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대지 3부작 세트 - 전3권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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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휴고 상 역사 최초 3년 연속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타임>이 고른 역사상 최고의 판타지 소설 100선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한 N. K. 제미신 작가의 '부서진 대지' 3부작. 2019년 1월 한국어판으로 출간되며 1권을 읽자마자 대박! 외쳤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드디어 2020년 11월 대망의 완결편이 출간되어 마지막 페이지가 다가오는 아쉬움 속에 대작을 읽어내려갔습니다.


1권을 읽었을 땐 반지의 제왕이 가진 중후함과 매드맥스의 비주얼이 느껴진다고 감상평을 했었는데 완결편 <석조 하늘>에 이르러서는 와... 그 이상의 감동이 몰려왔어요. 제노사이드와 모성이라는 키워드를 이렇게 풀어내는 대작이었다니, <석조 하늘>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정수라는 걸 느꼈습니다.


SF와 아프로퓨처리즘 판타지의 매력적인 조화가 빛나는 소설 <부서진 대지> 시리즈. 평소 성과 인종 차별 문제에 앞장선 N. K. 제미신 작가는 이 소설에서도 뿌리깊은 차별과 증오의 역사를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1권 <다섯 번째 계절>에서는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는 한 문장이 인상 깊었는데요. 고요 대륙의 활기찬 도시 유메네스에서 일어난 종말의 시작을 그렸습니다. 에너지를 볼 수 있고 조종하는 조산력을 가진 불가사의한 존재 오로진. 훈련받지 않은 오로진은 위협에 본능적으로 반응을 해 순식간에 사람들을 죽일 수 있기에 일반인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아이콘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에쑨도 자신의 능력과 정체를 숨기며 평범한 척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여성입니다. 하지만 유메네스에서 갑작스레 발생한 재앙은 대륙 곳곳을 파괴해버리고, 마을에 닥친 위기를 피하기 위해 쓴 능력 덕분에 에쑨은 결국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게다가 에쑨에게서 물려받은 능력이 자식에게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남편은 분노 끝에 아들을 죽이고 딸은 데리고 도망가 버리는 일까지 겹치며 남편을 쫓는 에쑨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권 <다섯 번째 계절>에서는 다양한 능력을 지닌 캐릭터들에 빠져드는 시간이었어요. 산도 움직일 수 있는 조산력을 가진 오로진과 그런 오로진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수호자, 인간형 생명체이지만 돌로 이뤄진 스톤이터가 주축을 이룹니다.


재앙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계절이라는 다섯 번째 계절이 닥친 고요 대륙. 인간의 멸종을 부를 만큼 강력한 계절에 대한 비밀은 2권 <오벨리스크의 문>에서 조금씩 밝혀지지만, 3권 <석조 하늘>에 이르러 그 비밀의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까지 드러나면서 부서진 대지 시리즈의 세계관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에쑨과 딸 나쑨, 그리고 스톤이터의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하며 지금 이 시점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장면 전환이 이뤄져 지루함 없이 전개됩니다. 딸 나쑨의 능력도 생각보다 강력해 그 어미의 딸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더군요. 하지만 에쑨의 일생에 워낙 빠져들다 보니 나쑨의 이야기에서는 조금 심드렁해졌던 건 사실입니다. 엄마 입장에서 나쑨을 바라보게 되어 종종 '저러면 안 되는데...' 물가에 내놓은 애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요.


딸을 찾아 나선 엄마의 고생담으로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기이한 방식으로 하늘 높이 떠 있는 거대하고 비현실적인 수정 조각인 오벨리스크와 달, 대지와 관련한 비밀이 밝혀지는 여정이 흥미진진합니다. 초자연적인 존재 대지의 분노로 발생하는 재앙은 샤머니즘과 SF의 조합이 멋지게 버무려진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대지에게는 자식이 있었고, 그 자식을 인간의 만용 때문에 잃었을 때 분노했습니다. 그렇게 다섯 번째 계절을 몰고 왔습니다. 대지의 자식은 달입니다. 도대체 어떤 사연으로 달을 잃었는지 3권 <석조 하늘>에서 스톤이터의 눈으로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생물마학과 유전공학의 최정점으로 만들어진 스톤이터의 비밀도 밝혀집니다. 까도 까도 계속 놀라움을 던져주는 작가입니다.


