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땅 서던 리치 시리즈 1
제프 밴더미어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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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간된 환경 재앙 SF 소설 서던리치 3부작.

첫 번째 <소멸의 땅>이 그해 네뷸러 상, 셜리 잭슨 상을 받으며 출간과 동시에 영화화 결정까지 난 화제의 기대작입니다. 엑스 마키나의 알렉스 갈런드 감독, 나탈리 포트먼 주연으로 현재 <소멸의 땅> 영화 촬영 중이고, 2018년 개봉 예정이라고 해요.

 

 

 

수 십 년째 버려진 땅 X구역. 원래 그저 군사 기지에 인접한 황야의 일부였던 그곳. 30년 전 경계를 만들고 수많은 불가해한 사고를 일으켰던 수수께끼 같은 X구역을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조사해왔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탐사대는 총으로 자살했고, 세 번째 탐사대는 서로를 쏴 죽이기도 하는 등 미스터리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탐사대원들이 낯설고 텅 빈 얼굴로 경계 바깥의 원래 세상으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경계를 넘어왔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그들은 결국 암에 걸려 곧 죽어버립니다. 

 

X구역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다루는 비밀 기관 서던리치.
열두 번째 탐사대는 생물학자인 '나', 인류학자, 측량사, 심리학자.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탐사대입니다. 언어학자도 있었지만 출발 전 포기했고, 네 명이 X구역으로 떠납니다. 이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역할에만 충실한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붙여질 필요가 없다"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서던리치 3부작 중 1권 <소멸의 땅>은 생물학자 '나'의 내면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나'의 남편은 열한 번째 탐사대원이었고, 남편 역시 어느 날 갑자기 경계를 넘어 집 안에서 발견된 후 결국 죽었습니다. 남편과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탐사대 자원은 오로지 생물학자로서 미지의 X구역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린 겁니다. 

 

 

 

X구역에 도착한 열두 번째 탐사대. 그녀들은 미지의 탑 혹은 동굴을 발견하는데.

다들 동굴이라고 여기지만, '나'에게는 땅 속으로 파고든 탑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탑의 꼭대기에 서 있는 기분이 드는 거죠. 지도에 나와 있지도, 건축양식을 파악하기도 힘든 탑. 그리고 탑 속 벽면에 새겨진 살아 움직이는 글자들. 그 글자에서 날린 포자를 흡입한 '나'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탑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듣게 되는 '나'. 탑은 일종의 살아 있는 생물체라는 걸 깨닫습니다.

 

벽들이 갑자기 살아 있는 듯 보였고, 우리가 어떤 괴물의 식도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책 속에서

 

 

 

한편 심리학자는 훈련 과정에서부터 최면 암시로 탐사대원들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포자의 영향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심리학자의 최면에 걸리지 않게 된 '나'. 심리학자의 최면 암시 단어를 보며 어디까지가 나의 의지였는지 의문스럽기만 합니다.

 

문제는 이제부터. 밤새 인류학자가 사라졌는데 심리학자는 그녀가 불안해해서 경계로 돌아갔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탑 속에서 무언가의 공격을 받아 죽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곧 심리학자도 사라져버리는데.

 

 

 

임무 시작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측량사와 생물학자 '나'만 남은 혼란스러운 상황. '나'는 측량사와 헤어져 전날 밤 깜박이는 빛을 본 등대로 향합니다. 이전 탐사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등대 상황 역시 비참합니다. 등대 비밀공간에 수북이 쌓인 수백 편의 보고서는 X구역에 온 탐사대가 고작 열두 번 뿐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합니다. 그곳에서 남편의 보고서를 발견하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짐작해봅니다.

 

경계는 전진하고 있어. 지금은 천천히, 매년 조금씩이지. 네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지만 곧 한 번에 2~3킬로미터씩 집어삼킬 거야. - 책 속에서

 

 

 

서던리치 3부작 중 1권 <소멸의 땅>에서는 X구역의 비밀을 선뜻 보여주지 않습니다. 탐사대의 기이한 죽음,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X구역의 생태계 모습. '현상' 그 자체만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의문의 꼬리를 이어갑니다.

 

X구역의 의미는 생물학자 '나'의 과거를 알수록 이해하기 쉽습니다. 남편조차 그녀를 '유령새'라 부를 정도로 고독과 어울렸던 '나'. 진정한 즐거움은 조수 웅덩이를 엿보며 생물군의 복잡성을 파악하는 것뿐입니다.

 

어린 시절, 방치된 수영장이 다양한 생물이 사는 새로운 생태계 서식지로 바뀌는 것을 보며 생물학에 끌린 '나'.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연결성을 깨닫는 순간의 희열을 맛본 '나'의 과거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는 X구역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판 표지에도 그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식충식물과도 같은 X구역이라는 것을.

 

어쨌든 얼마나 기묘하고 찜찜한지 1권을 마치며 '해설'까지 있는 책입니다. 1권만 읽고는 이해하려 들지 말라는 거죠. 책 전반적인 분위기가 모호함 그 자체입니다. 저는 이 모호함이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았고, 미지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탐사대에 자원한 생물학자처럼 다음 권이 무척 기대된 소설입니다.

 

그리고 2권 초반을 읽자마자 아! 감탄사가 나오더군요. 1권의 미스터리 중 일부가 바로 풀려버립니다. 서던리치는 1권만 읽고 감상을 단언할 수 없는 시리즈라는 것만 일단 밝혀둘게요. 2권 <경계기관> 편은 서던리치 국장의 시선으로 진행하는데 비밀기관 특유의 미스터리 추리 분위기까지 더해져 흥미진진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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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3 17: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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