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 이젠 떠날 수 있을까? - 한 달 살기 제주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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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쉽게 갈 수 있는 국내여행지라는 생각에 오히려 제주 여행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제주를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입니다.


올레길 유행 이후 생각하는 숲길, 한라수목원 등 숲 트레킹도 인기 있고 카페 투어, 해변 여행, 건축 여행 등 다양한 테마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제주. 요즘 제주의 모습을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한 달 살기 제주>에서 만나봅니다.


한 달 살기 열풍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막혔지만, 국내로 눈을 돌리는 여행자들이 늘어났습니다. 해외 한 달 살기의 로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제주가 아닐까 싶어요. 공항을 나서기만 해도 평소 보던 자연환경과는 달라진 분위기에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저도 제주의 사계를 다 만끽해 보고 싶은데요. 눈이 올 것 같지 않은 제주여서 겨울의 제주는 기대를 전혀 안 했는데, 조대현 작가의 겨울 제주 사랑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올겨울은 제주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샘솟을 겁니다.


일몰 헌터, 스타 헌터라는 단어가 와닿습니다. 박물관 같은 곳을 가려다 마감 시간 즈음해서 애매하게 시간이 남을 때는 일몰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어둑해진 밤에도 별 보기 힘든 요즘, 빛나는 별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제주에서 만나는 일몰과 별은 또 색다른 감상을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제주의 역사를 배경지식 삼아 여행하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제주 4·3 사건과 관련한 다크 투어라든지 탐라국으로 시작한 제주의 오래된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장소들은 그 배경을 알고 여행할 수 있게 간략하게 소개해두고 있습니다.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을 포함해 오름 여행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삼다도라 불린 제주인만큼 바람의 소리에 주목한 작가님처럼 바람을 느끼는 시간이 너무나도 기대되기도 합니다. 갈대를 스치며 부는 바람, 수목림을 거닐 때 마주하는 바람 등 바람의 결을 느껴보는 시간을 누리고 싶어졌습니다.


옛 가옥부터 현대 건축물까지 건축 여행을 하기에도 훌륭한 조건을 갖춘 제주입니다. 에메랄드빛에서 코랄드 빛을 내는가 하면, 하얀 백사장부터 검은 모래해변까지 다양한 색감을 자랑하는 해변을 제주에서 맘껏 만날 수 있다는 매력도 대단합니다. 제주 곳곳의 벽화골목을 찾아보는 여행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 모든 것들을 다 하려면 한 달도 모자를 테지만, 한 달 살기가 아니더라도 주말 동안 틈틈이 찾아가도 무리 없는 제주입니다.


한 달 살기만이 주는 여유로움이 가이드북에 담긴 느낌입니다. 일반적인 여행가이드북과는 달리 에세이적 감성이 담긴 책입니다. 장소 정보는 검색이 더 빠른 시대이니 책에서는 한 달 살기의 가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관광명소 위주의 제주만 알고 있었다면 양파 같은 매력을 품은 화산섬 제주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한 달 살기 제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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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이젠 떠날 수 있을까? - 한 달 살기 제주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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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같은 매력을 품은 제주의 다채로움을 담은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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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철학 -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인문학 편지
윤성희 지음 / 포르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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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큐레이터 윤성희 저자의 신간 <다산의 철학>. 관계를 이어주는 손편지의 매력을 듬뿍 전한 전작 <기적의 손편지>를 감동 깊게 읽었는지라 오랜만에 만나는 신간도 반가웠습니다. 500여 권의 책을 남긴 조선의 대표 학자 다산 정약용을 다룬 책은 많지만 윤성희 작가만의 큐레이션은 역시 빛을 발휘하네요. 다산이 아들, 친구, 제자 등에게 쓴 편지에 담긴 조언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는 걸 건져올린 <다산의 철학>.


