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는 박물관 -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매기 퍼거슨 엮음, 김한영 옮김 / 예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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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들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을까.

작품 탄생의 비화라든지 작품에 묻어나오는 작가의 가치관은 한두 가지 요소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영감의 원천 중 하나가 박물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대도시의 유명 박물관보다는 소박하고 작은 박물관이 대부분이고요.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끌리는 박물관>은 세계 문학상을 휩쓴 유명 작가들이 박물관에서 느낀 성찰을 담은 책입니다. 짧고 개인적인 글이지만 박물관이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경험을 엿볼 수 있습니다. 총 38명의 저명한 작가들이 살아오면서 인상 깊었던 박물관을 다시 찾아갔고, 자신에게 영감을 준 박물관에 대해 썼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인텔리전트 라이프>에 '박물관의 저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실렸던 글 중 24편을 묶은 책 <끌리는 박물관>. 건물 자체보다 작품과 그들의 관계를 다룹니다.

 

 

 

박물관 이야기라고 해서 약간은 따분한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작가의 글은 딱히 끌리지 않을 거야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역시 유명 작가 타이틀은 그냥 주는 게 아니었어요. 문학상 수상 작가들이어서 제각각 개성 있는 문체와 매끄러운 필력을 선보여 독자 입장에서는 읽는 맛도 무척 좋았습니다. 유머와 감동은 기본입니다. 자기만 알고 싶은 박물관이라는 티를 은근 내비치는 마음을 엿볼 수도 있었는데요. (이젠 나도 안다!) 흔한 여행 책에서는 접하기 힘든, 특이하고 재미있는 박물관 목록이 하나씩 늘어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끌리는 박물관>에 등장한 박물관은 미국, 영국, 프랑스, 북유럽과 남유럽 등 세계 곳곳의 작은 박물관이고, 주제도 참 다양합니다. 주택 박물관, 두레 공방, 실연 박물관 등 별의별 박물관이 다 나옵니다. 편당 글이 길지는 않아서 작가별로 한 편씩 끊어읽기 딱 좋습니다. 

 

 

 

15년 만에 세 번째 발길을 한 로디 도일 작가의 주택 박물관 탐방기.
그곳은 유명인이 살았던 곳이 아닙니다. 그냥 사람이 살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박물관이 되었을 만큼 사연이 깃든 곳입니다. 그 사연이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주택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도 손을 댄 것은 없습니다. 5층짜리 공동주택이었던 이곳은 겹겹이 붙여진 벽지와 칠 벗겨진 페인트 벽에 사람들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헤밍웨이도 살았던 쿠바의 낡은 도시 아바나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주택입니다. 이름은 주택 박물관이지만 이곳은 삶이 깃든 흔적입니다.

 

이곳에는 방치에 딱 들어맞는 이유, 심지어 사람을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이건 결코 방치가 아니다. 존경이다. 여기 사람이 살았다. 여기 사람의 삶이 있다. - 책 속에서

 

 

 

앤티크 인형 덕후 작가의 인형 박물관 탐방기는 잔잔한 향수를 불러옵니다.

가족 대대로 인형을 사랑해 이번에도 모녀가 함께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재클린 윌슨 작가에게 인형 박물관은 작은 안식처입니다. 작가 발자크는 인형의 집 세트의 인형들을 몇 개 올려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허구의 인물을 창조하기 쉬워진다고 말했을 정도라죠.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동화책 속으로 들어간다. - 책 속에서

 

 

 

맨부커 상 수상작가, 줄리언 반스는 특이하게도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줄리언 반스 작품을 읽을 때 배경으로 음악이 흐르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역시. 줄리언 반스 특유의 분위기를 여기서 고스란히 맛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아내 이름을 딴 '아이놀라'로 명명한 시벨리우스의 집을 방문한 줄리언 반스는 그곳에서 순수예술과 현실의 삶을 음미합니다.

