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악인, 유다 -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피터 스탠퍼드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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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삶이나 성경을 속속들이 몰라도 유다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배신자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유다. 하지만 희대의 악인 유다를 그리스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던 영웅으로 보는 시각도 생길 정도로 유다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습니다.

 

유다는 과연 비열한 배반자인가 희생양인가. 가톨릭 신자이자 저널리스트 피터 스탠퍼드 저자는 <예정된 악인, 유다>에서 성경을 통한 유다의 삶과 배신의 의미, 종교와 다른 분야에서 활용된 유다를 해석하며 2,000여 년 간 유다에게 씌워진 굴레를 들춰봅니다.

 

종교학 외 세계사,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가 연계되어있어 특정 종교 책이라는 거부감은 전혀 없었어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한 전개 덕분에 인문서인데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성지가 있는 예루살렘을 거닐며 눈에 띄지 않는 또 하나의 장소, 하켈다마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피의 밭이라 불리는 하켈다마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뒤 수치심에 자살한 곳이며 유다의 최후를 보여주는 흔적이 남겨진 장소입니다. 유다는 사악한 배신자인가, 원대한 신의 섭리에 따라 쓰인 부속품이었을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한 여정입니다.

 

저자의 시각을 드러내는 문장은 일찌감치 등장합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때로는 재빠르게, 때로는 시간을 갖고 역사를 다시 써왔고, 필요하다면 잊고 싶은 역사조차도 전설이라는 미명하에 대화하곤 했다." 즉 각색, 상징, 선입견, 본보기로 이용된 유다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가리옷 (가룟) 유다의 일생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공인된 복음서인 사대복음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된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는 유다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유다에 관한 이야기는 마가복음에서 3회, 마태복음에서 5회, 누가복음에서 6회, 요한복음에서 8회 등장하며 성경에 총 22번 언급됩니다.

일명 유다 3부작 드라마는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거래, 로마 병사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행동인 유다의 입맞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입니다.

 

복음서마다 유다에 대한 일관성은 부족하고, 뒤로 갈수록 유다에게 불리한 증거가 계속 늘어갑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야기꾼이라는 것. 배신자가 등장해야 이야기가 더 재밌어지는 건 당연지사. 중세 교회가 성자로 만드는 과정이나 유다를 희대의 악당으로 만드는 과정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고 합니다. 포장하는 과정이 있다는 거죠. 유다를 희생양으로 삼으로써 향후 2,000년 동안 유다에 대한 선입견이 자리 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하더군요.

 

 


초창기 기독교 시대를 거치는 중에 희생양이 된 유다는 곧 유대인과 연결됩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전체를 배신자 유다와 동급으로 본 겁니다. 교회가 추진하는 선동전의 수단으로 쓰인 유다. 어떤 이야기들은 거의 호러 수준이었어요. 중세 종교재판에 쓰인 고문 도구 중 유다의 의자 혹은 유다의 요람이 불린 장치도 있었고, 1970년대까지도 유다 화형식 행사가 있었다는군요.

 

중세 미술 작품에서도 르네상스 초기에 잠깐 과장된 비하가 없는 작품이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은 사탄, 반유대주의 상징들, 악취와 변태적 성욕자 등으로 유다에 대한 상징주의가 강조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루터마저도 유대인을 유다의 민족이라 불렀을 만큼 반유대주의는 강했습니다.

 

단테 <신곡>, 보르헤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카잔차키스 <최후의 유혹>, 엔도 슈사쿠 <침묵> 등 문학 작품 속 유다의 이미지와 다양한 학자들의 관점을 살펴보는 과정은 한마디로 '그것이 알고 싶다' 분위기였어요. 현장 르포 다큐 같은 생생함과 방대한 정보가 쏟아집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다처럼 은화 30냥에 기꺼이 배신자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유대인 유다 이미지는 20세기 나치 체제 선전에 활용되며 유대인 혐오라는 세뇌교육이 절정에 이른 사례입니다.

 

"예수라고 쓰고 기독교라고 읽는다면, 유다라고 쓰고 유대인이라고 읽는 것이다." - 책 속에서.

