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 혼란의 시대를 돌파해 현대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꾼 11인의 위대한 생각들
송경모 지음 / 트로이목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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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격랑의 시대를 겪으며 발전해 온 세계. 지금의 경제 사회에 이르게 한 건 혼란과 위기의 시대를 헤쳐온 사상과 혁신의 성과 덕분이었습니다. 개인의 발견, 이상적인 산업 사회, 기업가정신, 국가 시스템, 정보의 대중화, 창조적 파괴와 혁신, 창업 등 여러 사건과 경험이 얽히고설키면서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요.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경제학 & 경영 전략 연구개발과 컨설팅업을 영위하는 미라위즈 대표 송경모 경제학 박사의 책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철학 분야를 아우르며 현대 산업 사회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손, 자유주의 시장 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그를 두고 시장 만능주의, 자유방임주의, 개인의 탐욕 예찬을 옹호하는 인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 여기저기서 외치는 '혁신'처럼 '계몽'이라는 키워드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을 살펴보며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어떻게 탄생되고 정립되었는지 알려줍니다. 


그가 쓴 <국부론>은 도덕철학서이자 정치경제학 서적입니다. 한 사회의 개별 구성원들이 어떤 원리를 따를 때 사회 전체의 소비 수준이 최고 수준으로 향상되고 번영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 분석합니다. 대표 저서 <국부론>, <도덕감정론>에는 그를 대표하는 카피 '보이지 않는 손'이 딱 한 번씩 등장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노동과 자본 투입에서 오는 자신의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낳는데, 이 중간 메커니즘을 그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비유로 표현한 겁니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명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공익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각자 사익을 추구할 때 역설적으로 공익이 달성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사익은 이기심이 아니라 단순히 그 개인 당사자에 국한된 일, 그 자신에게 효용을 안겨주는 일을 가리킵니다. 


결국 <국부론>이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건설적 개인주의입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자본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개인의 판단력과 우월한 능력이 결과적으로 사회의 능력과 번영으로 연결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도구, 원시적인 기계 정도에 국한되었던 곡물 경제, 장인 경제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지만 모든 사업 경영자의 기본 덕목을 잘 이해한 인물이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았던 손은 이후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을 통해 구현됩니다. 계획형 사회주의자들은 한때 애덤 스미스식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당국의 신과 같은 전능함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대기업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전에 살았던 애덤 스미스. 이제는 자본주의를 넘어 경영주의 시대입니다. 전 시대 자본의 속성과 현대의 자본은 다릅니다. 지식노동, 정보화의 확산, 무형자본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그 사이 인간 본성과 심리에 대한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의 이해도 넓어졌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패러다임은 그사이 폐기되고 보완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며 등장하는 모든 지식은 언제라도 새로운 사회에서 교체되지만 유의미한 족적을 남깁니다. 


애덤 스미스가 보지 못한 기업가를 발견한 장 바티스트 세, 국가의 역할에 주목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신문 산업의 아이콘 조지프 퓰리처, 현대 사회학의 태두 역할을 톡톡히 한 파레토, 창조적 파괴를 알린 슘페터, 생동감 넘치는 혁신의 현장 벤처캐피털의 원조 조르주 도리오 등 경제 패러다임을 바꾼 11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혁신, 개선, 축적의 역사를 보여주는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다방면의 기술 발전이 뒷받침되어 성장한 신문 산업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기자들의 노벨상인 퓰리처상 이름만 알고 있었지 퓰리처의 생애는 모르고 있었는데, 그가 추진한 저널리즘의 의미를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후대인들이 파레토의 법칙이라 부른 80 대 20의 법칙. 상위 소수의 인구가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분석한 데에서 연유합니다. 이후 현대 불균형 상황을 해석하는 데 이 법칙이 자주 인용됩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사회 구성들의 행복감이 큰, 잘 사는 사회를 위한 것들입니다. 더불어 지식의 유용성과 지식의 한계, 위협을 동시에 알린 케인스처럼 이들이 남긴 교훈은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삶의 당위성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먹잇감이 되거나 이용당하기도 하면서 후대가 씌운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숨은 맥락을 짚어주고 더불어 현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기준을 세워줍니다. 고상한 논변이 가득한 세상보다 실용적인 정신자본이 풍부해지길 염원하는 저자의 바람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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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2022-12-0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꼼꼼이 읽고 제대로 리뷰를 해주셔서 저자로서 진심 감사드립니다
 
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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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균, 한지민 주연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 원작 소설 <굿바이, 욘더>. 10여 년 전 제4회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했던 작품인 만큼 드라마화하면서 소설도 예쁜 옷을 입고 재탄생했습니다. 오랜 세월 명작 SF로 입소문 난 소설이라는데 저는 6부작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고,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도 드라마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줄기가 되는 욘더 세계관은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이어지지만, 몇몇 인물 관계나 결말에 이르는 여정이 드라마 각색 과정에서 달라진 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드라마에서는 신하균 배우의 짙은 감정선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면, 소설은 그 감정선의 흐름을 자세히 엿볼 수 있습니다. 테드 창 작가의 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 과학적 언어를 문학적 감수성을 얹어 표현하는 예술성에 놀라워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느꼈어요. 따스한 온기가 가득 배어 나오는 듯합니다. 