다산 정약용은 6남 3녀 중 4남 2녀를 먼저 떠나보냈고, 학문적으로 의지하며 동료와도 같았던 형제들의 고난을 목격하기도 했고, 그 자신도 18년의 유배생활을 하며 사적으로 공적으로 세월의 풍파를 많이 겪은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의 흔적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다산의 사고방식과 실천적 행동은 중심을 지키는 신념에서 비롯됩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처럼 조선의 그들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다산의 제자 윤혜관은 선비라는 이상과 가장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나 봅니다. 농사도 장사도 할 수 없는 선비는 어떻게 살림을 좀 펴게 만들 수 있을까요.


다산은 작은 밭에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를 가꾸라고 조언합니다.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즉 본캐와 부캐 모두 잘 돌보라는 의미입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밭을 가꾸되 본캐인 선비의 본질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합니다. 논어, 주역 같은 책을 꾸준히 읽으라고 합니다.


윤성희 저자는 다산의 꿈을 현실에 발을 디딘 채로 꾸는 것으로 짚어냅니다. '나'를 중요하게 여기기에 오히려 가능한 N잡러의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나를 잃어가면서 좇는 꿈은 허무한 것이라는 거죠. "진정한 N잡러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를 원하며 꿈을 꾸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다산의 명쾌하면서도 담백한 말이 와닿습니다. 재미있는 건 다산이 유배지에 있을 때 쓴 아들의 편지에는 도성으로 이사하기 전, 과일 심고 채소를 가꾸어 생계를 도모하면서 집안 살림이 좀 넉넉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옮기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서출은 벼슬에 나갈 수 없어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기 일쑤였다는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서출 동생인 약횡에게 다산이 쓴 편지도 있습니다. 솔직히 놀랍더라고요. 깨어있는 자라는 걸 실감하게 한 편지였습니다. 같은 아버지에서 태어났지만 출발선이 달랐던 서출 동생에게 도착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철저히 평소 자기관리를 잘 하라고 당부합니다. 정해져 있는 신분, 환경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다산의 철학>에는 이처럼 세상이 정한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나'를 위한 현명한 조언이 가득합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린 게 있는데요. 유배지로 가 있는 사이 그들의 집도 한양 도성에서 내쳐지자 아들에게 순간의 분노로 시골행 하지 말고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도성으로, 하다못해 도성 근처에라도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는 편지입니다. 속물 같아 보이지만 다산은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당부에 가깝습니다. 문화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곳으로서 도성의 중요성을 짚어냈고, 이는 곧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한 기본 옵션인 적응력과 유연성을 갖추라는 의미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외모지상주의는 있었습니다. 유난히 체구가 작은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외모로 판단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용기를 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산이 가장 사랑했던 제자 황상에게 보낸 편지도 있습니다. 자신은 남들처럼 공부 잘하는 재주가 없다고 말하는 황상에게 다산은 반복과 습관의 힘을 들려줍니다. 부지런한 루틴을 만들어 미라클모닝의 힘을 이미 이야기한 다산입니다.


<다산의 철학>은 딱딱한 해설서가 아닙니다. 이 책에 실린 다산의 편지 원문은 <마음챙김의 인문학> 책으로 제 마음을 사로잡은 임자헌 작가의 번역으로 실려있어 원문도 술술 잘 읽히는 매끄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인문학과 자기계발을 연결한 윤성희 작가의 해석이 놀랍도록 근사합니다. 다산의 편지에서 건져낸 통찰의 수준이 부러울 정도였어요.