 

 

 


2,000년 가까이 숨어 있다가 2006년에 등장해 전 세계를 강타한 유다복음서. 이로 인해 유다의 재평가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심의 피해자라는 해석이 압도적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유다를 극단적인 도구로 쓴 결과는 뒤엎을 수도 뒤집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악인이어서 자발적으로 죄를 저질렀거나, 신이 예비해둔 계획에 따라 사용된 것일 뿐이거나, 악마에 사로잡혀 그랬거나... 어떤 동기이든 전형적인 희생양 만들기 과정들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한 관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유다를 보는 시각은 예전보다는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배신이란 아이콘을 내던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밥 딜런은 <신은 우리 편에> 곡 때문에 공연 중 유다라 불리는 모욕을 당했고, 축구 스타 루이스 피구는 이적 행위를 팬들이 배신자 유다와 연결해 큰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름 모를 배신자를 그저 신의 대리인이라 했지만, 복음서 기록 이후부터는 배신자로 유다를 콕 짚어 사탄의 하수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유다의 두 가지 얼굴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순례자들이 거닐던 곳을 돌아보고, 유다를 연구한 학자들의 의견을 수집했고, 역사적 사실성을 확인하며 활용하는 검증 기준에 맞춰 유다라는 인물의 삶을 추론하는 과정을 보여준 <예정된 악인, 유다>. 

 

유다는 세계사를 관통하는 인물입니다. 희대의 악인 유다를 재해석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죄가 사실이든 아니든, 어떤 동기였든 간에 종교적 대립은 물론 정치적 목적에 철저히 이용된 사례만큼은 착잡할 정도입니다.

 

"유다는 배신을 상징하면서, 한편으론 진전을 상징한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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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 권장도서 선정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5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성은 옮김 / 생각정거장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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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자주 회자되는 요즘. 시국이 이런 상황인 만큼 국민주권 사상을 이야기한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루소는 이 책에서 주권에 대해 명확히 정의합니다. "일반의지가 무엇인지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권력"이라고 말이죠.

 

18세기 사상가 장 자크 루소.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발언한 최초의 지식인입니다. <사회계약론>은 1762년 발표한 대표작으로 프랑스 시민혁명에 큰 영향을 끼쳐 단순히 세상을 해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식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타락한 사회의 현실을 비판만 한 것이 아니라 대안을 내놓은 셈입니다.

 

생각보다 짧은 분량이어서 놀랐는데, 원래는 <정치 제도>라는 방대한 저작을 계획한 루소가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일부만 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사회계약론>은 <사회계약론> 원전을 토대로 김성은 저자가 해석을 붙여 수월하게 읽어내게끔 구성한 책입니다. 


왜 사회계약론을 읽어야 하는가. 루소의 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유 국가의 시민으로 태어나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투표권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에 대해 알아야 할 의무를 당연히 지닌다고 말이죠. 내 의견이 국가의 공적인 일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아무리 미약하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사회계약이란 무엇인가. 사회를 만들고, 타인과의 관계라는 쇠사슬에 묶인 채 살기로 계약 맺는 것이 사회계약이라고 합니다. 모든 권리를 양도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손해 같지만 실로 유리한 교환이라고 해요. 사회계약은 계약자들의 생명 보존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만들기로 한 최초의 계약 기원은 알 수 없긴 하지만, 어쨌든 사회는 계약에 의해 성립됨을 바탕으로 전개합니다. 그렇다면 계약은 파기할 수도 있다는 것. 바로 프랑스혁명처럼 말이죠. 계약 파기가 실현된 역사적 사건입니다.

 

 


<사회계약론>에는 일반의지라 부르는 중요한 개념이 나오는데, 이는 오로지 공동체를 위한 의지를 말합니다. 공동의 이익, 사회를 위한 의지를 뜻하는 일반의지는 사회 통합과 발전을 위한 정신적 힘이 되는 한편 소수 억압의 굴레가 되기도 하는 약점도 있습니다.

 

일반의지를 글로 적어 놓은 것이 바로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법자가 중요합니다. 일반의지를 잘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해야 하고, 선출한 후에도 끊임없이 입법 행위의 감시와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공동의 이익인 일반의지를 위한 입법은 곧 국민에게 적합한 최선의 법을 뜻합니다.