초연결, 사물인터넷, 사이버 물리 공간 같은 용어가 낯설었던 10여 년 전에 몇 년 뒤, 수십 년 뒤 우리 삶은 얼마나 많이 변할까를 상상하며 '미래가 또 하나의 신화'라는 사소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이야기 <굿바이 욘더>.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홀로그램 화면을 띄워 작업하고, 모든 것들이 네트워크화된 새로운 한국의 '뉴 서울'입니다. 취향에 맞게 신체를 사이보그화하는 세대와 함께 로우테크 히피라 불리는 아날로그의 향수를 간직한 세대가 함께하는 과도기입니다. 


소설의 화자 나, 김홀은 재발하는 암을 앓다 죽은 아내 이후를 그리워합니다. 이후가 없어진 세상에서 눈을 뜨며 살아가는 것이 어색합니다. 익숙했던 일상이 낯설어집니다. 그렇게 그만의 애도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보, 나야. 나 여기 있어."라며 죽은 아내로부터 온 메일. 자신을 만나러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내가 살아생전 기억을 보존해 남겨뒀던 겁니다. 그 기억을 인공지능 아바타로 구현해 VR 기기로 서로의 아바타가 만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녀의 모습을 한 아바타에게 "보고 싶었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추모 사이트와는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저 인공지능에 덮어씌운 메모리에 불과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모습과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바타는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고 학습하며 점차 의도된 인격으로 성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딥러닝 인공지능 아바타인 셈입니다. 


처음엔 너무나도 생생해서 거부감이 들었지만 서서히 아내의 아바타를 '이후'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음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는듯합니다. 그녀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이 예전만큼 절실하지 않게 됩니다. 언제든지 VR 고글을 쓰면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자살로 추정되는 의문사가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기억을 그곳에 올리고 방문하는 소녀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여기 와서 나와 함께 살지 않을래?"라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기억을 다운로드해서 인공지능에 보존하는 기술 이면에 자리 잡은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나'. 이제 욘더가 등장합니다. 욘더Yonder. 저기, 저편의. 그곳은 단순히 아바타로 만나는 것을 넘어 불멸 천국 같은 곳입니다.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세계입니다. 그곳에 가려면 이쪽 세상의 사람이 죽어야만 합니다. 


욘더는 멋진 신세계일까요, 기술의 디스토피아일까요. 김장환 작가는 소설 속 반미래학자와 불멸 천국을 이야기하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통해 기술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을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의심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삶으로 작용하는 기술 발달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일반인들의 모습을 주인공에게서 엿볼 수 있습니다. 욘더의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에 이르르면 꽤 충격적입니다.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뇌를 다운로드하고 업로드 하는 기술에 대한 소재는 많은 SF 영역에서 다뤄졌고, 저마다 매력이 있는데요. <굿바이, 욘더>는 조금 더 애틋한 느낌입니다. 사랑과 가족애라는 감정이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지, 불멸을 향한 또다른 모습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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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며 사는 것이 뭐가 어때서 -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이치, '눈치'에 관한 40편의 에세이
임세화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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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는 것을 전전긍긍하며 죄짓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 <눈치 보며 사는 것이 뭐가 어때서>. 당당하게 눈치 보고, 눈치를 활용하자고 말하는 책입니다. 그러고 보면 눈치 보는 것과 눈치 있는 것에 대한 평가가 때때로 상반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눈치 있는 사람에게는 센스 있다고 칭찬할 때도 있잖아요. 결국 나 스스로 눈치라는 걸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눈치 보는 일이 장점이 될 수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린 시절 집안 사정상 이모 집에서 지내며 눈칫밥 생활을 일찌감치 시작했던 임세화 저자. 지금 생각하면 사촌들은 얼마나 자신이 미웠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스스로와 가족에게 원망을 돌리기 일쑤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고민을 타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면 그렇게 또 상처를 받으며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눈치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눈치 보며 사는 것이 뭐가 어때서>는 눈치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눈치가 꽤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활용하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 직장생활, 결혼 후 출산과 육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눈치를 봤던 상황들을 들려줍니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 결정 장애, 거절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자신의 모습에 온갖 상념에 빠지고, 자존감이 바닥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치를 봤기에 오히려 잘 풀린 상황도 무척 많았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눈치를 보더라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눈치 보며 사는 것이 뭐가 어때서>에서 임세화 저자의 경험이 녹아든 소중한 조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누구보다 나를 가장 걱정하고 생각하는 존재. 그것은 바로 '나'이지 않을까." - 책 속에서