 

나에게 그곳은 언제나 이중의 엇갈린 평판, 창조와 파괴, 음악과 침묵의 장소다. - 책 속에서

 

 

 

박물관은 내게 낯선 도시에서 숨 쉬고 존재할 초점과 요점을 제공했다. - 책 속에서

 

유년기에 부모님 손에 끌려 지루하게 박물관을 방문했던 그 많은 시간들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존 란체스터 작가의 글은 빵 터질 정도로 웃음 코드가 가득합니다. 예술은 18금이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생 작품을 발견하게 되는 감동을 망칠 수도 있다고 말이죠. 고문 장소였던 박물관이 어떻게 경탄의 연속인 나날로 지속할 수 있게 바뀌었는지, 내적 성장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작품들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작품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지 못해서입니다. 작가들도 첫 숨에 박물관에 매혹된 것은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근원적인 감정들이 모인 박물관의 매력을 그들도 천천히 깨달았습니다.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 원작 소설가 앨리슨 피어슨은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처음 깨달은 곳으로 파리의 로댕 미술관의 한 작품을 선택했고, 영화 <밀리언즈> 원작 소설가 프랭크 코트렐-보이스는 약탈과 보물이 아닌 인종과 민족성을 컬렉션한 피트리버스 박물관 전시물들을 보며 물건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은 독창적인 생각 그 자체에 매료됩니다.

 

알리 스미스 작가는 관람객이 전시물 주위에서 인간적이 되는, 세상에서 몇 안 되는 박물관으로 절벽 끝에 지어진 악셀 문테 박물관을 손꼽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만든 <워 호스>를 쓴 아동작가 마이클 모퍼고는 벨기에 플랑드르 필즈 박물관에 전시된 말 덕분에 이 작품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작품 배경이 된 스토리,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을 담은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끌리는 박물관>.

그들이 소개한 박물관은 핫플레이스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그것에 끌렸던 걸까요. 공개적인 공간이면서 사적인 이야기가 맞물린 박물관이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쓱 훑고 넘기는 흔한 박물관 탐방이 아닌, 그 속에 깃든 삶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물 같은 작은 박물관에서 작가의 스토리가 얽혀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을 읽으며, 내 사유가 더해진 나만의 박물관을 찾고 싶은 욕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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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땅 서던 리치 시리즈 1
제프 밴더미어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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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간된 환경 재앙 SF 소설 서던리치 3부작.

첫 번째 <소멸의 땅>이 그해 네뷸러 상, 셜리 잭슨 상을 받으며 출간과 동시에 영화화 결정까지 난 화제의 기대작입니다. 엑스 마키나의 알렉스 갈런드 감독, 나탈리 포트먼 주연으로 현재 <소멸의 땅> 영화 촬영 중이고, 2018년 개봉 예정이라고 해요.

 

 

 

수 십 년째 버려진 땅 X구역. 원래 그저 군사 기지에 인접한 황야의 일부였던 그곳. 30년 전 경계를 만들고 수많은 불가해한 사고를 일으켰던 수수께끼 같은 X구역을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조사해왔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탐사대는 총으로 자살했고, 세 번째 탐사대는 서로를 쏴 죽이기도 하는 등 미스터리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탐사대원들이 낯설고 텅 빈 얼굴로 경계 바깥의 원래 세상으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경계를 넘어왔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그들은 결국 암에 걸려 곧 죽어버립니다. 

 

X구역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다루는 비밀 기관 서던리치.
열두 번째 탐사대는 생물학자인 '나', 인류학자, 측량사, 심리학자.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탐사대입니다. 언어학자도 있었지만 출발 전 포기했고, 네 명이 X구역으로 떠납니다. 이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역할에만 충실한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붙여질 필요가 없다"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서던리치 3부작 중 1권 <소멸의 땅>은 생물학자 '나'의 내면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나'의 남편은 열한 번째 탐사대원이었고, 남편 역시 어느 날 갑자기 경계를 넘어 집 안에서 발견된 후 결국 죽었습니다. 남편과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탐사대 자원은 오로지 생물학자로서 미지의 X구역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린 겁니다. 

 

 

 

X구역에 도착한 열두 번째 탐사대. 그녀들은 미지의 탑 혹은 동굴을 발견하는데.

다들 동굴이라고 여기지만, '나'에게는 땅 속으로 파고든 탑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탑의 꼭대기에 서 있는 기분이 드는 거죠. 지도에 나와 있지도, 건축양식을 파악하기도 힘든 탑. 그리고 탑 속 벽면에 새겨진 살아 움직이는 글자들. 그 글자에서 날린 포자를 흡입한 '나'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탑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듣게 되는 '나'. 탑은 일종의 살아 있는 생물체라는 걸 깨닫습니다.

