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일본 특유의 기담 분위기가 스며든 미스터리 소설 <야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 때문에 책을 덮고서도 한참을 어리둥절 믿지 못했던 기막힌 스토리였어요. 분위기만으로 서늘한 냉기를 내뿜는 소설을 원한다면 이 책입니다.

 

 

 

10년 만에 대학 때 다닌 영어 회화 학원 동료 다섯이 모였습니다. 그들에겐 공통의 사건이 있습니다. 10년 전 구라마 진화제를 구경하러 갔다가 여자 한 명이 실종되었던 거죠. 그녀의 실종 이후 다 함께 모인 건 처음입니다.

 

모임으로 향하던 '나'는 길에서 실종된 그녀를 꼭 닮은 사람을 봅니다. 그녀가 들어간 야나기 화랑으로 쫓아갔지만 감쪽같이 사라져 잘못 본 건가 싶어 나오려던 차. 7년 전 죽은 동판 화가의 유작 전시를 하던 화랑에서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림을 발견합니다. 야행(夜行)이라는 이름에 지역명이 붙여진 이 작품들은 밤을 배경으로 얼굴 없는 여자가 그려진 신비한 느낌이 드는 연작입니다.

 

 

 

작품 이름이 왜 야행일까 궁금해한 '나'에게 야행 열차의 야행이거나 아니면 백귀야행의 야행일지도 모른다는 대답은 초반부터 미스터리 떡밥을 던집니다. 백귀야행이란 단어 때문에 기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다 신기하게도 그들 모두 동판화 야행 작품과 인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이 소설을 구성합니다.

 

 

 

나카이는 5년 전 아내를 찾으러 간 오노미치에서 '야행-오노미치' 작품을 보게 됩니다. 4년 전 오쿠히다에서 '야행-오쿠히다' 작품을 본 다케다 군도 어둡고 신비한 인상을 주는 그림에 매료됩니다. 3년 전 쓰가루에서 야행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 후지무라도 어김없이 '야행-쓰가루' 작품을 접합니다. 

 

분명 집에 살고 있는 여자와 대화까지 했건만 그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라질 않나, 내일이면 늦을 거라고 죽을 상이라며 당장 돌아가라는 초로의 여자를 만나질 않나, 작품 속의 집을 실제 보기도 하고.

 

야행 작품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기묘하기만 합니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신비한 일들이 벌어지는 장면은 기묘함을 넘어 무섭기까지 합니다. 저도 모르게 자꾸 상상하며 읽게 되는 묘사의 힘이 있는 소설입니다.

 

 

 

마흔여덟 작품의 연작 야행을 만든 기시다 미치요. 작품마다 얼굴이 뭉개져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은 누구일까요. 작품 제목으로 지명까지 달았지만, 기시다는 그 어디에도 간 적 없다는 점도 기묘합니다. 연작 야행이 그들의 동료가 실종된 해에 시작되었다는 점도 뭔가 냄새를 풍깁니다. 더불어 야행과 대칭을 이루는 서광(曙光)이라는 비밀스러운 연작의 존재에 관한 소문도 있습니다.

 

기시다의 존재에 관해서는 다섯 동료들 중 한 명이 무명시절의 기시다와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역시 2년 전 기시다와 관련한 또 다른 인물을 기차에서 만나게 되면서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가 동판화 야행과 관련된 여행을 했다는 게 드러납니다. 

 

 

 

소설 <야행>은 꿈속 같은 경치와 수수께끼 같은 인상을 풍기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분명 현실이라는 걸 자각하면서 동시에 기묘한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소설 속 여인들은 자신만의 '밤의 세계'를 가슴속에 품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과연 이 스토리의 결말은 어디로 향할지 궁금증을 넘어 걱정될 정도로, 도통 추측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연작 야행 작품을 만든 작가에게 비밀이 있을 거란 짐작으로 읽어내려가다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만 남은 상황 속에서 반전이 나오는 순간 멘붕.

 

영원한 밤을 그린 야행과 새벽에 동이 틀 무렵의 빛을 그린 서광. 여기에 이 소설의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반전과 결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이 작가... 4차원이구나. 으스스한 기담에 SF 요소까지 섞인 이런 류의 소설은 처음 만났습니다. 이렇게 책 소개를 쓰는 일도 사실 무척 힘들었는데요, 가슴으로는 스토리를 이해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니 안 되니 말입니다. 

 

독자 호불호는 나뉠만한 소설일 수는 있어요. 저는 모리모 도미히코 작가에게 무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상상력 수준이 범상치 않고, 똘끼 있는 4차원 작가라는 생각에 어찌나 흥분되던지 도서관에서 당장 이 작가 전작들을 찾아봤을 정도입니다.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치하는 작가라는 걸 알고는 격하게 공감. 작가의 대표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도 흔한 연애소설에 요상한 판타지를 가미해 찬사 받은 작품이더군요. 

 

밤을 배경으로 얼굴 없는 여자가 그려진 동판화 작품 <야행> 연작과 등장인물들의 인연은 미스터리 그 자체입니다. '야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두움과 쓸쓸함, 으스스한 오싹함까지. 이 모든 감정이 스토리를 관통합니다.

 

워낙 기묘한 반전 덕분에 <야행>을 다 읽은 후 작가가 의도한 대로 내가 잘 이해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긴 했습니다. 역자 후기는 그래서 소중했어요. (사실 옮긴이 후기도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 수준이라 아놔, 역자마저 똘끼충만이야라고 소리 질렀지만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