딸과 헤어진 지 2년여의 시간 동안 에쑨과 나쑨이 겪은 일들은 고난과 역경 그 자체입니다. 외로움과 복수심이 혼재한 엄마와 딸 둘 다 그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분노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오벨리스크의 문을 열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차린 에쑨은 결국 더는 조산력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조산력을 쓸 때마다 돌로 변하는 벌을 받게 된 겁니다. 이 행성에서 가장 강력한 오로진인 에쑨이 더는 힘을 쓸 수 없게 되다니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대지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은 있을까요. 슬프게도 에쑨과 나쑨의 해결책은 궤를 달리합니다. 대지와 생명 사이의 해묵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에쑨은 사라진 자식인 달을 붙잡고 대지와 화해를 청하며 다섯 번째 계절을 끝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쑨은 위기의 순간에 진짜 가족보다 더 애틋한 가족이 되어줬던 수호자의 죽음을 계기로 인류 멸망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세상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오로진의 세계를 묘사하는 장면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에쑨의 껌딱지 스톤이터인 호아의 이야기도 마음에 쏙 들고요. 죽고 싶은데도 죽을 수가 없는 삶을 사는 스톤이터의 존재를 오로진만큼이나 묘합니다.


완결편 <석조 하늘>에서 밝혀지는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의 비밀은 정말 경악스럽습니다. 그런데 낯설지가 않아요. 부서진 대지 시리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법을 동력으로 이용하고자 한 인간의 약탈적인 면모가 결국 대지의 분노를 일으키게 한 소설의 배경은 부족과 결핍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멈추지 않고 지구의 자원을 약탈하는 현재 지구와 인류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누군가를 노예로 만들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에쑨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는 여정을 봐서인지 에쑨에게 조금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입니다. 해결 방향이 다른 나쑨과는 대결 구조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성을 내세운 에쑨이 안타까워지기도 했고, 불안한 시기를 보낸 나쑨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이 최고조에 달하도록 긴장감을 유발하는 작가의 클라이맥스 장면도 압권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로 시작한 다섯 번째 계절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세요.


2권을 읽을 때만 해도 넷플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완결 편 <석조 하늘>까지 다 읽고는 마음이 바뀌었어요. 웅장한 영상미도 보고 싶지만, 이런 대하 서사를 어떻게 세심하게 끌고 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여운이 가득한 소설입니다. 판타지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멋진 소설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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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하늘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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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아프로퓨처리즘 판타지의 매력적인 조화가 빛나는 소설 <부서진 대지 3부작>. 


제노사이드와 모성이라는 키워드를 이렇게 풀어내는 대작이었다니, 완결편 <석조 하늘>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정수라는 걸 느꼈습니다.


딸과 헤어진 지 2년여의 시간 동안 에쑨과 나쑨이 겪은 일들은 고난과 역경 그 자체입니다. 외로움과 복수심이 혼재한 엄마와 딸 둘 다 그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분노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오벨리스크의 문을 열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차린 에쑨은 결국 더는 조산력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조산력을 쓸 때마다 돌로 변하는 벌을 받게 된 겁니다. 이 행성에서 가장 강력한 오로진인 에쑨이 더는 힘을 쓸 수 없게 되다니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대지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은 있을까요. 슬프게도 에쑨과 나쑨의 해결책은 궤를 달리합니다. 대지와 생명 사이의 해묵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에쑨은 사라진 자식인 달을 붙잡고 대지와 화해를 청하며 다섯 번째 계절을 끝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쑨은 위기의 순간에 진짜 가족보다 더 애틋한 가족이 되어줬던 수호자의 죽음을 계기로 인류 멸망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흑화 조짐이 조금씩 보여서 저도 모르게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계속 나쑨의 이야기를 읽을 땐 불안해했었나 봐요)


"타인의 절망과 절박함을 무기로 이용하려는 자들은 항상 있었지." - 책 속에서 


세상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오로진의 세계를 묘사하는 장면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에쑨의 껌딱지 스톤이터인 호아의 이야기도 마음에 쏙 들고요. 죽고 싶은데도 죽을 수가 없는 삶을 사는 스톤이터의 존재를 오로진만큼이나 묘합니다.