 

벽들이 갑자기 살아 있는 듯 보였고, 우리가 어떤 괴물의 식도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책 속에서

 

 

 

한편 심리학자는 훈련 과정에서부터 최면 암시로 탐사대원들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포자의 영향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심리학자의 최면에 걸리지 않게 된 '나'. 심리학자의 최면 암시 단어를 보며 어디까지가 나의 의지였는지 의문스럽기만 합니다.

 

문제는 이제부터. 밤새 인류학자가 사라졌는데 심리학자는 그녀가 불안해해서 경계로 돌아갔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탑 속에서 무언가의 공격을 받아 죽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곧 심리학자도 사라져버리는데.

 

 

 

임무 시작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측량사와 생물학자 '나'만 남은 혼란스러운 상황. '나'는 측량사와 헤어져 전날 밤 깜박이는 빛을 본 등대로 향합니다. 이전 탐사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등대 상황 역시 비참합니다. 등대 비밀공간에 수북이 쌓인 수백 편의 보고서는 X구역에 온 탐사대가 고작 열두 번 뿐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합니다. 그곳에서 남편의 보고서를 발견하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짐작해봅니다.

 

경계는 전진하고 있어. 지금은 천천히, 매년 조금씩이지. 네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지만 곧 한 번에 2~3킬로미터씩 집어삼킬 거야. - 책 속에서

 

 

 

서던리치 3부작 중 1권 <소멸의 땅>에서는 X구역의 비밀을 선뜻 보여주지 않습니다. 탐사대의 기이한 죽음,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X구역의 생태계 모습. '현상' 그 자체만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의문의 꼬리를 이어갑니다.

 

X구역의 의미는 생물학자 '나'의 과거를 알수록 이해하기 쉽습니다. 남편조차 그녀를 '유령새'라 부를 정도로 고독과 어울렸던 '나'. 진정한 즐거움은 조수 웅덩이를 엿보며 생물군의 복잡성을 파악하는 것뿐입니다.

 

어린 시절, 방치된 수영장이 다양한 생물이 사는 새로운 생태계 서식지로 바뀌는 것을 보며 생물학에 끌린 '나'.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연결성을 깨닫는 순간의 희열을 맛본 '나'의 과거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는 X구역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판 표지에도 그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식충식물과도 같은 X구역이라는 것을.

 

어쨌든 얼마나 기묘하고 찜찜한지 1권을 마치며 '해설'까지 있는 책입니다. 1권만 읽고는 이해하려 들지 말라는 거죠. 책 전반적인 분위기가 모호함 그 자체입니다. 저는 이 모호함이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았고, 미지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탐사대에 자원한 생물학자처럼 다음 권이 무척 기대된 소설입니다.

 

그리고 2권 초반을 읽자마자 아! 감탄사가 나오더군요. 1권의 미스터리 중 일부가 바로 풀려버립니다. 서던리치는 1권만 읽고 감상을 단언할 수 없는 시리즈라는 것만 일단 밝혀둘게요. 2권 <경계기관> 편은 서던리치 국장의 시선으로 진행하는데 비밀기관 특유의 미스터리 추리 분위기까지 더해져 흥미진진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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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3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 4 - 최후의 내리막길
릭 얀시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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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생물을 연구하고 쫓는 괴물학자 워스롭 박사와 그의 제자 윌 헨리의 이야기를 다룬 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2권은 괴이한 괴물 그 자체에 집중했다면 3, 4권은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철학적인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엔 으아~ 꺄~ 비명 일색이었다면, 내적 성장을 거듭하는 윌 헨리의 모습에 연민과 안타까움이 버무려 마음이 묵직해집니다.

 

 

 

완결편에 등장하는 괴물은 멸종된 지 100년 지난 것으로 알려진 T. 세레호넨시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을 지닌 이 생물은 독 한 방울을 10퍼센트로 희석하면 초강력 마약이 되기도 해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살아 있는 알을 받은 워스롭 박사는 부화시켜 괴물학협회의 지하에 보관하지만, 비밀이 새어나가 누군가가 훔쳐갑니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 4권 최후의 내리막길 편은 어느새 열여섯이 된 윌의 성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젠 워스롭 박사에게 대드는 것도 능숙해졌습니다. 할 말 다 하며 제법 수다스러워진 윌 헨리라니! (정말 잘 컸구나! 영화화되었을 때 열여섯 살, 멋짐이 묻어난 윌 헨리의 모습이 벌써 기대되는걸요.) 