자신을 소홀히 대하던 태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타인의 생각과 진심을 알려고 노력하기에 앞서 먼저 필요한 건 눈치 보느라 애쓴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독여주는 일이었습니다. 타인의 인생에 자신은 조연이나 단역일 뿐입니다. 하지만 내 삶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상사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보게 해준 건 바로 눈치였습니다. 사회생활에선 이 눈치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다들 저마다 에피소드를 갖고 있을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진정으로 눈치 빠른 사람은 티를 안 내지요. 오히려 눈치 없는 '척'을 잘합니다. 원치 않는 감정 소모,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엮이지 않도록 때로는 눈치 없는 것으로 포장해 나의 평화를 지키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업무 폭탄을 맞거나 하소연을 끝없이 들어줘야 하니까요. 


눈치 보는 게 주눅들 일도 아닌 반면 모든 순간 꼭 눈치가 있을 필요도 없다는 게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옵니다. 눈치가 비굴한 태도가 되지 않도록 당당한 나로 살 수 있는 눈치 사용법 <눈치 보며 사는 것이 뭐가 어때서>. 눈치를 챙기면서도 거침없이 사는 비결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다고 합니다. 회복탄력성처럼 자존감 탄력성을 키우자고 합니다. 


자책, 자괴감에 괴로워하며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면, 이제는 조금씩 줄여나가자고 응원합니다. 내 감정을 다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들려줍니다. 눈치를 나에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만들면서 말이죠. 눈치라는 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잖아요. 지금까지는 나는 쏙 빠진 채 타인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나다움에 초점을 맞추는, 자신답게 살아가는 데 도움 주는 눈치로 전환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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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 - 귀신부터 저승사자까지, 초자연현상을 물리치는 괴심 파괴 화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김영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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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이자 SF 소설가 곽재식의 과학적 상상력과 과학 지식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 평소 괴물 이야기를 자주 했고 <한국 괴물 백과>라는 책까지 쓴 이력 덕분에 MBC <심야괴담회>에 출연하기도 한 그는 무서운 이야기, 도시 전설, 괴담을 과학적으로 해설하며 일명 괴심 파괴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요. <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에서 무서운 이야기 속에 담긴 공포의 절박함을 과학 기술의 힘으로 해결하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만델라 효과라고 알려진 기억 오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실제와 다른 내용을 사실이라고 잘못 기억하는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봄날은 간다>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의 실제 대사는 "라면 먹을래요?"이고, <친구> 명대사 "내가 니 시다바리가?"는 "내는? 내는 니 시다바리가?"라고 합니다. <터미네이터 2> 결말에서 엄지손가락을 들고 용광로에 들어가면서 "I'll be back"이라는 명대사를 했다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장면에선 그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이처럼 거짓 기억, 오기억이 실제 머릿속에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만델라의 사망일을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다 해서 이와 같은 현상을 만델라 효과라고 부릅니다. 기억이란 결코 바뀔 수 없는 명확한 기록이 아니라 뇌에 남아 있는 전기 작용과 화학 반응의 결과라고 합니다. 해마에 기억이 남겨지는 화학 반응이 어떤 이유로 차단되면 기억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술 많이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것처럼 말이죠. 현실적으로 무서운 건 환청이 들리거나 망상을 품게 되는 조현병 증상 같은 것이 있습니다. 뇌의 일부 기능이 오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엉뚱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차단시키는 데 도움 주는 치료제가 나와 있다니 회복할 기회가 있습니다. 