완결편 <석조 하늘>에서 밝혀지는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의 비밀은 정말 경악스럽습니다. 그런데 낯설지가 않아요. 부서진 대지 시리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법을 동력으로 이용하고자 한 인간의 약탈적인 면모가 결국 대지의 분노를 일으키게 한 소설의 배경은 부족과 결핍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멈추지 않고 지구의 자원을 약탈하는 현재 지구와 인류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누군가를 노예로 만들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에쑨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는 여정을 봐서인지 에쑨에게 조금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입니다. 해결 방향이 다른 나쑨과는 대결 구조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성을 내세운 에쑨이 안타까워지기도 했고, 불안한 시기를 보낸 나쑨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이 최고조에 달하도록 긴장감을 유발하는 작가의 클라이맥스 장면도 압권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로 시작한 다섯 번째 계절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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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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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보다 낯선 한국미술 세계. 막연히 고리타분해 보이는 선입견으로 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미술에 대한 이런 인식을 말끔히 없애줄 지금까지 만날 수 없었던 유일무이한 한국 예술책 <방구석 미술관 2>.


수많은 미술 햇병아리들을 미술의 즐거움에 입문시키며 독보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방구석 미술관>. 20세기 한국 현대미술가 10인의 작품 150여 점이 수록된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편은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수다 떨듯 맛깔스러운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인 조원재 저자의 입담으로 쉽게 한국미술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소를 사랑한 화가 이중섭,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 월드 아티스트 이응노,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심플을 추구한 외골수 장욱진,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 김환기, 서민을 친근하게 그려온 국민화가 박수근, 독보적 여인상을 그린 화가 천경자, 비디오아트 선구자 백남준, 돌조각을 예술로 승화한 모노파 대표 미술가 이우환. 20세기 한국미술의 거장들입니다.


한국미술에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10인의 한국미술가들 중 생전 처음 듣는 화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름만 알고 작품 세계관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이중섭 화가만 해도 <방구석 미술관 2>에서 들려주는 해설을 보고 작품을 다시 보니 그 감동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미처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도 이제는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가의 생을 알고 작품을 이해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었어요. 그 그림이 탄생한 비화는 단순한 썰이 아닌 작품에 담긴 영혼을 읽는 것과 같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독립운동가가 세운 학교 출신에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민족정신이 고양된 이중섭은 민족의 존엄성을 작품에 은밀하게 담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소'라고 해요. 주변에서는 미친 수준이라 할 정도로 소에 집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중섭 화가의 신상 변화에 따라 소 그림이 많이 달라집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깨부수고 돌진할 힘이 엿보이던 소가 비참한 고난으로 심신이 피폐해진 시기에는 작가의 좌절감이 고스란히 담겨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 그림으로 변합니다. 처음엔 그저 어두워지고 거칠어진 정도로만 느꼈던 그림이 책을 읽고 나서는 작가의 고통이 전해지는 듯 울컥하는 감정이 솟구치게 되더라고요.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은 이중섭뿐만 아니라 원조 신여성으로 불린 나혜석 화가에게도 닥친 일입니다. 올해 읽은 책 <나혜석의 말>에서 나혜석의 글을 통해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는데, <방구석 미술관 2>에서는 작품에 투영된 나혜석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나혜석이 걷는 길은 최초라는 단어가 계속 붙을 만큼 신여성으로서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실천해나간 인물입니다. 신여성의 길을 가는 지팡이로서의 그림과 여성 운동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펼칠 글을 무기로 살았던 나혜석. 하지만 이혼당한 여자라는 사회적 낙인의 무게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시대의 비극이 점철된 나혜석의 삶은 힘든 시기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미지의 길을 개척한 이응노 화가의 이야기도 놀라웠어요. '문자추상'은 키스해링보다 더 참신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월드 아티스트였건만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난 후 그의 예술관은 또 달라집니다.


현대 서양미술 뺨치는 추상화를 선보인 유영록 화가는 한국적 산수의 정서를 접목한 추상화 그림이 정말 멋졌어요. 이런 소중한 화가를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요.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132억이라는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 화가도 이름만 들었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던 작가인데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예전에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관람해서인지 달항아리에 대한 인상이 참 좋게 자리 잡고 있던 차에 만난 그의 작품은 책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어요.