 

정부는 왜 존재할까. 정부는 하나의 단체가 아니라 오로지 국가라는 정치체를 잘 운영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정부 목적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개별의지는 일반의지에 끊임없이 대항하고, 정부는 지속적으로 주권에 대항하기에 정치적 악습이 생긴다고 합니다. 단체의지와 개별의지를 일반의지로 혼동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읽을수록 최악의 상태로 갈 때까지 간 우리 현실에 필요한 조언을 담은 유용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재미있는 부분은 주권이 실질적인 권리가 되려면, 현대적 의미와는 조금 차이 있긴 하지만 '모여야 한다'고 루소가 주장했다는 점입니다. 한편 최대다수의 의견, 의지에 무조건 따르려는 대중주의, 포퓰리즘의 위험도 경고합니다.


개별의지에 불과한 것을 일반의지로 포장하는 현실, 주권이란 먼 나라 이야기로 전락한 현실. <사회계약론>은 우리가 맺은 계약의 의미를 짚어주며, 그 계약에서 벗어난 정당하지 않은 권력에는 복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공정선거로 다수의 선택을 받아 정당한 권력을 획득하고, 그 권력을 국민을 위해 쓸 때에만 정당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그리고 권력 획득과 활용 중 하나라도 정당하지 못하면 국민은 계약을 파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필수 고전이어서 괜히 더 읽기 싫었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회계약론>도 이런 시국 덕분에(?) 술술 읽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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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러브
콜린 후버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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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 베스트 로맨스로 선정된, 마약작가라 불리는 콜린 후버 작가의 로맨스 소설 <어글리 러브>. 기분 좋은 설렘과 콩닥거리는 농도의 씬을 적절하게 맞춘 에로틱 로맨스 소설의 표준이 될만한 구성이었어요.

 

비행기 조종사, 오빠 친구, 가슴 아픈 과거가 있는 남주 캐릭터에다가 간호사, 친구 동생, 유쾌하고 밝은 심성의 여주 캐릭터 궁합도 척척. 미친 끌림, 조건부 관계, 이별, 재회라는 로맨스 스토리의 흔한 방식을 따라가지만, 통속적인 느낌은 그다지 받지 못했고 인물들의 심리 변화에 푹 빠져 읽게 되더라고요. 평소 로설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짜임 있는 스토리와 애정씬 덕분에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학업을 위해 오빠네 집으로 잠시 이사 온 테이트. 필름 끊길 정도로 술에 취한 오빠 친구 마일스와의 첫 만남에서 그에게 끌려버리는데. 테이트와 마일스에게 싹트는 간질간질 거리는 무언가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독자도 콩닥콩닥~ 순식간에 심장을 파고드는 끌림을 억제하려는 장면들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어글리 러브>는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으려는 마일스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랑을 할 것이라 믿는 테이트의 감정 변화를 다룹니다. 현재 시점을 이야기하는 테이트와 6년 전 과거의 마일스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들려주는 구성이라 독자는 마일스의 과거를 먼저 짐작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독자는 마일스의 행동에 안타까움을 담아 공감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테이트에게 동정을 느끼며 애틋한 마음을 보내게 됩니다.

 

 

 

서로에게 분명 관심은 있지만 좋아하고 싶지도, 데이트하고 싶지도, 사랑하고 싶지도 않은 마일스는 테이트와의 관계에 규칙을 정하는데요. "내 과거에 대해서 묻지 말 것. 그리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 것." 이 두 가지 규칙을 내세우며 이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두려우면서도 결국 관계를 시작합니다. 사랑은 하지 않을 거라 장담한 마일스의 심장에 점점 파고드는 테이트. 그녀를 무시하고 서운하게 하기도 하는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테이트는 두려우면서도 희망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관계를 시작하지만 점점 깊어지는 감정을 스스로 속이고 거짓말하는 자신에게 지치게 됩니다. 좋게 끝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작했지만, 과거에 대해 묻지도 미래를 함께할 수도 없는 것이 그녀를 점점 비참하게 만듭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많은 걸 원하게 되는 법.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받을 수 있는 것만 가질 뿐입니다.

 

결국 테이트는 "나한테 미래에 대한 헛된 희망을 주지 말 것"이라는 규칙을 내세웁니다. 너무나도 철벽 방어를 하는 마일스의 과거를 마주할 엄두도 이젠 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라고 믿었던 희망은 사라지고, 점점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행복할 자격조차 없고 사랑의 추한 면을 겪기 싫은 마일스와 그런 그를 가슴에 품은 테이트의 관계. 마일스를 그토록 힘들게 한 6년 전의 일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그들 관계의 열쇠입니다.