 

 

 

이번 편은 시간 구성도 뒤죽박죽입니다. 열여섯 윌의 과거 시점과 19년이 지난 1911년을 오가며, 사라진 괴물을 쫓는 과정과 윌이 워스롭 박사를 떠난 이후를 함께 다룹니다. 시간이 흐른 후의 상황을 짐작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안타까웠습니다. 괴물학의 명성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윌은 박사와 함께 살고있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워스롭 박사에게 들른 윌. 윌이 떠난 후 너무나도 망가진 워스롭 박사. 엉망인 집을 치우던 윌은 가정부의 유골을 발견하게 되고, 박사는 '존재 그 자체'를 찾았다고 하면서 지하실에 숨겨둔 무언가의 존재를 언급하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사라진 괴물 사건에는 조직범죄단이 얽혀 있었습니다. 갖가지 오해로 일은 틀어지고, 워스롭 박사의 스승이자 벗인 괴물학 협회장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보복에 보복으로 응답하는 윌 헨리.

 

더 이상 지킬 인간성이 남아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윌은 열두 살 주눅 둔 아이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름 없는 내가 아닌 것, 다스 웅게오이어. 내 안의 괴물이 슬금슬금 풀리는 것 같습니다. 윌 헨리는 어느새 잭 더 리퍼라 알려졌던 (1, 3권에 등장한) 존 컨스 박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 같은 괴물의 도난 사건은 결국 괴물학이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정도로 파장이 큽니다. 그 와중에 워스롭 박사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윌 헨리. 워스롭 박사의 자아와 영혼을 보살피던 윌 헨리는 이제 워스롭 박사의 충실한 종을 그만두고 떠납니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 4권의 제목이기도 한 <최후의 내리막길>은 워스롭 박사가 말한 '존재 그 자체', 지하에 사는 그것을 향해 지하실로 내려가는 발걸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위대한 괴물학자의 인생 드라마이면서 그의 곁에 머물던 한 소년의 성장기인 <몬스트러몰로지스트>. 읽어나갈수록 괴물이란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힘들어집니다. 인간과 괴물. 그 차이는 1만 분의 1센티미터의 거리만큼입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비교적 단순한 개념이라면

우리 안에 숨은 끝없는 어둠은 절대로 단순한 것이라 할 수 없다. - 책 속에서

 

 

 

묵직하게 결말을 이끌어 간 릭 얀시 작가. 그저 기괴한 B급 호러 괴물 스토리에서 끝내는 게 아닌,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괴물 이야기로 시작해 영광과 패배를 모두 담은 인생담으로 마칩니다.

 

소설 속 작가가 윌 헨리의 일기장을 읽기 시작한 지 6년. 마지막 일기장을 읽고서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건 아마도 제가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의 마음과도 같을 겁니다. 그들의 결말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행복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어쩌면, 이런 결말을 예상했기에 오히려 더 부질없는 희망을 가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정말 여운 찐~~~하네요.)

 

한 달 간 너무나도 즐겁게 읽어와서, 마지막 권을 펼칠 때부터 이미 아쉬운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워스롭 박사와 윌 헨리에게 푹 빠졌습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캐릭터들입니다.

 

배신, 잔인함, 시기, 욕정, 증오를 가진 인간.
진정한 괴물은 무엇이며 이상생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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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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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유의 기담 분위기가 스며든 미스터리 소설 <야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 때문에 책을 덮고서도 한참을 어리둥절 믿지 못했던 기막힌 스토리였어요. 분위기만으로 서늘한 냉기를 내뿜는 소설을 원한다면 이 책입니다.

 

 

 

10년 만에 대학 때 다닌 영어 회화 학원 동료 다섯이 모였습니다. 그들에겐 공통의 사건이 있습니다. 10년 전 구라마 진화제를 구경하러 갔다가 여자 한 명이 실종되었던 거죠. 그녀의 실종 이후 다 함께 모인 건 처음입니다.