10인의 한국미술 화가 이야기마다 팟캐스트로 이동할 수 있는 QR코드가 있으니 조원재 저자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QR코드로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거장들의 작품인 만큼 저작권 문제로 신중하게 작업된 책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끊임없이 고뇌하며 자신과 시대의 고민을 작품에 녹여낸 예술가들의 삶에 초점 맞춰 소개한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편. "한 사람의 삶이 미술을 낳는다"라는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미술가의 삶에서 나온 예술을 가슴으로 공감하며 만나는 시간이 됩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빠져읽게 될 거장들의 삶을 통해 우리 역사, 우리 정서가 담긴 한국미술의 세계에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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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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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의 생명 연장술 보존과학을 아시나요. 아픈 그림을 치료하는 미술품 의사 보존가와 보존과학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에쿠니 카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 준세이를 통해 보존가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보존가의 모습은 어떨까요.


미술 작품의 생명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그 긴 생명은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의 손길로 지켜진다.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보존이란 현재와 미래 세대가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보존, 치료보존, 복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치와 행위를 말합니다.


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미술품 복원 현장에 매료되어 그 길로 회화 보존을 공부하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는 김은진 저자는 이 책에서 보존가의 철학과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잘 보여줍니다. 왜 복원해야 하는지,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지, 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지 윤리적, 기술적 고민을 철저히 해 유일무이한 문화유산을 다루는 일에 대한 책임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보존가의 직업적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다양한 복원 사례를 통해 뭉클한 감동, 웃픈 이야기, 가슴 아픈 실패 사례 등을 다룹니다. 압도적인 크기에 중앙에 그려진 대장이 실제 사람의 키만큼 커 그림 속 사람들의 무리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렘브란트의 작품 <야간 순찰>은 숱한 수모를 당했습니다. 구두수선용 칼, 빵칼, 산성 액체 등 온갖 테러를 당한 이 작품은 최소 25회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현재는 복원 처리 과정이 공개되어 미술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을 선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하나의 학문이 된 미술품 보존. 과학적 분석과 연구 기능을 강화해 보존가를 정식 채용하고 보존 처리에 대한 기록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원래 그림 그대로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수천 년이 지나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복원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합니다. 과학 기술 발전에 따라 복원 기술과 유행하는 기술이 시대별로 달랐습니다. 스펀지에 포도주를 적셔 닦아내거나 빵을 문질러 닦아내는 게 다였던 클리닝 기술도 이제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클리닝에 대한 논쟁도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밝아진 그림에 대한 거북함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누군가는(그 유명한 곰브리치라든가) 세월의 흔적이 그림에 가치를 더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해외 작품 외에도 우리나라 그림에 대한 사례도 등장합니다. 과거에는 일본으로 복원 기술을 공부하러 많이 갔었고, 당시 배워온 획기적인 최신 기술로 보존 처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본응이 친구 이상을 그린 작품 <친구의 초상>은 복원 과정을 거치며 이상의 창백한 아픈 얼굴이 생기 넘치는 얼굴로 바뀌어버린 겁니다. 이처럼 복원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분쟁이 생길수록 미술관에서 과학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온습도에 민감한 나무판, 캔버스, 종이라는 재질, 켜켜이 쌓여 있는 물감의 재료 등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그림 외에도 굉장히 신경 쓸 게 많았습니다. 복원용 물감이 따로 있고, 복원할 때 사라진 색을 단순히 색칠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과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해 변색된 색의 원래 색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도 보존가의 역할입니다. 빛에 의해 발생한 손상은 회복되지 않고 누적된다니 미술관의 조명 하나도 유심히 살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타이타닉 영화에서 디카프리오의 그림이 80년이 넘도록 바닷물 속에서 그대로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이나 백발의 할머니가 된 주인공이 진흙을 걷어내고 깨끗한 물속에 그림을 다시 두는 이유에도 과학적인 고증이 담긴 장면이라는 걸 알게 되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에는 미술품 보존을 공부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조언도 있습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지만 전달자로서의 보존가의 일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앞으로는 이 작품은 어떤 손길을 받아왔을까 하며 작품 속 숨은 스토리가 궁금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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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업 -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의 원칙과 도전
하워드 슐츠.조앤 고든 지음, 안기순 옮김 / 행복한북클럽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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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타벅스 명예회장 하워드 슐츠 회고록 <그라운드 업>. 스타벅스 경영철학에 관한 이야기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 책에서는 공개한 적 없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독한 가난과 무력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고, 스타벅스의 사회적 역할 이념에 그 시절의 고민이 반영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야망도 의지도 완전히 꺾인 아버지, 우울증을 앓은 어머니.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 빚쟁이들. 하워드 슐츠에겐 그들이 살던 임대 아파트의 계단이 피난처였습니다. 계단에서 작은 세상 너머를 상상하며 보냈다고 합니다. 그에게 '제3의 장소'는 단순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고방식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상상을 펼쳤던 어린시절 그 계단은 일상이자 휴식의 공간,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제3의 장소가 되는 스타벅스에 반영됩니다. <그라운드 업>에서는 어떻게 계단에서 벗어나고 자신이 알던 세상을 넘어서 다른 미래를 상상하며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게 했는지 어릴 적 경험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어린 시절 내 머릿속에 새겨진 이념의 핵심이기도 하다." - 그라운드 업