<어글리 러브>의 소재 자체는 무겁지만 축축 처지게 하는 구성은 아니었어요. 테이트가 속으로 치는 대사는 유쾌함이 있었고요. 흡입력이 대단해 단번에 읽어나갈 수 있었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엄마미소 자아내게 하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테이트 오빠가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며 정해준 규칙 또한 정말 최고였다는 것만 알려드려요.

 

사랑에 따라오는 고통과 두려움, 추함을 견뎌내면서도 결국 사랑이란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어글리 러브>. 사랑의 아픔은 사랑으로 치유한다는 말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칙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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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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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만으로 승부하는 얼굴 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 무더운 여름, 나폴리 4부작 중 1권 <나의 눈부신 친구>를 만나 엘레나 페란테 작가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데, 추운 겨울 두 번째 책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로 다시 만났습니다.


엘레나 페란테라는 이름조차 필명으로 나폴리 출신 정도로만 알려진 작가이지만, 소설 나폴리 4부작의 화자를 보면 엘레나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나폴리를 배경으로 해 자전적 소설 분위기를 나타냅니다.

 

이탈리아 소설답게 수많은 집안이 등장해요. 2권 읽을 즈음엔 등장인물들을 대부분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네요. 나폴리 4부작의 주 인물인 릴라와 레누 각자의 사랑, 그녀들의 우정, 주변인물들과 시대적 상황이 얽히고설킨 방대한 인생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대하드라마 느낌이에요.

 

두 여인의 어린 시절부터 릴라가 결혼하는 날까지의 시기를 다룬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1권 결말이 무척 흥미진진한 장면에서 딱 끝내 뒷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의 마지막 역시 만만찮지 않게 끝맺네요.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첫 장면은 릴라가 레누에게 공책이 든 상자를 맡기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레누는 그녀의 공책을 읽으며 릴라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알게 되고 몇 년간의 이야기를 짜 맞춰 갑니다. 소설 속 화자 레누는 이 이야기를 글로 써 출판하는 과정도 소설에서 나오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독자가 읽는 이 책으로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레누는 릴라와 끝없이 비교하는 캐릭터입니다. 릴라는 항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사람이지만 자기는 무색무취한 존재라 생각하죠. 흠모하면서 질투도 하는 애증의 마음입니다. 릴라의 결혼과 동시에 그녀를 이제는 완전히 잃은 것 같은 느낌인 레누. 그러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에게 배신당한 릴라의 슬픔에서 오히려 묘한 기쁨도 느끼면서 여자들의 우정 이면을 넌지시 보여주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편이 오히려 사내 구실할 줄 아는 남자다운 남자였던 관습이 자리 잡고 있었던 시대입니다. 사랑을 이유로, 자신의 소유라는 이유로, 여자를 교육한다는 명목하에 남편이나 약혼자의 폭력이 일상이었던 시대. 그런데 자존심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의 릴라에게 남편의 폭력과 배신은 그녀의 삶을 한순간에 무너뜨립니다. 경제적으로 가질 것을 다 가졌지만, 자신을 잃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렇게 내면의 공허함에 빠진 릴라에게 불같은 사랑으로 다가온 니노. 니노와의 불륜은 릴라의 인생을 다시 한번 바꿉니다. 하지만 자기 궤변에 빠진 학생 신분의 니노에게는 사랑이 모든 것을 커버해주진 못했는지 결국 릴라를 떠나게 되고, 릴라는 니노의 아이를 낳은 후 모든 것을 버리고 동네를 떠납니다.

 

릴라의 인생은 교육에 관심 없었고 가난했던 가정환경, 그녀를 소유하려는 남자들의 다툼, 시기하는 여자들의 견제 등 드라마틱하게 이어지지만, 니노의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고자 하는 열망과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힘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갈망할 줄 아고 열정을 다할 줄 아는 릴라.

 

한편 레누는 대학교를 마치며 인텔리 여성으로 거듭납니다. 엄청난 자기관리로 이루어냅니다. 세련된 글, 우아한 표준어에 집착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 레누. 릴라가 했던 이야기를 자기의 생각인 양 써먹는 일도 많아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재수 없는 유형이었요. 레누가 쓴 나폴리 시절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게 되었으니 3권에서는 그녀의 인생 역전이 기대되네요.

