간적 직관은 훗날 그가 바르셀로나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가장 단단한 자양분이 됩니다.


그의 초기 사상이 가장 날것의 형태로 담긴 소중한 사료가 바로 1878년에 작성된 레우스 원고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청년 가우디가 적어 내려간 이 장식론은 훗날 그가 보여줄 거대한 건축적 대서사의 예언서와도 같습니다.


청년 가우디에게 장식은 건물의 겉면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장식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건축의 내적 본질과 기능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적 언어였습니다. 가우디는 종교 건물이 지녀야 할 중후함과 장엄함을 파르테논 신전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며, 세속적인 건축과 성스러운 건축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원고를 작성하고 5년 뒤인 1883년,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미 성전을 맡기 전부터 영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거대한 희생의 성소를 지을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1880년대 중반부터 가우디의 창의성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평생의 후원자가 된 에우제비 구엘과의 만남은 가우디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탄생한 카사 비센스, 엘 카프리초, 구엘 별장 등은 이슬람 풍의 오리엔탈리즘과 카탈루냐 전통 양식이 절묘하게 융합된 경이로운 걸작들입니다.


그중에서도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에 맞춰 기획된 구엘 저택은 가우디가 추구한 공간의 유기성과 기능적 장식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우디는 협소한 대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건물 중앙에 거대한 안뜰을 두고, 18미터 높이의 대연회실과 쌍곡포물선 형태의 내부 돔으로 연결하는 혁신적인 설계를 선보입니다.


가우디의 위대함은 단순히 화려한 외관에 있지 않습니다. 구엘 저택의 웅장한 기둥과 천장 장식들은 언뜻 보기엔 과시용 디자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부의 엄청난 하중을 견디기 위해 계산된 구조적 필수품이었습니다. 또한, 가우디가 평생을 바쳐 집착했던 빛의 조절 역시 옥상의 원뿔 모양 중앙 첨탑을 통해 완벽하게 구현됩니다.


그러나 눈부신 성공의 이면에서 가우디는 깊은 내적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아스토르가 주교궁 작업 과정에서의 갈등, 영적인 갈증은 결국 1894년 사순절의 극단적인 단식으로 이어집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 영적 대위기는 가우디의 내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화려한 청년 건축가 가우디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영성의 세계로 침잠하며, 자신의 건축적 재능을 신의 영광을 위해 전적으로 봉헌하기로 결단합니다.





영적 변혁을 거친 가우디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카사 칼베트, 베예스과르드,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구엘 공원과 카사 바트요, 라 페드레라(카사 밀라)가 이 시기에 연달아 쏟아져 나옵니다. 이 시기 가우디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고딕 양식이 지닌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울어진 기둥과 현수선 아치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 시기 가우디의 미학을 설명하면서 그를 현대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가난한 예술: 일상적인 쓰레기나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예술 양식)의 선구자로 임명합니다. 가우디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투박한 재료의 물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를 실용적이면서도 극적인 예술로 승화시키는 천재적인 재활용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정점이 바로 콜로니아 구엘 교회의 지하 소성전입니다. 자투리 참나무 판자가 가우디의 손을 거쳐 수백 년을 견딜 성스러운 예배당의 벤치로 탈바꿈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1910년과 1911년 사이, 가우디는 브루셀라증이라는 심각한 질병을 얻어 또다시 죽음의 경계에 서게 됩니다. 육체적인 쇠약과 고통 속에서 그는 자신의 두 번째 파사드, 즉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수난의 파사드에 대한 직관을 얻습니다. 그것은 미학적 유희를 완전히 걷어낸, 질병의 고통 속에서 뼈만 남은 인간의 형상을 닮은 처절하고도 명확한 도면이었습니다.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 가우디는 세상의 모든 세속적 의뢰를 거절하고 오직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만 전념합니다. 성당 공방에 침대를 들여놓고 살며, 매일 미사를 드리고 성경을 묵상하는 수도자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의복은 해어졌고 겉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1926년 6월 7일, 평소와 다름없이 성당에서 일을 마치고 산 펠리페 네리 수도원으로 기도를 드리러 가던 노건축가는 레스 코르츠 카탈라네스 대로를 건너다 달려오는 전차에 치이고 맙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6월 10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시민이 통곡했던 거장의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가우디의 서명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 단계로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하며 그의 실존적 궤적을 요약합니다. 청년기의 화려하고 외형적인 확장 지향적 서명에서 시작하여, 중기의 내면적 고뇌가 담긴 형태를 거쳐, 말년의 지극히 절제되고 본질만 남은 서명에 이르기까지 그의 서명은 곧 그의 삶 자체였습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했습니다. 오래 걸리는 것, 끝이 보이지 않는 것, 당대에 인정받지 못해도 해야 하는 일을 붙드는 삶.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제 가우디라는 한 개인의 천재적인 예술품을 넘어, 세대를 거쳐 수많은 사람이 함께 시간을 쌓아가며 완성하는 인류 모두의 역사이자 공동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가우디 서거 100주년과 맞물린 이 시점에 이 책은 단순한 기념 출판물이 아닙니다. 저자가 집필한 원서는 가우디 서거 100주년 기념 미사를 위해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교황 레오 14세에게 헌정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존에 알려진 가우디에 대한 수많은 인용구 중 상당수는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후대에 각색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그 하나하나를 검토하고 가능한 한 동시대 자료와 작품 자체로 돌아갑니다.


화려한 도판은 없지만 가우디의 미공개 스케치와 엄격한 문헌 검증을 종횡무진 누비는 저자의 분석은 한 인간이 자신의 전 생애와 영혼을 바쳐 지어 올린 건축물이 지닌 시간의 깊이를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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