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 하늘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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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아프로퓨처리즘 판타지의 매력적인 조화가 빛나는 소설 <부서진 대지 3부작>. 


제노사이드와 모성이라는 키워드를 이렇게 풀어내는 대작이었다니, 완결편 <석조 하늘>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정수라는 걸 느꼈습니다.


딸과 헤어진 지 2년여의 시간 동안 에쑨과 나쑨이 겪은 일들은 고난과 역경 그 자체입니다. 외로움과 복수심이 혼재한 엄마와 딸 둘 다 그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분노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오벨리스크의 문을 열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차린 에쑨은 결국 더는 조산력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조산력을 쓸 때마다 돌로 변하는 벌을 받게 된 겁니다. 이 행성에서 가장 강력한 오로진인 에쑨이 더는 힘을 쓸 수 없게 되다니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대지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은 있을까요. 슬프게도 에쑨과 나쑨의 해결책은 궤를 달리합니다. 대지와 생명 사이의 해묵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에쑨은 사라진 자식인 달을 붙잡고 대지와 화해를 청하며 다섯 번째 계절을 끝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쑨은 위기의 순간에 진짜 가족보다 더 애틋한 가족이 되어줬던 수호자의 죽음을 계기로 인류 멸망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흑화 조짐이 조금씩 보여서 저도 모르게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계속 나쑨의 이야기를 읽을 땐 불안해했었나 봐요)


"타인의 절망과 절박함을 무기로 이용하려는 자들은 항상 있었지." - 책 속에서 


세상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오로진의 세계를 묘사하는 장면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에쑨의 껌딱지 스톤이터인 호아의 이야기도 마음에 쏙 들고요. 죽고 싶은데도 죽을 수가 없는 삶을 사는 스톤이터의 존재를 오로진만큼이나 묘합니다.


완결편 <석조 하늘>에서 밝혀지는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의 비밀은 정말 경악스럽습니다. 그런데 낯설지가 않아요. 부서진 대지 시리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법을 동력으로 이용하고자 한 인간의 약탈적인 면모가 결국 대지의 분노를 일으키게 한 소설의 배경은 부족과 결핍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멈추지 않고 지구의 자원을 약탈하는 현재 지구와 인류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누군가를 노예로 만들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에쑨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는 여정을 봐서인지 에쑨에게 조금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입니다. 해결 방향이 다른 나쑨과는 대결 구조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성을 내세운 에쑨이 안타까워지기도 했고, 불안한 시기를 보낸 나쑨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이 최고조에 달하도록 긴장감을 유발하는 작가의 클라이맥스 장면도 압권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로 시작한 다섯 번째 계절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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