 

그러고 보면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릴라와 레누 모두에게 실종된 자존감이 부활하는 과정을 그린 시기입니다. 각자의 두려움은 그녀들로 하여금 가면을 쓰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가면을 벗으려는 용기를 냅니다. 

 

두 여인의 우정과 사랑은 막장드라마의 흔한 소재이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가벼움은 전혀 없었어요. 과장되게 드라마틱한 장면 묘사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고 건조한듯한 문체지만, 묘하게도 어느새 소설에 푹 빠지게 됩니다.

 

격정적인 청년기를 담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통제할 수 없는 불행에서 벗어나려는 그녀들의 힘겨운 노력에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출간 예정인 3권인 <떠나간 자와 남겨진 자>에서는 인생 중반기를 다루겠죠. 2권 마지막에서는 사라졌던 니노의 등장을 예고하는데 릴라와 니노의 관계가 어떻게 엮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나는 타인의 요구에 복종하는 존재였다. 나는 릴라와 니노를 통해서만 의미를 얻는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다. (중략) 그 둘을 사랑했기에 정작 나 자신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열망을 느끼고 붙잡지 못하는 것이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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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에 끝내는 생활영어 회화천사 : 5형식 / 준동사 - 7급 9급 공무원영어 기출, 경찰공무원, 엄마표 영어 15권 분석! 무료영어공부 강의와 1004문장 패턴의 궁극의 생활영어회화!
Mike Hwang 지음 / 마이클리시(Miklish)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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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쏘옥 들어오는 크기여서 요즘 외출할 때 자주 들고 다니는 책이에요.
마이클리시 책 난이도가 초보자들이 보기에 괜찮은 편인데 특히 <6시간에 끝내는 생활영어 회화천사>에서는 초등 고학년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가 많이 나와 오히려 저보다 아이가 더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어요. 엄마표 영어에 꽤 유용하게 활용 중입니다.

 

생활영어 회화천사는 두 권으로 나눠지고요, 이 책은 5형식과 준동사를 다루고 있어요. 나머지에서는 의문문과 접속사를 다룬다고 하네요. 척 보기에도 쉬워 보이는 느낌이라 중간에 집어치우는 일은 없다는! 얇고 가벼운 책이라는 것도 은근 유용하게 작용하더라고요. 끝까지 읽어내게 됩니다. 이런 책은 1회 꼼꼼하게 보는 것보다 오히려 대충 여러 번 훑어보는 게 더 낫다고 하죠. 가볍게 반복 반복~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 구분하는 것, 과거형 만들기 등 기초 수준입니다.
예전 같으면 중학교 영어 난이도라고 말했을 텐데 우리 아이의 경우 이젠 초등 고학년 때 학교에서 이런 걸 배우는지라. 생활영어는 초3부터 꾸준히, 문법은 깊게 들어가지는 않아도 초5부터 배우더라고요.

 

영어 문법을 핵심 문장 가지로 나눠 설명한 후, 패턴 연습을 단 7문장으로 끝낼 수 있어요. <6시간에 끝내는 생활영어 회화천사>는 독해용 문법이 아닌 생활영어회화에 적용 가능한 문법을 다루고 있어요. 둘이 미묘하게 다르네요. 문장을 분석할 때와 만들 때 생각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패턴을 활용한 생활 영어문장을 연습하는 페이지도 있어요. 실전 생활영어 문장을 한글로 덧붙인 설명이 은근 재미있습니다. You are so precious. 이 문장에 골룸 사진이 나와 있는데 골룸이 반지에 말고 자녀에게 해주면 좋은 말이라고 코멘트 달아 뒀네요. I quit. 저 그만둘래요. 문장에선 부하직원 최후의 공격이라고 나와 있어요 ㅋㅋ

 

우리 아이가 이 페이지들을 보면서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거라고 반가워합니다.

한방에 정리되어 있어 쭉 훑어내리기 좋았어요.

 

공무원 생활영어 기출문제도 다루고 있고, 책날개 잘라내면 암기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구성도 신선하네요.

생활영어 문법 패턴을 다룬 <6시간에 끝내는 생활영어 회화천사>. 실생활영어 문법의 뼈대 세우기에 딱 좋은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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