 

모임으로 향하던 '나'는 길에서 실종된 그녀를 꼭 닮은 사람을 봅니다. 그녀가 들어간 야나기 화랑으로 쫓아갔지만 감쪽같이 사라져 잘못 본 건가 싶어 나오려던 차. 7년 전 죽은 동판 화가의 유작 전시를 하던 화랑에서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림을 발견합니다. 야행(夜行)이라는 이름에 지역명이 붙여진 이 작품들은 밤을 배경으로 얼굴 없는 여자가 그려진 신비한 느낌이 드는 연작입니다.

 

 

 

작품 이름이 왜 야행일까 궁금해한 '나'에게 야행 열차의 야행이거나 아니면 백귀야행의 야행일지도 모른다는 대답은 초반부터 미스터리 떡밥을 던집니다. 백귀야행이란 단어 때문에 기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다 신기하게도 그들 모두 동판화 야행 작품과 인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이 소설을 구성합니다.

 

 

 

나카이는 5년 전 아내를 찾으러 간 오노미치에서 '야행-오노미치' 작품을 보게 됩니다. 4년 전 오쿠히다에서 '야행-오쿠히다' 작품을 본 다케다 군도 어둡고 신비한 인상을 주는 그림에 매료됩니다. 3년 전 쓰가루에서 야행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 후지무라도 어김없이 '야행-쓰가루' 작품을 접합니다. 

 

분명 집에 살고 있는 여자와 대화까지 했건만 그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라질 않나, 내일이면 늦을 거라고 죽을 상이라며 당장 돌아가라는 초로의 여자를 만나질 않나, 작품 속의 집을 실제 보기도 하고.

 

야행 작품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기묘하기만 합니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신비한 일들이 벌어지는 장면은 기묘함을 넘어 무섭기까지 합니다. 저도 모르게 자꾸 상상하며 읽게 되는 묘사의 힘이 있는 소설입니다.

 

 

 

마흔여덟 작품의 연작 야행을 만든 기시다 미치요. 작품마다 얼굴이 뭉개져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은 누구일까요. 작품 제목으로 지명까지 달았지만, 기시다는 그 어디에도 간 적 없다는 점도 기묘합니다. 연작 야행이 그들의 동료가 실종된 해에 시작되었다는 점도 뭔가 냄새를 풍깁니다. 더불어 야행과 대칭을 이루는 서광(曙光)이라는 비밀스러운 연작의 존재에 관한 소문도 있습니다.

 

기시다의 존재에 관해서는 다섯 동료들 중 한 명이 무명시절의 기시다와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역시 2년 전 기시다와 관련한 또 다른 인물을 기차에서 만나게 되면서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가 동판화 야행과 관련된 여행을 했다는 게 드러납니다. 

 

 

 

소설 <야행>은 꿈속 같은 경치와 수수께끼 같은 인상을 풍기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분명 현실이라는 걸 자각하면서 동시에 기묘한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소설 속 여인들은 자신만의 '밤의 세계'를 가슴속에 품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과연 이 스토리의 결말은 어디로 향할지 궁금증을 넘어 걱정될 정도로, 도통 추측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연작 야행 작품을 만든 작가에게 비밀이 있을 거란 짐작으로 읽어내려가다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만 남은 상황 속에서 반전이 나오는 순간 멘붕.

 

영원한 밤을 그린 야행과 새벽에 동이 틀 무렵의 빛을 그린 서광. 여기에 이 소설의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반전과 결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이 작가... 4차원이구나. 으스스한 기담에 SF 요소까지 섞인 이런 류의 소설은 처음 만났습니다. 이렇게 책 소개를 쓰는 일도 사실 무척 힘들었는데요, 가슴으로는 스토리를 이해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니 안 되니 말입니다. 

 

독자 호불호는 나뉠만한 소설일 수는 있어요. 저는 모리모 도미히코 작가에게 무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상상력 수준이 범상치 않고, 똘끼 있는 4차원 작가라는 생각에 어찌나 흥분되던지 도서관에서 당장 이 작가 전작들을 찾아봤을 정도입니다.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치하는 작가라는 걸 알고는 격하게 공감. 작가의 대표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도 흔한 연애소설에 요상한 판타지를 가미해 찬사 받은 작품이더군요. 

 

밤을 배경으로 얼굴 없는 여자가 그려진 동판화 작품 <야행> 연작과 등장인물들의 인연은 미스터리 그 자체입니다. '야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두움과 쓸쓸함, 으스스한 오싹함까지. 이 모든 감정이 스토리를 관통합니다.