1971년 설립된 스타벅스에 근무하며 출장차 간 밀라노에서 에스프레소 바의 충격적인 경험을 한 하워드 슐츠. 당시 스타벅스는 품질 좋은 원두를 판매하는 정도였고, 그의 아이디어는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스타벅스에서 나와 직접 일지오날레를 설립해 커피하우스 경험을 미국 문화에 뿌리내리게 됩니다. 이후 일지오날레가 스타벅스를 인수하게 되었으니 참 인연이란 게 신기하네요.


1987년 스타벅스 CEO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스타벅스의 경영철학을 실천해나갑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것들이 사명에 반영됩니다. 직원에게는 자신이 일하는 기업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 맺을 자격이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부모님은 무엇 하나 소유하지 못했었기에 당시 그 누구도 하지 않던 파트타임 직원에게도 포괄적인 건강보험과 스톡옥션을 제공합니다. 직원들을 위한 혁신을 스타벅스에서 실천한 겁니다.


바리스타를 통한 기업과 고객의 연결은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사업 모델에 필수였습니다. 직원이 진심이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라운드 업>에서는 스타벅스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을 살펴봅니다. 사소해 보이거나 기업이 해서는 안 될 행동처럼 보이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스타벅스 문화 형성에 기여했고, 오늘날 스타벅스가 되었습니다.





회사가 위기에 빠졌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대변혁기를 거치고 회사를 성장모드로 돌려놓기까지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스타벅스가 가진 수단을 활용해 선에 기여하고 진정한 가치를 드러낼 기회만큼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매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참여의식을 불러일으킨 겁니다. 구태의연한 정책에 지친 대중의 심정을 반영해 스타벅스가 시민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타벅스는 어떤 기업인가, 어떤 기업이 되고 싶은가, 오늘날 스타벅스는 어떻게 시민에게 기여할까를 꾸준히 고민합니다. 기회를 차단하는 현재의 사회에서 학생, 청년, 난민, 유색인종 등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자 애씁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상처 입고 가슴 아픈 일도 많았습니다. '모든 인종이 함께' 캠페인도 그중 하나입니다. 실패한 노력으로 인식되었더라도 불완전하지만 시도하는 것이 제쳐놓는 것보다 낫다는 걸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스타벅스는 그 바탕에 언제나 진지한 자기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교훈을 얻고 긍정적인 활동을 벌일 기회로 바꾸려는 노력으로 스타벅스의 역사가 하나둘 쓰였습니다.


1987년 매장 여섯 개와 100명이 안 되는 직원으로 시작한 스타벅스는 현재 우리나라에만 천사백여 개가 넘는 매장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국적 커피 전문점이 되었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얼마나 하워드 슐츠의 신념이 잘 반영되어 실천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지 사실 궁금하긴 합니다.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은 하워드 슐츠. <그라운드 업>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인사이트를 줍니다. 동시에 부의 양극단에서 살아본 그의 삶은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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