저마다의 고민으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산이 전하는 위로와 용기의 말 <다산의 철학>. 번지르르한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신념으로 시작해 생각하여 이해의 폭을 넓히고,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며 타인과 공존하며 잘 살아가는 법을 실천할 수 있는 명쾌한 조언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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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신화력 -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신화 수업
유선경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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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4세기 수메르 길가메시, 기원전 20세기 인도의 우파니샤드, 2천 년 전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북유럽 신화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여정 속에 담긴 지혜와 키워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신화에서 발견합니다.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인생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그곳에 있습니다. <어른의 어휘력>, <문득, 묻다> 등을 쓴 유선경 저자가 탐색한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에서 만나는 모험 <나를 위한 신화력>. 신화가 보여주는 삶의 지혜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동양신화에 등장하는 전통적인 낙원 도원. 서왕모의 반도원을 가리킵니다. 복숭아를 대접하는 잔치가 열리는 이곳은 곤륜산에서도 '요지'라는 곳입니다. 이 서쪽에는 혼돈의 신이 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 책 <산해경>에는 제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혼돈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날개도 달려있고 노래와 춤을 잘하는 신입니다. 동양신화와 관련해서는 만화로 보는 정재서 교수의 동양신화 책을 접한 바 있어 서양신화에 비해 낯선 동양신화 이야기가 등장해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태초의 카오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함께 저절로 있었고, 북유럽신화에도 긴눙가가프가 있습니다. 원래 모든 민족에게는 원시성이 강한 천지창조 신화가 있었지만, 세월을 거치며 신화적 요소보다 스토리텔링적 요소가 강해졌다고 합니다. <나를 위한 신화력>에서는 그 원형까지도 파헤치고 있습니다. 현실에 없는 낙원을 찾아 헤매고, 내 안의 카오스를 마주하듯 신화에서도 발견되는 의문들을 짚어가며 그 시대에도 꿈꿨던 희망을 건져올립니다.


과거에 '해서' 혹은 '하지 않아서'하는 후회를 하는 우리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신화와 전설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단어를 보면 결정된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존재를 악마라고 여겼습니다. 인간은 21세기에 카오스라는 복잡계에 살면서 라플라스의 다이몬이 되려 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로렌츠의 나비효과처럼 초기 조건의 민감성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듯 인생을 살면서 생길 수 있는 변수는 어마어마한데도 말입니다. 결국 답은 예측 불가능하다입니다.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원인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입니다. 잘 된다 해도 온전히 당신 덕이 아니고, 잘못된다 해도 오로지 당신 탓이 아닌 겁니다. 이런 미래를 두고 통제, 지배하려는 의지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라는 걸 짚어줍니다. 결국 우리는 불확실성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신화 속에서 깨달아갑니다.


전 세계 신화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용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도 흥미진진합니다. 악으로 간주해 결전을 치르는 소재로 흔한 서양 신화와 달리 동양의 용은 수호, 제왕의 역할을 합니다. 인도 신화에서는 뱀 아난타를 숭배하기도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출몰하는 용의 진실을 통해 <나를 위한 신화력>은 인간의 본질을 탐색합니다.


특히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모든 밑바닥에는 굶주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화. 굶주림만 한 형벌은 없습니다.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에는 탄탈로스가 굶주립니다. 물을 마시려 하면 물이 말라버리고, 과일을 따려고 하면 나뭇가지가 멀리 달아나 영원한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굶주림은 곧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괴로움입니다. 동양에는 비슷한 의미로 '아귀'가 있습니다. 먹을 것을 두고 죽도록 싸웁니다. 현대인에게는 이 굶주림이 욕망보다 박탈감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랜 서사시의 주인공이자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난 길가메시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 스스로는 결국 주어진 수명만큼만 살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젊음과 장수를 집착하는 현대인은 노화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진정한 불로장생의 의미를 길가메시 이야기와 연결해 들려줍니다.


신화를 탐색하다 보면 냉소, 절망, 불안, 의문의 상당 부분이 해소된다는 저자는 <나를 위한 신화력>을 통해 동서양 신화 속 지혜와 통찰을 65점의 동서양 명화와 함께 보여줍니다. 신화 자체의 스토리텔링을 단순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인간 본질의 궁금증을 담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의 신화들이 어떤 답을 내놓고 있는지 쏙쏙 뽑아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신화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저자의 해박한 신화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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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나라
이쓰키 유 지음, 김해용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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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요코미조 세이지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데뷔작 <무지개를 기다리는 그녀>로 인상 깊은 여운을 남긴 이쓰키 유 작가의 신간 <은빛 나라>. 전작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배제된 인물들이 등장하는 자살 문제를 인공지능과 연결해 펼쳐 보였다면 이번에는 VR (가상현실) 게임과 연결해 오싹한 스릴감이 더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한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공부, 동아리 활동, 인간관계... 조금이라도 싫증이 나면 지속하지 못하고 도망친 시오리. 요령껏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 채 도망치기의 달인이 된 시오리는 어느 날 벤처회사 사무직 면접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지만, 그 결과는 납치 감금을 당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시오리를 납치한 인물은 삶에 지친 사람들을 VR 게임 '은빛 나라'에 모여들게 한 다음 자살하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은빛 나라의 가이드 역할로 시오리를 점찍고 그녀를 반 년 이상 감금하며 가이드 안나로 키워냅니다.


