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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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만으로 승부하는 얼굴 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 무더운 여름, 나폴리 4부작 중 1권 <나의 눈부신 친구>를 만나 엘레나 페란테 작가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데, 추운 겨울 두 번째 책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로 다시 만났습니다.


엘레나 페란테라는 이름조차 필명으로 나폴리 출신 정도로만 알려진 작가이지만, 소설 나폴리 4부작의 화자를 보면 엘레나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나폴리를 배경으로 해 자전적 소설 분위기를 나타냅니다.

 

이탈리아 소설답게 수많은 집안이 등장해요. 2권 읽을 즈음엔 등장인물들을 대부분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네요. 나폴리 4부작의 주 인물인 릴라와 레누 각자의 사랑, 그녀들의 우정, 주변인물들과 시대적 상황이 얽히고설킨 방대한 인생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대하드라마 느낌이에요.

 

두 여인의 어린 시절부터 릴라가 결혼하는 날까지의 시기를 다룬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1권 결말이 무척 흥미진진한 장면에서 딱 끝내 뒷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의 마지막 역시 만만찮지 않게 끝맺네요.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첫 장면은 릴라가 레누에게 공책이 든 상자를 맡기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레누는 그녀의 공책을 읽으며 릴라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알게 되고 몇 년간의 이야기를 짜 맞춰 갑니다. 소설 속 화자 레누는 이 이야기를 글로 써 출판하는 과정도 소설에서 나오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독자가 읽는 이 책으로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레누는 릴라와 끝없이 비교하는 캐릭터입니다. 릴라는 항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사람이지만 자기는 무색무취한 존재라 생각하죠. 흠모하면서 질투도 하는 애증의 마음입니다. 릴라의 결혼과 동시에 그녀를 이제는 완전히 잃은 것 같은 느낌인 레누. 그러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에게 배신당한 릴라의 슬픔에서 오히려 묘한 기쁨도 느끼면서 여자들의 우정 이면을 넌지시 보여주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편이 오히려 사내 구실할 줄 아는 남자다운 남자였던 관습이 자리 잡고 있었던 시대입니다. 사랑을 이유로, 자신의 소유라는 이유로, 여자를 교육한다는 명목하에 남편이나 약혼자의 폭력이 일상이었던 시대. 그런데 자존심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의 릴라에게 남편의 폭력과 배신은 그녀의 삶을 한순간에 무너뜨립니다. 경제적으로 가질 것을 다 가졌지만, 자신을 잃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렇게 내면의 공허함에 빠진 릴라에게 불같은 사랑으로 다가온 니노. 니노와의 불륜은 릴라의 인생을 다시 한번 바꿉니다. 하지만 자기 궤변에 빠진 학생 신분의 니노에게는 사랑이 모든 것을 커버해주진 못했는지 결국 릴라를 떠나게 되고, 릴라는 니노의 아이를 낳은 후 모든 것을 버리고 동네를 떠납니다.

 

릴라의 인생은 교육에 관심 없었고 가난했던 가정환경, 그녀를 소유하려는 남자들의 다툼, 시기하는 여자들의 견제 등 드라마틱하게 이어지지만, 니노의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고자 하는 열망과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힘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갈망할 줄 아고 열정을 다할 줄 아는 릴라.

 

한편 레누는 대학교를 마치며 인텔리 여성으로 거듭납니다. 엄청난 자기관리로 이루어냅니다. 세련된 글, 우아한 표준어에 집착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 레누. 릴라가 했던 이야기를 자기의 생각인 양 써먹는 일도 많아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재수 없는 유형이었요. 레누가 쓴 나폴리 시절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게 되었으니 3권에서는 그녀의 인생 역전이 기대되네요.

 

그러고 보면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릴라와 레누 모두에게 실종된 자존감이 부활하는 과정을 그린 시기입니다. 각자의 두려움은 그녀들로 하여금 가면을 쓰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가면을 벗으려는 용기를 냅니다. 

 

두 여인의 우정과 사랑은 막장드라마의 흔한 소재이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가벼움은 전혀 없었어요. 과장되게 드라마틱한 장면 묘사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고 건조한듯한 문체지만, 묘하게도 어느새 소설에 푹 빠지게 됩니다.

 

격정적인 청년기를 담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통제할 수 없는 불행에서 벗어나려는 그녀들의 힘겨운 노력에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출간 예정인 3권인 <떠나간 자와 남겨진 자>에서는 인생 중반기를 다루겠죠. 2권 마지막에서는 사라졌던 니노의 등장을 예고하는데 릴라와 니노의 관계가 어떻게 엮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나는 타인의 요구에 복종하는 존재였다. 나는 릴라와 니노를 통해서만 의미를 얻는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다. (중략) 그 둘을 사랑했기에 정작 나 자신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열망을 느끼고 붙잡지 못하는 것이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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