가위에 눌리는 경험을 저도 20대 때 한 번 겪었는데요. 누워있는데 앞에는 검은 사람 형체가 있고 몸은 못 움직이겠고 소름이 돋더라고요. 잠자는 동안 몸이 이상하게 마비되는 현상이라고 해서 수면마비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것은 렘수면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렘수면 중에는 뇌가 몸을 뜻대로 움직이는 능력이 차단된다고 해요.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는 상황에 접어들면, 잠에서 깨어났다는 느낌 때문에 현실처럼 생생히 느끼게 되지만 뇌의 다른 능력은 아직 깨어나기 전인 상태여서 몸은 안 움직이지는 거죠. 생생하고 분명하게 유령을 보았고 기억한다고 믿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더불어 우연한 모양에 불과한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파레이돌리아 현상도 있습니다. 기분 좋은 창의적인 형태로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형태로 나아가면 오싹하지요. 대체로 사람 형상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사람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해설이 인상 깊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빠르게 느끼고 함께 잘 어울리고 협동하며 번성하는 사람이기에 사람의 모습을 잘 알아볼 수 있게 진화했고, 어렴풋한 모양에도 사람 비슷한 것이 있으면 그것이 사람일 수도 있다고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카메라에 찍힌 유령, 흉가의 비밀, 악령 들린 인형 등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들도 <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괴심 파괴라는 우스갯소리로 넘길 게 아니라 그 안에는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해결 방법이 있기도 해서 단순히 괴담으로만 남겨둘 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어떤 괴담은 의도적인 속임수로 밝혀지기도 했고, 어떤 것은 간단한 장난으로 시작되었다가 수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받아들여버린 상황에 이르른 것도 있었습니다. 곽재식 저자는 무서운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 이야기가 탄생한 배경을 들여다보면 공포감에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걱정과 고민들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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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 감옥 안에서 열린 아주 특별한 철학 수업
앤디 웨스트 지음, 박설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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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이면 나는 난생처음 감옥에 가게 된다.”


영국 철학재단에서 일하는 앤디 웨스트. 2016년부터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저자 개인 사정이 남다릅니다. 아버지, 형, 삼촌이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공개적인 글에 밝힌 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재소자들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교도소 철학 수업을 제안받은 겁니다. 


<라이프 인사이드 (원제 The Life Inside)>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가 아니라 감옥 안에서 자유, 용서, 욕망, 인종 차별 등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재소자들은 때때로 번득이는 발상을 펼쳐 보이며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열린 시각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죗값을 치르는 수감자라는 선입견이 알게 모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형과는 돈독한 우애를 나누고 있는 저자입니다. 형이 교도소를 들락날락할 때마다 자신은 바깥에서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짙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형이 감옥에 있는데 이딴 게 뭐가 중요하지? 하며 공허한 기분이 들기 일쑤입니다. 사회적 낙인을 찍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엔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아버지와 형의 수감 생활은 대물림된 죄의식으로 나타납니다. 그와 함께 교도소 철학 수업을 하면서 교도소라는 환경과 수감자들이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도 합니다. 갱생을 위한 철학 수업이라는 큰 목표가 있지만 더불어 그의 머릿속 사형집행인을 마주하고 치유해가는 여정을 함께 보여줍니다. 


수업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으로 끌어나갑니다. 첫 수업 주제가 '자유'였는데 자유라는 방대한 키워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신화를 가져옵니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해역을 지나갈 때 유혹의 노래를 듣지 못하도록 선원들에게 밀랍으로 귀를 막게 했고, 자신은 돛대에 묶었습니다. 하지만 한 선원이 밀랍을 빼고 노래를 듣곤 바다에 몸을 던지게 됩니다. 여기서 귀를 밀랍으로 막은 선원, 오디세우스, 귀에서 밀랍을 뺀 선원 중 누가 가장 자유로울까라는 질문을 던진 겁니다. 





수감자들의 답변이 흥미롭습니다. 그중 특히 인상 깊은 대답은 귀를 밀랍으로 막은 선원이 자유롭다고 꼽으며 자신에겐 바깥사람들한테 없는, 선택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밖에선 문제에 휘말릴 일이 너무 많다며 오히려 선택권이 없는 게 자유롭게 느껴진다는 거였죠. 이처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명 한 명 저마다 개성이 넘칩니다. 입을 열 때마다 제발 말을 끊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형이상학적인 말을 내뱉는 이도 있고, 올 때마다 다음 주에는 못 올 거라는 말을 던지면서도 계속 나오는 이도 있고, 무료해 하는 이도 있고... 


철학 수업이지만 수업 그 자체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저자의 일상과 수업 전후에 생기는 에피소드가 풍성합니다. 유머 감각까지 예사롭지 않은 저자 덕분에 읽는 맛이 좋았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재소자들이 서로 한 마디씩 툭툭 던지며 (때로는 샛길로 빠지기도 하지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생각을 나눌 뿐입니다. 한 줄 정답을 찾고자 하는 성격이라면 열린 철학 방식이 오히려 어렵거나 낯설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감옥에서의 철학 수업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떨쳐낼 수 있을까요. 수치심에 짓눌려 말도 하지 않던 재소자가 결국 자신의 삶에 다른 것들을 위한 공간을 허락하는 걸 보며 그 역시 공간을 허락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만성적 자기의심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참고할 만한 본보기가 되는 사례입니다. 


감옥 안 철학 수업. 굳이 왜 철학을 배울까요. 어느 재소자도 도대체 철학이라는 게 뭐에 써먹는 건지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후 다른 재소자로부터 들을 수 있습니다. “철학이 맘에 들어요. 내게도 정신이 있다는 걸 일깨워줘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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