한국 자살 사망률은 2020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만 3799명으로 하루에 37.8명꼴입니다. 변변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고뇌하면서 세상이 외면한 이들입니다. 이쓰키 유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전 자살 방지 대책 현장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소설 <은빛 나라>에서는 자살을 막기 위해 상담 활동을 하는 단체 '레테'를 운영하는 주인공 고스케를 포함해 상담자들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고스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미유키 등이 등장합니다.


상담자가 목숨을 끊게 될 경우 상담원들은 무력감에 빠져듭니다. 자신의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 심란해집니다. 오래전부터 알던 히로유키의 자살로 죄책감에 고통받는 고스케는 히로유키의 죽음이 일반적인 자살 동기와 맞지 않음을 의심하던 차에 그의 누나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자살 충동을 느끼는 영상이 존재할까"라며 히로유키가 죽기 전 사용한 VR용 고글을 보여줍니다. VR 영상이 히로유키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걸까요.


평소 자해 습관이 있는 재수생 구루미 사례는 남들이 보면 별것 아닌 고민 같아 보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피폐하게 만들고 삶의 행복을 현실 세계에서 전혀 찾지 못한 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 인물의 전형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SNS에서 누군가로부터 권유받은 '은빛 나라'. 그곳은 지친 사람들이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안전지대라고 합니다. 아직 실험 단계의 게임이기에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 속에서 구루미는 은빛 나라에 빠져듭니다.


은빛 나라에서는 현실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를 맛볼 수 있습니다. 구루미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이들이 그곳에는 있습니다. 우울감, 고립감으로 점철된 현실 세상을 벗어나 은빛 나라에서는 즐거움과 만족,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은빛 나라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미션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 올리는 단순한 미션으로 시작하다가 점점 미션의 방향이 괴이해지지만, 은빛 나라의 달콤한 행복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미션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은빛 나라의 진짜 목적은 자살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개발자는 고통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면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공포가 두려워 차마 죽지 못하는 이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쉽게 극복할 수 있게 접근한 것이 바로 은빛 나라입니다. 절망에 빠진 채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모인 은빛 나라. VR에서는 누구도 두려움 없이 죽을 수 있기에 반복적으로 연습 시키는 셈입니다.


은빛 나라는 자살 유도 게임인 '푸른고래' 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온라인 자살 게임인 푸른고래는 누군가 SNS를 통해 지시를 내리고 참가자는 그 지시를 이행한 뒤 인증해야 합니다. 50일 동안 매일 다른 지시를 이행하는데 처음엔 음악 듣기처럼 단순한 미션이지만 차곡차곡 정신적 대미지를 입히는 미션들입니다. 최종 단계 미션은 바로 건물에서 뛰어내릴 것이었습니다. 2016년 필립 부디컨이 발명한 이 미션 수행 게임은 세계적으로 유사 사건이 발생하며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자살 게임이 모방 자살, 집단 자살 같은 사회적 대참사로 이어지게 된 사례입니다.


자신의 고통은 시시한 문제라고 스스로 자책한 구루미처럼 고통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현실을 버텨낼 무언가를 도무지 찾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픕니다.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을 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오히려 너무나도 살고 싶어서, 현실을 살아내고 싶기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은빛 나라'일 겁니다.


게임의 실체를 밝히려는 고스케를 중심으로 게임에 관여된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를 보여준 <은빛 나라>. 자살이 그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임을 드러내는 의미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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