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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악인, 유다 -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피터 스탠퍼드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예수의 삶이나 성경을 속속들이 몰라도 유다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배신자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유다. 하지만 희대의 악인 유다를 그리스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던 영웅으로 보는 시각도 생길 정도로 유다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습니다.
유다는 과연 비열한 배반자인가 희생양인가. 가톨릭 신자이자 저널리스트 피터 스탠퍼드 저자는 <예정된 악인, 유다>에서 성경을 통한 유다의 삶과 배신의 의미, 종교와 다른 분야에서 활용된 유다를 해석하며 2,000여 년 간 유다에게 씌워진 굴레를 들춰봅니다.
종교학 외 세계사,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가 연계되어있어 특정 종교 책이라는 거부감은 전혀 없었어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한 전개 덕분에 인문서인데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성지가 있는 예루살렘을 거닐며 눈에 띄지 않는 또 하나의 장소, 하켈다마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피의 밭이라 불리는 하켈다마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뒤 수치심에 자살한 곳이며 유다의 최후를 보여주는 흔적이 남겨진 장소입니다. 유다는 사악한 배신자인가, 원대한 신의 섭리에 따라 쓰인 부속품이었을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한 여정입니다.
저자의 시각을 드러내는 문장은 일찌감치 등장합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때로는 재빠르게, 때로는 시간을 갖고 역사를 다시 써왔고, 필요하다면 잊고 싶은 역사조차도 전설이라는 미명하에 대화하곤 했다." 즉 각색, 상징, 선입견, 본보기로 이용된 유다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가리옷 (가룟) 유다의 일생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공인된 복음서인 사대복음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된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는 유다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유다에 관한 이야기는 마가복음에서 3회, 마태복음에서 5회, 누가복음에서 6회, 요한복음에서 8회 등장하며 성경에 총 22번 언급됩니다.
일명 유다 3부작 드라마는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거래, 로마 병사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행동인 유다의 입맞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입니다.
복음서마다 유다에 대한 일관성은 부족하고, 뒤로 갈수록 유다에게 불리한 증거가 계속 늘어갑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야기꾼이라는 것. 배신자가 등장해야 이야기가 더 재밌어지는 건 당연지사. 중세 교회가 성자로 만드는 과정이나 유다를 희대의 악당으로 만드는 과정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고 합니다. 포장하는 과정이 있다는 거죠. 유다를 희생양으로 삼으로써 향후 2,000년 동안 유다에 대한 선입견이 자리 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하더군요.
초창기 기독교 시대를 거치는 중에 희생양이 된 유다는 곧 유대인과 연결됩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전체를 배신자 유다와 동급으로 본 겁니다. 교회가 추진하는 선동전의 수단으로 쓰인 유다. 어떤 이야기들은 거의 호러 수준이었어요. 중세 종교재판에 쓰인 고문 도구 중 유다의 의자 혹은 유다의 요람이 불린 장치도 있었고, 1970년대까지도 유다 화형식 행사가 있었다는군요.
중세 미술 작품에서도 르네상스 초기에 잠깐 과장된 비하가 없는 작품이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은 사탄, 반유대주의 상징들, 악취와 변태적 성욕자 등으로 유다에 대한 상징주의가 강조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루터마저도 유대인을 유다의 민족이라 불렀을 만큼 반유대주의는 강했습니다.
단테 <신곡>, 보르헤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카잔차키스 <최후의 유혹>, 엔도 슈사쿠 <침묵> 등 문학 작품 속 유다의 이미지와 다양한 학자들의 관점을 살펴보는 과정은 한마디로 '그것이 알고 싶다' 분위기였어요. 현장 르포 다큐 같은 생생함과 방대한 정보가 쏟아집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다처럼 은화 30냥에 기꺼이 배신자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유대인 유다 이미지는 20세기 나치 체제 선전에 활용되며 유대인 혐오라는 세뇌교육이 절정에 이른 사례입니다.
"예수라고 쓰고 기독교라고 읽는다면, 유다라고 쓰고 유대인이라고 읽는 것이다." - 책 속에서.
2,000년 가까이 숨어 있다가 2006년에 등장해 전 세계를 강타한 유다복음서. 이로 인해 유다의 재평가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심의 피해자라는 해석이 압도적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유다를 극단적인 도구로 쓴 결과는 뒤엎을 수도 뒤집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악인이어서 자발적으로 죄를 저질렀거나, 신이 예비해둔 계획에 따라 사용된 것일 뿐이거나, 악마에 사로잡혀 그랬거나... 어떤 동기이든 전형적인 희생양 만들기 과정들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한 관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유다를 보는 시각은 예전보다는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배신이란 아이콘을 내던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밥 딜런은 <신은 우리 편에> 곡 때문에 공연 중 유다라 불리는 모욕을 당했고, 축구 스타 루이스 피구는 이적 행위를 팬들이 배신자 유다와 연결해 큰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름 모를 배신자를 그저 신의 대리인이라 했지만, 복음서 기록 이후부터는 배신자로 유다를 콕 짚어 사탄의 하수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유다의 두 가지 얼굴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순례자들이 거닐던 곳을 돌아보고, 유다를 연구한 학자들의 의견을 수집했고, 역사적 사실성을 확인하며 활용하는 검증 기준에 맞춰 유다라는 인물의 삶을 추론하는 과정을 보여준 <예정된 악인, 유다>.
유다는 세계사를 관통하는 인물입니다. 희대의 악인 유다를 재해석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죄가 사실이든 아니든, 어떤 동기였든 간에 종교적 대립은 물론 정치적 목적에 철저히 이용된 사례만큼은 착잡할 정도입니다.
"유다는 배신을 상징하면서, 한편으론 진전을 상징한다." -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