 

워낙 기묘한 반전 덕분에 <야행>을 다 읽은 후 작가가 의도한 대로 내가 잘 이해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긴 했습니다. 역자 후기는 그래서 소중했어요. (사실 옮긴이 후기도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 수준이라 아놔, 역자마저 똘끼충만이야라고 소리 질렀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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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그린란드 - 아이슬란드 전문가가 만든 최신 가이드북, 2017~2018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정덕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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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슬란드 전문가의 노하우가 제대로 담긴 2017-2018년 최신판 여행가이드북 <아이슬란드&그린란드>. 최근 한국 관광객이 늘긴 했지만, 다른 나라 여행가이드북처럼 베스트 관광지만 알려주기엔 아직은 낯선 아이슬란드. 이 책은 아이슬란드를 실제 여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소소한 노하우까지 다루고 있어, 아이슬란드 여행자에겐 필수 여행책이 될 겁니다.

 

 

 

유럽여행 중 들르는 2박 3일 단기 코스부터 아이슬란드 전체를 둘러보는 13박 14일까지 다양한 일정을 소개합니다. 중요한 점은 다른 곳처럼 도시 중심의 코스가 아니라 아이슬란드 지역상 이동거리를 계산해 일정을 짜야 한다는군요.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을 저도 무척 재미있게 봤었는데, 렌터카로 이동하는 것 외에도 버스투어를 추천해줍니다. 지역별 웬만한 투어도 숙소로 태우러 오기 때문에 예약만 잘해두면 끝.

 

 

 

해시태그 여행책 <아이슬란드&그린란드>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를 중심으로 동, 서, 남, 북부 지역과 근처 그린란드까지 소개합니다. 우리에겐 아직 덜 알려진 핫스페이스도 추천하고 있으니 한적하게, 남들과는 다른 여행코스를 원한다면 꼭 읽어보세요.

 

아이슬란드의 3대 관광지는 싱벨리어 국립공원, 게이시르, 굴포스가 있고 그 외 세계인들의 버킷리스트 10에 들어갈 정도로 핫한 블루라군도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도 이제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나 봅니다. ;;; 블루라군은 중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로 몰리는 곳이라 예약 필수라네요.

 

요즘 읽는 소설이 마침 아이슬란드 작가의 책인데, 책 속에 아이슬란드 골든서클 코스인 싱그베들리르(싱벨리어) 국립공원이 배경으로 나와 몰입 더 잘 되네요 ^^

 

 

 

신이 지구를 만들기 전에 시범 삼아 만들어놓은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라는 나라가 있구나 인지하게 된 것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인데요. 프로메테우스, 왕좌의 게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인터스텔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배트맨 비긴즈 등 외계행성 같은 느낌이 들면서 분명 CG 일 거라 생각했던 곳들이 대부분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장면이더라고요.

 

아이슬란드는 문학과 음악 등 예술도 무척 발달한 나라입니다. 북유럽 예술의 원천이라는 느낌이랄까. 온 국민이 독서광이라 하는군요. 아이슬란드 문학을 사가 SAGA라고 부르는데 북유럽 신화, 영웅담 이야기가 많은 중세 아이슬란드 문학의 한 장르입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작가 톨킨이 아이슬란드에 다녀간 뒤 쓴 <반지의 제왕>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에는 다양하고 신비한 폭포가 넘쳐나니 폭포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 빙하 체험, 퍼핀 군락지, 오로라, 얼음 동굴 등 장엄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입니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사실 중 놀라웠던 건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인 이곳이 생각보다 춥지 않다는 겁니다. 레이캬비크는 겨울 평균 기온이 1도라는군요. 아이슬란드는 겨울이 길지만 극한의 추위가 없는 대신 바닷바람이 강해 20도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합니다. 

 

 

 

그나저나 그린란드가 여기에 있을 줄이야. ^^;;;

그린란드는 남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촌마을의 아기자기함이 보여서 놀라웠어요.

 

청정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아이슬란드&그린란드.

관광 인프라로 단숨에 엄청난 반전을 이룬 나라여서 최신 정보가 특히나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아이슬란드를 다시 찾는 여행자들이 꼭 간다는 보물 같은 서부 피요르 지역과 트래킹 코스, 캠퍼들을 위한 정보, 아이슬란드 내륙 완전 정복까지 빠짐없이 소개해 그야말로 아이슬란드의 모든 것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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